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화
알트페리아가 인수한 가게는 내부 공사를 진행하기 위해 임시 휴업 상태가 되었다.
내부 상태를 확인하러 갔더니 매니저가 그녀를 반갑게 맞이했다.
“기다렸습니다, 소공작님!”
“자네는?”
“저는 찻집 관리를 맡은 밀리아라고 해요.”
유명 찻집을 전전한 화려한 경력을 가진, 3인분짜리 일꾼이었다.
“에드먼드 후작님께 이야기는 들었어. 찻집에서 일한 경험이 많다지?”
밀리아는 쑥스러운 듯 몸을 움츠리며 헤헤 웃었다.
“어릴 때부터 차와 디저트에 관심이 많아서 일을 꾸준히 했어요.”
알트페리아는 에드먼드 후작이 넘겨준 그녀의 이력서를 떠올렸다.
‘혼자서 세 명분의 일을 처리한다던데!’
단순히 능숙할 뿐만 아니라, 말도 잘해서 단골손님을 꽉 붙들고 있다고 한다.
놓치지 말아야 할 인재였다.
“에드먼드 상단에서 일한 지 3년이 되었다고 들었어.”
“예, 올해로 딱 3년째예요.”
“앞으로 밀리아의 월급을 세 배로 올려줄게.”
세 명분 일을 혼자서 처리한다고 했으니.
이 세계는 노동에 관한 기본적인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월급은 늘 동결이다.
밀리아는 무려 다른 찻집에서 일하다가 온 경력직이면서 계속 같은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었다.
느닷없이 월급이 몇 배로 오른 밀리아는 눈을 크게 뜬 채 깜빡거렸다.
“가, 감사해요, 소공작님.”
놀라긴 아직 이른데. 조건은 더 있으니까.
“이력서를 살펴보니까 동생이 아카데미에 입학한다고 하던데.”
“맞아요. 검술부로 들어가게 되었어요.”
“학비는 모두 발트레 가문이 부담할 거야. 동생은 수업에만 전념하라고 해.”
복리후생이 잘된 회사일수록 직원들이 충성한다.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챙겨주면 애사심이 생길 수밖에 없을 테니까.
게다가 아카데미에 합격할 정도라면 인재라는 뜻이다.
될성부른 떡잎을 후원하면 인재를 끌어들일 수도 있다.
평민에게 아카데미 학비는 큰 부담이라 매우 큰 혜택으로 느껴질 것이다.
놀란 밀리아는 눈동자를 열심히 굴렸다.
그러다 이내 무언가 각오했다는 듯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소공작님께선 크리스털 크라운의 레시피가 필요하신가요?”
“…….”
“은혜를 입게 되었으니 명령만 내리신다면 레시피를 가져올게요!”
아니, 옆 가게 레시피는 필요 없는데 리베르트도 그렇고, 왜들 자꾸 주려고 하지?
“필요 없어.”
“정말요? 반응이 상당히 좋던데요.”
안 그래도 들어오는 길에 줄이 쭉 서 있는 걸 봤다.
크리스털 크라운에 손님이 많으면 나야 좋지.
그만큼 뺏어 올 손님이 많아지는 거니까.
“도둑질 같은 건 할 생각 없어. 나는 정정당당하게 이길 자신이 있거든.”
“……레시피가 필요하신 것도 아니라면 제게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있지.
다른 가게에 스카우트당하지 말라는 거!
내게 충성을 바쳐라, 밀리아!
“이때까지 일을 잘했잖아? 받을 자격이 충분해.”
그녀가 이때껏 해온 만큼 계속해 준다면 월급을 더 올려줄 의향도 있었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아본 적 없는 밀리아는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귀족은 대개 평민의 일을 하찮게 여기는데.
알트페리아는 자신을 인정해 줬다. 기쁘고 뿌듯했다. 알트페리아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일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열심히 할게요!”
알트페리아는 흐뭇해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딱 듣고 싶었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이제 가게를 둘러보고 싶은데.”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밀리아는 주방부터 시작하여 손님들이 사용하는 테이블, 테라스까지 꼼꼼하게 안내해 줬다.
꽤 큰 건물이라 테라스의 경우 세 곳이나 있었다.
“첫 번째 테라스는 황궁이 가장 잘 보여요. 아름다운 건물이라서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죠!”
“두 번째 테라스는 거리의 분수대가 특히 잘 보여요. 저 분수대는 요정의 샘물이라 불리는데요, 과거에는 물의 요정들이 지냈던 장소라고 해요.”
“세 번째는 원래 작은 동상이 보였었는데요, 지금은 허물고 크리스털 크라운 건물이 들어섰어요.”
알트페리아는 밀리아를 따라 테라스를 구경했다.
각 테라스마다 보이는 풍경이 달라서 또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가게를 모두 둘러봤다.
실내 장식은 나쁘지 않아서 크게 손볼 게 없어보였다.
“생각보다 관리가 잘되어 있네. 장식은 모두 에드먼드 후작님께서 지시한 거야?”
“아니요, 실내 장식은 모두 제 재량으로 꾸미고 있어요.”
에드먼드 후작은 밀리아의 능력이 종업원 3인분이라고 했다.
‘셋 정도가 아닌데.’
그 이상을 해내는 인재인 것 같았다.
‘마침 잘되었어.’
임시 휴업까지 내건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알트페리아는 아름다운 황궁의 건물이 보이는 테라스를 골랐다.
“이틀 뒤에 가게를 다시 개업할 거야. 그때까지 여기를 커플석으로 꾸며줘.”
루크가 자신에게 반지를 건넨 장면이 귀족들에게 좋은 인상으로 각인되었는지 요즘 제도의 찻집은 프러포즈 장소로 사용되고 있었다.
유행을 만든 당사자인 만큼 알트페리아는 그걸 제대로 이용하기로 했다.
원래라면 자신이 하나하나 지시해서 꾸밀 생각이었는데 밀리아의 실력을 보니까 맡겨도 될 듯했다.
“맡겨만 주세요. 소공작님께서 만족하실 만한 커플석으로 꾸며볼게요.”
“기대할게. 아, 그리고 조만간 간판도 갈 거야.”
“가게 이름을 바꾸실 생각이에요?”
“맞아.”
아직 이름은 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결정되는 대로 관청에 가서 허가받고 간판을 바로 만들 생각이었다.
“어떤 이름으로 하실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에드먼드 후작이 지은 찻집의 이름은 찻주전자라는 뜻의 티포트.
나쁘진 않지만, 상징물로 사용하기에는 모호했다.
그녀는 활짝 열린 두 번째 테라스를 바라봤다.
시원하게 물을 뿜어내는 분수가 보였다.
요정의 분수라고 했지.
“골든 페어리가 좋겠어.”
밀리아가 손뼉을 가볍게 치며 활짝 웃었다.
“좋은 이름이에요. 마침 요정의 샘물이 옆에 있기도 하니까요. 후후, 요정들이 축복을 내려줬으면 좋겠네요.”
현재 요정은 전부 멸종된 상태였다.
과거에는 좋아하는 사람의 주변을 날아다니면서 꽃을 뿌려대며 좋은 말을 잔뜩 전해줬다고 한다.
꽃길만이 가득하길 기원했다고 하던데.
딱 요정들의 축복의 말대로 골든 페어리에도 꽃길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 * *
일과가 끝난 저녁.
가게 이름을 정해서 그런가, 다양한 아이디어가 마구마구 샘솟았다.
취침 준비를 끝마친 알트페리아는 종이와 펜을 가져와 요정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름보다 큰 효과를 가지는 것이 상징물이었다.
가게 이름을 외우지 않아도 ‘아, 거기 요정 간판 쓰는 곳!’이라고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시안을 여러 개 그려도 그림 실력이 없어서일까,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머릿속에 이미지가 확실하게 잡혀 있기 때문에 집중해서 끄적였다.
곧이어 일과를 끝낸 루크가 가벼운 차림으로 침실에 들어왔다.
침실에 사람이 들어왔는데도 알트페리아는 작은 테이블에 앉아 무언가 열심히 끄적이고만 있었다.
그런 그녀의 입에선 미소가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맞은편 자리에 앉은 루크가 입을 열었다.
“좋은 일이 있으셨나 봅니다.”
“찻집의 이름을 결정했어요!”
“축하드립니다. 샴페인을 하나 깔까요?”
“축배도 좋지만 일단 이것 좀 봐주세요.”
알트페리아는 조금 전까지 그리고 있던 그림을 들어 올렸다.
루크는 그녀가 그린 그림이 무엇인지 파악하려 애썼다.
일단 눈빛이 매우 살벌해 보였다.
손은 삐죽삐죽하고, 거대한 날개가 달린 마물이라면.
“드래곤이군요. 특유의 흉악함을 잘 표현하신 듯합니다.”
“…….”
“게다가 곧 브레스를 뿜어낼 것처럼 생동감이 넘쳐나는군요.”
“…….”
“찻집의 이름은 드래곤입니까? 혹은 크레치만? 강렬하군요.”
눈을 깜빡이던 그녀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제가 그림을 못 그린다는 건 잘 안다.
그렇지만 인간 형상을 한 요정을 그렸는데 파충류라고 하는 건 너무하지 않나.
“요, 요정을 그린 거예요. 그리고…… 웃고 있는 거거든요!”
“머리의 돌기는…….”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이에요!”
“아…….”
루크는 제가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걸 깨달았다.
여전히 그의 눈에는 도시 여러 개를 부숴 먹은 드래곤 같지만, 알트페리아가 요정이라고 하지 않나.
그녀가 그렇다고 하면, 곧 봉인이 풀릴 화룡 크레치만도 요정이어야 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신비스러워 보입니다. 귀엽기도 하고요.”
그는 알트페리아를 진정시키기 위해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하지만 그 말이 오히려 그녀를 더욱 부끄럽게 했다.
“이미 늦었어요!”
귀 끝까지 새빨개진 알트페리아는 제가 그린 그림을 테이블 위에 휙 덮어버렸다.
알트페리아에겐 미안하지만, 루크에게는 그녀의 그런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 보였다.
좀 더 그녀를 놀리고 싶다는 짓궂은 마음이 들 정도지만 진심으로 화내는 건 원치 않았다.
“요정은 왜 그리시는 겁니까.”
“간판을 만들려고요.”
“간판 말입니까…….”
저 상태로 간판을 만들면 찻집이 아니라 몬스터의 집 같은 걸로 보일 거란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저도 이상한 거 알아요.”
“…….”
“그대로 쓸 건 아니거든요. 대강 이렇다고 그려두면…… 장인이 알아서 완성해 줄 거예요…….”
“제가 좀 도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제야 토라져 있던 알트페리아가 그와 시선을 맞췄다.
“그림 그릴 줄 알아요?”
“능숙하진 않지만, 전생에서 도면 같은 걸 종종 그려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