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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예쁘고 재력이 넘침-37화 (37/91)

제37화

딸랑.

맑은 종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갈색 머리를 하나로 묶고 거대한 안경을 쓴 장신의 직원이 그들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두꺼운 안경으로 얼굴이 가려졌지만…… 익숙한 모습을 확인한 알트페리아는 굳어버렸다.

망했다.

‘소후작이 왜 여기 있는데?’

리암 에드먼드 소후작.

그와는 엄지손가락 쭉쭉 빨던 갓난아이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소꿉친구였다.

게다가 한 번은 이런 대화도 오간 적이 있었다.

“도저히 못 참겠어. 왜 하필 앨런이야?”

“…….”

“내가 그 자식보다 잘생겼고 키도 커. 나를 선택해, 알트페리아.”

고백받았지만 알트페리아는 앨런이 아니면 심장이 뛰지 않는다며 그를 찼다.

외둥이인 리암은 어릴 때부터 제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알트페리아를 먼저 먹였고, 좋은 것이 생기면 그녀의 손에 먼저 쥐여줬다.

가지고 싶은 건 뭐든 구해주던 그는 그녀를 데리고 발트레 영지 곳곳을 돌아다녔다.

알트페리아도 그런 리암을 친오빠라고 생각하며 잘 따라서, 모르는 이들의 눈엔 사이좋은 오누이로 보일 정도였다.

‘여섯 살 때까지는 리암이 진짜 내 오빠인 줄 알았어.’

알트페리아 또한 그렇게 착각할 정도로 사이가 좋았던 것이다.

리암과의 우애는 자라면서도 계속되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었지만 외롭지 않았던 건 진짜 가족 같은 리암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알트페리아가 앨런을 선택했을 때.

그녀에게 크게 실망한 에드먼드 후작이 발트레를 등지고 떠났을 때 리암과의 연락도 끊겼다.

에드먼드 후작이 자신의 식솔을 모두 데리고, 배웅도 거부한 채 북부를 떠나버렸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리암에게 편지도 보냈지만, 답장은 받을 수 없었다. 그렇게 리암과의 소통은 끝나버렸다.

그런 그와 예고도 없이 만나게 되어 당황스러웠다.

리암 또한 당황했는지 그 자리에 서서 멈칫했다.

그가 쓰는 안경은 옛날보다 더 두꺼워졌다.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라 어떤 눈으로 그녀를 보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긴 침묵 끝에 리암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발트레의 후계자님이시군요.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과거, 사이가 친할 땐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며 말을 놓았었는데 지금의 그는 과거 따윈 모두 잊었다는 듯 철저하게 벽을 세웠다.

알트페리아 또한 상단을 찾은 손님으로서 그를 대하기로 했다.

“소후작을 만나러 온 것이 아니라 땅을 사러 왔어. 이왕 수수료를 낼 것, 지인에게 보탬이 되었으면 하거든.”

진짜 속셈은 여기가 수수료가 싸서지만!

더 나아가 에드먼드 상단과 손을 잡고 싶기도 해서였다.

불투명한 안경 너머 리암의 시선이 알트페리아에게서 루크 쪽으로 향했다.

잠시 침묵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알트페리아는 루크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에드먼드 상단은 제국에서도 손꼽히는 상단 중 하나였다.

잘나가는 중이라는 것을 보여주듯 내부를 장식한 가구들은 희귀한 향나무로 만들어져 있었고, 세공도 이름 있는 장인이 맡은 듯 화려했다.

호화스러운 풍경에 시선을 빼앗긴 알트페리아는 가게 안을 구경하다가 리암의 자리인 듯한 의자에 걸쳐져 있는 모피를 보고 놀랐다.

‘헉, 저건 눈여우털로 만들었잖아!’

눈여우는 마물의 한 종류로서 털가죽에 서늘한 기운이 남아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특수 효과가 붙어 있는 만큼 값을 매기기가 어려울 정도로 귀한 모피였다.

어째 발트레에서 독립한 뒤로 더 잘나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의 땅을 구매하시고 싶으십니까?”

“에드나의 땅을 사고 싶어.”

“에드나 말입니까.”

한쪽 벽면 전체가 둘둘 말린 지도가 들어간 장식장으로 채워져 있었다.

리암은 명찰을 몇 개 확인하더니 에드나 지역의 지도를 꺼내 테이블 위에 활짝 펼쳤다.

알트페리아는 지도를 살펴봤다.

제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에드나는 바다를 끼고 있는 거대한 항구도시였다.

문제는 사람이 살지 않는 유령도시라는 것이다.

‘예상보다 훨씬 싸네?’

아무도 찾지 않는 지역이니까 저렴할 거라곤 생각했지만, 예상의 절반일 줄이야.

알트페리아는 항구 끝에 있는 건물 몇 개를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여기랑 여기.”

리암은 알트페리아가 가리킨 장소의 주소를 장부에 적어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리고 여기까지. 이 사이에 있는 땅과 가게를 모두 사고 싶어.”

물 흐르듯 빠르게 기록하던 리암의 손이 멈칫했다.

“항구 주변의 땅을 전부 사신다고요?”

“응.”

예로부터 물길 옆에 있는 땅은 비쌌다.

최대한 많이 사는 것이 좋지 않은가.

마치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듯, 장부에 글을 끼적끼적 적던 리암이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후계자님께서 여기를 전부 사신다면 저야 좋습니다.”

“서로가 만족스러운 좋은 거래네.”

리암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런데도 마음이 풀리지 않는지, 안경을 매만지며 다시 한번 한숨을 길게 푹 내쉬었다.

“사기 치는 기분이 들어서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뭘?”

“에드나는 제국의 동부, 북부, 남부를 잇는 거대 항구입니다.”

“그렇지.”

맞아. 바로 그 점 때문에 구매하는 거니까.

“하지만 에드나의 땅은 소유주가 없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상하네.”

가만있어도 돈을 벌어 올 땅을 아무도 사지 않으니.

사실 알트페리아도 에드나의 땅을 소유한 사람이 꽤 될 줄 알았다. 아무리 쓸모없는 땅이라도 일단 들고 있자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나야 좋지만.’

리암이 펼친 장부를 탁 내려놓았다.

“당연히 아무도 구매하지 않죠. 이 지역의 바다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꽁꽁 얼어붙어 있으니까요! 발트레가 아무리 춥다고 해도 바다까진 얼어붙지 않는데 여기는 얼음을 깰 수 없을 정도로 꽝꽝 얼어 있어요.”

“…….”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추워서 아무도 사지 않는단 말입니다.”

알트페리아는 마치 자신이 사기를 당한 것처럼 씩씩거리는 리암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저렴한 곳이라고 하나 구매하는 규모가 상당해서 금액이 꽤 되었다.

큰돈이 굴러올 것을 마다하고 옳은 말을 하는 가신을 내쳤다니.

‘과거의 나, 반성하자.’

“알고 있어.”

“네? 알고 계신다고요?”

“응.”

바닷길이 얼어붙고,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된 이유는 원작에서 나온다. 바로 초대 소드마스터와 마법사들이 봉인한 드래곤 때문이었다.

마물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다는 드래곤.

그중에서 불의 속성을 가진 화룡을 상대하느라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지만, 결국 쓰러뜨리지 못했다.

최후의 방법으로 마법사들을 동원하여 에드나 근처의 무인도에 드래곤을 봉인했다.

화룡이다 보니까 봉인으론 얼음 마법을 사용했다.

그런데 그 마법이 너무나도 강력해서 근처에 있는 바다를 전부 다 얼어붙게 해 혹한의 땅으로 만들어버렸다.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추운 땅이다 보니 자연스레 찾는 이가 없어졌고 말이다.

하지만, 아무 쓸모도 없다 여겨지던 얼어붙은 땅의 가격은 몇 달 뒤에 미친 듯이 뛰어오른다.

특히 바다 앞에 있는 땅의 가격은 천장 무서운 줄 모르고 솟아오른다.

드래곤의 봉인이 풀림과 동시에, 얼어붙은 바닷길이 녹기 때문이었다.

‘몇 배로 오를까?’

최소 100배 이상일 것 같은데.

신이 난 알트페리아와 달리 아무것도 모르는 리암은 눈동자를 굴렸다.

“대체…… 이 땅은 왜 구매하시는 겁니까?”

“그냥 끌려서.”

자세히 설명해 줄 순 없었다.

아랫입술을 잘근 깨문 리암은 기껏 적은 영수증을 건네지 못했다. 아까 말한 대로 사기 치는 기분이 들어서인 모양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알트페리아는 그가 적은 영수증을 휙 빼내어 내용을 확인했다.

자신이 골랐던 땅이 맞았다.

땅을 사려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돌면, 아무것도 모르면서 투자하려는 자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투자자들이 승냥이처럼 달려들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거래를 끝내서 자신의 땅이라고 도장을 꽝 찍고 싶었다.

“계약서 줘.”

리암은 마지못하며 장부에 끼워져 있는 계약서를 꺼냈다. 그것을 받은 알트페리아는 영수증과 계약서의 내용을 확인했다.

지급할 금액은 5억 르블라.

가지고 있는 돈의 절반을 조금 넘는 금액이었다.

잔액의 절반이 날아가면 몸이 어떻게 될까 살짝 걱정도 된다.

하지만 남은 잔액이 0이 되지 않으면 적어도 죽진 않고, 지금 투자해야 드래곤의 봉인이 풀린 뒤 웃을 수 있었다.

알트페리아는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가져온 수표를 꺼내 영수증에 있는 금액을 적었다.

“당장 거래할게. 돈은 여기 있어.”

만족스럽다며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는 알트페리아와 달리 리암은 죽을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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