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편이 예쁘고 재력이 넘침-49화 (49/91)

제49화

그런 생각을 하며 문을 열고 들어간 알트페리아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루크가 젖은 머리를 말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어. 충격의 강도를 따지면 전생의 기억이 떠올랐을 때와 비슷한 것 같았다.

“유진, 벌써 돌아온 겁니까?”

인기척을 느낀 루크가 수건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털털 털며 대꾸했다.

대답이 없는 방문객에 의아함을 느낀 그가 고개를 들어 올리자, 방 입구에 멍하니 서 있는 알트페리아와 시선이 마주쳤다.

툭, 젖은 머리를 털던, 물기가 스며든 수건이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그의 붉은색 동공이 크게 부풀었다.

“…….”

“…….”

알트페리아의 눈이 천천히 움직였다.

목선을 따라 이어진 루크의 어깨는 단단해 보이고, 두꺼운 팔뚝에는 힘줄이 툭 불거져 있었다.

넓은 가슴은 날붙이 하나 파고들어 가지 않을 것같이 단단해 보이고, 그가 숨을 크게 들이쉴 때마다 또렷하게 나누어진 복근이 따라 움직였다.

거기에 품종 좋은 말 같은 다리는 정말…….

‘와.’

알트페리아는 침을 꿀꺽 삼켰다.

옷 위로도 탄탄하다는 건 알았는데, 위를 두른 천이 없어지니까 분위기가 확연하게 달랐다.

맨몸인 그는 그 자체로 하나의 흉기 같았다.

날것 그대로의 흉흉한 기운이 느껴져 알트페리아의 얼굴이 점점 빨개졌다.

‘시, 시선을 돌려야 해.’

그런데 생각과 달리 집중력만 더해져 세세한 것도 또렷이 보였다.

그의 몸 전체에는 검에 베인 듯한 자잘한 상처가 퍼져 있었는데 오히려 그 점이 예술품을 돋보이게 만드는 것 같았다.

도리어 흠이 되는 건 하반신을 질끈 묶은 천이랄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알트페리아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미쳤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아무리 궁금하다 해도!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된 알트페리아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녀와 시선을 맞추며 천천히 눈을 깜빡이던 루크의 얼굴도 덩달아 확 빨개졌다.

사실 그는 욕조에 몸을 담그며 알트페리아를 생각하고 있었다.

알트페리아를 만나지 못한 지 꽤 되었으니까.

그래서 처음 그녀가 방문 앞에 서 있을 땐 환각이라도 보는 줄 알았다.

루크의 눈앞에 파란 창이 떴다.

[<시스템> 알트페리아의 행복 지수를 10 획득하였습니다!]

[<시스템> 현재 행복 지수: 10/10]

계속 오르락내리락하던 알트페리아의 행복 지수가 단번에 10으로 올랐다.

[<시스템> ‘메인 목표: 알트페리아의 행복 지수를 10 모아라’ 달성 완료!]

[<시스템> 보상을 획득하셨습니다!]

[로제떡볶이]

소시지가 잔뜩 들어간 매콤달콤한 로제떡볶이.

인벤토리에서 꺼낼 때까지 상하지 않습니다.

[‘사자의 서기관’이 획득한 행복 지수는 사실 열 배라고 합니다.]

표기가 되지 않을 뿐, 사실 획득한 행복 지수는 100이라는 말인데.

그 엄청난 숫자에 놀란 루크가 중얼거렸다.

“공녀님은 제가 벗고 있는 것이 좋으신 겁니까?”

“그런 것 같아요……. 아, 아니. 뭐래, 아니요!”

너무 놀라서 순간 본심이 튀어나와 버렸다.

당황한 알트페리아가 뒷걸음을 치며 횡설수설했다.

“그, 그게 아니라 미, 미안해요……! 공자님과 외출을 하고 싶어 찾아왔는데 문이 열려 있어서 제멋대로 들어왔어요.”

“저도 마침 공녀님을 뵈러 갈까 생각 중이었습니다.”

그는 기쁜 듯 눈매를 휘며 다가왔다.

으악, 스톱!

지금 상태의 루크는 사람의 이성 같은 건 쉽게 날려버릴 수 있었다. 간신히 이성을 붙잡았지만, 목욕을 끝마친 직후이기 때문일까.

평소 맡던 향과는 다른 시원한 체향이 훅 풍겨 알트페리아는 저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그녀는 멀찍이 떨어졌다.

“그……. 어, 마침 같은 생각이었다니 잘됐네요! 저는 옆방에 있을 테니까 천천히 준비하세요!”

그 말과 함께 알트페리아는 쏜살같이 사라졌다.

어찌나 당황했는지 문을 제대로 닫지도 못하고 살짝 열어놓은 채였다.

그녀가 사라지고 나서 홀로 남은 루크는 큼직한 손으로 제 입술을 쓸어내렸다.

부끄럽지만 한편으로는 심장이 벌렁벌렁할 정도로 들떴다.

너무 좋았다. 그녀가 저로 인해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몸에 열이 확 올라서 뜨거워진 느낌이 들었다.

이대로 감상에 젖어 있다간 당장 욕실에 가서 찬물을 끼얹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할 것 같았다.

그는 떨어진 수건을 줍다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편지를 발견했다.

알트페리아가 보낸 거였다.

채비하는 대로 그레이 호텔에 찾아가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을 때 도착하여 소식을 듣지 못한 듯했다.

머리를 대강 말린 그는 몸에 있는 유일한 천인 수건을 치우고, 바지를 입었다. 그리고 셔츠를 찾아 걸치며, 살짝 열린 틈을 향해 말했다.

“공녀님, 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네. 잘 들려요.”

“편지를 보내신 걸 이제야 확인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금방 갈아입겠습니다.”

“아니에요. 제가 서둘러 온 게 잘못이죠! 천천히 하세요.”

루크는 소리 없이 웃었다.

마치 자신이 보고 싶어서 빨리 왔다는 뜻으로 들려서였다.

사실 요 며칠 알트페리아의 연락이 없어서 그는 조금 서운했다.

늘 만나자고 연락을 보냈던 그녀가 조용해졌으니까.

차라리 제가 먼저 만나자고 이야기를 꺼낼까 싶어서 가게를 예약하고, 씻고 있던 참에 그녀가 나타난 것이다.

너무 기뻐서 그런가, 루크는 평소보다 솔직해졌다.

“공녀님은 제가 보고 싶으셨던 겁니까?”

“보고 싶은 게 아니라 약혼자 얼굴을 까먹을까 봐 찾아온 거예요. 다른 의미는 없어요. 진짜예요!”

낮게 툴툴거리는 목소리가 얼마나 귀여운지 그녀는 알고 있으려나.

“저는 공녀님이 보고 싶었습니다. 며칠 뵙질 못했으니까요.”

“…….”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기쁩니다. 마침 공녀님과 함께 가고 싶은 곳이 있어 예약해 둔 참입니다. 금방 준비를 끝내겠습니다.”

옆방에 있는 알트페리아는 기껏 가라앉힌 얼굴이 다시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나긋나긋한 루크의 말투가 유달리 듣기 좋아서였다.

‘으, 뭐야, 이거.’

가슴 안쪽을 자꾸만 누가 간지럽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생소한 감각이었다.

이 감각을 밀어내고자 그녀는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오늘 나가서 잘하셔야 해요. 우리는 사이좋은 부부가 되어야 하니까요.”

“예, 잊지 않았습니다. 공녀님께 배운 대로 제대로 해내겠습니다.”

그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왠지 못마땅해진 알트페리아는 방을 서성이다가 작은 테이블에 앉았다.

서늘한 공기가 내려앉은 방에 홀로 있으니 마음이 차츰 가라앉았다.

한숨을 깊게 내쉰 알트페리아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책을 몇 권 발견했다.

루크가 읽던 책인가.

<처음 결혼하는 부부를 위한 실용 필독서>

<사랑받는 남편이 되고 싶습니까?>

<피로를 푸는 법 *부부 편>

제목만 봐도 어떤 내용인지는 알 것 같은데.

부부들을 위한 것이라니, 공부하겠다는 거구나.

그러니까 못 본 척해 주기로 했다.

* * *

최근 사교계는 이야깃거리가 마를 틈이 없었다.

귀환한 전쟁 영웅이 수많은 귀족 앞에서 청혼한 이야기.

다음은 그랑힐데 공작 부인이 숨기고 있는 비밀.

현재는 발트레 공녀의 결혼 소식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알트페리아는 조촐하게 진행한다고 했지만, 그녀의 결혼식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았다.

특히 혼담 상대를 구하는 영애와 영식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발트레 공녀님이 곧 결혼하신다면서요.”

“어머, 처음 듣는 소식이에요. 저는 받지 못했는데, 초대장이 돌았나 봐요?”

“초대장은 돌지 않았어요. 하지만 황제 폐하께 정식으로 보고했단 이야기를 들었어요. 폐하께서도 공녀의 결혼을 축하해 주셨대요.”

“그나저나 공녀님은 괜찮으실까요? 상대가 그 그랑힐데 공자잖아요.”

다들 알트페리아의 결혼 상대인 루크를 떠올렸다.

괴물이라는 소문은 사라졌지만, 마물의 피를 뒤집어쓰고 악마같이 웃었다는 이야기는 여전했다.

알트페리아는 그런 무시무시한 사람과 결혼하게 되는 거였다.

“솔직히 그 자리에서 청혼받으면 그 누구도 거절하지 못했을 거예요.”

황제와 영웅에게 압박당하는 자리였다. 제아무리 공녀라고 해도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개선식에 참여하지 못한 귀족들은 알트페리아가 억지로 받아들인 걸로 알고 있었다.

이야기를 듣던 영애가 까르르 웃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두 사람이 데이트하는 모습을 봤는데, 공자께선 생각보다 부드러운 분이신 것 같았어요.”

“정말요? 그 공자가요?”

“저도 봤어요. 공자께서 공녀님을 챙기는 모습이 상당히 신사다우셨죠. 괜히 누군가가 이상한 소문을 퍼뜨리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더군요.”

“그리고 공녀님의 표정이 소백작을 만날 때와는 확연하게 달라진 것 같지 않아요? 당당해지셨달까요.”

“맞아요. 표정도 편해졌고요, 무엇보다 요새는 공녀님 혼자 찻집에 앉아 있는 모습도 못 봤어요.”

앨런은 알트페리아와 약속해 놓고 늘 늦든가 멋대로 파기했다.

알트페리아는 그런 앨런을 기다리느라 귀족 거리에 있는 찻집에 홀로 앉아 있던 적이 많았다.

“공자는 바람을 피운다는 소문도 없죠.”

“그리고 솔직히…… 그 얼굴이 청혼하면 저라도 받아줄 거 같아요.”

“저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