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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예쁘고 재력이 넘침-47화 (47/91)

제47화

당황한 시종이 말꼬리를 늘였다.

“시녀라고?”

“그럴 리가 있나! 잘못 들었겠지!”

웅성거리는 소리 사이로, 발트레의 시녀 복장을 한 에델이 들어왔다.

“뭐야. 진짜 시녀잖아.”

“어디서 한 방감이 나온 거요? 장난하는 거냐!”

“계집이면 밥이나 하러 가!”

알트페리아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힐다가 턱을 치켜들고 웃었다. 이 상황이 어처구니가 없어 비웃음이 나오는 모양이었다.

하긴, 발트레에서 일하는 시녀들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녀들의 정체를 아는 자들은 발트레의 직계와 믿을 수 있는 몇몇 가신들.

그 외에는 뛰어난 정보 수집 능력을 지닌 흑표범단 몇몇 단원들 정도만이 알고 있었다.

시녀들은 발트레를 지키는 그림자였다. 외부에 드러나지 않고 적을 처리한 그녀들의 정체를 알게 된 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이들 앞에서 능력을 드러내는 건 처음이었다.

‘깜짝 놀랄걸.’

에델이 얼마나 강한지 알게 되면.

설령 상대가 오라를 깨우친 소드마스터라고 해도 걱정 없었다.

사실 알트페리아는 데이모스가 결투 직전에 오라를 깨우쳤다는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었다.

머릿속에 에델의 걱정뿐인 리베르트가 그랑힐데만 예의주시하다가 아침에 얻은 따끈따끈한 정보를 물어 왔으니까.

하지만 알고 있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압도적인 힘으로 짓누르는 건 어떻게 대비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아무리 승리가 중요하다고 하나 에델을 잃을 순 없었다.

에델이 발트레 기사단인 백영 출신이라지만, 소드마스터를 상대로는 힘겨울 것이다.

알트페리아는 정보를 듣자마자 에델을 불렀다.

“네 상대가 될 기사가 오늘 아침에 오라를 깨우쳤대.”

“어머, 후보라더니 진짜 소드마스터가 되었네요!”

“그래, 그러니까 무리하지 않아도 돼. 이 시합은 포기하자.”

“공녀님을 위해서라면, 상대가 소드마스터라고 해도 물러나지 않을 거예요. 게다가 소드마스터에 대항할 훈련은 이미 하고 있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공녀님!”

사실 에델은 시녀들과 함께 루크를 상대하기 위해서 소드마스터에게 대항할 방법을 이것저것 연구하고 있었다.

만약 루크가 앨런처럼 알트페리아의 마음을 다치게 한다면, 온 힘을 쏟아 그를 제거하기로 다짐했으니까.

그렇게 훈련했었는데 실전에서 얼마큼 먹힐까, 실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거였다.

아티팩트를 꽉 붙잡은 시종이 외쳤다.

“주군의 명예를 건 결투를 시작합니다!”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려 퍼졌지만, 두 사람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에델을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인상을 찡그리던 데이모스가 입을 열었다.

“검을 뽑고 나면 봐줄 생각 없으니까 기회를 줄 때 내려가시오.”

“저는 공녀님께 승리를 가져다드리기로 약속했어요. 결투를 포기할 생각 같은 건 없답니다.”

“쯧, 여자를 때리면 뒤숭숭하니 좋은 말할 때 포기하시길!”

싱긋 웃던 에델이 검집에 든 검을 뽑았다. 자신의 경고를 무시한 채 검을 뽑은 에델의 행동에 데이모스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저를 기사가 아니라 여자로 대하면 경은 죽어요.”

“…….”

“제가 만족할 때까지 버티지 않아도 죽을 거고요.”

검을 뽑은 에델이 자세를 잡았다.

데이모스는 저도 모르게 검을 뽑아 대기 자세를 취했다. 시녀의 몸에서 생전 겪어보지 못한 진짜 살의가 퍼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결투가 시작되었다.

세이룬은 나무바구니 안에 곱게 챙겨둔 병을 꺼냈다. 연분홍색의 병에는 설탕에 절인 복숭아 과육이 큼직하게 들어가 있었다.

“출발 전에 준비한 아이스티예요. 한 잔 드릴까요? 저택에서부터 우려내서 맛이 진할 거예요.”

“응.”

알트페리아는 세이룬이 챙겨준 아이스티를 마시며, 근처에 앉은 리베르트를 흘끗 보았다.

그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까지 푹 숙이고 있었다.

“뭐 해?”

“두 눈을 뜨고 보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면 내가 중계해 줄게. 에델이 데이모스 경의 검을 가뿐히 피했어. 그리고 곧바로 반격.”

“…….”

“데이모스 경이 화가 난 듯한데?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는걸.”

“……그만둬 주십시오.”

그는 한층 우중충한 목소리로 답했다.

에델이 걱정되어 죽을 것 같은 모양이었다.

걱정하는 마음이 이해는 되지만, 에델이 자신을 믿으라고 하지 않았나.

알트페리아는 훈련장을 바라봤다.

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그녀였지만, 이미 시합의 우위는 정해진 듯했다. 데이모스는 에델의 움직임을 따라는 것만으로도 벅차 보였으니까.

에델을 무시하며 데이모스를 응원하던 경비원들도 조용해졌다.

그들 또한 승리의 흐름을 잡은 사람이 에델이라는 것을 파악했기에.

여기서 에델을 걱정하고 있는 사람은 리베르트 하나뿐이었다.

‘어휴.’

알트페리아는 쥐고 있는 시원한 병을 리베르트의 손등에 꾹 눌렀다.

“으악!”

화들짝 놀란 그가 손을 떼어냈다.

“뭐, 뭐 하십니까.”

“에델을 보려고 따라왔으면 제대로 응원이나 해.”

“후우우.”

그는 걱정이 섞인 한숨을 깊게 내뱉으며 조심스레 시선을 돌려 에델을 바라봤다.

“상대는 아직 오라를 사용하지 않고 있군요…….”

리베르트는 더는 못 보겠다는 듯 또다시 두 눈을 양손에 가둬버렸다.

리베르트와 달리 알트페리아는 걱정이 없었다.

‘에델이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걸.’

오라를 획득해 소드마스터가 될 정도로 천재라지만, 데이모스는 실전 경험이 없었다.

그랑힐데에서 실전 경험이 있는 기사들은 루크를 따라 전장에 참여한 자들이었으니까.

안전한 제도에서 지내며 검술 대회 같은 곳에서 우승한 경력으로는 실전 경험이 풍부한 에델을 이기기 힘들 것이다.

아무리 오라를 깨우쳤다고 한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살의라는 공포에는 쉽게 맞서기 힘들 것이기에.

데이모스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보다 뒷걸음질을 더 많이 쳤다.

압도적으로 밀리는 데이모스의 모습에 그를 응원하던 경비대원도 입을 꾹 다물었다.

챙―! 챙!

훈련장에는 날붙이끼리 부딪치는 소리만 퍼졌다.

보다 못한 힐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에이잇! 왜 오라를 사용하지 않고 있는가!”

데이모스가 오라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제 막 오라를 깨우쳐서 운용이 서툴렀던 것이다.

보는 눈도 많은데 익숙하지도 않은 힘을 사용하다가 괜히 실수라도 하면 망신은 자신의 몫이었다.

하지만 에델은 체면을 차리며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단순한 시녀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어리석었다. 그녀에게 승리하려면 전력을 다해야 했다.

각오를 끝마친 데이모스는 검에 오라를 둘렀다.

그의 오라는 녹색인지, 하얀 검날이 녹색 빛으로 물들었다.

그는 모든 오라를 끌어모아 검에 실었다. 데이모스의 검이 크기를 키워가며 마치 창처럼 길쭉해졌다.

데이모스의 모든 힘을 담은 공격이었다.

그는 이번 공격으로 결투를 끝내리라 다짐했다.

“쓰러뜨려라!”

힐다의 외침에 데이모스가 검을 크게 휘둘렀다.

에델은 오라의 기운에 잠깐 멈칫했지만, 금방 마음을 다잡고 다음 수를 생각했다.

이제 막 오라를 사용하기 시작한 초짜라 그런가, 검의 모든 부분을 감싸지 못하고 빈틈이 보였다.

그녀는 그 틈을 노려 데이모스의 검을 받아냈다.

캉! 강력한 힘의 충돌에 흐트러진 오라가 사방팔방 흩날리며, 본래의 검으로 돌아왔다.

“와아아, 저 공격을 막았어!”

당황한 데이모스가 검을 고쳐 쥐었지만, 오라를 발동할 수는 없었다.

조금 전에 힘을 다 끌어다 썼기 때문이었다.

오라가 없다면 이제 순수한 검술 실력으로 승부를 내야 했다.

“잘한다! 발트레의 실력도 제법인데?”

에델을 응원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리베르트는 손가락을 살짝 움직여, 그 틈으로 경기장을 바라봤다.

오라의 사나운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흩어졌고, 에델은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채 경기장에 서 있었다.

알트페리아는 아이스티를 우아하게 마시며 맞은편에 앉은 힐다를 바라보곤 미소를 지었다.

“에델은 이겨. 그녀가 내게 승리를 가져다주겠다고 했거든.”

“…….”

“우리 저택 시녀들은 자신이 한 약속은 꼭 지켜.”

[<시스템> ‘H’가 분노합니다!]

마치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공방에 온 것같이 카캉, 캉, 쇠붙이끼리 맞닿는 요란한 소리가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챙강!

그리고 이내 유독 큰 소리가 나더니 데이모스의 손에서 벗어난 검이 공중에서 뱅글뱅글 돌아 땅바닥에 푸욱 박혔다.

씩 웃은 에델이 검 끝으로 데이모스의 턱을 가리켰다.

“져…… 졌소.”

그는 패배를 순순히 인정했다.

황제의 시종이 아티팩트를 사용해 결과를 알렸다.

“승자는 발트레 공작 가문입니다!”

증인이 되어준 경비대원들이 환호를 보냈다.

“크, 정말 멋있는 결투였어!”

“검술로는 그랑힐데를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발트레도 다시 봐야겠는데.”

“시녀라고는 믿기지 않는 실력이야!”

경비대원들이 보기에도 속임수 같은 건 없는 완벽한 시합이었다.

“부끄럽게도 겉만 보고 판단했습니다…….”

데이모스를 상대로 시녀를 내세웠냐며 욕을 하던 몇몇은 쑥스러운지 뒷머리를 긁적이기도 했다.

띠링!

알트페리아의 눈앞에 푸른색의 시스템창이 떴다.

어떤 스킬을 줄지 두근두근했는데.

[<시스템> ‘메인 목표: ‘H’와의 결투에서 승리하여라’ 달성 완료!]

[<시스템> 보상을 획득하셨습니다!]

[골드 스트라이크: 원거리 스킬]

※ ‘돈의 힘(패시브 스킬, F랭크)’ E랭크부터 사용할 수 있습니다.

※ 현재 당신의 ‘돈의 힘(패시브 스킬, F랭크)’ 랭크는 F입니다. ‘골드 스트라이크’ 스킬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현재 알트페리아는 ‘돈의 힘’ 스킬이 F등급이었다.

기껏 습득한 스킬을 사용하려면 10억 르블라를 소모하여 ‘돈의 힘’ 랭크부터 올려야 된다는 거였다.

‘뭐, 나쁘진 않네.’

골드 스트라이크는 원거리 공격 스킬이었다.

지금 당장 사용할 순 없지만, 랭크만 올리면 몸을 지키는 데 도움을 줄지도 몰랐다.

게다가 힐다의 약점을 하나 만들었으니 알트페리아에겐 큰 이득이었다.

추가로 시스템창이 더 떴다.

[<시스템>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은 ‘H’가 두통에 시달립니다!]

[<시스템> 퀘스트가 종료되어 ‘H’와의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알트페리아가 눈앞에 뜬 시스템창을 정리하고 있는데 경기가 끝난 훈련장에서 데이모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를 쓰러뜨린 여자는 당신이 처음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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