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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예쁘고 재력이 넘침-45화 (45/91)

제45화

이대로 화가 나게 만들면 결투장을 던지지 않을까 싶었다.

힐다는 제 속이 훤히 드러난 것도 모르고, 태연하게 말했다.

“곧 발트레로 연락이 가겠지만, 이렇게 만나게 되었으니 미리 말하지. 그것의 부모는 나다. 나는 이 결혼을 허락하지 않겠어.”

부모 행실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아서 새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배 아파 낳은 자식은 아니어도 힐다는 루크의 어머니였다.

자식의 결혼에도 관여할 수 있는 것이다.

알트페리아는 접었던 부채를 펼치며 입을 살짝 가렸다.

비웃음이 다 나와서였다.

“지금 황제 폐하께서 허락하신 결혼을 공작 부인께서 거절하신다는 건가요?”

알트페리아의 곁에 있던 시종의 시선이 힐다에게 향했다.

힐다는 홧김에 시종을 발견하지 못하고 말실수했단 걸 알게 되었다.

하필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이런 계집에게 밀리는 건 싫지만 황제의 귀가 곁에 서 있으므로, 한 수 접어야 할 때였다.

“폐하의 뜻에 반할 생각은 아니었다. 다만, 부모의 허락 없이 결혼을 진행하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다는 뜻이다.”

“…….”

“결혼하는 모양새가 마치 죄를 짓고 도망치는 것 같지 않으냐.”

사실 죄의 유무를 따지면 힐다 쪽이 압승이다.

그녀는 어린 루크를 학대하며 다락방에 가뒀다.

거기에 제국을 구하느라 고생하는 영웅에게 암살자를 여럿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힐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루크는 공을 세워 영웅의 지위를 받았다.

그런 그를 암살하려 했다는 정황이 드러난다면, 내란죄까지 들먹일 수 있었다.

하지만 루크는 적과 싸우기도 벅차서, 힐다가 암살자를 보냈다는 증거를 찾아 남기지 못했다.

그사이 힐다는 모든 증거를 지워버렸다.

알트페리아는 싱긋 웃었다.

“죄를 지어 도망간 것은 아니지만, 무서워서 피하는 건 맞을 거예요.”

그야 내란죄는 가문 전체가 처형당할지도 모르는 일인 걸.

“천한 피가 섞여 겁이 많은 거지.”

힐다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원래 루크의 몸 주인은 죽었다.

힐다의 학대로 어두운 다락방에서 쓸쓸하게 숨을 거둔 것이다.

온몸에 생채기가 나고, 굶어서 뼈만 남았던 그 가엾은 소년은 힐다를 두려워했었다.

힐다는 제게 빌며 엉엉 울던 당시의 루크를 떠올리며 픽 웃었다.

알트페리아는 입가를 가리던 부채를 접었다.

조소를 머금고 있다는 모습을 숨기고 싶지 않아서였다.

“무서운 건 함께 묶이는 거예요. 공작 부인.”

“공녀의 화법은 이상하구나. 북부의 사람은 그리 뜻도 없는 말을 내뱉는가?”

“공작 부인께서 개의치 않으신다면야 좀 더 풀어서 설명해 드릴게요. 아무리 개인적인 이유가 있다지만, 암살은 좀 아니지 않나요?”

힐다의 입매가 살짝 굳었다.

그녀가 암살 시도를 한 대상은 단 하나뿐이기 때문이었다.

‘저것이 내가 천것을 죽이려던 걸 어떻게 알고 있지?’

혹시 그 천것이 공녀에게 말한 건가?

[<시스템> 당신을 향한 ‘H’의 분노가 상승하였습니다!]

[<시스템> 이 이상 분노를 살 경우 ‘H’의 결투장을 받습니다!]

좋아, 아주 순조롭게 분노하고 있어.

더 화내라, 더.

“하물며 장소가.”

전쟁터, 그것도 상대는 기사단을 통솔하는 지휘관인데?

힐다의 눈동자가 시종에게 향했다.

시종은 둘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만, 발트레 공녀는 증거도 없이 나를 모함할 셈인가!”

알트페리아가 키득거렸다.

이제 제대로 한 방 먹여줄 때가 온 거였다.

“재밌네요. 혹시 다 숨긴 줄 아세요?”

힐다가 전쟁 중에 루크를 암살하려는 증거가 존재하느냐 하면, 사실.

‘그런 건 없어.’

원작에서도 루크와 그의 동료들이 증거를 찾기 위해 고생했지만 이미 힐다가 모든 것을 지워버린 후였다.

힐다 또한 증거를 확실하게 은폐했다고 자신 있어 하는 것 같지만, 방귀도 뀐 놈이 성질부린다고.

지은 죄가 있으니까 그걸 지적하면 화들짝 놀라며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스템> ‘H’의 스트레스가 상승하였습니다!]

[<시스템>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H’는 ‘상태이상: 위염’을 획득하였습니다!]

[<시스템> 당신을 향한 ‘H’의 분노가 상승하였습니다!]

[<시스템> ‘H’는 오로지 결투만을 생각합니다!]

효과 좋네.

냉정을 유지하고 있던 힐다가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 바닥에 휙 던졌다.

“거짓으로 내 명예를 더럽힌 발트레 공녀를 용서할 수 없다. 나는 내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신성한 결투를 원한다!”

“…….”

“자신이 내뱉은 말에 당당히 가슴을 펼 수 있으면 장갑을 주워라!”

결투를 수락하지 않으면, 방금 내뱉은 암살 관련 이야기가 다 거짓임을 인정한다는 걸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었다.

힐다는 일부러 장갑을 바닥에 던졌다.

공녀로 자라 온 알트페리아가 허리를 굽히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그게 뭐 대수라고.’

그러나 알트페리아는 그런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정정당당한 승부라면 받아들이지요. 하지만 이 결투가 과연 정당한지 의문이 드네요.”

“적법한 절차에 따라 황제께 결투 허락도 받도록 하겠다. 마침 시종도 곁에 있구나.”

귀족들이 결투를 진행하려면 황제의 승인이 필요했고, 시종을 통해 허락받아 오면 끝이었다.

“글쎄요. 검을 제대로 들지 못하는 저와 싸우는 것이 과연 공명한 승부일까요? 시종은 어떻게 생각해?”

매우 곤란한 표정으로 중간에 끼어 있던 시종이 답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결투를 진행하지 못하는 경우, 대리를 내세웁니다.”

[<시스템> 대리 결투를 허용합니다!]

알트페리아는 몸을 굽혀 떨어진 장갑을 주웠다. 힐다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시스템> 결투를 받아들입니다!]

알트페리아는 주운 장갑을 부채처럼 살랑살랑 흔들었다.

“받아들이지요, 공작 부인.”

“대리로 내세울 수 있는 자는 가문에 소속된 자들로만 한정한다. 공녀도 알고 있겠지만, 그 천것은 아직 발트레의 사람이 아니니 참여를 할 수 없다.”

“…….”

“최강이라 불리는 그랑힐데의 기사를 상대로 발트레가 얼마나 버틸지 궁금하구나.”

그랑힐데의 기사단은 네 공작가의 기사단 중 가장 강하니까.

소드마스터인 루크만 아니면, 힐다는 발트레가 두렵지 않았다.

‘감히 증거 운운하며 나를 협박해?’

일단 저택에 돌아가는 대로 암살의 흔적이 남아 있는지 한 번 더 확실하게 조사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결투에서 승리한 뒤 알트페리아의 고개를 숙이게 만들고, 막대한 보상을 요구할 것이다.

힐다에게는 투자 실패를 만회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 결투는 내가 이겼어.’

승리를 확신하는 힐다는 기절한 앨런을 새까맣게 잊고, 저택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버려진 앨런은 해가 지고 나서야 경비대에 발견되었는데 차가운 바닥에 오랫동안 방치된 때문에 감기에 시달렸다.

* * *

그날 오후, 발트레 저택.

<그랑힐데와 발트레는 이틀 후 각각 대리 기사를 두어 결투를 진행한다.>

황실에서 결투 허가가 떨어졌다는 편지가 도착했다.

넓은 응접실에는 세이룬과 에델을 포함한 시녀들과 한동안 발트레 소속이 된 정보 길드의 리베르트가 모여 있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리베르트였다.

“상대가 그랑힐데라면 데이모스 경이 참여할 확률이 높습니다. 소드마스터 후보라 불릴 정도로 강한 기사입니다.”

소드마스터 후보라고?

루크를 제외하고도 그렇게 강한 사람이 그랑힐데에 있을 줄은 몰랐다.

“아직 오라를 사용하지는 못하지만, 소드마스터가 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입니다. 아무래도 이 결투는…….”

이래서 다들 밀정을 키우려고 하는구나.

정보에 박식한 자가 줄줄이 내뱉으니까 미리 계획도 짤 수 있어서 좋았다.

‘더더욱 탐나네.’

알트페리아는 리베르트를 발트레 소속으로 영영 묶어둘 생각을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결투는?”

“승산이 없을 것 같습니다. 상대가 너무 좋지 않아서…….”

오라를 깨우친 소드마스터는 인간을 초월한 자들이었다.

그런 소드마스터의 후보도 웬만한 사람들은 이기지 못할 실력을 갖췄다.

게다가 진검승부이지 않나.

부상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었다.

“그렇게 되었다는데 이번 그랑힐데 공작가와의 결투에는 누가 참여할래?”

“…….”

“당연하겠지만 꼭 이겨야 해.”

새로운 스킬을 얻어야 하거든.

순간 응접실이 조용해졌다.

리베르트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상대조차 되지 않는 결투에 나가면 죽음을 면치 못할 테니까.

하지만 곧.

“감히 우리 공녀님께 결투장을 던져요? 제가 본때를 보여줄게요!”

“아니에요, 공녀님. 제가 나가고 싶어요! 마침 몸이 근질근질한 참이었거든요.”

“그런 강자랑 싸워보는 게 꿈이었어요. 제발 저를 내보내 주세요!”

“다 비켜. 공녀님께 승리는 내가 안겨다 드릴 거야!”

서로 하겠다고 난리였다.

그런 그녀들의 모습에 리베르트는 당황했다.

‘발트레의 시녀들은 목숨이 두렵지 않은가?’

그녀들이 평범한 시녀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상대는 무려 소드마스터 후보라고!

말싸움으로 시작된 다툼은 점점 살벌해지기 시작했다.

“이럴 게 아니고 당장 밖으로 나와. 마지막까지 목이 붙어 있는 최후의 1인이 나가기로 한다.”

“좋아, 다들 목 간수 잘해.”

그런 말과 함께 다들 몸 여기저기에 숨겨둔 흉기를 꺼내는 게 아닌가.

알트페리아의 눈에 온몸을 덜덜 떠는 리베르트의 모습이 들어왔다. 저러다가 리베르트의 진동으로 지진이 발생할 것 같았다.

얘들아, 좀 진정해.

리베르트를 봐, 쫄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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