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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예쁘고 재력이 넘침-78화 (78/91)

제78화

알트페리아를 에스코트한 세이룬이 말했다.

“소공작님, 제가 먼저 가게 안을 살펴보겠습니다.”

세이룬이 가게 문을 활짝 열며 안으로 들어갔다.

알트페리아도 잠시 후 그녀를 뒤따라 들어갔다.

‘축축해.’

마치 가게 안에 비가 내린 것처럼 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가게 안을 빠르게 둘러본 알트페리아는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이게 다 뭐야?”

왜 가게 안이 물바다인데!

[<시스템> 오늘의 운세 ― 스킬은 제때제때 업그레이드하자!]

가뜩이나 신경 쓸 곳이 많은데 알람은 도움이 되긴커녕 헛소리나 한다.

그녀가 거칠게 손을 흔들어 허공에 둥둥 뜬 시스템창을 없애버릴 때였다.

알트페리아의 목소리에 안쪽에 있던 밀리아가 허둥지둥 밖으로 나왔다.

“오, 오셨어요, 소공작님?”

“가게가 왜 이렇게 엉망이 되었어?”

“마카롱을 굽고, 에델 님과 함께 과일을 사러 시장에 나갔다 왔더니 이렇게 되어 있었어요…….”

문제는 가게 안이 물로 난장판이 된 것만이 아닐 것이다.

알트페리아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꾹 눌렀다.

“마카롱도 엉망이 되었지?”

죄송하다는 듯 고개를 떨군 밀리아가 답했다.

“네……. 전부 눅눅해져 버렸어요.”

마카롱은 수분에 취약한 디저트라 장마철에는 특히 만들기 까다롭기로 유명했다.

이렇게 물난리가 났으니 기껏 만들어둔 마카롱은 모두 엉망이 되었을 것이다.

그녀가 생각에 빠져 있을 때였다.

“오늘은 골든 페어리의 신 메뉴가 나오는 날이 아니었어? 이게 다 무슨 난리야.”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에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서 있었다.

대체 리암이 왜 여기서 나타나?

“난장판의 범인이 리암인 건 아니지?”

알트페리아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나는 당연히 아니지. 내가 릴리의 마음을 아프게 할 이유가 없잖아.”

두꺼운 안경을 써서 표정이 보이지 않지만,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잠깐 욱한 마음에 리암을 탓했지만 범인은 뻔했다.

골든 페어리가 엉망이 되면 기뻐할 사람이 바로 크리스털 크라운의 오너니까.

알트페리아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기껏 준비한 신 메뉴가 엉망이 되었다. 화가 난 그녀는 볼 안쪽 살을 잘근 씹었다.

‘이대로 휘말리면 안 돼.’

손을 놓고 가만있으면 로저필드 백작만 기뻐할 테니까.

이를 악문 알트페리아가 외쳤다.

“에델! 리베르트!”

언제나 함께 붙어 있던 리베르트는 보이지 않고, 에델만 쪼르르 달려와 부복했다.

“찾으셨나요, 소공작님.”

“밀리아에게 설명은 들었어. 재료를 사러 나간다고 가게를 텅 비웠던 거야?”

레시피를 노리는 악당까지 나타났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한 명은 계속 가게에 남도록 지시해 뒀는데.

“아니요. 리베르트가 가게를 지키고 있었어요.”

“리베르트는 어디 있어?”

뒤이어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리베르트가 나타났다.

‘다쳤잖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리베르트의 입가가 찢어지고 얼굴이 퍼렇게 부어 있었다.

옷도 엉망으로 찢겨져 있었는데 훤히 드러난 가슴팍에는 강하게 긁힌 듯한 상흔이 여러 개 나 있었다.

리베르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가게 안으로 아티팩트가 날아왔습니다. 온몸을 날려 막았지만 발동되는 건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온몸을 바쳐 가게를 지키려고 노력한 모양이었다.

가게를 텅텅 비워놓은 줄 알고 화가 났지만, 부상당한 리베르트의 모습에 마음이 가라앉았다.

알트페리아는 부복한 에델을 내려다봤다.

그녀는 리베르트를 다치게 한 상대에게 분노를 느끼는 듯 몸을 잘게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누군지 몰라도 죽겠네.’

에델의 남자를 건드렸으니까.

리베르트가 주머니에서 부서진 아티팩트를 꺼냈다.

“밭농사할 때 사용하는 아티팩트입니다. 발동시키면 근처에 있는 물을 끌어와, 땅을 촉촉하게 만듭니다.”

아티팩트가 발동되어 근처 분수에 있던 물을 죄다 끌어온 모양이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었는데, 파스스.

아티팩트가 가루가 되더니 사라져 버렸다.

사용 후 자동으로 사라지는 설정이 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이미 일은 벌어졌다.

일단은 다친 리베르트부터 치료해야 했다.

“에델, 당장 리베르트를 신전으로 데려가서 치료하도록 해.”

“예, 소공작님. 저택의 사람을 부를까요?”

엉망이 된 가게를 정리하려면 사람이 아주 많이 필요했다.

물난리통을 정리하려면 저택의 시녀를 모두 부른다고 해도 터무니없이 손이 부족했다.

“그 정도로는 모자라. 저택에선 라인하르트만 호출하고, 다른 곳에서 사람을 좀 더 불러와야겠어.”

팔짱을 끼고 있던 리암이 말했다.

“일단 마카롱부터 새로 만들어야겠네. 시간이 부족할 건데 어떻게 할 거야?”

“마카롱은 문제없어. 시간은 넉넉하거든.”

넉넉하긴커녕 머랭을 칠 시간도 없을 텐데.

하지만 리암은 걱정하는 대신 씩 웃었다.

그녀가 어떤 마법을 부릴지 궁금해졌지만, 답을 확인하는 건 나중으로 미뤘다.

“그렇다면 이 물난리를 정리할 일손만 데려오면 되겠네. 때마침 거래하고 싶어 찾아온 거거든. 에드먼드 상단이 힘을 빌려줄게.”

릴리에게 잘 보이고 싶거든.

마카롱을 개시하는 첫날부터 엉망이 될 수는 없었다.

지금은 빌릴 수 있는 손은 잡아야 했다.

알트페리아는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리암의 도움은 잘 받도록 할게.”

* * *

아티팩트 하나로 골든 페어리를 엉망으로 만든 로저필드 백작은 기분이 좋았다.

골든 페어리는 신 메뉴로 마카롱이 나온다고 마차와 신문 등 온갖 곳에 광고를 했다.

그러나 몰려든 사람들은 마카롱은 구경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모두 습기를 잔뜩 머금어 눅눅해졌을 테니까.

지금부터 부랴부랴 만들어봤자 시간을 맞추지 못할 것이다.

‘겉은 바삭하다고?’

녹은 머랭이 손에 묻을 정도로 찐득할 것이다.

기껏 찾아온 손님들은 욕을 하며 나가겠지, 큭큭큭.

골든 페어리의 몰락은, 손님들과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오늘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마차에 올라탄 로저필드 백작이 마부에게 말했다.

“크리스털 크라운으로.”

요즈음은 알트페리아를 피하느라 가게에 나가지도 못했다.

하지만 골든 페어리가 엉망이 된 모습은 보고 싶기에 오랜만에 나들이 삼아 가게로 향했다.

끼이익―

마차에서 내린 로저필드 백작은 바짝 마른 분수를 바라봤다. 그의 시선은 천천히 한쪽 문이 열린 골든 페어리로 향했다.

열린 틈 사이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여러 사람이 보였다.

급하게 사람을 불러 가게를 정리하는 모양이었다.

‘쓸모없는 짓을 하는군.’

애써 봤자 디저트를 새로 굽기에는 터무니없이 시간이 부족할 텐데.

엉망이 된 골든 페어리를 두 눈으로 확인한 백작은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을 느꼈다.

그의 시선에 무덤덤한 표정으로 서 있는 알트페리아가 들어왔다.

기분이 좋아진 그는 먼저 인사를 건넸다.

“발트레 소공작이군. 오랜만에 보는구나.”

알트페리아가 시선을 맞췄다.

한눈에 봐도 그녀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장사를 망칠까 봐 잔뜩 불안해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로저필드 백작님이시군요. 재판 이후로 오랜만에 뵙네요.”

로저필드 백작은 지팡이를 붙잡은 손에 힘을 꽉 줬다.

상기하고 싶지 않은 재판이 떠올라서였다.

그때 받은 모욕을 떠올리면 당장 비명을 지르고 싶어질 지경이지만, 오늘만큼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마카롱 대결의 승리자는 자신이기 때문이었다.

“이상하게도 분수의 물이 다 메말랐던데, 무슨 사고라도 생긴 모양이지?”

“분수의 물이 가게 안으로 다 흘러들어 와서 물난리가 났어요.”

“저런. 오늘부터 마카롱을 판매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가게가 엉망이 되어버리다니!”

“…….”

“마카롱도 걱정되는군. 수분을 잔뜩 머금은 마카롱은 식감이 최악이지 않나.”

“그렇죠.”

“설마, 상품성이 없는 물건을 팔 생각은 아니겠지?”

한 방 먹였다는 생각에 씩 미소를 지은 로저필드 백작은 알트페리아의 안색을 살폈다.

화가 나 온몸을 부들부들 떨어야 하는데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덤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백작님의 걱정과 달리 마카롱은 새로 만들고 있어요.”

“지금부터 새로 만든다고? 오픈 시간을 늦춰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

이미 줄을 서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어수선한 골든 페어리에 무슨 일이 생겼나 궁금해 하며 기웃댔다.

자신의 가게가 아니라 골든 페어리 앞에 서 있는 손님들이 못마땅하지만, 지금만큼은 든든한 지원군으로 느껴졌다.

많은 사람이 실망해야지 알트페리아의 명예가 진창에 처박힐 테니까.

길게 늘어선 줄을 바라보던 알트페리아가 조용해졌다.

백작은 그런 그녀를 보며 희열을 느꼈다.

아내와 아들의 복수를 한 듯, 속이 다 시원했다.

속이 후련해진 로저필드 백작은 쭉 늘어선 줄을 보며 히죽 웃었다.

알트페리아가 긴 한숨을 내뱉으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하아아. 불쌍해서 어떡하지요.”

“누구를 말하는 건가?”

소공작은 저 자신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모양이지.

“이번 사건의 범인이요.”

“범인이라니. 분수의 오작동으로 가게가 엉망이 된 게 아닌가?”

“멀쩡하던 분수가 갑자기 고장이 나, 그것도 하필 저희 가게만 공격했을 리가 없잖아요.”

“흐음. 그건 그렇고 범인을 왜 안쓰럽게 여기는 거지?”

“이번 사건으로 사람이 한 명 다쳤거든요. 근데 하필 그자의 애인이 무시무시한 살수라서요.”

“…….”

“제도를 떠들썩하게 만든 무서운 살수를 건드렸으니 편히 죽진 못할 거예요. 누군지 모르겠지만 처참한 꼴로 발견되겠죠. 불쌍하게도.”

그녀의 목소리가 유독 음산하게 들렸다.

로저필드 백작은 순간 몸의 피가 싹 빠져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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