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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예쁘고 재력이 넘침-42화 (42/91)

제42화

“폐하께서는 영주들끼리 과도한 경쟁을 할까 염려하셔서 새로 뽑는 기사들의 숫자를 제한하셨지요. 하지만 이렇게 혼인으로 합쳐지는 때는 드물다 보니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염려되옵니다.”

힐다의 고자질에 황제의 낯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발트레 기사단, 백영은 서류상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소드마스터는 물론 전장 경험을 쌓은 그랑힐데의 기사가 더해지면 이야기가 달랐다.

* * *

만족스럽게 고자질을 한 힐다는 알현실 밖으로 나왔다. 입구에는 조카인 앨런이 서 있었다.

“고모님, 어떻게 되었습니까?”

“발트레의 힘이 강해질까 봐 우려하시더구나.”

앨런은 미소를 지었다.

역시, 황제도 발트레에 그랑힐데의 기사가 더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 모양이었다.

황제가 막아선다면 알트페리아는 루크와 결혼할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둘은 갈라지겠지.

‘리아가 필요해.’

다른 여자들을 만나봤지만, 알트페리아의 빈자리만 느껴졌다.

그는 드디어 깨달았다.

알트페리아를 대신할 여자는 없다는 것을.

‘리아……. 보고 싶어.’

그녀가 돌아오면 잘해줄 예정이었다.

전과 달리 이야기도 들어주고 약속도 제대로 지키고.

또 그녀가 좋아하는 걸 잔뜩 안겨줄 생각이었다.

* * *

황궁에 도착한 알트페리아는 여기저기 퍼져 있는 지뢰를 피하느라 바빴다.

괜히 모르는 사람과 마주했다가 운명의 상대가 되면 아무도 자기 삶을 구원해 주지 않을 테니까 스스로 피해야 했다.

‘전방에 시녀 둘!’

눈을 번쩍인 알트페리아는 근처에 열린 창문 밖을 바라봤다.

“어머, 황궁의 하늘이 너무…….”

여기가 꽤 높은 층이라 그런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푸르네. 발트레 저택에서 보던 하늘과 전혀 다른 것 같아. 황궁이라 그런지 훨씬 더 맑아 보이는 것 같고. 호호.”

대충 변명하는 것도 일이었다.

알트페리아는 부채를 살랑살랑 흔들며, 시녀들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가 다시 걸었다.

‘열한 시 방향에 기사 셋!’

이번에는 기사가 셋이다.

심지어 사랑에 빠질 가능성이 있는 남자들.

결투 상대가 되어도 3초도 버티질 못할 것이다.

그녀는 이번에는 고개를 휙 돌려 벽을 바라봤다.

‘이게 뭐야?’

알 수 없는 기이한 동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정말 근사한 그림이야. 작품을 그린 화가를 알 수 있을까?”

“이건 오래전에 그려진 작가 미상의 그림입니다. 공녀님……. 황궁 구경은 적당히 하시고 이만 알현실로 향하시지요.”

“아, 미안. 황궁이 너무 멋져서 설레는 거 있지.”

시종은 자꾸만 딴짓하는 알트페리아가 답답했지만, 공녀를 재촉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어울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쩔쩔매며 겨우겨우 알트페리아를 알현실 입구로 데려올 수 있었다.

그녀에게 시달린 시종은 10년은 늙은 듯 힘이 쭉 빠져 있었다.

“폐하께서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무사히 지뢰를 피한 알트페리아는 만족해 하며 열린 문을 통해 알현실 안으로 들어갔다.

붉은색과 금색으로 장식된 호화스러운 알현실 안에는 황제가 서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눈도 마주치고 싶지 않지만, 상대는 황제였다. 예를 갖출 수밖에 없었다.

‘제발 황제가 내 운명의 상대 따위가 아니길 바란다.’

황제가 운명의 상대일 확률은 제법 높다.

사랑 말고 결투 쪽으로 말이다.

‘루크를 두고 싸우자는 건 아니겠지.’

걱정스러운 마음과 달리 황제가 그녀를 훑어보듯 바라보는데도 알람은 오지 않았다.

휴, 다행.

조용한 시스템에 안심하며 알트페리아는 예법에 맞춰 공손히 인사를 했다.

“제국의 태양을 뵙습니다. 르블레아에 영광을.”

“개선식 이후로 두 번째군. 곧 영웅과 결혼한다지?”

루크와 결혼할 거라고 황제에게 보냈으니까 알고 있는 것에 새삼 놀랄 필요는 없었다.

“예, 준비가 다 끝나가서 곧 식을 치를 예정입니다.”

“천천히 준비할 법도 한데 서두르는구나.”

“영지를 오래 비울 수 없어 내린 결정입니다. 식을 진행한 뒤 발트레로 돌아갈까 합니다.”

“한창 준비로 바빴을 텐데, 황궁으로 불러들였구나.”

얼핏 들으면 군신이 신하를 배려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황제는 루크를 떠보며 시험한 적 있었기에 모든 말에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솔직하게.

‘맞아, 바빠 죽겠는데 왜 불러요!’

―라는 속마음을 내뱉었다간 황제에게 찍힌다.

“신하 된 자에게 주군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만큼 귀한 건 없습니다. 오히려 불러주셔서 영광입니다.”

만족스러운지 황제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고비는 넘긴 것 같았다.

“짐이 그대를 부른 건 다름이 아니라 영웅과의 혼인 때문이다. 이 혼인으로 힘의 균형이 깨질까 봐 다른 공작 가문들이 염려하고 있더구나.”

다른 세 개 공작 가문의 사람들아.

양심 있냐?

땅 파도 얼음밖에 나오지 않고, 최근 잠잠해졌지만 마물도 튀어나오고.

근처에 사는 미친 이웃은 심심하면 영지전을 걸어대고!

4대 공작 가문 중 발트레의 땅이 제일 척박하거든!

황제에게는 사실대로 말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북부는 부유한 땅이 아닙니다.”

우리 힘들다고.

“어느 정도길래 힘들다고 하느냐?”

“매서운 추위에 버티는 작물이 많지 않아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입니다. 거기에 때때로 마물이 민가를 습격하고요.”

“…….”

“힘든 와중에 레번트 후작과의 영지전을 진행한 뒤로는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발트레의 상황은 정말 힘들다.

하지만 구구절절 하소연해 봤자 중앙에서 지내는 황제에게는 닿지 않겠지.

춥다고 그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은 황제였으니까 북부의 땅이 얼마나 메마른지도 모르고, 공감해 주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황제가 공감할 수 있는, 침략당해 본 입장을 떠올리게 했다.

발트레와 경계가 맞닿아 있는 레번트.

레번트는 발트레 공작 부부가 죽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영지전을 걸었다.

후계자라고 남아 있는 건 어린 소녀인 알트페리아뿐이었다.

그녀를 만만하게 보며 발트레의 모든 것을 빼앗기 위해서 영지전을 개시한 것이다.

그것도 무려 세 번이나.

가까스로 막긴 했지만, 더는 유지할 돈이 없어서 백영을 조용히 해산해 버렸다.

물론 아무 대책 없이, 그냥 해체한 건 아녔다.

동일한 영지에 연달아 세 번이나 영지전이라니, 이건 좀 심했다고 생각한 황제가 뒤늦게 중재하여 앞으로 몇 년간 영지전 금지령을 내렸기에 해체한 거다.

세 번의 영지전은 모두 황제가 승인했다.

애초에 영지전의 허가는 황제만이 내릴 수 있으니까.

‘그러니 너도 공범이야!’

“크, 크흠, 레번트 후작과 치른 영지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승인도 했고, 보고도 받았을 테니까.

솔직히 열 살 남짓한 어린 영주가 다스리는 땅을 막무가내로 쳐들어오는 건 심하지 않아?

부모의 장례식 도중 영지전 승인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소녀의 마음이 어땠겠어?

양심에 찔리지, 황제 놈아!

더러워도 제국의 일인자는 황제다.

마음속으로는 쌍욕을 내뱉었지만, 입으로는 탓하지 말아야 했다.

“그래도 폐하의 허락으로 영웅께서 저를 선택해 주셨으니, 한동안은 겨울을 무사히 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마물 걱정도 없어졌답니다. 부족한 제가 북부를 지키지 못할 걸 염려하신 폐하께서 도와주신 덕분이지요. 폐하의 자비에 북부의 땅은 앞으로 따스해질 겁니다.”

“…….”

“자애로움을 느낀 영지민들도 황제 폐하를 찬양하고 있을 겁니다.”

사실 알트페리아가 루크와 결혼하는 것은 모든 걸 계산하고 짠 판이었다.

그렇지만 황제에게는.

나는 루크를 손에 넣어 북부의 힘을 키울 계산 같은 건 하지 않았어!

영웅이 나에게 청혼하길래 받기만 했다?

정치적인 계산 같은 건 없었다고!

그래도 황제 폐하께서 결혼을 허락해 줘서 굶고 다니진 않을 것 같아, 마물도 팰 수 있고. 땡큐요!

―라고 말했다.

사실 전혀 고맙지 않지만…….

애초에 영지전을 승인한 네가 원인이라고, 네가!

뭐든 간에 황제는 자신을 찬양한다는 소리에 기분이 좋아져서 크크흠, 헛기침하며 입가를 씰룩거렸다.

알트페리아는 여기서 끝내고 싶었지만 황제는 아직도 용건이 남은 모양이었다.

“발트레의 사정은 이해했다. 하지만 그랑힐데의 기사가 발트레로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짐이 제한해 둔 사병의 숫자를 넘을까 봐 염려되는구나.”

음, 세 개의 공작 가문 중 어디가 고자질했나 했더니 그랑힐데구나!

그랑힐데 공작은 몸이 아파서 요양 중이니 일러바친 범인은 힐다일 터였다.

“많이 걱정하시던가요?”

“그래, 균형이 깨질까 염려하여 조금 전까지 짐과 대화를 나눴었다.”

심지어 찾아오기까지 했냐! 치밀하네.

‘그랑힐데의 기사라.’

알트페리아는 아직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아마 원작에도 등장했던, 루크를 따라 그랑힐데 가문에서 나온 동료들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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