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화
칼립스는 한시라도 빨리 알트페리아를 만나고 싶은 기분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발트레 저택으로 순간이동을 하여 그녀와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제도에서는 마음대로 마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발트레 저택에 가기 위해선 제도 부근으로 순간이동한 뒤, 마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일단 제도 부근으로 이동한 칼립스는 공용 마차를 잡아탔다.
마부가 말했다.
“어디로 가십니까?”
“발트레로, 최대한 빨리.”
그런데 마차의 문짝에 그림이 하나 그려져 있었다.
<크리스털 크라운의 마카롱을 찾아볼까요?>
크리스털 크라운?
‘골든 페어리의 옆에 있던 가게였지.’
줄이 굉장히 길었는데.
칼립스는 문짝에 붙어 있는 그림을 가리켰다.
“광장에 있는 찻집이 아닌가? 나는 찻집으로 가는 게 아니다.”
고삐를 꽉 쥔 마부가 반응했다.
“아이고, 찻집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홍보하는 것뿐입니다.”
“홍보라고?”
“이 그림을 보고 사람들이 찻집에 찾아가는 모양이더군요.”
공용 마차를 이용하는 사람은 많았다. 게다가 마차는 제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니까 많은 사람에게 노출되는 효과가 있었다.
재밌는 방법이었다.
누구의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괜찮은 방식이라고 생각하며 칼립스는 마차에 올랐다.
덜컹덜컹.
마차가 달리기 시작했지만 칼립스는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마부가 있는 쪽을 향해 외쳤다.
“좀 더 속도를 내거라!”
“아이고, 이게 최대 속도입니다. 나리!”
갑갑한 느낌에 마부를 몇 번이나 재촉했는데도 원하는 속도가 나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조급해진 칼립스는 팔에 착용한 봉인구를 몇 번이나 만지작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이걸 당장 풀어버리고, 마법을 사용해 발트레 저택으로 이동하고 싶었기에.
봉인을 풀까 말까 그렇게 고민하던 참.
“손님! 발트레 저택에 도착했습니다!”
발트레 저택에 도착했다.
* * *
날이 좋았다.
알트페리아는 루크와 함께 응접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커피원두를 획득하고 나서 처음 마셔보는 커피였다.
타고난 건지, 따로 예법을 배우지 않아도 우아하게 찻잔을 들어 올린 루크가 입을 열었다.
“향도 좋고 적당히 산미가 도는 커피라 마시기 편합니다.”
“그렇죠? 이렇게나 맛이 좋은데 다들 쓰다고 싫어해요.”
알트페리아의 입맛에 딱 맞는 커피였지만, 세이룬을 포함한 시녀들은 하나같이.
“탄 재를 모아다가 우려낸 것같이 써요!”
“불길할 정도로 새까매요.”
―라며 진저리를 쳤다.
에효, 커피 장사는 아직도 멀었다.
“지금 당장 커피를 파는 건 무리인 듯해요.”
커피를 마시던 루크가 미미하게 웃었다.
“해결책은 생각해 두신 것 같습니다만.”
“커피를 베이스로 한 음료는 다양하니까, 그중 하나를 골라 팔까 싶어요. 루크는 따로 좋아하던 음료가 있어요?”
“저는 잠을 깨기 위해서였기에 아메리카노만 마셨습니다. 주로 샷을 여러 번 추가했습니다.”
샷을 추가할수록 맛이 진해지는 건 물론 각성 효과도 강해진다.
그런데 너무 과하면 좋지 않을 텐데.
“몇 샷까지 추가했어요?”
“보통 다섯 정도. 유독 피곤한 날은 열 샷도 추가해 봤습니다.”
그 말에 누군가 떠오른다.
전생에서 일했던 카페에 그런 단골손님이 있었던 것 같은데.
루크랑 똑같은 취향의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그쯤 되면 커피가 아니라 포션 아니에요? 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은데요.”
“독 정화 스킬이 있어서 그 정도는 마셔야 효과를 봤습니다.”
“지금도 정화 스킬을 가지고 있어요?”
“지금은 없습니다. 그래도 버릇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쩐지 술도 많이 마시는 버릇이 있더라니.
그나저나…….
‘아메리카노만 마셨다니.’
커피를 재료로 만드는 음료가 얼마나 다양하고 많은데 하나만 맛본 거야?!
알트페리아는 카페에서 일한 경험 덕분인지 이것저것 만들어 마셔봤다.
그중 특히 좋아하던 음료가 몇 가지 있는데 달콤한 것도 있었다.
딱 르블레아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은 맛이었다.
“제가 좋아하던 음료를 루크에게 소개하고 싶어요. 어때요?”
그가 눈꼬리를 예쁘게 접었다.
“기쁘게 기다리겠습니다.”
“맛있게 만들어드릴게요.”
알트페리아는 소매를 걷어 올리더니, 주방으로 향했다.
“소공작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음료를 하나 만들 거야. 도와줘.”
“직접 만드시게요?”
“응.”
주방을 지키던 시녀들은 알트페리아의 등장에 깜짝 놀랐다.
그렇지만 가주가 하고 싶다는 일이라 최선을 다해 도왔다.
알트페리아는 마탑주가 만든, 회전하는 아티팩트에 얼음을 와르르 쏟아 넣고 커피와 초콜릿을 넣었다.
콰드득―
아티팩트를 발동시키자 날카로운 칼날이 얼음과 초콜릿을 잘게 조각내기 시작했다.
구경하던 시녀들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 사용하는 물건이었군요. 정말 무시무시해 보여요!”
“드래곤의 뼈도 흔적 없이 갈아버릴 것 같아요.”
아니, 조리 도구거든!
그런 흉악한 기능 없다니까 그래.
알트페리아가 근처에 있는 시녀에게 명령했다.
“휘핑크림을 만들어줄래?”
“예! 소공작님!”
지시받은 시녀는 휘핑기를 들고 열심히 손을 놀려 크림을 만들기 시작했다.
알트페리아는 그런 시녀를 빤히 바라봤다.
‘손으로 하는 건 효율이 떨어져.’
골든 페어리의 손님은 지금도 많지만 앞으로 더욱 불어날 것이다.
일일이 손으로 만들다 보면 주문 속도를 따라잡기 힘들 것이다.
돈을 벌었으니 투자도 할 때였다.
* * *
알트페리아가 부엌에서 뭔갈 만들 동안 누군가가 발트레 저택의 문을 두드렸다.
가주인 알트페리아가 자리를 비웠으므로, 손님을 맞이하는 건 루크였다.
루크는 시녀의 안내를 받으며 저택 안으로 들어온 남자를 바라봤다.
반쯤 감긴 눈으로 비실대며 저택 안으로 들어오는 남자는 마법사라는 걸 증명하듯 봉인구를 치렁치렁 달고 있었다.
전장에서 마법사를 종종 봤다.
저렇게 봉인구를 잔뜩 달 정도라면 마탑주 정도는 되는 모양인데.
루크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탑주로 추정되는 인물은 옷을 제대로 입지 않고 앞섶을 풀어헤치고 있었다.
자신과 비교해서 말랑하지만, 나름 탄탄해 보이는 가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방문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사이몬 공작 칼립스다.”
“처음 뵙겠습니다. 루크 폰 발트레라고 합니다.”
“영웅이었군. 언제 한번 만나야겠다 싶었는데 이렇게 보다니 반가워. 크레치만에 관한 이야기는 들었지?”
“설명은 들었습니다. 크레치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러 찾아오셨습니까?”
“아니, 오늘은 소공작을 만나러 왔다.”
루크는 간만에 훈련이 없어 알트페리아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할 시간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지 않았다.
“현재 소공작님은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약속을 잡고 다시 방문해 주십시오.”
칼립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군. 나는 발트레 소공작의 호출을 받고 온 것인데.”
“…….”
“게다가 소공작이 자리를 비웠다면 저 뒤에 있는 자는 누구인 건가.”
그 말에 루크는 고개를 돌렸다.
은쟁반을 든 세이룬을 대동한 알트페리아가 복도를 거닐고 있었다.
하필, 타이밍이.
마침 그들을 발견한 알트페리아가 입을 열었다.
“루크, 왜 나와 있어요? 어, 사이몬 공작님?”
루크는 제 앞에 있는 남자를 저택 밖으로 내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트페리아가 자신을 알아차리자 칼립스의 표정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알트페리아는 세이룬이 든 은쟁반 위에 올라간 프라푸치노를 하나 들어 올렸다. 그리고 루크의 손에 한 잔 넘겼다.
“미안해요. 같이 마시고 싶은데 손님이 와서.”
루크는 멀어지는 그녀의 손을 꽉 붙잡고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먼저 마탑주를 찾을 정도면 일이 있는 것이다.
바깥일을 하는 그녀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알트페리아가 건넨 음료를 맛봤다.
아삭한 얼음과 달콤하게 녹아내리는 크림과 초콜릿조각. 그리고 쌉쌀한 커피의 맛이 은은하게 뒤섞였다.
그녀가 만든 것은 두 잔뿐이었다.
손님에게 한 잔 나눠주면 알트페리아의 몫은 없는 것이다.
한 모금 맛본 그는 알트페리아에게 다시 잔을 건넸다.
“달콤하군요. 리아의 입술처럼.”
비록 손등으로밖에 느끼지 못했지만.
그의 속삭임에 알트페리아의 귀 끝이 순식간에 벌겋게 변했고, 시녀들이 작게 ‘어머, 어머’를 남발했다.
루크의 시선이 맞은편에 서 있는 칼립스의 손끝으로 향했다.
칼립스는 천천히 주먹을 움켜쥐고 있었다.
느닷없는 플러팅 공격을 받은 알트페리아는 몸에 열이 확 오르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내 입술은 맛본 적 없잖아!’
프라푸치노의 감상을 말해 주지 왜 입술을 언급하는데!
하지만 이내 곧 루크가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 알 것 같았다.
칼립스가 있으니까.
외부인 앞에서는 금슬 좋은 부부여야 했다.
‘깜빡했네.’
우리가 왜 계약 결혼했는지.
루크는 잊지 않고 적절한 한 방을 잘 날렸다.
그의 적절한 대처 덕분에 앞으로 마탑주는 자신들의 사이를 의심하지 않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