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편이 예쁘고 재력이 넘침-39화 (39/91)

제39화

원작 속 루크는 힐다에게 모든 포상금을 빼앗겼다.

전 재산을 빼앗긴 그는 정체를 숨기고 근처 투기장을 돌며 돈을 벌었다.

투기장은 경기장에 사람을 밀어 넣고 진검승부를 시키며 승패를 예측하는 장소였다.

이기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용납되기에 목숨도 보장할 수 없었다.

그런 투기장에 참여한 검사들은 목숨값을 두둑이 받았다.

하지만 아무리 목숨값이 크다 해도 5억 르블라를 채우기엔 터무니없는 액수니까 밤낮으로 투기장을 뛰려는 모양이었다.

위험한 투기장일수록 목숨값도 높다.

그만큼 위험한 장소만 골라 가겠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원작과 달리 현재 그는 얼굴까지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투기장을 돌아다니면 아무리 정체를 숨긴다 해도, 다들 그를 알아볼 것이 분명했다.

“투기장을 돌 생각이시죠?”

“……맞습니다.”

“허락하지 않겠어요. 정당하게 벌어 오지 않은 돈은 받을 수 없어요.”

심지어 투기장은 전부 불법이라고.

“그렇지만 공녀님이 이렇게 아프신데…….”

“…….”

“제가 무능하여 드릴 수 있는 도움이라고는 그런 일밖에 없습니다…….”

“주신 진통제가 잘 돌아서 슬슬 괜찮아지고 있어요. 생각보다 별로 아프지 않았고요.”

사실 며칠 기절하리라 각오했는데 생리통 수준이라 참을 만하다.

루크의 눈시울이 점점 붉어졌다.

그 모습에 알트페리아는 가슴 안쪽이 저릿해지는 걸 느꼈다.

‘나를 걱정하는 거야.’

제 몸 따윈 상관없다고, 투기장을 돌 각오를 할 만큼.

사실 루크의 실력은 믿었기에 그가 무사히 돌아올 건 알았다. 하지만 저를 걱정해 주는 그가 떳떳하지 않은 장소에 가는 건 원치 않았다.

‘그러고 보니 원작에 이런 말이 있었지…….’

딱 지금 상황에서 써먹을 만한 이야기가 있었다.

“미안해 할 필요는 없어요. 어차피 저 스스로 해내야 해요.”

스킬을 업그레이드하려면 경험치를 쌓아야 한다.

자신의 경우는 재물과 관련된 것이니, 보유 재산의 잔액은 직접 대출받든지, 장사를 하든지, 사기를 치든지 해서 번 돈으로 채워 넣어야 했다.

“사실입니까?”

루크의 경우는 마물을 사냥하여 경험치를 쌓으면 되었다. 그렇기에 알트페리아같이 재물과 관련된 쪽은 잘 몰랐다.

그의 질문에 성좌들이 답했다.

[‘사자의 서기관’이 알트페리아의 말에 긍정의 뜻을 보입니다.]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루크는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이 미안하여 눈을 꾹 감고 스스로를 책망했다.

툭, 무언가 루크의 손을 건드렸다.

눈을 뜨니 알트페리아가 자신의 손을 톡톡 치고 있었다.

“그나저나 공자님의 약 정말 효과가 좋은데요? 두통이 싹 나았어요.”

사실 조금 아프지만 버틸 만했다.

괜찮다며 미소를 지었더니, 루크의 눈가가 한층 더 붉어졌다.

저러다가 진짜 눈물을 펑펑 흘릴 것 같았다.

“정말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

갑자기 루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누워 계십시오. 잠시 옆방에 다녀오겠습니다.”

음, 아무래도 울려고 가는 모양이었다.

감정이 격해지면 뭘 해도 막을 수 없을 테니까.

제 앞에서 울기에는 부끄러울 테니 그녀는 그를 위해 다녀오라고 했다.

루크가 자리를 비웠다.

혼자가 된 알트페리아는 두리번거리며 루크가 묵고 있는 방을 둘러봤다.

나무의 결만 살아 있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옷장과 거대한 책상.

전신거울 하나, 기름으로 붙이는 램프 여러 개.

창문에는 암막 커튼이 쳐져 있고 벽지 또한 밋밋했다.

갖출 건 다 갖춰져 있지만, 공자가 머무르는 방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검소했다.

루크는 그랑힐데 저택에 돌아가지 못하고 전쟁터에서 귀환한 뒤로 쭉 여기서 지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루크를 먼저 저택으로 불러들일 걸 그랬나.

곧 결혼할 예정이라 동거는 미뤘었는데 이런 곳에서 살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알트페리아는 루크가 사라진 방문을 바라봤다.

옆방에서 엉엉 우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해서 더 신경 쓰였다.

‘진짜 괜찮은데.’

위로하러 갔다간 그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 어쩔 줄 몰라 할 듯했다. 지금은 혼자 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으…….”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더니 머리가 찡 울려 이불 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

그러자 익숙한 부드럽고 포근한 향기가 느껴졌다.

루크에게서 풍기던, 사향을 닮은 듯한 향기였다.

잘생긴 사람은 몸에서 나는 향기까지 좋다니까.

‘체향이겠지?’

그는 향수 같은 건 사용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

향기에 이끌린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은은한 향이 몸속에 퍼지니까 마음이 편해진다. 좀 더 맡고 싶었다. 그의 품에 있을 땐 특히 진해지던데.

알트페리아는 나른한 기분이 들어 눈을 살며시 감았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란 그녀는 이불을 냉큼 내려놓았고, 그사이 긴 은쟁반을 든 루크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를 바라보는 알트페리아의 얼굴에 열이 올랐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루크의 태도를 보아하니 이불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는 건 못 본 모양이었다.

그녀의 심장은 마치 잘못을 들킨 것처럼 벌렁거렸다.

그녀는 새빨개진 얼굴로 대답 없이 루크를 바라봤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열이 더 오르신 건가.’

심상치 않은 모습에 그녀에게 다가간 루크가 은쟁반을 내려놓고 이마에 손을 올렸다.

“열은 내리신 듯하지만, 얼굴이 아직도 새빨갛습니다. 진통제를 더 드릴까요?”

“이불 속에 들어와 있어서 그래요. 금방 가라앉을 거예요.”

알트페리아는 자기 얼굴의 열기를 없애기 위해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수상해 보이지는 않겠지?

방금까지 루크의 체향을 찾는다고 이불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고 있었던 자신을 떠올리면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미쳤어.’

아무리 향기가 좋았다지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열심히 부채질한 덕분에 겨우 가라앉은 얼굴이 다시 붉어지기 시작했다.

민망한 기분을 떨쳐내기 위해 다른 일에 집중해야 할 것 같았다.

알트페리아는 그를 바라봤다. 마음을 진정시켰는지 붉었던 눈가는 전부 가라앉아 있었다.

운 것 같진 않은데…….

“들고 오신 건 뭔가요?”

그가 가져온 은쟁반 위엔 뚜껑을 덮은 접시와 함께 작은 빈 그릇, 그리고 수저가 있었다.

뭔가 요깃거리라도 챙겨 온 건가.

루크가 닫힌 뚜껑을 열자 달걀노른자 특유의 고소한 냄새가 방 안에 확 풍겼다.

“시장하실 거 같아 만든 계란죽입니다.”

난 또 울려고 간 줄 알았네.

귀족이 머무는 호텔이다 보니, 방마다 차나 간단한 디저트를 만들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당연하게도 귀족이 데려온 시종들이 사용하는 곳이지만 루크는 제 손으로 직접 요리를 만들어 왔다.

“재료가 온전하지 못하여 귀리로 만들었지만, 맛은 괜찮았습니다. 드시겠습니까?”

“네, 주세요.”

루크가 죽을 덜어줬다.

막 만든 죽은 뽀얀 수증기가 몽실몽실 피어오르며, 그릇을 금방 데웠다.

따뜻한 음식을 담는 그릇이라 손이 델 정도로 뜨겁진 않고, 열감이 돌 정도로만 뜨뜻했다.

귀리를 사용했다더니, 흰 쌀과 비교하여 알이 크고 많이 으깨져 있었다. 그녀는 선명한 노란색 빛이 도는 죽을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서 뜨거운 김을 날렸다.

그리고 한입 덜어 먹었다.

입 안에서 노른자의 고소한 맛이 확 퍼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맛은……!’

루크가 만든 죽에서 어머니의 손맛이 느껴졌다.

수수한 음식이긴 하지만, 맛있었다.

“맛있어요! 요리는 언제 익히신 거예요?”

“헌터로 활동할 때 익혔습니다. 던전에 들어갔다가 갇히면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버텨야 했거든요.”

“아무리 그래도 이전에 살던 세계와는 재료가 다를 텐데 이렇게까지 맛을 구현하시네요. 전 재료를 줘도 만들지 못할 거예요.”

루크가 만든 죽을 호호 불어가면서 먹다 보니 어느새 한 그릇을 다 비웠다. 빈 그릇을 받은 루크가 죽을 좀 더 덜어줬다.

“전쟁터에서도 직접 요리를 해야 할 일이 잦았습니다. 주변에 있는 재료를 이용하여 이것저것 만들다 보니 몇 가지는 흉내를 낼 수 있습니다.”

루크와 똑같이 전생의 기억이 있지만 그녀는 요리를 할 줄 모른다.

전생에선 요리라기보다 그냥 끼니를 빠르게 때우기 위해 라면만 끓여 먹었다.

한 번은 몸살감기가 들어서 죽을 끓여봤는데 망했다.

죽은 쉬워 보여도 꽤 어려운 요리다.

그냥 쌀과 달걀을 넣어 만들면 아무런 맛이 나지 않고 밍밍하기만 해, 만든 이의 실력에 따라 맛이 확 달라진다.

하지만 루크가 만든 건 달걀의 담백한 맛과 함께 감칠맛까지 제대로 살아 있었다. 내공이 느껴지는 맛이었다.

알트페리아는 루크가 만든 죽을 호호 불며 남김없이 먹었다.

“맛있어요, 잘 먹었어요.”

깨끗하게 그릇를 비운 모습에 루크가 뿌듯함을 느끼며 빈 그릇을 받을 때 눈앞에 알람창이 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