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편이 예쁘고 재력이 넘침-58화 (58/91)

제58화

루크는 응원만해 달라는 알트페리아의 말에 자신이 그녀의 일을 방해할 뻔한 것을 깨달았다.

알트페리아는 일을 함부로 벌이지 않는다.

그녀가 무엇을 하든 자신은 그저 지지하며 응원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루크는 흘러내린 알트페리아의 머리카락을 정돈해 주며 중얼거렸다.

“지난번 결투에서 승리를 기원해 드리지 못하였지요. 이번에는 제대로 기원해 드리고 싶습니다.”

오랜 전쟁을 치른 르블레아에는 풍습이 하나 생겼다.

누군가 전장에 나갈 때면 그와 가까운 사이인 사람이 승리를 기원하는 작은 기도를 해주는 거였다.

“부탁드릴게요.”

루크는 알트페리아의 손을 소중하게 붙잡았다.

그런 그녀의 손에는 푸른색으로 빛나는 반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제 손에 끼워진 반지와 한 쌍이었다.

마치 자신들은 짝이라고 증명이라도 하는 것 같아 보기만 해도 절로 마음이 충만해졌다.

그는 그녀의 손을 조심스레 붙잡아 손가락 끝에 입을 맞췄다.

승리를 기원하는 기도문은 정해져 있었다.

‘승리의 여신이 그대에게 미소를 짓기를 바라옵니다’.

하지만 루크는 왠지 다른 말을 하고 싶었다.

“나의 여신의 앞길이 언제나 찬란하기를.”

알트페리아의 귀 끝이 살짝 붉어졌다.

승리를 기원하는 기도를 해준다더니, 루크가 전혀 다른 소리를 내뱉었기 때문이다.

“제가 기억하는 기도문과 내용이 다른데요?”

“리아가 승리할 싸움이잖습니까. 정해진 결과를 쥐고 오기만 하면 되니 기원이 필요 없을 듯하여.”

알트페리아가 키득 웃었다.

“잘 아시네요. 저는 이만 법정에 가야겠어요.”

시간이 되었다. 알트페리아는 루크의 손을 놓았다. 그는 제 손에서 빠져나가는 그녀의 손을 살짝 힘주어 잡은 뒤 놓아줬다.

“금방 돌아올게요.”

그의 손길을 눈치챈 알트페리아는 눈웃음을 지으며 법정으로 향했다.

루크는 알트페리아가 사라진 방향을 한참 바라본 후, 준비된 방청석으로 이동했다.

* * *

귀족들 간에 벌어지는 재판에는 방청객을 따로 받지 않았다.

법정에는 재판을 진행하는 대사제와 결과의 증인을 맡는 중립 가문의 귀족 몇몇이 있었고, 각 가문의 자리에는 로저필드 백작과 루크가 앉아 있었다.

땅, 땅, 땅.

대사제가 나무망치를 두드렸다.

“두 분은 신의 앞에서 진실만을 고하셔야 합니다.”

알트페리아와 다프네는 대사제의 말을 따라 진실만을 고하겠다고 맹세했다.

재판이 시작되었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를 살펴보던 대사제가 입을 열었다.

“편지 내용을 살펴보니 백작 부인께서는 소공작께 브로치를 그냥 드리려던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앨런이 소공작을 만나고 싶어 하길래 꺼낸 말입니다. 브로치 하나를 줘버리고, 앨런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었답니다.”

이런 부분까지는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어 다프네는 사실대로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던 대사제가 물었다.

“소백작이 소공작과 만나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재판과 관련되지 않은 사적인 이야기를 설명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앨런이 알트페리아를 만나려 하는 이유는 설명하지 않아도 법정에 있는 모두가 알 것이다.

원래 알트페리아는 앨런의 약혼녀였으니까.

하지만 알트페리아는 유부녀가 되어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전 애인이 만나기를 시도하려는 이유가 궁금하긴 하지만 재판과 관련 없는 일이긴 했다.

“크흠.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헛기침하며 제출된 편지를 추가로 살펴보던 대사제가 입을 열었다.

“소공작께서는 정확히 772일 전이라고 적으셨는데, 이 날짜는 무엇입니까?”

알트페리아가 답했다.

“지금은 또 얼마가 지나 브로치를 빌려간 지 795일째가 되네요. 정확히 제국력 172년 3월 22일이었습니다.”

“차용증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빌려준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그날은 부모님의 기일이에요……. 소백작과 함께 묘소에 가고 싶어서 로저필드 백작 저택을 방문했었는데…… 브로치만 빼앗기고 말았지요.”

대사제가 탄식했다.

“저런…….”

“게다가 그 브로치는 아버지께서 생일 선물로 주신 거예요……. 그래서 재판을 열어서라도 꼭 찾고 싶었어요.”

브로치 하나 때문에 고소장 날린 소공작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 밝힌 사항이었다.

알트페리아의 말에 증인을 맡은 귀족들이 웅성거렸다.

“유품이었다니! 평범한 브로치 때문에 재판을 여신 게 아니었군요.”

“백작 부인은 그럼 부모님의 유품을 가져간 겁니까? 그런 파렴치한 짓을 하시다니!”

“심지어 뺏어간 날이 기일이라고요?”

“돌아가신 부모님의 유품을 계속 들고 계실 건가요? 당장 돌려줘야지요!”

중립을 유지해야 할 귀족들이 다프네를 헐뜯기 시작했다.

비난하는 목소리에도 다프네는 덤덤했다.

알트페리아는 편지에 정확히 며칠간 빌렸다는 이야기를 언급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조사해 봤더니 발트레 공작 부부의 기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미 알고 있었던 정보이기에 당황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작고하신 발트레 공작 부부의 이야기는 이 사건과 연관이 없습니다. 재판과 상관없는 이야기로 동정을 사려는 걸로 보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대사제 예하?”

“예.”

“법정이 감정을 호소하는 장소였습니까?”

발트레 공작 부부의 죽음과 브로치는 연관성이 없었다.

그저 우연이 엮인 슬픈 이야기일 뿐이지.

“백작 부인의 말씀이 맞습니다. 재판과 관련되지 않은 이야기는 자중해 주십시오.”

소란스러웠던 법정이 조용해졌다. 대사제가 말했다.

“편지의 내용만으로는 브로치의 소유자를 명확하게 가리기 힘듭니다. 양쪽 모두 준비한 증거가 있으십니까?”

다프네가 손을 들어 올렸다.

“좋아하던 브로치라 자주 착용했습니다. 제가 몇 년간 애용했다는 건 많은 귀족이 알고 있을 겁니다.”

증인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특히 아끼는 물건이라며 보여주신 적이 있습니다. 똑똑히 기억합니다.”

“지난주에 열린 르페른 후작 가문의 무도회에서도 브로치를 착용하셨죠. 드레스랑 잘 어울려서 기억하고 있어요.”

“저도 보았어요. 아, 생각해 보면 몇 년 전부터 계속 착용하셨어요.”

승리를 확신한 다프네가 턱을 치켜들었다.

“보십시오, 대사제 예하. 저는 몇 년간 브로치를 계속 사용했습니다.”

문득 의아함을 느낀 증인석의 귀족들이 수군거렸다.

“백작 부인이 몇 년간 지니고 있던 브로치가 사실은 소공작에게 빌린 물건이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네요…….”

“이상하지 않아요? 소공작은 왜 갑자기 브로치에 욕심을 내는 건가요?”

다프네가 원하는 말이 나왔다. 그녀는 목소리를 한껏 키웠다.

“소공작은 최근 에드나의 땅을 사들였습니다. 실패한 투자를 만회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제 브로치를 탐내는 것 같습니다.”

대사제가 깜짝 놀랐다.

“에드나의 땅을요? 그 말이 사실입니까, 소공작?”

알트페리아는 다프네를 빤히 바라봤다.

‘생각보다 치밀하게 조사했잖아?’

자신이 에드나의 땅을 샀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알트페리아는 자신을 보며 히죽대는 다프네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사실이에요. 에드나 항구의 땅을 샀어요.”

몇몇 귀족이 의견을 냈다.

“대체 그 얼음덩어리 땅을 왜 산 거래요?”

“어디 사기라도 당해서 산 것이 아닐까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니까요.”

“아, 그래서 돈이 필요해진 게 아닐까요? 로즈사파이어로 만든 장신구는 값이 상당하니까요.”

수군대는 소리가 길어지기 시작했다.

재판이 다프네 쪽으로 유리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다프네는 현 상황이 만족스러웠다.

‘위조한 보석 감정서까지는 꺼낼 필요도 없겠군.’

준비한 자료만으로도 알트페리아를 찍소리도 못하게 만들었으니까.

승리를 확신한 다프네가 제안했다.

“더 들어볼 필요도 없는 것 같습니다. 대사제 예하, 판결을 내리십시오.”

대사제가 나무망치를 꽉 움켜쥐었다.

“소공작은 이견이 없으십니까? 그렇다면 이만 판결을 내리겠…….”

“물론 있어요.”

“…….”

“저는 제국을 구한 영웅인 남편의 포상금을 전부 받았어요. 에드나의 땅을 사는 것에는 아무런 부담도 없었답니다.”

일부도 아니고 포상금 전부를 넘겨받았다는 말에 귀족들은 내심 놀랐다.

아무리 부부 사이라고 하나 재산은 따로 두기 마련이니까.

귀족들의 수군거림을 뚫고 루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실입니다. 제가 부인을 너무나도 사모하여 모든 걸 내어줬습니다.”

미리 입을 맞추지 않았는데 눈치 빠른 루크는 적절한 대응을 해줬다.

그의 대답에 귀족들은 루크를 흘끗 보았다.

아무리 부인이 좋다고 한들 아낌없이 다 퍼다 주는 사람은 처음 봤기 때문이었다.

소란이 조금 가신 후 알트페리아가 입을 열었다.

“제가 에드나의 땅을 산 건 이번 사건과는 전혀 상관없어요. 게다가 저는 브로치를 2년 전에 빌려줬다고 편지에 똑똑히 써두었답니다.”

“…….”

“백작 부인이 준비하신 증언은 그저 제가 빌려준 기간 내내 사용했단 것뿐 아닌가요? 백작 부인의 것이라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는 걸요.”

당황한 대사제가 쥐었던 나무망치를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그리고 땀을 뻘뻘 흘렸다.

“확실히 착용했다는 것만으론 브로치의 소유자라고 명백히 말할 수 없겠습니다.”

“그렇죠? 백작 부인은 제 브로치를 돌려주지 않고, 2년간 멋대로 착용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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