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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예쁘고 재력이 넘침-29화 (29/91)

제29화

라파엘은 대놓고 알트페리아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발트레를 적으로 돌리는 순간, 매일 아침 목이 붙어 있는지 확인을 해야 할 테니까.

그래서 따라가는 사람이 있다면 말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사실 알트페리아를 따라 발트레로 가려는 길드원은 없을 것이다.

북부가 척박한 땅이란 점은 둘째치더라도, 길드원 모두가 연극에 재미를 붙인 상태였다.

준비한 작품도 성공리에 끝났으니까 이제 남은 건 꽃길밖에 없었다.

그런 큰 재미를 남겨두고 먼 북부로 떠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길드를 운영할 때 가장 큰 골칫거리는 바로 인재 유출이었다.

길드원의 이탈을 막기 위해서라도 그들의 월급은 아쉬운 소리 나오지 않을 정도로 줬고, 경조사까지 다 챙겨준다.

심지어 연애 상담도 제대로 해주며 정을 쌓아왔다.

‘우리의 유대는 끈끈하답니다, 공녀님! 길드원을 쉽게 데려갈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자신을 배신할 길드원은 없다고 당당했던 라파엘은 곧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크흠, 헛기침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은 알트페리아가.

“페페론치노가 뭔지 알지?”

―라고 말하자 무대 인사를 끝내고 돌아온 부단장이 놀란 고양이처럼 펄떡 뛰어오르며 재깍 반응했기 때문이었다.

“네, 압니다! 뭐든 시켜주십시오, 공녀님!”

대체 페페론치노가 뭐길래 부단장의 자리를 꿰찬 남자가 저러는지는 모르겠지만.

‘개꿀이네.’

따로 회유할 필요 없이 페페론치노 한마디면 북부까지 따라올 기세니까.

“부단장이 몇 달간 발트레에 머물렀으면 하는데, 마스터에겐 이미 허락받아 놨어. 그랬지, 마스터?”

으윽, 이미 말을 내뱉은 마당에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정보 길드의 마스터로서 자신이 내뱉은 말은 지켜야 하기 때문이었다.

“공녀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들었지? 앞으로 잘 부탁해.”

“예!”

부단장은 혹여 알트페리아의 기분을 거스를까 봐 군말 없이 냉큼 답했다.

그런 부단장의 태도에 황당해진 라파엘이 외쳤다.

“페페론치노가 대체 뭔데 이래?”

대체 무엇이길래 정보 길드 마스터인 자신이 모르는지!

부단장은 정색하며 입매를 굳혔다.

“마스터께서 말씀하셨죠. 흑표범단의 부단장을 맡을 정도면, 아무도 모를 비밀 하나쯤은 가지고 있으라고.”

무언가를 숨기는 것은 정보 길드원이 가져야 할 기본 소양 중 하나였다.

그리고 부단장은 그 뛰어난 은폐 실력으로 시녀와의 사이에서 있었던 일을 숨겼다.

“제 비밀을 알려고 하지 마십시오. 절대 알려드리지 못합니다.”

평생 발트레에 있는 것도 아니고, 첩보 활동 방법 정도만 알려주고 돌아오겠다는 말과 함께 부단장은 개선 축제가 끝나는 대로 발트레 저택으로 가기로 했다.

* * *

와, 시원해!

흑표범단의 막사 밖으로 나온 알트페리아는 밤바람을 쐬며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상대적으로 제도와 먼 거리에 있는 발트레는 정보를 습득하는 게 느려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대응하기가 힘들었다.

발 빠르게 처리했으면 쉽게 해결할 문제였는데 뒤늦게 알아차려 고생한 경우가 한두 번이어야지!

그 점을 파악한 그녀의 부모도 밀정을 키우려 여러 방면으로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탄탄한 실전 경험이 있는 정보 길드의 부단장을 섭외했으니까 앞으로 발트레의 부족한 점을 잘 채워줄 것 같았다.

‘기본 틀은 갖췄어.’

영지를 꾸려나갈 자본과 발생하는 일에 미리 대처하기 위한 정보 수집 능력까지.

여기서 욕심을 부리면 발트레와 나란히 붙어 있는 이웃 영지를 견제할 힘만 있으면 딱 좋을 것 같았다.

그녀가 생각에 집중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루크가 뭐라고 했다.

“……에 가시겠습니까?”

“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바로 이동합시다.”

“네?”

뒤늦게 아차한 알트페리아가 무슨 말인가 되물었지만, 루크는 이미 저 앞까지 걸어가 마차를 잡고 있었다.

밤도 늦었는데 집에 보내주지 않고 어딜 가는 거야?

* * *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랜 전쟁을 끝마친 기념으로 축제 첫날에는 마탑의 도움을 받아 화려한 불꽃놀이가 하늘을 수놓을 예정이었다.

루크는 불꽃놀이 명당을 몇 군데 알아뒀다며 소주 맛이 나는 맥주를 파는 술집 몬스테라를 찾았다.

알트페리아는 그와 함께 옥상으로 올라왔다.

옥상은 몬스테라의 단골손님에게만 특별히 개방한다고 하는데 오늘은 알트페리아와 루크밖에 없었다.

그를 따라 가장 높은 층에 올라왔더니 놀랍게도 이 가게는 지붕을 뜯어 개조해 바로 만들어뒀다.

잘 말린 꽃으로 장식하고 군데군데 작은 램프를 걸어 은은한 분위기로 만들어둔 것이 꼭.

‘이거 루프탑 아냐?’

몬스테라를 만든 사람은 나이가 들어 늙어 죽은 전 주인이었다.

소주 맛이 나는 맥주도 그렇고, 이런 인테리어를 보니 몬스테라 전 주인도 빙의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 분위기 하나만큼은 끝내줬다.

알트페리아는 기다란 소파에 앉아 제도의 풍경을 바라봤다.

높은 건물이라고는 황궁밖에 없었기에 시야가 확 트여서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곁에 나란히 앉은 그가 입을 열었다.

“한잔 하시겠습니까?”

“네, 주세요.”

그가 따라주는 술을 받아 마신 알트페리아는 눈을 깜빡거렸다.

‘와, 진짜 소주 맛이 나.’

오묘하게 맥주랑 섞인 맛이 딱 소맥이었다.

이 맛있는 걸 제국 사람들은 왜 그리 꺼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조금 부족한 게 있는데.

“안주는 없나요? 예를 들어 삼겹살 같은 거요!”

상추에 쌈장까지 있으면 최고일 것 같은데.

“다른 메뉴는 있습니다.”

루크가 허공에 손짓하자 종이상자 같은 게 뿅 하고 생겼다.

전생에 헌터였던 그는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가상의 공간인 인벤토리를 소환할 수 있었다.

저 안에는 루크가 전생에 사용한 물건이 가득 담겨 있었지만, 아쉽게도 이 세계에 빙의하며 모든 물건이 잠금 상태가 되어 끄집어낼 수 없었다.

하지만 성좌가 후원한 물품은 꺼낼 수 있었다.

그 성좌들 또한 자신들의 무대가 아니다 보니까 후원할 수 있는 물건이 음식뿐이라는 제약이 걸려 있었지만.

알트페리아는 인벤토리를 사용하는 루크를 빤히 바라봤다.

“그게 인벤토리죠? 진짜 편해 보이네요.”

인벤토리 하나 있으면 생활의 질이 상승할 것 같았다.

“혹시 옮길 물건이 있으면 저에게 주십시오. 제 인벤토리에 넣어뒀다가 꺼내면 되니까요.”

“얼마나 큰 물건까지 들어가나요?”

당장 쓸 곳은 없지만, 개인적인 호기심에 물어봤다.

“제 키만 한 드래곤의 잘린 꼬리는 넣어봤습니다. 그 이상은 시도해 본 적 없지만, 아마 가능은 할 겁니다.”

“부탁할 일 있으면 공자를 찾을게요.”

고개를 끄덕인 루크는 인벤토리에서 꺼낸 상자를 개봉했다.

꽉 닫힌 상자가 열리자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겼다.

‘이 냄새는?!’

막 기름에 튀겨져 나온 고소한 치킨 냄새가 진동했다.

아는 맛이 무섭다고, 전생에 먹어본 적이 있는 음식이기 때문에 군침이 절로 고였다.

‘심지어 간장치킨이야.’

바싹하게 잘 튀겨내어 통깨를 솔솔 뿌린 치킨은 은은한 갈색빛과 함께 짭조름한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닭튀김 정도야 고기에 밀가루 묻혀서 기름에 튀겨내면 대강 흉내는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간장치킨, 그건 대체 어떻게 만드는 거냐고!

간장치킨 특유의 짭짤한 맛을 상상하는 알트페리아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루크는 괜스레 흐뭇해졌다.

“삼겹살이 아닌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당연히 괜찮죠! 전생의 음식을 다시 볼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저도 여기서 먹는 건 처음인데 공녀님 덕분에 맛보는군요.”

“저 때문에요?”

이야기하던 루크가 멈칫했다.

이 치킨은 미인계를 이용해 알트페리아의 얼굴을 붉게 만들고, 심장 박동을 빠르게 만들라는 퀘스트를 달성하여 받은 것이다.

딱히 그녀를 유혹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엉겁결에 퀘스트가 달성되었지.

“혹시 뭔가 더 드시고 싶은 게 있습니까?”

루크는 답하기 조금 곤란해 말을 돌렸다.

반면 알트페리아는 속으로 내심 기뻐하고 있었다.

‘내 노력이 헛되지 않았어!’

얼빠 성좌들의 눈에 들기 위해서 옷도 머리도 신경 썼다.

앞으로도 잘 보이면, 계속 무언갈 줄지도 몰랐다.

이왕이면 먹고 싶은 음식이 좋지 않은가.

알트페리아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새침하게 말했다.

“다음 기회가 있다면 로제떡볶이가 먹고 싶어요. 이왕이면 소시지가 잔뜩 든 걸로.”

동시에 루크에게만 보이는 알람이 떴다.

[<시스템> 알트페리아의 간절한 소망에 ‘사자의 서기관’이 반응합니다!]

[<시스템> 특별 퀘스트를 생성합니…….]

파지직! 눈앞에 뜬 푸른색 알람창이 유리가 깨지듯 쪼개지더니 사라졌다.

[<시스템> 퀘스트 생성에 실패했습니다!]

[<시스템> 신력이 부족합니다!]

[‘명계의 지배자’가 나 정도는 되어야지 퀘스트를 만들 수 있다며 으쓱댑니다.]

이곳은 루크가 살던 전생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성좌들의 주력 무대 또한 아니기에 큰 퀘스트 같은 걸 만들려면 힘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실패 대가가 클수록 퀘스트를 만드는 데 소모되는 신력이 줄어든다.

퀘스트를 수행하는 플레이어가 부담을 함께 지기 때문이었다.

그 점을 알고 있는 루크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실패 대가가 있어도 되니까 퀘스트를 생성해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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