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화
사람들은 원래 크리스털 크라운 옆에 가게가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밝은 대낮에 문을 닫는 모습에 흥미가 생겼다.
아예 닫아놨으면 몰랐겠지만, 열었다가 닫는다니?
그 모습을 보던 사람들이 물었다.
“어머, 아직 한낮인데 벌써 문을 닫는 건가요?”
가게 정리를 하던 밀리아가 찾아온 사람들을 향해 꾸벅 인사를 하며 답했다.
“예, 다 팔려서 문을 닫아요.”
“여기 50잔 한정 판매라고 쓰여 있는 건가 봐요. 무슨 뜻인가요?”
“하루에 딱 50잔만 판매한다는 뜻이에요.”
“더 원하는 사람이 있어도요?”
“네.”
“값을 열 배 이상 낸다 해도요?”
“네. 더 팔지 않아요! 사과 요정을 드시고 싶으시면, 일찍 오셔야 할 거예요.”
크리스털 크라운에 들어가기 위해서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이 호기심을 보였다.
뒷정리를 끝낸 밀리아는 미련도 없이 퇴근했다.
굳게 닫힌 가게를 보던 사람들이 숙덕였다.
“아직 이른 시간인데 문을 닫는 걸 보면 찾는 사람이 많은 메뉴인가 봐요. 괜히 궁금해지네요. 한번 가볼까요?”
“이 시간에 닫는 걸 보면, 좀 더 빨리 와야 할 것 같아요.”
그렇게 약속한 사람들은 다음날 일찌감치 모여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대체 얼마나 맛있는 메뉴이기에 이른 시간에 가게 문을 닫게 할 정도인가!
이런 호기심으로 찾아갔는데, 가게 안에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치 정원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습에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야깃거리가 많은 찻집이었다.
다녀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골든 페어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골든 페어리에 대한 소문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 * *
골든 페어리의 보고서를 읽고 있던 도중 알트페리아의 눈앞에 시스템창이 떴다.
[<시스템> ‘업적: 신장 개업’ 달성 완료!]
[<시스템> 특전으로 앞으로 보유한 가게의 현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처음 각성했을 때처럼 예상치도 못한 업적을 달성하게 되었다.
오, 좋은 기능이 떴으니까 확인해 봐야지.
가게 현황 버튼을 클릭했더니 매출과 함께 영업시간 등등 다양한 정보가 떴다.
가오픈 기간엔 ‘사과 요정’만 50잔 판매하도록 했다.
그래서 매출은 늘 똑같다.
그녀가 눈여겨보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바로 영업시간.
문을 닫는 시간이 점점 빨라지는 것은 물론 이제는 대기 줄도 생기고 있었다.
사과 요정을 맛보기 위해서.
‘이 방법이 먹힐 줄 알았지.’
남들이 하는 건 다 따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사람들에게 골든 페어리의 존재를 인식시키는 데 성공했다.
다음은 가게를 정식으로 열어 사과 요정의 한정 판매는 유지한 채 기존에 판매하던 다른 차를 선보일 차례였다.
한정 판매 기간 동안 정원 같은 찻집이라는 소문이 돈 덕분에 찾는 손님이 많아졌다. 자연스레 매출도 에드먼드 후작이 운영할 때보다 늘었다.
* * *
알트페리아와 루크과 부부가 된 후.
루크와 함께 전쟁에 참여한 그랑힐데의 기사들이 소속을 발트레로 옮겼다.
처음에는 다들 얼떨떨해 하며 의견을 교환했다.
“진짜 결혼하신 거 맞죠?”
“맞습니다. 요즘 대장과 소공작님께서 데이트하신다는 소문도 돌고 있잖습니까.”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우리 대장이 여자에게 관심을 보일 줄이야!”
어쩌다 마주친 이성에게도 기사들 대하듯 무뚝뚝하게 굴던 그였다.
그런 루크가 결혼하고 아내와도 잘 지낸다니 믿기지 않았다.
때마침 알트페리아와 루크가 밖으로 나와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에스코트는 언제 배웠는지.
루크는 능숙하게 알트페리아를 이끌며 미소까지 지었다.
“대장이 웃는 모습은 처음 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평생 웃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는 그 어떤 상대에게도 예의를 지켰지만 언제나 차분하고 고요하게 바라보기만 할 뿐, 다른 사람 앞에서 웃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우리 대장에게도 드디어 봄이 왔나 봅니다.”
“잘된 일이지요.”
그들은 루크와의 첫 만남을 기억한다.
그가 그랑힐데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비쩍 말라 뼈만 남은 상태로 전쟁터에 끌려온 어린아이가 험난한 전장의 선봉에 서며 온갖 고생을 했다.
기사들은 이제 슬슬 루크가 편안하게 쉬며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다행입니다. 웃을 수 있게 되셔서.”
참 보기 좋은 부부라며, 흐뭇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들을 축복했다.
……그런 루크가 며칠 새 이상해졌다.
입가에는 미소가 완전히 사라졌다.
마치 전쟁터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살벌한 기운을 뿜어대는 통에 가까이 다가가기도 두려웠다.
“대장 말이야. 화난 것 같지 않아?”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처음에는 착각이려니 했는데 훈련 강도가 점점 심해져서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몇몇 기사들은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버티는 기사들도 숨을 헉헉 몰아쉬며 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
연습용 나무검을 든 루크가 말했다.
“아직 쉬기에는 이릅니다. 검을 잡으십시오.”
아침부터 쉬지 않고 검을 휘두른 기사들이 진절머리를 쳤다.
그와 함께 온갖 고된 훈련을 했지만 이렇게까지 힘에 부친 건 처음이었기에.
보다 못한 유진이 끼어들었다.
“대장! 좀 적당히 하십시오.”
“맞습니다. 살려주십시오.”
루크는 바닥에 널브러져 죽어가는 목소리를 내는 기사들을 바라봤다.
왠지 모르게 조바심이 났다.
이 떨떠름한 기분을 떨쳐내기 위해 몸을 계속 움직였지만 부족했다.
당장 그들을 일으켜 세워 몰아붙이고 싶어졌다.
“오랫동안 훈련을 쉬지 않았습니까. 몸을 풀려면 움직여야 합니다.”
“계속했다가는 죽어요!”
“꾀병은 통하지 않습니다. 일어나십시오.”
루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기사들을 몰아붙였다.
이유는 있었다.
나중의 일이지만 발트레 영지에 마물이 잔뜩 나타날 예정이란다.
소드마스터인 자신은 몰라도 평범한 기사들이 마물을 상대하기란 힘들다.
그러니 미리 훈련을 제대로 해두어야 했다.
‘정말 그 이유가 맞나?’
루크는 스스로 의문을 가지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결국 모든 기사가 쓰러지고 나서야 그의 폭주는 멈췄다.
마지막까지 루크를 상대하던 유진조차도 한마디 내뱉을 수 없을 정도로 모든 체력을 다 썼다.
그들을 한 번 훑어본 루크가 입을 열었다.
“오늘은 해산하겠습니다. 내일 새벽에도 모이십시오.”
“으으으으!”
기사들은 답 대신 앓는 소리를 냈다.
그들을 무시한 루크는 발트레 저택으로 향했다.
발트레의 고용인이 그를 반겼다.
“오늘 훈련은 힘이 드셨나 봅니다.”
그 말에 루크는 자신이 땀을 흘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만큼 훈련에 몰입하여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른 모양이었다.
루크는 제 팔뚝에 코를 대며 냄새를 맡았다.
냄새는 나지 않지만, 알트페리아를 만나러 갈 테니 완벽한 모습이었으면 했다.
“목욕물을 준비해 주십시오.”
오래 지내지 않아 목욕물이 준비되었다.
깨끗이 몸을 씻은 루크는 준비된 옷으로 갈아입고 거울 앞에 서서 머리를 매만졌다.
‘리아는 앞머리를 뒤로 넘기는 걸 좋아했던 것 같은데.’
에드먼드 상단의 부동산을 찾아갔을 때, 리암은 앞머리를 모두 뒤로 쓸어 넘겼다. 그 모습에 눈 높은 성좌들 또한 반응했었지.
한 손으로 앞머리를 모두 뒤로 쓸어 올린 루크는 침실로 들어갔다.
그녀와 만날 생각을 하니 사납게 들끓었던 기분이 언제 그랬냐는 듯 차츰 가라앉기 시작했다.
하지만 침실은 텅 비어 있었다.
“…….”
알트페리아는 찻집 일 때문에 오늘도 늦는 모양이었다.
오늘도…….
기사들을 상대하며 기껏 가라앉혔다고 생각한 감정이 꿈틀거렸다.
이대로라면 화산이 분출하듯 펑 터질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사자의 서기관’이 당신의 건강 상태를 염려합니다.]
“저는 건강합니다.”
어디 아픈 곳이 없는데 뭐라는 건지.
오히려 넘치는 힘을 어디다 풀 곳이 없어서 마음이 들끓는 것 같았다.
[‘사자의 서기관’이 당신은 현재 욕구불만 상태라고 지적합니다.]
욕구불만이라고?
루크는 그제야 제 상태를 알게 되었다.
알트페리아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지 며칠이 지나서 이러는 거였다.
요즘 그녀는 아침 해가 뜨는 즉시 시녀를 데리고 골든 페어리로 간다.
가게 문이 닫히면 찻잎이나 과일 등을 살펴본다고 에드먼드 상단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해가 지고 나서야 돌아온다.
“후아암, 저는 바로 잘게요. 좋은 꿈 꿔요.”
그러곤 온종일 돌아다닌 만큼 피곤하다며 저 한마디만 남기고 그대로 자버린다.
그 생활이 며칠째 반복되었다.
알트페리아의 미소를 보고 싶었다.
알트페리아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이대로 오늘도 알트페리아와 제대로 만나지 못하면 내일은 정말 돌아버릴 것 같았다.
그 때였다.
끼이익―
닫힌 침실의 문이 열리며 알트페리아가 안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