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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예쁘고 재력이 넘침-46화 (46/91)

제46화

알트페리아는 넋이 나간 리베르트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왠지 저대로면 겁먹어서 야반도주할 것 같았다.

어휴.

“그만해. 이 방법은 우리들끼리 있을 때 쓰고, 지금은 제비뽑기로 해!”

알트페리아의 외침에 잘 훈련된 시녀들이 멈칫했다.

시녀들이 조용해지자 알트페리아는 근처에 있는 종이를 길게 북북 찢어, 그중 하나의 끝에 검은색을 칠했다.

그리고 꽃다발처럼 모두 모아 손으로 꽉 쥐었다. 그녀의 손 밖으로 삐져나온 종이는 모두 새하얬다.

“자, 하나씩 뽑아. 끝이 검은 종이를 뽑는 사람이 결투에 나서는 거야.”

시녀들은 믿지도 않는 신께 기도까지 하며 한 장씩 뽑았다.

“하필 꽝을 뽑았어!”

“공녀님께 승리를 안겨드리고 싶었는데…….”

“대체 누가 행운을 잡은 거야?”

꽝만 줄줄이 뽑혀 실망과 아쉬운 탄식이 연발되고 있었는데.

“야호! 제가 뽑았어요. 공녀님!”

끝이 검은 종이를 뽑은 사람은 에델이었다.

그녀는 폴짝폴짝 뛰며 진심으로 기뻐했고, 꽝을 뽑은 시녀들은 쳇, 혀를 찼다.

그 때였다.

혼자서 심각한 표정을 짓던 리베르트가 한 손을 들어 올리며 나섰다.

“에델 대신 제가 나가겠습니다. 저도 검을 다룰 줄 압니다.”

기쁨에 겨워 폴짝폴짝 뛰던 에델이 멈칫했다.

에델이 평범한 여자였다면, 위험한 전장에 대신 나가준다며 감동했을 테지만 그녀는 다르다.

그녀는 애초에 결투에 나가고 싶어서 제비를 뽑은 거였으니까.

“뭐어? 약골이 어딜 나서는 거야.”

“…….”

“공녀님께서 말씀하신 거 못 들었어? 이 결투는 꼭 이겨야 한다고.”

“그렇지만…….”

“그렇지만 뭐? 네가 나가면 질 게 뻔하잖아! 어중간한 실력으로 끼어들 생각 하지 마!”

으르렁거리는 에델에게 겁을 먹은 리베르트가 깨갱 하며 구석에 탁 달라붙었다.

“알았어…….”

그리고 그대로 쭈글거리며 에델의 눈치를 봤다.

……둘 사이 잘되어 가는 거 맞겠지?

* * *

제비뽑기가 끝난 뒤, 에델은 특훈을 해야겠다며 시녀 몇 명과 함께 자리를 비웠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가벼운 차를 한잔 마시는 알트페리아의 눈앞에 시스템창이 떴다.

[<시스템> ‘H’가 당신을 떠올리며 조각상을 깨부숩니다!]

[<시스템> ‘H’가 당신을 떠올리며 죄 없는 시녀의 뺨을 내리칩니다!]

성격 봐라.

[<시스템> ‘H’가 당신을 떠올리며 연습용 허수아비를 베어 넘깁니다!]

와, 무력도 있으셔. 무시무시하네.

원작에서 루크와 무승부가 뜬 건 ‘돈의 힘’ 스킬빨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인 능력은 있는 것 같았다.

만약 대리 결투가 아니었다면, 검을 제대로 들지도 못하는 자신은 일방적으로 패배했을지도 몰랐다.

대리 기사를 세우길 잘한 것 같았다.

힐다가 날뛰는 건 고소하지만, 슬슬 잘 때가 되었다.

알트페리아는 원작의 루크가 종종 써먹었던 알람 OFF 기능을 활성화하여 시스템창을 모조리 무시한 채 푹 잠들었다.

다음날.

[<시스템> ‘H’가 걱정에 밤을 지새웠습니다!]

간밤에 떴던 시스템창을 확인했더니 힐다는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은 여파로 밤새 잠을 설치며 끙끙댄 모양이었다.

최강인 그랑힐데의 기사단을 가지고 있으면서 뭐가 걱정되어서 그러는 거지?

머지않아 그녀가 안절부절못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시스템> 불안해진 ‘H’가 정보 길드를 찾습니다!]

힐다가 불안해 하며 정보 길드를 찾을 이유는 단 하나다.

암살을 시도한 흔적이 남지 않았는가 조사하기 위해서.

그녀가 어떤 길드를 찾았는지 알 수 없지만, 알아볼 방법은 있었다.

알람창이 뜨고 몇 시간 후, 알트페리아는 리베르트를 집무실로 불렀다.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응, 정보 길드에 관해 물어볼 게 있어.”

“하문하십시오.”

“정보 길드는 이런 의뢰도 받아? 가령 어두운 과거를 지워달라고 하는……. 범죄에 연루된 증거를 찾아달라고 하는 의뢰 같은 거 말이야.”

“까다로운 의뢰긴 하지만, 위험수당만 제대로 치른다면 흑표범단은 받습니다.”

비싼 값 내면 받아준다는 뜻이었다.

“다른 곳은?”

“제가 알기로, 제도에 있는 정보 길드 중 흑표범단 외에 그런 의뢰를 받을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알트페리아가 픽 웃었다.

리베르트와의 대화로 힐다가 어떤 정보 길드의 문을 두드렸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흑표범단이었구나.’

이쯤 되면 진짜 암살 시도 흔적이 남아 있는 거 아냐?

제 발 저려서 성을 낸 것까진 이해한다.

하지만 의뢰를 넣는 걸 보면 진짜로 증거가 될 만한 무언가 남아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원작에서는 증거가 없었다고 했었지만 혹시 또 모르는 일 아닌가.

“흑표범단에 의뢰를 하고 싶어.”

“어떤 의뢰입니까?”

“그랑힐데 공작 부인이 어떤 정보 길드에 의뢰를 넣었어. 아마도 과거의 잘못을 찾아 없애달라는 내용일 거야.”

“…….”

“그랑힐데 공작 부인보다 앞서서 결과를 받고 싶어.”

“마스터에게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힐다는 흑표범단에 의뢰를 넣었다.

그런데도 떠벌리지 않는 걸 보면, 신뢰도의 문제로 발설하지 않는 거였다.

그래서 ‘친분을 쌓았으니 몰래 알려줘!’라고 하는 게 아니라, 정식으로 의뢰를 넣었다.

증거가 남아 있는지 모르지만 만약에 진짜 존재한다면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 * *

결투의 날이 되었다.

결투장으로 사용될 장소는 공정성을 위해, 그 어떤 가문에도 속하지 않은 제도 경비대의 훈련장이 선택되었다.

결투의 증인은 제도 경비대원과 함께 황제가 보낸 시종이었다.

귀족 간의 결투는 공공연하게 말할 만한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기에 조용하게 진행된다.

하지만 그랑힐데와 발트레의 결투라는 말에 비번인 경비원들까지 몰려와 훈련장을 가득 채웠다.

조용히 진행하려 했지만, 자신들의 훈련장이다 보니 소식이 흘러 들어간 모양이었다.

승리를 확신한 힐다는 구경꾼이 많은 것이 더 좋다며 내버려 뒀다. 알트페리아 또한 관람객이 많아도 상관없었다.

자기들끼리 모여 있던 경비원들이 말했다.

“이거 솔직히 상대는 되는 거야? 그랑힐데 쪽의 압승일 것 같은데.”

“맞습니다. 데이모스 경이 나오면 삼 합도 버티지 못하고 발트레가 패배할 겁니다.”

“데이모스 경까지 갈 필요 없어. 틸튼 경만 나서도 그랑힐데의 승리야.”

검 좀 쓴다는 사람들은 그랑힐데 기사단에 소속된 유명한 기사들의 이름을 하나씩 내뱉었다.

“그나저나 발트레에서는 누가 나올 것 같아?”

“글쎄 말입니다……. 이름 있는 기사가 있었습니까?”

“결과는 정해졌군.”

경비대원들이 수군대고 있을 때 목소리를 크게 증폭시키는 아티팩트를 꼭 쥔 시종이 외쳤다.

“잠시 후, 그랑힐데와 발트레의 결투가 시작됩니다!”

훈련장 안으로 들어간 알트페리아의 머릿속은 오로지, ‘새로운 스킬! 이왕이면 부자로 만들어줄!’뿐이었다.

훈련장 주변에는 귀빈석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준비된 자리로 가려던 알트페리아는 힐다와 딱 마주쳤다.

암살을 시도했다는 증거가 남아 있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으로 밤을 새운 힐다가, 살짝 충혈된 눈으로 알트페리아를 노려봤다.

“공녀도 참 뻔뻔하군. 거짓말을 번복하지 못해 우기느라 여기까지 오다니.”

“공작 부인께서야말로 괜찮으세요? 제가 이기면 흉흉한 소문이 날지도 모르는데요.”

“승패가 결정된 마당에 두려울 게 뭐가 있을까.”

“승리는 제 거니까 패배는 부인에게 드릴게요.”

도발해도 힐다는 속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저 흔들리지 않는 냉정함은 대단한 것 같은데.

[<시스템> ‘H’의 혈압이 상승했습니다!]

……태연한 척하고 있던 거였다.

“그랑힐데를 상대로 도망치지 않은 점은 높이 사주마. 하지만 거기까지다. 이번에 데이모스 경이 나서기로 하였으니까.”

오, 리베르트가 딱 맞혔잖아.

‘에델이 좋아하겠네.’

이왕 싸울 것, 최대한 강한 사람과 붙어보고 싶다고 의지를 불태웠으니까.

“소드마스터 후보라던 데이모스 경이죠? 흥미진진한 대결이 되겠네요.”

“정정해야겠구나. 후보가 아니라, 소드마스터다. 맹훈련으로 오라를 깨우쳤거든.”

알트페리아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경사네요.”

“오늘 아침 막 각성하였단다. 새로운 소드마스터를 선보이는 좋은 자리가 될 테지.”

대신 결투에 임하는 자들에 대한 규칙은 가문에 소속된 사람일 뿐.

소드마스터 금지란 규칙 같은 건 없었다.

승리를 확신한 힐다가 기쁜 듯 깔깔 웃었다.

“발트레에는 데이모스 경의 명성에 비견할 만한 기사가 없었지? 애석하게도 패배는 공녀의 몫이 되겠구나.”

누구 마음대로!

“데이모스 경을 이길 기사는 없지만, 시녀는 있답니다.”

“……뭐?”

믿기지 않는 듯 힐다가 한 번 더 물었다.

“시녀라고?”

“네.”

“신성한 결투라는 걸 잊었나. 공녀는 시합을 애들 장난으로 생각하나 보군.”

“저는 진지하게 이길 생각을 하고 있어요.”

“후후후, 참 재밌는 소리도 하는구나. 그래, 어디 한번 능력껏 발버둥 쳐보아라. 애써본다고 결과가 바뀌진 않을 테니까.”

데이모스의 승리를 확신한 힐다는 이런 도발에는 넘어가지 않는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진짜 이길 생각인데.’

허세로 보였나?

우리 발트레의 시녀들은 상당히, 강한데 말이야.

아티팩트를 착용한 시종이 외쳤다.

“그랑힐데 공작 가문 소속, 데이모스 플리터 경이 등장하십니다!”

시종이 미리 받은 소개지를 보며 외쳤다.

“검술 대회에서 3년 연속 우승한 만큼 실력이 보장된 기사입니다. 게다가 무려 오늘 아침, 오라를 깨우쳐 소드마스터가 되었습니다!”

그 말에 경비대원들이 뜨거운 환호를 내뱉었다.

“오오오, 역시 데이모스 경! 소드마스터가 되리라 믿고 있었습니다!”

“꼭 이기십시오. 응원합니다!”

기사가 섬기는 주군 대신 결투를 치르는 건 명예로운 일이었다.

소드마스터의 첫 번째 임무로 딱 좋다며, 그들은 꼭 승리를 거머쥐라고 응원을 보냈다.

뜨거운 호응이 사라질 때쯤, 시종이 발트레를 소개했다.

“발트레 공작 가문은 에델 트라이어스…… 시녀입니다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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