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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예쁘고 재력이 넘침-77화 (77/91)

제77화

직원들의 식사나 간식을 만들기 위해 산 재료들이다.

골든 페어리의 주방에 놓인 재료대로 만들면 디저트를 만들긴커녕, 끔찍한 괴식이 탄생할 것이다.

“하긴요. 그대로 만들면 가게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몰라요!”

“그렇게 문을 닫아줘도 좋겠는걸.”

아무리 멍청해도 그렇게까지 밑바닥일 리는 없었다.

비겁한 수로 운영을 했어도, 제도 제일의 디저트 가게의 오너라는 건 변함없으니까.

알트페리아는 픽 웃으며 손을 까딱거렸다.

“나를 건드린 값은 톡톡히 치르게 해주겠어.”

그녀의 손짓에 대기 중이던 세이룬이 상자를 하나 가져왔다.

마탑의 마법사들이 가져온 상자였다.

화려한 무늬의 고급 종이로 포장된 상자를 열자 주걱이 달린 아티팩트가 드러났다.

칼립스에게 부탁한 아티팩트가 완성된 것이다. 밀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품기같이 생겼네요?”

뒤에 달린 아티팩트는 어떤 효과인지 모르겠지만.

“잘 봐.”

위이이잉―!

아티팩트를 작동시키자 거품기가 미친 듯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본디 거품기는 손으로 일일이 휘저어야 한다.

그 횟수가 몇천 번은 가뿐히 넘기에 크림을 만드는 사람은 팔과 어깨가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하지만 저 아티팩트만 있으면 팔의 고통이 덜어질 것이다.

마치 디저트를 만드는 파티시에를 구원하러 강림한 아티팩트 같았다.

단번에 그 용도를 알아챈 밀리아는 마치 신을 만난 것처럼 양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었다.

“너무…… 아름다워요.”

알트페리아는 그런 밀리아를 흘끗 내려다봤다.

‘어음, 전동 거품기가 그렇게나 신기한가?’

저러다 눈물까지 흘리겠네.

휘핑크림을 만드는 중노동에서 해방되어 그만큼 기쁜 모양이었다. 알트페리아는 밀리아에게 아티팩트를 건네며 말했다.

“이제 슬슬 다른 디저트 메뉴를 내놓자.”

“지시하셨던 디저트를 개시하시려고요? 당장 준비할게요!”

카페인데 음료만 판 이유는 있다.

바로 옆 가게가 디저트로 유명한 곳이니 대비를 철저히 끝내기 위함이었다.

디저트로 크리스털 크라운에게 한 방 먹일 준비는 이제 끝났다.

제대로 한 방 먹일 생각이다.

* * *

골든 페어리의 주방에 몰래 들여보냈던 첩자들이 돌아왔다.

프라푸치노와 빙수의 레시피를 알아냈을지도 모른다.

신이 난 로저필드 백작은 파리처럼 손을 비볐다.

“레시피는 알아 왔는가.”

“예.”

첩자는 골든 페어리의 주방에 들어가서 본 것들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로저필드 백작이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골든 페어리의 주방에 소금이 잔뜩 있었다고?”

“그렇습니다.”

“거기에 오이?”

“예에, 예상 밖의 재료라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갈아서 넣으면 특별한 맛이 나나 봅니다.”

오이의 경우 은근히 과일과 잘 어울린다. 살짝 더하면 맛을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첩자는 생각했다.

‘그럴 리가 있나!’

로저필드 백작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지금 진심으로 내뱉는 소리인가? 속임수인 게 뻔하잖아!”

자신은 직접 먹어보지 않아 모르지만, 골든 페어리의 빙수에 들어간 재료를 알아내기 위해 직원을 몰래 보냈었다.

오이나 짠맛이 느껴진다는 보고 같은 건 받지 못했다.

오히려 단맛이 강하다고 했지!

“하, 하지만 정말로 오이와 소금밖에 없었습니다.”

쾅―!

화가 난 로저필드 백작은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려쳤다.

“그놈의 오이 이야긴 그만해!”

큰 소리에 움찔 놀란 첩자가 조용해졌고, 백작은 혀를 찼다.

‘알트페리아 고것이 미리 눈치를 챈 모양이야.’

누군가 레시피를 노린다는 걸 예상하고, 가짜 재료를 준비한 모양이었다.

백작은 눈치를 흘끗 보는 첩자를 바라봤다.

“레시피는 됐다. 누군가에게 들키진 않았겠지?”

“예, 이 짓도 한두 번이 아니니 능숙해지더군요. 가게 문도 조용히 따고 들어갔고 설치된 방범용 줄도 밟지 않았습니다. 미행이 붙었는지 몇 번이나 확인하고 돌아왔습니다!”

골든 페어리의 주방까지 잠입했지만 아무런 정보를 얻지 못했다니.

‘됐어. 들키지만 않으면 돼.’

자신의 범행이 드러나지 않으면 상관없었다.

설령 첩자가 알아차리지 못한 침입의 흔적이 남아 있어도 상관없다.

유명한 가게의 레시피를 노리는 사람은 많으므로 용의자를 특정하긴 어려울 것이다.

‘한동안 조심해야겠군.’

한 번 실패했으니 한동안은 얌전히 지낼 생각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그리고 조용히 있을 예정이던 로저필드 백작은 제도 거리를 달리는 마차 때문에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세상에 없었던 마카롱이 준비되었습니다.

3일 뒤, 골든 페어리에서 만나요.>

골든 페어리가 마카롱을 판매하겠다고 홍보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로 신문에는 마카롱의 이야기가 가득 실렸다.

<크리스털 크라운은 마카롱의 왕좌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

크리스털 크라운은 인기 있는 가게의 레시피를 훔쳐 발전했다.

동시에 유명해질 싹이 보이는 가게는 미리 밟아버려서 자라지 못하게도 했다.

그렇기에 인근 가게들은 혹여 견제가 들어올까 봐 무서워서라도 마카롱을 시작하지 못했다.

‘감히 나에게 도전해?’

크리스털 크라운의 주력 상품은 마카롱이었다.

마카롱 전문이기 때문에 어떻게 망하게 만들지도 잘 알았다.

로저필드 백작은 골든 페어리가 주력 메뉴로 도전장을 내민 만큼 싹을 틔우지 못하게 짓밟기로 결정했다.

* * *

에드먼드 후작은 돈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았다.

요즘 그런 후작이 관심을 갖는 건 알트페리아에게 판매한 가게였다.

크리스털 크라운이라는 막강한 가게 때문에 자리를 잡기 힘든 곳이었다.

하지만 알트페리아는 짧은 시간에 존재감을 드러내며 크리스털 크라운을 위협하고 있었다.

왠지 기분이 좋아진 후작은 흥얼거리며 신문을 읽었다.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한 마카롱을 일곱 가지 맛으로 만나요.>

<달콤함이 세 배! 맛도 세 배!>

모두 골든 페어리의 광고 문구였다.

똑같은 광고 문구가 제도 골목 곳곳을 누비는 공용 마차에도 나붙었다고 한다.

‘참 대단하단 말이지.’

지금은 너도나도 하는 마차 광고는 알트페리아가 가장 먼저 시작했단다.

이런 아이디어가 어디서 샘솟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후작은 읽던 신문을 테이블 위로 툭 던졌다.

“재밌지 않으냐? 크리스털 크라운을 상대로 마카롱에 도전하다니.”

에드먼드 후작의 곁에 서 있던 리암은 신문을 흘끗 봤다.

골든 페어리에서 마카롱 판매를 시작하려는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피하셨던 일에 릴리가 도전하는군요.”

후작은 일부러 크리스털 크라운 바로 옆에 가게를 차렸다.

제도 제일의 가게를 꺾고 싶다는 야망에서였지만 보기 좋게 실패했다.

정확히는 맞설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게 비꼬지 말아라. 크리스털 크라운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마카롱을 내놓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거든.”

그렇게 말하는 후작은 기쁘다며 실실 웃었다.

골든 페어리에 대한 소문은 사교계 전체에 퍼졌다.

이국적인 꽃들이 가득한 카페.

더위를 쫓아주는 빙수와 새로운 맛을 선사하는 프라푸치노.

거기에 마탑의 마법사들 중심으로 소문이 자자한, 머리가 좋아진다는 커피까지.

알트페리아가 이렇게까지 사업에 소질이 있는 줄 알았다면, 진즉에 도움을 주며 키워줬을 텐데 아쉽게 되었다.

‘궁금해지는군.’

날개를 펼치기 시작한 그녀가 어디까지 날아오를지.

제가 해내지 못한 일을 시도하는 알트페리아가 기특해진 후작이 흥에 겨워 중얼거렸다.

“다시 발트레로 돌아가는 것도 재밌겠는걸.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흥미가 생긴 리암이 안경을 벗었다.

아버지의 눈을 마주치고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보고 싶은 주제여서였다.

“어차피 저는 돌아갈 생각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결정을 내리시면 그 시기가 조금 빨라질 뿐이지요.”

리암의 말은 작위를 물려받으면 냉큼 발트레의 가신이 되겠다는 뜻이었다.

기껏 독립한 가문을 키울 생각은 하지 않고, 스스로 굽힐 생각만 하다니.

하지만.

‘기특하군.’

자고로 가신은 모든 것을 가주에게 바칠 각오를 지녀야 하니까.

리암은 이미 발트레를 섬길 준비를 끝마친 듯했다.

에드먼드 후작은 생각에 빠졌다.

마음 같아서는 고향인 발트레로 당장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앨런에게 눈이 멀어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던 알트페리아를 떠올리면 조금 주저되었다.

그 당시 알트페리아의 행동은 발트레를 멸망시키려던 재앙 같았으니까.

‘조금만 더 지켜봐야겠군.’

마카롱 전쟁은 이제 서막이 오른 것이 아닌가.

결과를 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았다.

다만, 마카롱 전쟁이 끝나고 선택하면 늦는 것이 하나 있었다.

“결과는 끝까지 봐야 하겠지만, 나로서는 골든 페어리가 이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전에 미리 손을 써야겠구나.”

“…….”

“성공하여 인기가 많아지기 전, 먼저 레시피를 구매하여라.”

후작의 말에 리암은 알트페리아를 떠올렸다.

그녀가 골든 페어리의 오너니까.

레시피를 거래하기 위해서는 알트페리아를 직접 만나야 했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아버지.”

후작의 허락을 받아낸 리암은 알트페리아를 만날 생각에 부푼 마음을 끌어안고 골든 페어리로 향했다.

* * *

마카롱을 개시하는 결전의 날이 밝았다.

‘하, 이제 몸이 가뿐해!’

보유하고 있는 르블라가 10억이 넘은 뒤로 아침마다 개운했다.

몸뿐만 아니라 부자가 되었다는 생각에 마음마저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띠링!

[<시스템> 10억 르블라를 모은 당신에게 드리는 오늘의 Tip!]

[<시스템> 10억 르블라를 소모하여 ‘돈의 힘(패시브 스킬, F랭크)’을 E랭크로 랭크업하자!]

지금도 살맛 나는데 굳이 10억 르블라를 소모해서 스킬을 업그레이드해야 할까?

‘필요 없지.’

돈 아낄래. 아직은 하지 않을 거야.

10억 르블라를 썼다가는 보유 재산이 부족하다고 또 능력치 하락시킬 거잖아!

[<시스템> 당신은 ‘돈의 힘(패시브 스킬, F랭크)’을 E랭크로 랭크업하고 싶어진다!]

응, 아무리 알람을 보내봤자 관심 없네요. 건강한 몸 최고!

이른 시간에 일어나도 멀쩡한 알트페리아는 한껏 개운한 기분으로 골든 페어리로 향했다.

오늘은 마카롱을 처음 선보이는 날이기에 점검하고 싶어서였다.

끼이익―

발트레의 매 문장이 새겨진 마차가 요정의 분수 앞에서 멈췄다.

마차에서 내리던 알트페리아는 멈칫했다.

‘이상한데?’

언제나 시원스럽게 물이 뿜어져 나오는 요정의 분수가 잠잠했다.

찰랑거리는 물도 보이지 않고 바짝 메말라 있었다.

그리고 불길하게도 살짝 열린 골든 페어리의 입구는 흙탕물로 엉망진창이었다.

아주 약간 열린 가게 문틈으로 보이는 안쪽은 불길할 정도로 새까맣고,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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