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화
[<시스템> 알트페리아의 행복 지수를 9 획득하였습니다!]
[<시스템> 현재 행복 지수: 9/10]
퀘스트가 완료되진 않았지만 높은 수치를 획득했다. 불꽃놀이를 보며 두 눈을 반짝였을 때보다 훨씬 높았다.
드디어 자신이 불꽃을 이긴 것이다.
루크는 알트페리아가 자신으로 인해 기쁨을 느끼자 벅차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좀 더 그녀를 기쁘게 만들고 싶었다.
“몸이 괜찮으시다면, 다음에는 다른 것도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어떤 걸 만드실 수 있어요?”
“거창한 건 아니지만 계란말이나 나물류, 백숙 비슷한 것은 만들 수 있습니다.”
“와, 그 정도면 완전 집밥 마스터 아니에요?”
“재료만 있으면 웬만한 한식은 다 만들 줄 압니다. 공녀님은 뭘 좋아하셨습니까?”
“저는 고기반찬이랑 매콤하고 칼칼한 건 다 좋아했어요.”
“마침 자신 있는 분야입니다.”
그의 말에 알트페리아가 까르르 웃었다.
“저는 전생도 지금도 요리를 못해요. 전생에서 공자님을 만났으면 참 좋았을 것 같아요.”
“…….”
“실력 좋은 남편 덕에 밥 굶을 일은 없었을 거 아니에요?”
그 말은…… 자신을 남편 삼고 싶을 정도로 좋다는 건가?
곧 그녀의 남편이 될 예정이긴 하지만, 계약으로 진행되는 거였다.
하지만 지금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녀의 마음에 선택받은 기분이 든다.
띠링! 그의 눈앞에 새로운 알람이 떴다.
[‘흑화한 염룡’이 현재 루크의 행복 지수는 알트페리아의 다섯 배라고 합니다.]
[‘사자의 서기관’이 알트페리아의 행복 지수를 올려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사자의 서기관’이 퀘스트를 착각하지 말라고 타박합니다.]
[‘사자의 서기관’이 루크의 행복 지수가 계속 오른다고 환장하겠다고 합니다.]
루크에겐 자신의 행복 지수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초월자인 성좌들의 눈에는 보이는 모양이었다.
사실 성좌들이 말하지 않아도 제 기분은 알 것 같았다. 모든 걸 손에 넣은 듯한 풍족한 기분이 드니까.
[‘명계의 지배자’가 사자의 서기관에게서 익숙한 모습을 느낍니다.]
[‘흑화한 염룡’이 자신은 퀘스트 같은 건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 * *
루크는 계란죽을 먹고 기운을 차린 알트페리아를 발트레 저택까지 데려다주고, 그레이 호텔로 돌아왔다.
그가 호텔 직원에게 욕조에 물을 채우라고 명령하고 기다릴 때였다.
“필요한 아이템이 있습니다. 퀘스트를 만들어주십시오.”
[‘명계의 지배자’가 뭐가 필요하냐며…….]
[‘사자의 서기관’이 매콤하고 칼칼한 음식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원하는 거라고, 거절하라고 합니다.]
[‘명계의 지배자’가 정신을 차리고 거절한다고 합니다.]
“쯧.”
루크는 혀를 찼다.
‘명계의 지배자를 꾀어내려고 했는데.’
그는 좀 맹한 구석이 있어서 말로 살살 구슬리면 원하는 걸 준다.
하지만 시도도 하기 전에 눈치 빠른 사자의 서기관이 선수를 쳐버렸다.
뭐, 기회는 다음에도 있었다.
영 안 되면, 대륙 전역을 뒤지면 비슷한 맛을 내는 식자재가 있을지도.
* * *
다음날, 정보 길드의 부마스터인 리베르트가 발트레 저택에 찾아왔다.
알트페리아는 그의 전 연인이었던 에델을 데리고 응접실로 향했다.
에델을 알아본 부단장이 흠칫하더니, 시선을 애써 피했다.
암만 봐도 둘 사이에 뭔가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추측할 수 있는 단서라곤 페페론치노뿐이었다.
뭐, 속사정에 대해선 천천히 알아보기로 했다.
“공녀님이 의뢰하신 임무는 무사히 완수하였습니다. 원래라면 마스터께서 직접 전달하셔야 하는데 빨리 받으시길 원한다고 하셔 제게 부탁하셨습니다.”
그는 흰 천으로 둘둘 말린 물건을 꺼내 펼쳤다.
검집까지 세트였다.
“찾으시는 물건입니다.”
오오, 이것이 바로 초대 소드마스터가 사용했다는 그 검이구나!
검신은 물론 날까지 새까만 검은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오라석이라고 하는 특수한 광물로 만들어졌다.
덕분에 루크가 지닌 강한 오라도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색상을 보니까 딱 루크 전용 같았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어디서 찾았어?”
“초대 소드마스터가 이름을 알리게 된 첫 번째 전장의 땅을 미친 듯이 파헤치다 보니 나왔습니다.”
“…….”
“쓸데없이 넓은 황무지라 길드원 전부가 나가서 고생 꽤 했습니다.”
리베르트를 보내준다고 해놓고 소식이 왜 없나 했는데, 그 또한 황무지의 땅을 파헤치다가 온 모양이었다.
“수고했어.”
알트페리아가 검을 받아 드는데, 그녀의 팔이 자석에 끌려가는 쇠붙이처럼 아래로 툭 떨어졌다.
“무…… 무거워!”
단 몇 초도 버틸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다.
“제가 들어드릴게요.”
곁에 있던 에델이 한 손으로 가볍게 검을 들어 올렸다. 알트페리아는 왠지 그 모습이 아니꼬웠다.
‘나도 휘둘러보고 싶은데!’
애석하게도 휘두르긴커녕 들지도 못할 정도로 무거웠다.
‘더러워서 진짜, 보유 재산을 불릴 거야!’
돈을 벌면 모든 능력치가 올라간다. 그중에는 힘도 있으니까 에델처럼 한 손으로 검을 가볍게 내저을 수 있을 것이다.
검집째로 가볍게 붕붕 내두르던 에델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가볍네요! 한번 뽑아봐도 돼요?”
저게 가볍다고?
“안 돼, 선물용이니까 고이 내려놔.”
“알겠습니다.”
에델은 기다란 나무상자 안에 초대 소드마스터의 검을 고이 넣었다. 알트페리아는 그것을 통째로 포장하라 지시했다.
나중에 기회를 틈타 인벤토리에 집어넣을 생각이었다.
흘끗흘끗, 에델을 보던 리베르트가 입을 열었다.
“앞으로 저는 무엇을 하면 됩니까?”
“발트레 기사단의 정보는 알고 있어?”
“현재 해체되었다는 백영에 대해서라면 알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가신의 도움을 받았지만 어린 알트페리아는 제대로 가문을 운영하지 못했다. 마침 마물의 출몰도 멈췄기에 유지비가 많이 들었던 기사단인 백영부터 해체했었다.
공작가의 힘이 약해졌다는 게 대외적으로 드러나면 곤란하니까, 공식적인 해체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는 이들 사이에서는 발트레가 무력을 포기했냐며 시끌시끌했었지.
이런 걸 자연스럽게 알고 있을 정도니, 정보 수집 능력 하나만큼은 확실한 듯했다.
“에델을 포함하여 몇 시녀들은 백영 소속이었어. 나는 그녀들을 주축으로 해서 새로이 백영을 만들 생각인데, 정보 수집에 능한 밀정도 키울 계획이거든.”
“…….”
“리베르트가 할 일은 백영 소속이었던 시녀들을 교육하는 거야.”
“알겠습니다. 공녀님의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설명을 끝낸 알트페리아가 가볍게 손뼉을 쳤다.
그녀의 부름에 에델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예, 공녀님. 부르셨나요?”
“리베르트에게 저택을 안내해 줘.”
이미 에델과 이야기를 끝낸 사항이었다. 정작 아무것도 모르는 리베르트가 놀란 듯 눈을 깜빡였다.
“에…… 에델이 제 안내를 맡는 겁니까?”
“왜, 싫어?”
“아니, 싫은 건 아니지만…….”
리베르트가 머리를 긁적이며 에델을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괜찮아?”
에델이 알트페리아를 슬쩍 봤다. 그리고 죄송하다는 듯 고개를 살짝 숙였다.
“공녀님께서 내린 명령에 사사로운 마음을 담을 생각 없어요. 따라오세요.”
에델은 리베르트를 데리고 저택 안쪽으로 향했다. 멀어지는 에델의 입꼬리가 기분이 좋은 듯 부드럽게 휘었다.
‘리베르트도 싫어하는 건 아닌 것 같던데.’
이대로 둘이 다시 이어지는 거 아냐?
그편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부족한 정보력을 채워줄 인재가 발트레에 눌러앉으면 좋은 일이니까.
‘에델, 힘내.’
리베르트는 괜찮은 인재였다. 이왕이면 꽉 붙잡아서 발트레에 남도록 해주렴.
* * *
초대 소드마스터의 검을 손에 넣었다.
이제 드래곤을 토벌하는 루크가 다칠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계좌에 4억 9천만 르블라밖에 남지 않아 몸이 허약해진 것도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드래곤의 봉인이 풀리면 동항(凍港)의 얼음이 녹을 테고, 구매한 에드나의 땅값도 오를 테니까.
투자라는 씨앗은 다 뿌려뒀으니까 수확하기만 기다리면 되었다.
이제 다음 문제는…….
‘슬슬 결혼식을 진행해야겠지?’
루크가 드래곤을 쓰러뜨린 후엔 황제의 집착이 더욱 심해진다.
하루라도 빨리 결혼식을 끝내서 황제가 루크를 데려가지 못하게 만들어야 할 듯했다.
결혼은 신전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따로 사람을 초대하지 않고 루크와 단둘이 끝낼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던 세이룬과 시녀들이 난리가 났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당연히 공녀님께선 제국에서 가장 호화스러운 결혼식을 여셔야죠. 황제의 즉위식보다 더 으리으리하게요!”
“저희가 공녀님의 결혼식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세요?”
루크와는 1년 뒤에 깔끔하게 헤어지기로 했다.
파기할 결혼을 성대하게 치르는 건 영 아닌 듯하여 조용하게 끝낼 생각이었는데.
‘계약 결혼이라고 설명할 수도 없고.’
사랑이 아니라 계약 때문에 결혼한다고 하면 더욱 난리가 날 것이다.
그러니 나중에 발트레에서는 제대로 하겠다고 대충 둘러댔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황실에 편지를 한 장 보냈다.
황제의 허락을 받아 결혼하게 되었으니 알리는 거였다.
모든 일과를 끝낸 알트페리아는 침실에 들었다.
몸이 좋지 않아서 그런가.
평소보다 깊은 잠에 빠져든 알트페리아는 꿈을 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