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화
백작 부인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저택에 울려 퍼졌다.
놀란 시종들이 닫힌 문을 열어줬다.
귀한 아들을 구금시킨 남편이란 작자는 태연하게 서류나 들여다보고 있었다.
다프네는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치듯 말했다.
“알트페리아 때문에 앨런을 가두셨다고요? 그 말이 사실입니까?”
“그렇소.”
“고작 그런 계집 때문에 귀한 자식을 좁디좁은 방에 가두실 생각을 하신 겁니까? 대체 후계자를 뭐로 보시는 건지요!”
앨런은 겨우 들어선 아이였다.
그마저도 몇 번이나 잃을 뻔해서 겨우 빛을 보게 한 자식이었다.
좋은 것만을 보여주고 아껴주기도 바쁜데 감금이라니!
“소중한 후계자라서 내린 결정이오. 앨런도 그만 정신을 차릴 때가 되지 않았소.”
“정신을 차려야 할 건 알트페리아입니다. 그 계집이 다른 남자랑 놀아나니까 앨런이 마음을 다치지 않았습니까. 당신은 그 계집애 때문에 상처받은 앨런이 불쌍하지도 않은 건가요?”
“안쓰럽소. 그러니 바뀌길 바라는 거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라 놔두십시오. 어련히 알아서 깨닫지 않겠습니까.”
“그 알아서가 대체 언제란 말이오! 이번 일도 보시오. 자칫 잘못하면 폐하의 분노를 살지도 몰랐지 않소. 감싸주는 게 능사가 아니오!”
백작 부부는 서로 목소리를 높이며 싸우기 시작했다.
방에 갇혀 있는 앨런은 퉁퉁 부어오른 눈으로 시끄러운 소리가 새어 들어오는 방문을 바라봤다.
제발 풀어달라고 엉엉 울었지만, 아버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리아…….”
앨런은 중얼거리며 창문 밖을 바라봤다.
콧물까지 줄줄 흘리며 울었더니 어느새 해가 지고 밤이 되었다.
알트페리아의 결혼식이 끝나버린 것이다.
지금쯤 그녀는 그 자식과 함께 침실에 있을 테지.
다른 남자의 품에 있을 그녀를 떠올리면 온몸을 불태울 것 같은 질투가 피어올랐다.
“크흑…….”
구석에 쭈그려 앉은 그가 무릎을 끌어모아 고개를 파묻고 있을 때였다.
“앨런!”
남편에게서 열쇠를 빼앗은 다프네가 앨런의 방문을 열고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방 안에 들어온 다프네는 멈칫했다.
사랑하는 아들의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내 아들이 저렇게 슬퍼하다니.
“앨런! 오, 내 아가. 괜찮으냐?”
백작 부인은 앨런을 끌어안았다.
어머니가 자신을 위로해 주자 앨런이 울먹거렸다.
“흐윽, 어머니……. 리아가…… 리아가 제가 아니라……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해서…….”
사실 다프네는 알트페리아와 앨런이 결혼하는 것이 아니꼬웠다. 앨런이 아까웠기 때문이다.
비싼 물건을 가지다 바치며 제게 굽실거리기에 마지못해 약혼을 허락했더니 감히 뒤통수를 거하게 쳤다.
햇병아리 같은 계집이 앨런을 가지고 논 것을 생각하면 화가 났다.
“흐윽……. 리아가 보고 싶습니다.”
“초대하면 되지 않으냐?”
“제 편지를…… 다 무시합니다. 저랑 만나고 싶지 않은 모양입니다.”
앨런은 그 계집을 만나러 몇 번이나 발트레 저택을 찾아갔었다.
그때마다 번번이 문전박대를 당했다고 했지.
그 이야기를 들으며 어찌나 가슴이 찢어지던지.
“앨런…….”
다프네는 아들이 안타까워 앨런을 부둥켜 끌어안았다.
그러던 중 발트레 저택에서 편지가 하나 날아왔다.
<부인께서 제게 빌려가신 브로치를 772일째 돌려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른 시일 내 제 브로치를 돌려주시길 바랍니다.
―알트페리아 폰 발트레>
빌려간 브로치라는 말에 하나 떠오른 것이 있었다.
앨런과 알트페리아가 연인이 되었을 때의 일이다.
다프네는 알트페리아가 저택에 찾아올 때마다 은근히 압박을 넣었다.
불편한 기색을 눈치챈 알트페리아는 어느 날 선물을 챙겨 왔다.
“어머니께 드릴 목걸이를 준비했어요.”
귀하다는 블루다이아몬드로 만든 목걸이였지만, 다프네는 일부러 싫은 티를 팍팍 내고 툴툴대며 목걸이를 챙겼다.
“참 촌스러운 목걸이구나.”
“죄송해요. 다음에는 마음에 드실 만한 선물을 준비할게요.”
알트페리아는 죄스럽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녀의 가슴에 달린 브로치가 다프네의 눈에 띄었다.
탐이 날 정도로 화려한 세공의 브로치였다.
“참 예쁜 브로치구나. 마침 나도 그런 브로치를 가지고 싶었지.”
“아……. 이건.”
알트페리아는 브로치를 매만지며 머뭇거렸다.
“나는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에게 앨런을 보내고 싶지 않단다.”
다프네의 눈치에 알트페리아는 브로치를 떼어냈다.
“한 번 착용해 보실래요?”
뛰어난 장인이 만든 브로치인지 세공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빼앗듯이 브로치를 낚아채 착용한 다프네는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며 흐뭇해했다.
마음에 쏙 들어서 돌려주고 싶지 않았다.
“마침 이번에 새로 맞춘 드레스랑 딱 잘 어울릴 것 같은 브로치구나. 잘되었다. 다음 파티 때까지만 브로치를 빌리고 싶은데 괜찮지?”
알트페리아는 머뭇거리며 답했다.
“네…….”
당연히 그 후로 브로치를 돌려주지 않았다.
알트페리아는 자신에게 미움을 받을까 봐 돌려달란 소리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프네는 더욱더 당당히 제 물건처럼 여기며 브로치를 착용하고 돌아다녔다.
다프네는 알트페리아의 편지를 구겼다.
‘괘씸한 것!’
앨런의 마음을 아프게 했으면 얌전히 있을 것이지, 뭔갈 요구해?
그녀의 행동이 괘씸해져서 더더욱 브로치를 돌려주고 싶지 않아졌다.
고작 브로치를 돌려달란 요구 따위, 한 번 거절하면 떨어져 나갈 테니까.
다프네는 알트페리아에게 답장을 보냈다.
* * *
그 연락이 알트페리아에게 오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소공작에게 빌린 물건이 없다.>
2천만 르블라를 소모하여 ‘D’가 다프네라는 걸 알아낸 알트페리아는 머리를 굴렸다.
퀘스트를 받았으니 최대한 이득을 챙겨야 했다.
‘평판을 깎으라고?’
거기에 금전적 이득을 취하면 보너스가 있다고 하니, 일단 뭔가 받아낼 거리가 없나 생각해 보았는데.
‘준 게 너무 많아.’
하나하나 되짚던 중 부모님에게 받은 선물도 하나 끼어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무려 저택 한 채를 살 수 있을 정도로 고가의 물건이었다.
‘아버지가 생일 선물로 주신 거였지.’
선대 발트레 공작은 저택 하나 값인 로즈사파이어 원석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 원석을 가공한 뒤 세공사를 불러 브로치로 완성하고 알트페리아의 생일 선물로 줬다.
평소에 착용하긴 아까운 브로치였다.
그대로 상자에 넣어 고이 간직했다가 부모님의 기일, 시어머니가 될 다프네를 만나러 가는 날에 처음으로 꺼내어 착용했었다.
다프네는 자신을 고까워한다.
하여 돌아가신 부모님이 힘을 빌려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브로치를 착용했는데 빌린다는 핑계로 빼앗겼다.
다프네가 한 짓이 더러워서 돌려달란 소리를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퀘스트를 해결할 겸 브로치도 되찾기로 했다.
알트페리아는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기억나지 않으시다면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르페른 후작의 무도회에 참석할 때 착용하신 로즈사파이어 브로치를 말하는 겁니다.>
브로치를 버려버린 후 없다고 잡아뗄까 봐, 리베르트에게 정보 수집 능력을 배운 시녀를 풀어 조사시켰다.
리베르트에게 특훈을 받은 시녀들은 다프네가 최근까지도 알트페리아의 브로치를 착용한 사실을 알아냈다.
이제 다프네의 선택은 두 가지였다.
순순히 돌려주든가.
아니면 모른다고 잡아떼든가.
물론 순순히 돌려준다고 해도 여기서 끝낼 게 아니었다. 은근슬쩍 들고 간 물건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까, 하나하나 뺏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면 소문이 나겠지.
다프네가 알트페리아에게 물건을 잔뜩 빌려갔고, 돌려주지 않았다고.
나쁜 소문이 도는 건 곧 그녀의 평판이 깎이고 자신이 퀘스트를 완료한다는 것!
하지만 다프네는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
<내 브로치를 탐내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리 가지고 싶다면 주지 못할 것도 없지.
로저필드 저택에 직접 가지러 오너라.>
“미치셨네.”
남의 물건을 제 것이라 우기기로 하다니.
황당한 내용의 편지에 알트페리아는 욕설을 내뱉었다.
그녀의 곁에 서 있던 루크와 세이룬이 반응했다.
“무슨 일입니까?”
“왜 그러세요, 공녀……. 아니, 소공작님?”
루크와 결혼식을 치른 지 며칠이 지났다.
그사이 황제는 알트페리아에게 소공작의 칭호를 내렸다.
공작 작위는 제국의 행사 중 하나인 축일에 내려주기로 했고.
황제는 한시라도 빨리 발트레와 친하다는 모습을 알리고 싶은지, 소공작의 칭호를 먼저 내리겠다고 발표했다.
진즉에 받아야 했을 소공작의 자리지만 이제라도 받아 좋긴 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문제는 브로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