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화
하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 없으니 대충 얼버무렸다.
“장사하려면 수식을 알아두는 게 좋아서 공부를 조금 했어. 왜 곱셈과 나눗셈은 사용하지 않는 거야?”
그 말에 라인하르트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저, 저는 마법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그전에는 가난한 농부로 살아서 글도 겨우 익혀서…… 수식까지는…….”
“마탑에서 수업을 진행할 텐데?”
저 정도의 봉인구를 착용할 마법사라면 마탑에서도 손꼽히는 인재일 터다.
인재를 썩힐 수 없으니 열심히 공부시켰을 것이고.
“글도 간신히 익혀서 수식은 너무 어려워요……. 선배들도 저를 가르치는 걸 포기해서 기본 셈으로 버티고 있어요.”
“…….”
“죄송해요……. 멍청하고 쓸모없는 마법사라……. 실망하셨죠?”
그제야 칼립스가 말한 사소한 문제가 뭔지 알았다.
라인하르트는 암산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거였다.
‘마법사잖아?’
모든 마법은 머릿속으로 각종 수식을 빠르게 계산하여 사용한다.
그렇다 보니까 마법사는 계산식에 해박한 자가 많은데 덧셈과 뺄셈밖에 하지 못하다니!
덧셈과 뺄셈밖에 할 줄 모른다면 마법 하나 발동시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일단 라인하르트가 가진 마력은 뛰어났다.
계산만 빠르게 한다면, 아티팩트 같은 건 금방 완성시킬 수 있을지도 몰랐다.
“지금 속도로 아티팩트 제작하면 얼마나 걸리겠어?”
“글쎄요……. 제 생각이지만, 15년은 걸리지 않을까요.”
“너무 느려! 좀 속도를 내봐.”
“히익, 죄송해요. 지금이 제 최고 속도예요.”
“…….”
“제가 쓸모없는 건 잘 알고 있어요……. 연구도 쓸데없는 것만 골라서 한다고…….”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중얼중얼하며 묻지도 않은 가정사를 늘어놨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글공부는커녕 수식 공부도 할 수 없었다고.
안타까운 배경이 있긴 하지만 지닌 마력이 아깝다!
“선배들도 저를 식충이라 놀리기만 하고…….”
암산만 제대로 한다면 대단한 마법을 부릴 수 있을 텐데, 아무것도 하지 못하니 마탑에서도 구박받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소심해진 모양이지.
그렇다고 알트페리아가 대신 계산해 주자니, 마법사들의 수식은 평범한 수학식이 아니었다.
숫자 하나하나에 라인하르트의 마력이 담겨 있으니 마력이 없는 알트페리아가 같은 수식을 적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수식을 머릿속으로 계산하여 설계도에는 답만 적는 부분도 있어서, 결국 라인하르트 본인의 암산 실력이 받쳐줘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든 저 마법사를 한 사람의 몫을 할 수 있게 만들어놔야 할 듯했다.
“다른 마법사과 비슷한 속도가 되면, 아티팩트 완성까지 어느 정도 걸려?”
“중급 마법사 수준이라면…… 일주일이면 될 거예요.”
“정말이지?”
“네에, 확신할 수 있어요.”
알트페리아는 고민에 빠졌다.
탐나는 아티팩트이긴 하나, 전혀 발전 가능성이 없는 사람에겐 시간을 투자할 수 없었다.
알트페리아는 그를 흘끗 보았다.
‘재능은 있어.’
저 정도로 봉인구 개수가 많으면 마력이 넘친다는 소리다. 원로 마법사 자리를 노려도 될 텐데 아무것도 못 하다니!
치렁치렁 달린 마법 봉인구들이 돼지 목의 진주로 보일 정도였다.
‘원작에서도 등장했던 거 아냐?’
라인하르트라…….
그의 이름을 몇 번 되새겨보니까 천천히 기억이 떠올랐다.
아, 맞아!
마탑의 원로 마법사 라인하르트!
원작이 끝나갈 때 등장했던 인물로서 최연소 원로 마법사로 이름을 날렸었다.
그 말은 몇 년 뒤에는 수식을 완벽히 마스터하고, 뛰어난 마법사가 된다는 것이다.
그가 연구하는 아티팩트는 크기는 물론 용량까지 자유롭게 바꿀 수 있으니까 다양한 포장용기로 요긴하게 쓰일 테지.
시간을 투자할 만했다.
“나한테 배워볼래? 잘 가르쳐 줄게.”
“소공작님께서요?”
“자, 봐.”
알트페리아는 무식하게 더하거나 빼고 있는 수식에 수열의 합을 이용해 문제를 빠르게 풀어 내렸다.
놀라운 속도에 라인하르트는 입을 쩍 벌리며 집중했다.
“어때?”
라인하르트는 손가락을 꼬물꼬물하며 말했다.
“정말…… 대단하세요!”
“너도 배우면 금방 해.”
“제가 할 수 있을까요?”
“내 수업만 잘 따라온다면.”
“하, 할 수 있어요! ……아마도요.”
“쉽진 않을 거야. 밤새워 공부해야 할 거거든.”
그는 제 손가락을 계속 매만졌다.
거대한 마력을 지닌 그는 마탑에 발견되어 마법사가 되었다. 덕분에 고생하는 가족들이 배를 곯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딱 굶지 않을 정도로만 지원하는 것이 전부였다.
빠른 암산을 하지 못하는 그는 쓸모가 없었으니까.
‘가족들이 부족함 없이 살았으면 좋겠어.’
그러려면 자신이 제대로 된 마법사가 되어야 한다.
라인하르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쓸모없는 마력 탱크라는 이야기 그만 듣고 싶어요. 저는…… 변하고 싶어요!”
“좋아. 앞으로 나랑 특훈이야!”
알트페리아는 계약서를 하나 꺼내 왔다.
수식을 다 알려주고 제 몫을 다하는 마법사가 되었다고 다른 곳에 가버리면 알트페리아만 손해였다.
키워서 남 줄 수는 없으니까.
제대로 잡아두기 위해서 미리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발트레의 영역 내에서 라인하르트 텔튼이 개발한 아티팩트의 모든 권한은 알트페리아 폰 발트레와 라인하르트 텔튼이 5:5로 갖는다.>
종이컵.
아니, 투명컵이라고 해야 하나.
이 아티팩트는 개발하는 순간 많은 곳에서 쓰일 것이다.
아티팩트는 개발한 마법사가 특허권을 가지게 되는데 이렇게 미리 계약해 두면 계속 수수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테이크아웃 시장은 앞으로 더욱 발전할 테니.
일만 잘되면 앞으로 다른 아티팩트 개발도 맡기면 되겠지.
“후후후.”
알트페리아는 계약서를 보며 웃었다.
나는 교육열이 뜨거운 나라에서 살았다고.
수학은 물량 공세로 극복할 수 있다는 걸 잘 아는 그녀였다.
이해될 때까지 문제를 풀고, 또 풀게 시켜야지!
* * *
다음날부터 알트페리아의 낮 일과는 라인하르트가 풀 문제를 잔뜩 만드는 거였다.
그리고 저녁쯤에 라인하르트에게 문제를 넘겨 몇 번이고 다시 풀게 시켰다.
“내일 아침까지 전부 다 풀어.”
“알겠어요!”
라인하르트는 배우려는 의지가 있어서 문제를 주면 열심히 풀었다.
하지만 마법사들은 기본적으로 체력이 저질이라 금방 지쳐서 피곤해했다.
효율을 위해서는 밤낮으로 공부시켜야 하는데 체력이 따라주지 않았다.
이럴 때 준비한 것이 있지.
알트페리아는 라인하르트의 집중력이 흐트러지든가 하면 커피를 찐하게 우려서 줬다.
밤잠을 쫓기 위해 내린 커피는 평소보다 색이 더 짙고, 냄새도 강했다.
“소공작님, 이 검은 물은 뭔가요?”
“한번 마셔봐.”
그는 조심스레 한 모금 머금었다.
“으악, 너무 써요.”
칼립스는 한 잔은 마시던데, 라인하르트는 삼키지도 못하고 도리질만 했다.
그렇다고 프라푸치노 같은 걸로 만들어 먹이기엔 무리다.
지금 그는 찐한 카페인을 섭취하여 밤새 문제를 풀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니까.
알트페리아는 싱긋 웃었다.
“참고 마셔. 머리가 좋아지는 물이거든.”
“정말요?”
“그래, 남기지 않고 천천히 다 마셔.”
그 말에 그는 각오를 다진 듯한 표정으로 커피를 남김없이 마시고, 각성 효과를 획득하여 밤새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정말 잠이 확 깨네요!”
“후후, 그렇지? 난 한숨 잘 테니까, 아침까지 다 풀어놔.”
“맡겨주세요!”
수많은 문제를 밤낮으로 풀게 시키니까 라인하르트의 암산 속도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문제 풀이로도 해결되지 못한 부분은 알트페리아가 직접 수식을 설명하며 밀착 과외도 해줬다.
‘한시라도 빨리 아티팩트를 완성해야 해.’
그래야지 테이크아웃을 시작하니까.
그녀의 야망과 달리 라인하르트는 알트페리아의 헌신에 혼자 감동 중이었다.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주시다니…….’
라인하르트는 맞은편에 앉은 알트페리아를 흘끗 봤다.
그녀는 소공작이라는 지위에 걸맞은 위엄과 기품을 가졌으며, 머리도 비상하게 좋았다.
게다가 굉장한 미인이었다.
이런 멋지고 대단한 사람이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내어주고 있었다.
‘소공작님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
그녀가 이렇게 애를 써주니까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라도 빨리 알트페리아가 원하는 아티팩트를 완성하고 싶었다.
채점을 하던 알트페리아가 펜으로 종이를 꾹 누르며 말했다.
“여기는 틀렸어. 잘 봐.”
고개를 숙인 알트페리아의 머리카락이 스르륵 흘러내렸다.
라인하르트는 순간 얼굴을 붉히며 침을 꿀꺽 삼켰다.
마법사가 되기 전에는 동생들만 보살폈다.
성인이 되고 마탑에 스카우트되고 나서는 연구에만 몰두했다. 이성과 이렇게 가까이 있는 건 라인하르트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낯선 자극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 때였다.
끼이익―
공부방 문이 열리더니 두 사람 사이를 거대한 손이 가로막았다.
약지에 반지를 착용한, 뼈마디가 굵은 남자의 손이었다.
고개를 들어 올리니 무덤덤한 붉은 눈동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설명은 들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맡겠습니다.”
검은 머리에 붉은 눈동자.
약지에 낀 결혼반지.
통성명하지 않았지만, 라인하르트는 이 사람이 알트페리아의 남편인 루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소공작님과 계속 수업하고 싶은데.’
라인하르트는 욕심을 조금 냈다.
“소공작님께서 아주 잘 가르쳐주고 계세요. 다른 스승은 필요 없어요…….”
실제로도 알트페리아는 괜찮은 스승이었다.
자신의 실력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데 굳이 스승을 바꿀 필요는 없었다.
그는 당연히 알트페리아도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답했다.
“루크가 맡아주면 안심이에요. 라인하르트를 잘 부탁할게요!”
“리아의 기대에 미치는 사람으로 만들어두겠습니다.”
그렇게 답한 루크는 라인하르트를 빤히 바라보며 덧붙였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무덤덤한 시선이지만 왠지 무시무시한 살기 같은 것이 느껴졌다.
‘소공작님, 저를 두고 가지 마세요!’
그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알트페리아는 미련 하나 없이 라인하르트를 루크에게 떠넘겼다.
바깥으로 나온 알트페리아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후, 살았다.”
자신의 수준은 고등학생 정도라 이 이상 무엇을 가르치는 건 솔직히 버거웠다.
원로 마법사들 실력은 대학원생 정도 된다고 한다.
루크는 공대생이었다고 하니 잘 가르치겠지!
이후로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라인하르트의 안색은 점점 나빠졌다.
영혼이 뽑혀나간 사람처럼 그의 상태는 점점 안 좋아졌지만, 결과적으로 종이컵 대용으로 사용할 투명컵 아티팩트를 사흘 후에 만들어냈으니 루크의 수업이 완벽했단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