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화
발트레에 낯선 가문의 연락이 줄줄이 들어왔는데.
<소공작께서 에드나 항구의 땅을 독점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꼭 필요한 땅입니다. 사들이신 값의 두 배를 낼 테니 팔아주십시오.>
<야적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에드나의 땅을 사고 싶습니다. 구매한 값의 열 배는 어떻습니까?>
<제발 창고 하나 지을 땅이라도 팔아주십시오!>
<에드나의 항구와 루비 광산을 바꿔주시지 않겠습니까?>
다프네가 재판에서 까발린 덕분에 에드나의 소유자가 알트페리아라는 건 제국 사람 모두가 알게 되었다.
하나 쓸모없는 얼음 땅을 샀다고, 가치가 없는 땅이라며 비웃기만 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돌변하여 땅을 팔라며 난리를 치다니.
이유는 단 한 가지밖에 없지.
‘에드나의 바다가 벌써 녹고 있나 봐.’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다.
원작에서는 에드나 바다가 녹는 것을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래서 크레치만이 나타나고 나서야 뒤늦게 대응했었는데 이번에는 벌써 소문이 퍼진 것이다.
‘나 때문인가.’
에드나의 땅을 먼저 사들여서.
그에 대한 소문이 퍼졌으니까 몇몇 사람들이 에드나에 관심을 가지고 알아봤을지도 모른다.
뭐든 땅값이 벌써 미친 듯이 치솟으니 알트페리아에겐 이득이었다.
에드먼드 부동산에서 에드나 항구의 땅을 샀으니 자연스레 가주인 에드먼드 후작에게도 그 사실이 흘러들어 갔을 것이다.
북부, 동부, 남부를 잇는 뱃길엔 에드먼드 후작도 관심을 가질 테지.
그녀는 편지를 흘끗 봤다.
‘두 배? 열 배? 덤으로 루비 광산?’
원래라면 열 배 이상 뛰면 팔까 싶었다.
하지만 한 번 팔고 끝낼 것이 아니라 지속해서 수익이 들어오게 하는 쪽이 좋을 것 같았다.
생각을 정리한 그녀가 설렁줄을 흔들자 에델이 나타났다.
발트레 영지로 떠난 세이룬의 자리를 에델이 대신하고 있는 것이었다.
“찾으셨어요? 소공작님.”
“소공작님, 저도 함께 왔습니다.”
부르지 않은 리베르트까지 세트로 딸려왔다!
뭐, 상관은 없지.
지금 할 일은 손이 많을수록 좋으니까.
알트페리아는 편지 무더기를 손으로 꾹 누르며 설명했다.
“답장을 보낼 테니 받아 적어. 양이 많으니 리베르트도 돕고.”
“예, 소공작님.”
쌓여 있는 편지를 보던 리베르트가 입을 열었다.
“이건 에드나 항구에 대한 편지입니까?”
“맞아. 다들 서로 팔라고 난리야.”
“얼음이 다 녹는다면, 동부와 남부를 연결할 수 있게 되니까 탐낼 자가 많을 겁니다.”
동부와 남부 사이에 육로가 있긴 한데 늪지대가 많아 이동하기 까다로웠다.
게다가 마물도 자주 나타나 많은 물자를 옮기기 힘들었다.
많은 양의 짐을 한 번에 옮길 수 있는 해로가 생길 수 있으니, 남부나 동부에 거점을 둔 가문이라면 특히 탐을 낼 것이다.
“소공작님께선 어떻게 하실 겁니까?”
“항만 시설 사용료를 받을 거야.”
짐을 싣고 내리려면 야적장이나 창고가 필요했다. 알트페리아는 그에 관한 모든 시설 사용료를 부과할 생각이었다.
“괜찮은 생각이십니다. 항구의 모든 땅을 구매하셨으니 값은 소공작님께서 정하시면 되겠군요. 워낙에 위치가 좋아서 기존 항구보다 액수를 높이 불러도 될 겁니다.”
폭리를 취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적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에드나 항구의 땅은 모두 자신의 것이니까.
“다른 항구와 비슷하게 갈 거야.”
그 정도로도 에드나 땅을 구매한 금액 같은 건 금방 뛰어넘을 터였다.
문제는 일이 더 늘어났다는 것이다!
카페와 영지 일만으로도 바쁠 텐데 항구까지 신경 써야 한다고?
그렇다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에드나를 팔아치우고 싶진 않다.
‘아, 역시 에드먼드 후작을 만나봐야겠어.’
항만을 관리하는 일.
짐을 싣고 내릴 야적장과 창고, 터미널 관리는 모두 에드먼드에게 맡겨버리고 수수료만 편하게 받아먹고 싶었다.
마침 에드먼드 후작이 자리잡은 저택은 동부와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 역시 에드나의 뱃길이 탐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알트페리아는 편지를 하나 썼다.
<발트레를 떠나신 이후 오랜만에 연락을 드립니다.
이미 들으셨겠지만, 저는 에드나 항구의 땅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저를 대신해 북부와 동부, 그리고 남부를 잇는 에드나 항구의 관리자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회답하여 주십시오.
―알트페리아 폰 발트레>
만약에 에드먼드 후작이 거절하면, 에드먼드 상단은 포기해야겠지.
에드나 뱃길이라는 협상 카드가 생겼으니까.
다른 상단과 거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그런 생각으로 보낸 편지의 답장이 왔다.
<에드나 항구 관리에 관한 이야기는 흥미롭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직접 나누고 싶어 소공작님을 초대하겠습니다.>
에드먼드 후작은 떡밥을 덥석 물었다.
* * *
끼익―
은색 매 문장이 도드라진 마차가 멈추어서고, 잘 차려입은 루크가 내렸다.
그는 손을 뻗어 알트페리아를 에스코트했다.
기다렸다는 듯, 리암이 안경을 벗으며 활짝 웃었다.
“어서 와, 릴리.”
리암과 함께 후작가의 시종들이 그녀를 맞이해 줬다.
루크의 손을 붙잡으며 마차에서 내린 알트페리아가 답했다.
“초대해 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먼저 전하고 싶은데 후작님은 어디 계셔?”
“아버지는 응접실에 계셔. 릴리를 응접실까지 에스코트할 영광을 줄래?”
에드먼드 저택이었다.
후계자인 리암이 에스코트해도 이상할 건 없지만 루크가 끼어들었다.
“오늘은 부부 동반으로 참여한지라. 리아는 제가 끝까지 맡겠습니다.”
루크가 팔짱을 낀 알트페리아의 어깨를 감쌌다.
그 말을 들은 리암이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리아라고? 소백작이 부르던 애칭이 아니었나.”
“애칭이 아니야. 내 이름이 길다며 줄여 불렀던 거지.”
“뭐? 뭐라고? 다시 말해 봐.”
목소리를 높인 리암이 되물었다.
“내 이름이 길다고 멋대로 줄인 거라고.”
“미쳤네. 그냥 지나칠 수 없게. ……거래를 다 끊어버려야겠어.”
“응?”
“릴리의 에스코트는 남편에게 양보할게.”
리암은 두 사람의 사이를 방해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양손을 들어 올리더니 뒷걸음질 쳤다.
다른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선은 지켜달라는 말이 잘 통한 모양이었다.
순순히 물러나던 리암이 한마디 덧붙였다.
“도움이 될 이야기는 전해줘도 될까?”
“물론.”
“아버지는 발트레를 그리워하셨어.”
이야기를 잘하면 에드먼드 후작가가 다시 발트레의 가신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리암이 눈꼬리를 부드럽게 접으며 말했다.
“도움이 되었길 바라.”
그러나 애석하게도 알트페리아가 원하는 건 에드먼드 가문이 다시 가신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잘 써볼게.”
그녀는 대강 미소로 회답하며 에드먼드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 * *
에드먼드 후작은 가문을 독립시킬 정도의 수완가였다.
그런 그의 능력을 뽐내기라도 하듯, 저택의 응접실은 귀하다는 흑단목으로 만든 가구와 금으로 만든 장신구로 꾸며졌다.
하나같이 값을 예상하기 힘든 고급품으로, 사업가로서 그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었다.
알트페리아는 안내에 따라 에드먼드 후작의 맞은편에 앉았다.
리암과 닮았지만, 훨씬 더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에드먼드 후작의 시선이 그녀에게 닿았다.
그가 가신일 적엔 매의 날개 중 하나라고 불릴 정도로 든든했는데.
거래상대로 마주하니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긴장이 절로 되었다.
알트페리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후작님은 제게 앨런을 선택하면 평생 볼일 없을 거라고 하셨죠. 그런 저의 연락을 받아들이신 걸 보면 에드나가 상당히 탐나시는 모양이에요.”
나냐, 앨런이냐 선택하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마탑이 존재하는 사이몬 영지와 교류할 수 있는 뱃길이니까요. 많은 상단이 탐을 낼 겁니다.”
“확실히 연락이 많이 오더군요. 괜찮은 조건이 많았지만, 옛정 때문에 후작님께 가장 먼저 기회를 드리고 싶었어요.”
“옛정이라. 미리 말씀드리지만 발트레에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습니다.”
권할 생각도 없지만, 에드먼드 후작은 선부터 그어버렸다.
‘발트레를 그리워하신다며?’
전혀 아닌데?
하지만 이쪽도 다시 발트레로 영입하려고 온 것이 아니랍니다.
“저는 가신이 아니라, 에드나 항구를 믿고 맡길만한 동업자가 필요해서 찾아왔어요. 에드먼드 후작님의 일 처리는 가까이서 봐왔기에 믿을 수가 있고요.”
“맡겨만 주신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계약서를 준비하겠습니다.”
“어머, 저는 아직 제안을 하지 않았어요.”
은근슬쩍 항만 관리를 맡는 것으로 대화를 끝내시려 하네.
역시 대상단의 주인.
방심할 수 없는 상대였다.
“어떤 제안을 하실 겁니까?”
“에드먼드 상단은 식당에 물품을 납품하고 있죠?”
유통업으로 유명한 상단이니까.
“예, 주로 향신료와 찻잎을 납품합니다.”
“직접 찻집을 운영하기도 하고요.”
“맞습니다.”
에드먼드 후작은 외식업에 대한 지식도 높아 찻집도 몇 개 운영하고 있었다.
아예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는 것보다 기반을 닦은 에드먼드 후작의 도움을 받으면 카페 사업도 빠르게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알트페리아가 씩 웃었다.
“저도 뛰어들려고요. 찻집 사업에.”
“외식업을 하시고 싶다면 차라리 다른 업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찻집은 사업 자본이 크게 들어가지 않아 많은 귀족이 시도해 경쟁률이 높거든요.”
“조언은 감사하지만, 저에게 괜찮은 아이디어가 있어서요.”
“어떤 생각이십니까?”
“그건 비밀이에요.”
사업 아이디어를 함부로 알릴 수야 없지.
에드먼드 후작도 더는 캐묻지 않았다.
알트페리아는 미리 생각해 둔 조건을 내뱉었다.
“에드나 항구를 맡기는 대신 입지가 좋은 가게를 찾아주세요. 가게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이 거래는 다른 상단에게 넘길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