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화
‘이상한 씨앗’을 살펴보는 건 잠깐 미뤘다.
지금은 루크와 함께 찻집에 들어가던 중이었으니.
신문에 실린 광고를 보고 찾아온 찻집의 간판에는 ‘허니비’라는 이름이 도드라져 있었다.
이름대로 꿀을 듬뿍 넣은 홍차가 일품이라지.
알트페리아가 루크와 팔짱을 낀 채 가게 안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직원이 막아섰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손님이 몰려 현재 만석입니다. 예약은 진행해 드릴 수 있는데 가장 빠른 날이 일주일 후입니다. 예약을 원하신다면 진행해 드리겠습니다.”
루크가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결혼 후에도 사이좋은 관계임을 계속 보여줘야 하므로 데이트 삼아 나온 거였다.
별생각 없이 선택한 가게였는데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하니까 괜한 호기심이 생겼다.
“왠지 더 궁금해지는데요? 예약해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 루크가 직원을 향해 말했다.
“예약하겠습니다.”
“가문명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발트레입니다.”
작은 메모장에 적힌 예약 일정을 확인하던 직원의 손이 멈칫했다.
그러더니 그가 루크와 알트페리아를 번갈아 바라봤다.
“혹시…… 발트레 소공작 부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직원의 손에서 메모가 툭 떨어졌다.
루크를 무서워하는 사람인가.
불쾌해진 알트페리아가 루크의 팔을 끌고 돌아가려는데 직원이 외쳤다.
“자리, 있습니다!”
응? 예약하지 않으면 앉지도 못한다며.
조용히 있던 알트페리아가 입을 열었다.
“없다지 않았나?”
“마침 전망 좋은 테라스가 비어 있는데 야외석도 괜찮으시다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날씨가 따뜻하여 야외석도 괜찮다.
딱히 다른 곳은 알아보지도 않았고, 이 가게의 홍차가 궁금하던 참이었다.
“좋아. 안내해 줘.”
“잠깐만 기다려주실 수 있습니까? 아주 잠깐이면 됩니다!”
그런 말과 함께 직원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직원을 다 불러 모으더니 분주하게 움직였다.
오래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준비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들이 준비해 준 자리는 2층 테라스의 야외석으로 하얀 대리석을 베이스로 연분홍색의 꽃, 그리고 리본 등으로 장식이 되어 있었다.
장식의 모양을 보아하니 리본은 방금 막 설치한 것 같았다.
차와 함께 디저트가 빠르게 준비되었다.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정중한 인사와 함께 직원이 사라졌다.
자리에 앉은 알트페리아가 속닥거렸다.
“아무래도 이 자리, 거기가 생각나지 않아요?”
루크가 반지를 건네줬던 그곳!
거기와 노골적으로 닮았다.
“저희가 다녀간 뒤로 예약이 밀렸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그 이야기 들었어요.”
고백이나 청혼에 딱 좋은 가게라고 소문났다지.
아무래도 르블레아도 전생과 똑같이 유명하다 싶으면 우르르 몰려가는 경향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 가게도 자신들을 이용해 유명해지고 싶어서 없던 자리를 만든 게 아닌가 싶었다.
덕분에 자리가 생겼으니 오늘은 이용당해 주지, 뭐.
다른 좌석과 멀찍이 떨어져 있어서 딱 둘만이 즐기기도 좋으니까.
알트페리아는 가게를 한 번 슥 훑어보며 준비된 케이크를 조각내어 먹었다.
혀가 녹아내릴 정도로 달콤했다.
홍차 또한 꿀이 듬뿍 들어 단맛이 진했다.
기분을 노곤하게 만드는 단맛도 좋긴 하지만 왠지 이럴 땐 특히나 더…….
“홍차도 좋지만 시원한 아메리카노가 마시고 싶어요.”
“동감입니다.”
“성좌들이 커피는 후원해 주지 않아요?”
“예, 생각보다 무능해서.”
루크의 눈앞에 성좌들의 알람이 떴다.
[‘흑화한 염룡이’ 무능한 게 아니라 세계가 달라서 어쩔 수 없는 거라고 항변합니다.]
[‘사자의 서기관’이 로제떡볶이는 잊었냐며 따집니다.]
[‘명계의 지배자’가 나는 이 머저리들이랑 달리 후원해 줄 수 있었다며 제대로 구분해 달라고 합니다.]
알트페리아와 함께하는 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은 루크가 알람을 꺼버렸다.
그런 상황을 모르는 알트페리아는 인벤토리를 소환해 이상한 씨앗을 꼼꼼히 살펴봤다.
[이상한 씨앗]
명명하는 식물로 빠르게 자라납니다.
※ 현존하는 식물만 가능합니다.
마지막 주의사항만 없었으면 ‘지폐가 주렁주렁 열리는 돈나무!’라고 외쳤을 텐데.
현존하는 식물만 가능하다고 하니까 커피로 할까 싶다.
알트페리아는 차를 홀짝이며, 테라스 밖 풍경을 바라봤다.
승전 축제가 끝났는데도 거리에 사람이 많았다.
세상이 평화로워져 먹고 즐길 시간이 늘어난 까닭이었다.
덩달아 외식업이 더욱 잘나가고 있었다.
외식업계에 뛰어들까 싶지만 제도에는 단골손님을 잔뜩 가진 식당이 넘쳐났다.
요리 실력이 없는 그녀로서는 경쟁력 있는 식당을 구상할 수 없었다.
‘커피를 파는 카페가 딱 좋을 것 같은데.’
차를 즐기는 르블레아 사람에게 커피는 낯설 테지만 금방 푹 빠질 것이다.
전생에서도 커피는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즐겨 마시는 음료가 되었으니.
‘마침 카페 아르바이트는 전생에 해봤었고.’
작은 개인 카페에서 일하면서 음료는 물론 디저트 제작까지 도맡았었다.
결정을 내린 알트페리아가 입을 열었다.
“카페를 열어볼까 해요.”
“커피를 팔 생각입니까?”
“네.”
“원두는 어떻게 구하실 겁니까?”
알트페리아가 인벤토리에 있는 씨앗 그림을 꾹 눌러 설명창을 만들었다.
“한번 살펴보세요.”
루크는 알트페리아가 보여준 아이템 설명창을 확인했다.
알트페리아가 설명을 덧붙였다.
“퀘스트 보상으로 받았는데 커피콩으로 만들까 싶어요.”
“괜찮은 생각이군요.”
그냥 괜찮은 정도가 아니다.
곧 화룡 크레치만이 봉인에서 깨어나는데 그 여파로 르블레아는 더워진다.
시원한 음료를 팔기 딱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진짜 부자가 될지도 모르겠는데?’
돈을 긁어모을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알트페리아는 순간 무언가를 깨달았다.
‘아, 맞아.’
크레치만! 그걸 잊고 있었다니!
루크에게 설명해 준다고 해놓고 검만 넘겼었지.
그녀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말이 나온 김에 중요한 이야기를 할게요. 계약한 것대로 루크와 관련된 미래를 알려드릴 거예요.”
맞은편에 앉은 그가 자세를 고쳤다.
“예, 말씀하십시오.”
“몇 주 뒤에 화룡 크레치만의 봉인이 풀려요. 루크는 크레치만의 토벌에 나갔다가 크게 다쳤죠.”
“제가 드래곤에게 패배하는 겁니까? 공녀님의 말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도마뱀 따위에 질 것 같진 않아서.”
와, 저 넘쳐흐르는 자신감.
하긴 자신감이 넘치는 게 당연하려나.
전생에서 헌터로 활동하였을 때, 수많은 드래곤을 토벌했다니까.
“전투 중에 루크의 검이 부러지거든요. 그래도 걱정하지 마세요. 그에 대한 대비책은 마련해 뒀으니까요.”
“혹시 그 때의 그 검이 그 대비책인 겁니까?”
“맞아요, 원래 그날 설명을 다 해드리려고 했는데 하필 침대가 무너져서…….”
“소문이 잘 났더군요. 부부 사이가 너무 좋아서 침대가 부서졌다고.”
알트페리아는 마시던 찻물을 뿜어낼 뻔했다.
아, 아니, 저 소리 대체 누가 한 거야!
“대체 어디서 들으신 거예요?”
“재판이 열렸던 신전의 사제들이 하던 말을 들었습니다.”
으아아아!
그냥 기도만 하시지 쓸데없는 소문을 퍼뜨리시네!
소문이 그렇고 그렇게 났다고 하니까 괜스레 없던 일이 상상된다.
우리 부부는 손도 잡지 않고 나란히 누워 잠만 잤다고!
알트페리아는 그의 안색을 살폈다.
일단 겉은 멀쩡해 보이는데.
“괜찮으세요?”
저는 조금 민망하거든요.
“오히려 잘되지 않았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발트레 부부의 금실을 의심하지 않는 듯하니.”
과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부작용만 아니라면 좋긴 하지.
알트페리아는 민망한 기분을 떨쳐내며 침착하게 말했다.
“소문에 힘을 실을 수 있도록, 앞으로도 연기는 계속 부탁드려요.”
“……연기라. 최근 제 연기는 어떻습니까? 저는 꽤 능숙해졌다고 생각하는데.”
알트페리아는 루크의 행동을 떠올렸다.
이제 그는 뻣뻣해지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다가올 줄 안다.
꿀이 뚝뚝 떨어지는 시선을 보내는 것도 잊지 않으니 완벽했다.
“아주 기특해지셨죠.”
“반면 리아의 연기는 조금 부족한 듯합니다.”
“저요?”
“세간에는 영웅이 소공작에게 푹 빠졌단 이야기뿐입니다.”
“…….”
“이대로라면 황제가 끼어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좀 더 계약 내용을 신경 써주심이 어떠신지.”
음, 조금 섭섭해 하네.
계약 내용 중 하나는 1년간 결혼 상태를 유지하는 것.
황제는 루크를 사위로 만들고 싶어 한다.
화룡 크레치만을 퇴치하고 나면, 본격적으로 루크를 탐내겠지.
아무리 유부남이 되었다지만, 작은 틈만 생겨도 온갖 이유를 들먹여서 갈라놓을지도 모른다.
음, 사람들 앞에서 청혼한 것.
찻집에서 반지를 건네준 것.
재판에서 ‘사모하는 부인’이라고 발언한 것 모두 루크가 마음을 표현한 거였다.
반대로 자신이 루크에게 무엇인가를 한 건 없었다.
루크는 부인이 예뻐죽겠는 남편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었다.
그러니 자신 또한 남편을 끔찍이 사랑하는 아내역할을 잘 해내야 한다.
알트페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적 고마워요. 앞으로 좀 더 열심히 연기에 임해야겠어요.”
“이참에 연습하는 건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