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화
알트페리아는 칼립스와 함께 응접실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녀는, 프라푸치노 한 잔을 칼립스에게 건넸다.
프라푸치노는 커피가 약간 들어간 음료로서 초콜릿과 얼음조각이 오독오독 씹히는 것이 특징이었다.
빙수의 인기를 보니까 얼음이 사각사각 씹히는 식감이 르블레아 사람에게도 잘 먹히는 것 같았다.
날이 더워지는 지금 팔기에도 적절한 듯하고.
‘커피 맛도 조금 나지.’
진한 초콜릿에 파묻혔긴 하지만 커피 특유의 맛과 향이 연하게 난다.
이렇게 천천히 커피의 맛에 길들게 만들면, 르블레아 사람들이 아침마다 커피 한 잔을 들고 다니는 것도 꿈이 아닐 것이다.
르블레아 사람의 평가도 궁금했는데 때마침 칼립스가 나타났다.
그는 아메리카노를 맛본 경험이 있으니까 프라푸치노가 커피를 베이스로 만든 음료라는 것도 알 것이다.
칼립스는 제 앞에 있는 프라푸치노의 휘핑을 작은 티스푼으로 툭툭 쳤다.
“이것은 뭐지?”
“저번에 마셨던 커피를 베이스로 만든 음료에요.”
“검은 물과 완전히 모습이 다르군.”
“이것저것 넣어 섞었거든요.”
칼립스는 작은 숟가락으로 휘핑크림 깊숙이 숨겨진 프라푸치노에 있는 덩어리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마법사라서 뭔가 분석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프라푸치노를 살펴보던 칼립스가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 준 음료를 마시고 나니 쏟아지던 잠이 사라졌다. 하지만 최근 다시 피곤해졌지.”
“효과는 오래 가지 않아서 종종 마셔야 해요. 그래도 확실히 잠을 내쫓는 효과는 있었죠?”
“그래.”
“이건 커피가 조금 들어가 있어서 저번에 드신 것보다는 효과가 덜할 거예요. 그래도 훨씬 먹기 수월할 테니 한번 드셔보세요.”
고개를 끄덕인 칼립스가 프라푸치노를 마셨다.
반쯤 감긴 눈으로 맛보던 칼립스의 눈이 번쩍 뜨였다.
커피의 효과가 바로 나타나서가 아니었다.
평생 이것만 마시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취향에 딱 맞는 음료였기 때문이었다.
“천상의 맛이군! 살아생전 이런 음료는 처음 맛본다. 이 정도면 매일 마셔도 될 것 같군.”
반응을 보아하니 프라푸치노는 골든 페어리의 메뉴에 당장 집어넣어도 될 듯했다.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에요. 곧 골든 페어리에서 판매할 예정이니 찾아주세요.”
신이 난 알트페리아는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심장은 어때요? 두근두근 뛰어요?”
“그래.”
응? 이 정도 카페인에도 반응한다고?
칼립스가 벌려진 옷깃 사이, 두꺼운 제 가슴에 한 손을 올렸다.
“저택에 방문했을 때부터 줄곧, 쭉.”
소공작이 나타나면서부터 더욱이.
음, 저 정도면 커피가 문제가 아니라 진짜 심장에 이상이 있는 거 같은데.
“어디 아프신 것 아니에요?”
“검사해 봤는데 지극히 정상이라더군.”
의사가 그렇다면 문제가 없긴 한가 보다.
그런데 심장이 왜 자꾸 두근거리지.
알트페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제 몫의 프라푸치노를 마시려고 했다. 흘끗 보던 칼립스가 입을 열었다.
“그걸 마실 건가?”
“네.”
“아까 발트레 백작이 입을 댔는데.”
“뭐 어때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남편이 먹던 건데.”
“아, 그래. 그자가 남편이었지.”
씁쓸한 미소를 짓던 칼립스의 어깨가 축 처졌다.
시원하고 달콤한 음료를 먹으면 기분이 좋아질 텐데 갑자기 이렇게 가라앉는 이유가 뭐람.
조용히 생각에 빠져 있던 그가 말했다.
“그건 그렇고 나를 찾았다지?”
“네, 제가 마탑에 갈 생각이었는데 직접 찾아오실 줄은 몰랐어요.”
알트페리아를 빤히 바라보던 칼립스가 한 박자 느릿하게 답했다.
“발트레를 찾아온 이유는 따로 없다. 커피가 필요해서지.”
“가실 때 한 잔 내려드릴게요.”
“그래, 내 목표는 달성했고, 다음으로 소공작의 본론은 뭐지?”
“공작님께 의뢰를 하나 넣고 싶어요.”
“어떤 의뢰지. 네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주겠다.”
그렇게 순순히 말해 주면 좋지!
알트페리아는 왁스를 발라 만든 종이컵을 꺼냈다.
“이것 보세요.”
그녀는 종이컵에 유리잔에 담긴 프라푸치노 일부를 옮겼다.
한 방울도 새지 않고 깔끔하게 담겼다.
“종이인데 젖지 않는군.”
“안에 왁스를 발라뒀거든요.”
칼립스는 그것을 흥미롭게 봤다.
보통 음료를 담는 컵은 나무로 만들든가 유리로 되어 있다.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무거워서 휴대용으로는 알맞지 않았다.
하지만 알트페리아가 든, 왁스를 바른 종이로 만든 컵은 가벼워서 휴대하기 안성맞춤일 것 같았다.
“그것참 괜찮은 아이템이군. 나에게 부탁할 일이 무언인가.”
“저는 이 종이컵과 똑같은 효과를 가진 마법이나 아티팩트가 필요해요.”
“물을 담는 종이로 된 컵이라……. 그 정도 아티팩트는 손쉽게 제작할 수 있다.”
이렇게 쉽게 해결책을 찾다니!
“단가가 어느 정도 될까요?”
“마물의 핵이 들어가니 이 정도 되지.”
칼립스가 허공에 손짓했다.
그의 손끝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허공에 숫자가 그려졌다.
간단한 마법이라 봉인구를 치렁치렁 달고 있는 상태로도 사용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게 문제가 아니고 칼립스가 적어 내린 가격은.
‘200만 르블라!’
저 정도 가격이면 짐마차 하나를 산다.
종이컵 하나를 만드는 데 짐마차 하나 비용을 댈 순 없었다.
“좀 더 저렴하게요. 대량 생산을 해야 하거든요.”
“무엇에 쓰려고?”
“안에 음료를 담아 팔 거예요. 손님들이 집까지 들고 갈 수 있게요.”
“그 종이컵이란 것을 잔뜩 만들어 팔면 되지 않은가. 휴대하기도 편하고, 만들기도 쉬워 보이니.”
알트페리아는 힘을 줘서 종이컵을 꾹 눌렀다.
대화를 하던 도중 프라푸치노가 들어간 종이컵은 수분을 머금어 흐물흐물해졌다.
얇은 종이로 만들어 내구성이 좋지 않은 거였다.
“제가 만든 종이컵은 한 번 사용하고 버릴 물건이지요. 이런 게 상용화가 되면 거리가 많이 지저분해질 거예요.”
환경 문제가 심각해진다고!
“흠…….”
중얼거리던 칼립스가 반지를 하나 쑥 뽑았다.
동시에 파지직―
그의 주변에 마력의 흐름이 보일 정도로 강한 힘이 일렁거렸다.
봉인을 하나 푼 그는 허공에 가볍게 손짓했다.
그의 손길에 따라 컵에 담겨 있던 프라푸치노가 담긴 모양 그대로 허공에 두둥실 떠올랐다.
“소공작이 원하는 게 이런 마법인가?”
알트페리아는 칼립스가 띄운 프라푸치노를 붙잡았다.
투명한 컵에 담긴 것처럼 되어 있어 손에 묻어나지 않았다.
그녀가 물었다.
“이건 어떻게 사라지게 해요?”
“설정하는 값에 따라 다르지.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 사라지게 할 수 있고, 안이 텅 빔과 동시에 소멸시킬 수도 있고.”
와, 진짜 대단한데, 마법!
“제가 딱 원하던 거예요! 이렇게 모양을 만들어 음료를 팔고 싶으면 마법사를 고용하면 될까요?”
“나를 고용하려고? 비쌀 텐데.”
“아뇨, 이왕이면 최대한 저렴한 마법사로요.”
마탑주를 대여하면 본전도 못 찾을 테니까!
칼립스가 한 손을 가볍게 흔들자, 두둥실 떠 있던 프라푸치노가 다시 천천히 컵에 담겼다.
그는 뽑았던 반지를 착용하며 말했다.
“보기엔 단순해 보여도 다섯 가지의 수식으로 물과 공기를 섬세하게 조절하는 마법이다. 현존하는 마법사 중에서는 나밖에 사용하지 못해.”
어쩐지 봉인구까지 하나 풀더라니, 그만큼 강한 마법인 모양이었다.
좋다 말았네.
‘아, 어쩌지. 역시 종이컵을 상용화시켜야 하나?’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종이컵을 시도하는 건 왠지 지는 기분이었다.
생각에 빠진 그녀를 살펴보던 칼립스가 입을 열었다.
“이 마법을 상용화시키고 싶다며 연구하던 자가 하나 있다. 쓸모없는 연구를 하나 싶었는데 이런 응용 방법이 있었군.”
그 말에 그녀가 기쁜 듯 양쪽 눈을 반짝이며 미소를 지었다.
오팔을 닮은 듯한 신비한 눈동자가 부드럽게 휘었다.
칼립스의 심장이 또다시 두근두근 뛰었다.
알트페리아가 미소를 지을 때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것 같았다.
결혼한 그녀에게 이런 감정을 품으면 안 된다. 하지만 알트페리아가 말하지 않았나.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했지.’
가문을 이끌어가는 가주라면 정부 한둘쯤은 들인다.
대영주인 발트레의 소공작쯤이면 정부 하나 정도야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칼립스는 알트페리아를 바라봤다.
그녀가 내뱉을 말은 ‘당장 그 사람을 소개해 주세요!’겠지.
왠지 그녀가 말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해주겠다고 하고 싶었다.
그래야 알트페리아가 기뻐할 테니.
‘조금 내키진 않지만.’
소개해 줄 마법사가 사내놈이라는 것이 걸리지만 단단히 경고해 두면 문제 될 것 없었다.
“네게 소개해 줄까?”
“그렇게 해주신다면 감사하지요!”
예상대로 그녀는 뛸 듯이 기뻐했다.
그 마법사는 살짝 문제가 있긴 하지만, 왠지 그녀라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름은 라인하르트. 미리 말하지만 사소한 문제가 있는 마법사다.”
알트페리아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그 문제가 이상한 인체실험을 한다는 둥, 위험한 사람인 건 아니죠?”
“아니다.”
“수식 연구한답시고 연구실을 날려먹은 전적이 여러 번 있는 건 아니죠?”
“그런 것도 아니다.”
괴팍한 매드 사이언티스트만 아니면 상관없다.
“그러면 됐어요.”
“그래. 준비가 끝나는 대로 발트레로 보내도록 하지.”
알트페리아는 내심 놀랐다.
보통 마법사라는 족속들은 마탑에 틀어박혀서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런 엉덩이 무거운 마법사를 단숨에 보낼 수 있다니.
마탑주의 권력은 역시 최고였다.
* * *
칼립스가 돌아갔다.
종이컵 대용으로 쓸 수 있는 마법을 연구한다는 라인하르트는 발트레에 머무를 준비가 되는 대로 찾아올 예정이란다.
이후 일정이 딱히 없는 알트페리아는 골든 페어리의 가게 현황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 정도 매출이면 관심을 가지는 상단도 생기겠는걸?’
동업하자고 할 사람이 슬슬 나타날 것이다.
가게 하나만으로는 돈을 버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체인점을 늘리면 수수료로 큰돈을 벌 수 있다.
‘미래가 밝다.’
큰돈을 벌면 발트레 영지를 부흥시키는 건 물론 하고 싶은 것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행복한 상상을 하고 있을 때, 골든 페어리의 매니저인 밀리아가 찾아왔다.
밀리아가 직접 발트레 저택 문을 두드리는 건 처음이었다.
“무슨 일이야?”
“크, 큰일 났어요! 크리스털 크라운이 빙수를 판매하기 시작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