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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예쁘고 재력이 넘침-70화 (70/91)

제70화

칼립스는 생각에 잠겼다.

드래곤을 쓰러뜨리면 발트레의 위상은 높아질 것이다.

남들이라면 혹여 조금이라도 가려질까 봐 두려워할 대업인데.

그녀는 알리기는커녕 발트레와 루크가 언급조차 되지 못하게 조심해 달라고 부탁했다.

‘혹시 나쁜 생각을 품고 있는 건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비밀로 해서 알트페리아가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은 옳았다.

마법사인 자신보다, 드래곤 슬레이어 소드를 든 소드마스터가 드래곤에게 더 강할 것이라는 말.

칼립스는 알트페리아를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그는 알트페리아를 떠올렸다.

‘닮았어.’

죽은 제 여동생과.

그래서 믿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칼립스는 맹세를 하겠다는 뜻으로 가슴에 한 손을 올리며 허리를 굽혔다.

“막아낼 수 있습니다. 저를 믿어주십시오. 폐하.”

* * *

알트페리아는 세이룬을 시켜 발효된 원두를 확인했다.

미리 지시해 살짝 볶아진 커피원두는 초콜릿을 닮은 듯한 향과 구수한 내음이 적절하게 뒤섞였다.

다음은 갈아낸 원두로 커피를 우려볼 차례였다. 곁에서 원두를 살펴보던 세이룬이 물었다.

“생각보다 좋은 향기가 나네요.”

르블레아 사람들은 커피를 접하지 못했다. 어떤 반응일지 궁금했는데, 향기는 호감인 모양이었다.

‘이왕이면 맛도 보여줄까?’

골든 페어리에서 선보이기 전에 르블레아 사람들의 반응을 알아봐야 하니까.

커피를 우리려던 참에 손님이 찾아왔다.

칼립스였다.

그는 평소보다 한층 더 피곤한 표정이었다.

“폐하께 이야기를 전해드렸다. 크레치만 토벌은 사이몬 가문이 맡기로 했다.”

“잘되었어요. 이야기한 대로 부탁드릴게요.”

“실제 토벌은 발트레가 맡으니 나야말로 잘 부탁하지. 봉인을 손봤으니 한동안은 잠잠할 거다.”

“봉인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몇 달은 버틸 것이다.”

원작보다 드래곤의 봉인이 늦게 풀리는 거였다.

“알겠어요. 남편에게도 말해서 준비하도록 할게요.”

“나도 최대한 돕겠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말해 봐라.”

좋은 생각이 번뜩인 알트페리아의 눈이 반짝였다.

칼립스가 도울 일이라. 아주 많지.

마침 슬슬 신 메뉴를 내놔야 할 참이었다.

아티팩트 문제 때문에 미루고 있었는데 마탑주가 나서준다면 매우 쉽게 해결될 것이다.

“아티팩트를 하나 만들어주세요.”

“어떤 것을 원하지?”

“현존하지 않는 아티팩트예요. 제작법을 알려드릴 테니 권한 일부분은 제가 가지고 싶어요.”

“좋다.”

특허권도 인정해 주면 앞으로 다른 사람이 같은 아티팩트를 만들기 위해선 알트페리아에게 수수료를 내야 한다.

알트페리아는 칼날이 고속 회전하여 얼음을 곱게 가는 기계를 열심히 설명했다.

원리를 이해한 칼립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기계라면 마물도 상대할 수 있을 거다.”

아니, 빙수 만들어 팔 건데.

마물을 상대할 무기면 쓸데없이 강력할 것이다.

알트페리아는 살생용이 아니라고 몇 번이나 강조하며 빙삭기의 원리를 설명했다.

몇 번 설명을 듣던 칼립스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휴, 다행이네.

적당히 조리도구로 만들어질 것 같았다.

그나저나 화룡의 힘이 강해진 탓인지 제도는 벌써부터 더워지기 시작했다.

빨리 만들수록 얼른 신 메뉴를 소개하고 팔 텐데.

“최대한 빨리 만들어주실 수 있나요?”

“이틀 정도면 될 거다.”

그렇게 중얼거리는 그의 눈 밑에 그림자가 더욱 짙어지는 것 같았다.

많이 피곤해 보인다.

“제가 무리한 부탁을 드렸나요? 몸이 안 좋아 보이는데요.”

칼립스가 제 눈을 비볐다.

“그런 건 아니다. 늘 이맘때는 낮에도 잠이 쏟아지더군. 온갖 수를 다 써봤는데도 잠을 깨기 쉽지 않아.”

그렇게 말하는 그는 눈을 깜빡거렸다.

날이 따뜻해져서 춘곤증 증상을 겪고 있는 모양이었다.

거기에 크레치만 때문에 스트레스도 받았을 거고.

이럴 땐 진한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잠을 깨면 딱 좋았다.

“제게 잠을 쫓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어요. 한번 시도해 보실래요?”

“뭐든. 잠에서 깰 수 있다면야.”

허락도 받았겠다, 알트페리아는 설렁줄을 잡아당겼다.

오래 지나지 않아 세이룬이 나타났다.

“찾으셨나요, 소공작님?”

“아까 준비한 콩을 갈아서 우려내 줘.”

“알겠습니다, 소공작님!”

세이룬은 알트페리아가 알려준 대로 옆방에서 커피를 우리기 시작했다. 커피를 내리는 특유의 향기가 방 안에 솔솔 풍기기 시작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커피와 함께 쿠키가 나왔다.

칼립스의 앞에 커피 한 잔이 놓였다.

찻잔에 담긴 커피는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괜히 두근거리네.’

르블레아 사람이 커피를 마시는 건 처음이었다.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 시커먼 물이 잠을 쫓는 방법인 건가.”

“네.”

“…….”

칼립스는 커피를 빤히 바라봤다.

자고로 음료라고 함은 선명한 노을빛이든가 혹은 싱그러운 풀이 연상되는 초록빛, 또는 꽃처럼 연한 빛깔로 이뤄져 있었다.

하지만 알트페리아가 권한 음료는 대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추측하기 힘들 정도로 새까맣다.

기분 나쁜 색깔은 불길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는 알트페리아를 바라봤다.

그녀는 무언갈 바라는 사람처럼 잔뜩 기대하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절할 수 없는 눈빛이었다.

“후.”

마음을 한계까지 졸인 그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그녀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 억지로 찻잔을 들어 올렸다.

순간 커피의 향이 칼립스의 코끝에 퍼졌다.

께름칙한 색상과 달리 초콜릿 같은 진하고 고소한 냄새가 났다.

괜찮은 냄새에 용기를 얻어 한 모금 입에 머금었는데 독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쓴맛이 느껴졌다.

인상을 살짝 찡그린 그는 알트페리아를 바라봤다.

그녀는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어이없을 정도로 여동생과 닮은 그녀가 자신을 독살할 것 같진 않아 꿀꺽 삼켰다.

기다렸다는 듯, 알트페리아가 입을 열었다.

“어때요?”

“……쓰군.”

“몸에 좋은 건 다 써요. 다른 건 어떠세요?”

칼립스는 알트페리아를 빤히 바라봤다.

순도 높은 은을 녹여 만든 듯한 머리카락에 치켜뜬 눈동자, 자신만만한 미소까지.

세상을 떠난 여동생과 닮은 점이 많아 왠지 보고만 있어도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그 때였다.

갑자기 칼립스의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뭐지?’

그는 당황했다.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심장이 두근대기 시작했으니.

이 들뜬 마음은 기분이 좋을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했다.

‘내가…… 소공작에게 반했나?’

그러나 사실대로 너를 보았더니 가슴이 설렌다고 할 수는 없었다.

“잘 모르겠군.”

“아직도 졸리세요?”

“글쎄…….”

말꼬리를 늘어뜨리자 그녀가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심장이 더욱 두근두근 뛰는 것 같았다.

칼립스는 벌떡 일어났다.

“용건은 전달했으니 나는 이만 돌아가는 게 좋을 것 같다. 토벌에 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하도록 하지.”

그는 대충 얼버무리며 마탑으로 돌아왔다.

한 번 뛰는 걸 인지한 칼립스의 심장은 멈출 줄 모르고 콩닥콩닥했다.

미칠 노릇이라 그는 양손으로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이 파렴치한 놈. 대체 소공작에게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 건가!’

여동생과 닮은 여자에게, 그것도 유부녀에게!

저 자신에게 실망한 칼립스는 두근대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심장은 더욱 빠르게 뛰었다.

‘뭔가…… 집중할 거리가 필요해.’

그녀에 관한 생각을 떨쳐낼 수 있도록!

쏟아질 듯한 잠도 싹 사라졌다는 걸 느꼈다.

칼립스는 알트페리아의 요청대로 아티팩트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평소의 제작 속도보다 훨씬 더 빨랐다.

그만큼 집중이 잘되었기 때문이었다.

* * *

이틀 뒤, 낯선 사람이 발트레에 찾아왔다.

마탑의 로브를 입고 화려한 귀걸이를 착용한 걸 보니 마법사인 모양이었다.

“소공작님이 의뢰하신 물건을 완성하였다며 마탑주께서 저를 보내셨습니다.”

크레치만 퇴치에 관한 논의도 해야 하니까 직접 올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을 보내다니.

“사이몬 공작님은 바쁘신가 봐?”

조금 주저하던 마법사가 대답했다.

“소공작님을 뵙고 난 뒤로 심장이 두근거리고 몸에 열이 오르신답니다. 밤잠을 주무시지 못할 정도라 한동안 거리를 두시고 싶답니다.”

아…….

고작 커피 한 잔 마셨을 뿐인데 그 정도로 효과가 좋단 말이야?

아무래도 커피의 효능인 각성 효과가 너무 잘 먹혀서 고생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카페인을 줄이도록 해야겠어.’

르블레아 사람에게 너무 잘 먹히는 듯하니.

‘당황했겠네.’

칼립스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이상한 기분일 테니.

특히 심장이 이상할 정도로 빨리 뛰어 병에 걸린 게 아닌가 생각할지도 모르니 안심시켜 줘야 할 듯했다.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니 걱정하실 필요 없다고 전해라.”

“정상이라고요?”

“그래, 자연스러운 반응이거든.”

그녀도 유독 커피를 많이 마신 날은 심장이 쿵쿵거리고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잔 적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물건을 전달한 마법사는 인사와 함께 사라졌다.

알트페리아는 마법사가 사라지자마자 세이룬을 불러 꽁꽁 언 얼음을 갈아봤다.

섬세하게 갈린 얼음은 마치 눈 같았다. 딱 원하는 모습이었다.

역시 마탑주의 자리는 그냥 얻은 게 아닌 듯 칼립스의 아티팩트(빙삭기)는 완벽했다.

이제 골든 페어리의 신 메뉴인 빙수를 만들어 소개할 기본 준비는 끝난 것이다.

‘빙수를 알릴 준비를 해야겠는걸.’

르블레아의 광고는 기껏해야 신문에 싣는 것이 다였다.

하지만 신문은 구독하지 않은 사람은 볼 수 없다.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할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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