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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예쁘고 재력이 넘침-59화 (59/91)

제59화

다프네는 인상을 찡그렸다.

저 계집이 지금 마치 자신이 도둑이라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다 이긴 재판을 막판에 발목 잡아 질질 끄는 꼴이 같잖았다.

아직 남은 패가 있었다.

다프네는 평정을 유지하며 침착하게 말했다.

“소공작의 브로치라는 증거도 없습니다.”

대사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브로치를 구매한 영수증이나 감정서 등을 소지하신 분이 계십니까?”

두 사람 다 입을 다물었다. 대사제는 한 명씩 돌아가며 물어봤다.

“소공작께는 영수증이나 감정서가 있습니까?”

“아버지께서 개인적으로 의뢰를 넣어 만든 브로치예요. 따라서 공식 서류는 없어요.”

“백작 부인께서는 소지하고 계십니까?”

혹시 몰라서 마지막까지 숨겨둔 위조 서류를 꺼낼 때가 왔다.

“저는 있습니다.”

다프네가 씩 웃었다.

‘내가 이겼어!’

앨런을 슬프게 만든 건방진 계집에게 본때를 보여주게 되어 속이 시원했다.

다프네는 시녀를 시켜 대사제에게 서류를 건넸다. 내용을 확인한 대사제는 망치를 다시 들어 올렸다. 하지만.

“잠시 판결을 미뤄주세요. 서류는 없지만 제 브로치라는 명백한 증거가 있거든요.”

알트페리아가 또 막아서서 망치를 두드리지는 못했다.

대사제는 머쓱해 하며 나무망치를 다시 내려놨다.

“이거, 아직 끝나지 않았군요.”

알트페리아는 일부러 판결의 최후의 최후까지 기다렸다.

다프네가 준비한 모든 증거를 꺼내길 바라며.

온갖 증거를 들먹이며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뭔가 더 나올 것 같았는데.

존재하지 않는 서류가 튀어나왔다!

‘저건 분명히 위조한 서류야.’

사실 이대로 판결이 나도 다프네에게 큰 타격은 없었다.

뇌물 같은 걸 써서 가짜로 준비한 증인들이 아니니까.

‘소공작의 브로치였나? 너무 오래전의 일이라 내 건 줄 알았지 뭔가. 호호’라고 착각했다고 얼버무리며 대충 무마할 수도 있었다.

망신만 조금 당하지, 실제적인 타격은 별로 없다.

하지만 문서를 위조한 죄는 달랐다.

도망갈 구석 따윈 없는 완벽한 죄였다.

대사제가 말했다.

“소공작의 브로치라는 걸 어떻게 증명하실 생각입니까?”

“브로치를 잠깐 볼 수 있을까요?”

“예, 허락합니다.”

대사제의 보좌가 보관하고 있던 브로치를 꺼내 왔다.

알트페리아는 브로치를 빤히 바라봤다.

작은 꽃 여러 개가 피어난 듯한 금장식에 장미를 닮은 진분홍색 보석이 들어간 브로치였다.

아버지와의 추억이 떠올랐다.

자신의 일곱 살 생일.

아버지는 마물 토벌을 나갔다가 발견한 로즈사파이어로 브로치를 만들어 사용인들 눈앞에서 건네줬다.

“공녀님은 장미색도 참 잘 어울리시네요!”

“공작님께서 귀한 선물을 준비하셨군요. 공녀님도 기쁘시겠어요.”

사용인들은 잘 어울린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파티가 끝나고 잘 시간이 되었다. 알트페리아가 이불을 덮고 눈을 감을 때, 아버지가 조용히 찾아왔었다.

“미안하구나. 벌써 잘 시간인 줄은 몰랐다.”

“우웅……. 오늘 너무 좋았어요. 근데 졸려…….”

“얼른 비밀을 알려주고 나가야겠구나.”

“비밀이요?”

“사실 이 브로치에는 비밀이 있다. 알트페리아, 너에게만 알려주고 싶어서 몰래 찾아왔지.”

아버지는 둘만의 비밀이라며 브로치에 숨겨진 기능을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알트페리아는 브로치의 고정 핀을 빼냈다.

옷에 고정하기 위한 핀이었지만, 그녀는 정작 옷에 꽂진 않고 빼두기만 한 채 브로치를 높이 들어 올렸다.

‘잘 맞춰야 하는데.’

그냥 들어 올리는 게 끝이 아니라 램프 빛의 각도를 잘 맞춰야 했다.

브로치를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던 알트페리아의 행동이 멈췄다.

그녀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던 법정의 사람들은 의아해 했다.

마찬가지로 그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 대사제가 입을 열었다.

“핀을 빼는 것이 끝입니까?”

“잘 보세요.”

알트페리아는 손에 쥔 브로치를 여러 방향으로 돌렸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조용히 지켜보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죠?”

“괜히 시간을 끌지 말고 판결에 수긍하세요!”

알트페리아가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에 내심 놀랐던 다프네도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거들었다.

“소공작, 이게 무슨 추한 행동입니까. 증거가 없으면 순순히 판결을 받아들이십시오!”

어휴, 다 떠먹여 줘야 하는구나.

“다들 백작 부인의 뒤쪽에 있는 벽을 보세요.”

그제야 벽을 바라본 귀족들이 화들짝 놀라며 입을 가렸다.

“저…… 저건.”

“세상에……. 브로치가 소공작의 것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갑자기 태도가 바뀐 증인석의 모습에 다프네는 의아했다.

그리고 대체 무엇 때문에 저러는지 자신의 등 뒤를 바라봤다.

여유로웠던 다프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증인석에 앉아 있던 귀족이 외쳤다.

“저건 발트레의 상징이에요!”

하얀 벽에는 브로치로 만든 그림자가 드리워졌는데, 작은 꽃 조각은 쫙 펼친 날개로, 뽑아낸 핀은 뾰족한 부리로서 마치 맹금류 같은 모습을 띠고 있었다.

발트레의 상징인 매였다.

거대한 날개를 펼친 매 형상의 그림자를 본 다프네는 크게 당황했다.

‘저…… 저게 어떻게 매의 형상이 되는데?’

겉보기엔 그저 꽃 모양이라고!

심지어 로즈사파이어가 만든 붉은 그림자 테두리 때문에 더욱더 발트레 가문의 문장으로 보였다.

알트페리아가 말했다.

“제국에서 매를 문장으로 사용하는 가문은 발트레뿐이지요. 아버지께서는 제게 브로치가 아닌 발트레의 상징을 선물로 주신 겁니다.”

문장으로 새를 사용하는 가문은 있지만 매는 발트레 가문뿐이었다.

아무도 반대되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알트페리아는 브로치를 당당하게 자신의 가슴에 꽂았다.

그리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다프네를 보며 싱긋 웃었다.

“조작된 서류까지 만들어내실 정도로 제 브로치가 탐나셨나 봐요, 부인.”

“고, 고작 아이들 장난 같은 짓이 증거가 될 리가 없습니다……. 저는 이렇게…… 감정서도 다 들고 있습니다!”

“감정서도 가지고 계시면서 브로치에 숨겨진 비밀은 모르셨어요?”

“…….”

“로저필드의 상징은 수사슴이지 않나요? 왜 하필 전혀 상관도 없는 매를 숨겨두신 건가요?”

알트페리아의 질문 폭격에 다프네는 몸을 부들부들 떨기만 할 뿐 한마디도 대응하지 못했다.

이대로 끝나면 자신은 많은 것을 잃는다.

뭐든 간에 서류가 있으므로 밀어붙여야 했다.

“그, 그저…… 우연으로 만들어진 그림자입니다!”

“하아…….”

로저필드의 자리에 앉아 있던 백작이 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제 부인의 추태를 차마 보지 못하겠는 모양이었다.

“잘 생각해 보세요, 백작 부인. 백작 부인의 것이라는 브로치에 숨겨진 비밀을 제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요?”

“…….”

“이야기는 끝났네요. 대사제 예하, 판결을 내리시고 존재하지도 않는 감정서가 나타난 연유도 조사하시죠.”

상황을 보아하니 로저필드 백작 부인이 꺼낸 서류는 조작된 것이었다.

새로운 사건이 발생했으니, 제도 기사단에 연락을 넣어 따로 수사를 진행해야 했다.

드디어 망치를 두드릴 수 있겠군.

신이 난 대사제가 나무망치를 꽉 붙잡았다.

“이의가 있으신 분은 없으십니까? 그렇다면 본 법정의 판결은…….”

“이의 있습니다!”

이번에 막아선 사람은 알트페리아가 아니었다.

그녀는 조용히 서서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니까.

대사제가 망치를 두드리는 걸 막은 사람은 바로.

“소백작이 아니십니까? 이렇게 법정에 함부로 난입하시면 아니 됩니다!”

부인을 필사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로저필드 백작의 소싯적 모습과 똑같이 생긴 앨런이었다.

앨런이 당당하게 외쳤다.

“로저필드의 사람이라면 이 재판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알트페리아는 놀랐다.

앨런이 그나마 맞는 소리를 해서.

“그렇군요. 예, 입장을 허락합니다.”

뚜벅, 뚜벅, 가슴을 앞으로 쭉 내밀며 당당하게 걸어 들어오던 앨런이 알트페리아를 바라보며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저게 미쳤나?’

다 끝난 재판에 왜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기분을 불쾌하게 만들 생각이었다면 성공이었다.

앨런의 발걸음은 대사제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그는 증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브로치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제가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알트페리아는 덤덤히 그를 바라봤다.

가까운 사이가 증언해 봤자 채택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신도 사용인들을 증인으로 내세우지 못했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건진 모르겠지만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은 없다.

다프네가 양손을 꼭 붙잡으며 제 아들을 바라봤다.

“앨런…….”

핏줄은 어디 가지 않는다.

어머니가 위험해지니까 발 벗고 나선 모양이었다.

앨런이 제 이마를 손끝으로 툭 치며 알트페리아를 흘끗 보았다.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걸 보면 저 혼자서 뭔갈 상상하며 좋아 죽으려는 것 같은데.

“확실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유독 더운 날, 알트페리아가 브로치를 착용하고 저택에 찾아왔었죠. 그런데 돌아갈 땐 브로치가 없었습니다.”

응?

이야기의 흐름을 보니까 앨런은 다프네를 두둔하러 나온 게 아닌 것 같았다.

다프네는 물론 고개를 푹 숙인 백작의 안색까지 창백해졌다.

“앨런, 그만해라!”

백작의 간절한 외침에도 앨런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브로치는 어쨌냐 물어보니까 어머니가 빌려가셨답니다. 다음에 있을 파티 때만 착용하고 돌려주신다고 했는데 그 후로도 쭉 들고 계셨죠.”

“앨…… 앨런…….”

멍하니 서 있던 다프네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휘청거렸다.

충격이 상당한 모양이었다.

발언을 끝낸 앨런은 뭔가 느끼한 표정을 지으며 알트페리아를 바라봤다.

뭐래.

자신이 큰 도움을 줬다고 착각이라도 하는 모양인데, 이미 뚜렷한 증거가 나와 도움도 되지 않는 증언이었다.

더 이상 참지 못한 로저필드 백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만! 얼른 판결하십시오, 대사제 예하!”

눈만 깜빡깜빡하던 대사제가 나무망치를 탁, 탁, 탁 두드렸다.

“판결을 내리겠습니다. 브로치는 발트레 소공작의 것입니다. 로저필드 백작 부인은 발트레 소공작에게 브로치를 포함하여 3억 르블라를 지급하십시오!”

재판은 알트페리아의 승소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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