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편이 예쁘고 재력이 넘침-82화 (82/91)

제82화

동부의 사이몬 공작 영지에 있는 거대한 호수.

오래된 나무들이 빼곡히 자란 호수의 가장자리에는 마법사들이 생활하는 높은 탑이 있었다.

마력이 없는 일반인은 출입조차 할 수 없던 폐쇄적인 공간에 오랜만에 손님이 찾아왔다.

마탑주의 손님인 루크였다.

그는 마탑에서 가장 높은 층에 있는 방을 받아 며칠째 생활하고 있었다.

크레치만의 봉인은 몇 번이나 임계점을 넘어 터질 뻔했다.

하지만 칼립스의 계산으로 위기를 넘기며 위태롭게 버티고 있었다.

딱히 할 것이 없는 루크는 마탑을 돌아다니다가 그마저도 지겨워져 방에 틀어박혔다.

‘따분하군.’

왠지 하루가 길게 느껴졌다.

루크는 방에 있는 거울을 바라봤다.

언제부터인지 인상을 살짝 찡그리고 있었다.

그는 눈가 사이를 손으로 꾹 눌렀다.

그러다가 손가락에서 반짝이는 결혼반지를 발견해 시선을 빼앗겼다. 그는 반지를 매만지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다.

알트페리아는 아름다운 걸 좋아한다.

그녀와 떨어져 있을 때도 자기 관리를 잘해야지 예쁨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루크.

그가 착용한 귀걸이에서 알트페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절로 미소를 지은 루크는 아티팩트를 꾹 누르며 회답했다.

“예, 리아. 듣고 있습니다.”

―잠이 오지 않아서 연락했는데, 시간 있어요?

알트페리아와 대화하기 위해서는 없는 시간도 만들 것이다.

“시간이야 많습니다. 한가하거든요, 마탑 생활.”

―지낼 만해요? 마법사들이 괴롭히지 않아요?

“저를 말입니까?”

―마법사들은 외부인을 배척한다고 들었거든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성가시게 달라붙습니다.”

―혹시, 결혼반지 끼는 걸 잊은 건 아니죠?

장난스러운 그녀의 질문에 반지를 매만지던 루크는 멈칫했다.

반지는 증거였다. 자신이 알트페리아의 남편이라는. 반지는 씻으려고 잠깐 빼둘 때를 제외하고는 몸에서 떼지 않고 있었다.

만약 반지를 빼면 자신이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접근할지도 몰랐다.

“마법사들이 수식을 알려달라고 찾아옵니다. 제가 수식에 박식하다는 소문이 퍼진 모양이라 공부방이라도 차릴까 생각 중입니다.”

―골든 페어리에 공부방을 따로 만들어볼까요?

“그거 괜찮은 생각인 듯합니다. 마탑의 마법사들이 골든 페어리를 자주 찾는 듯하니.”

―말이 나온 김에 커피 반응은 어때요? 마탑에 2호점을 낼 생각이거든요.

“카페인 중독자들이 많아진 듯합니다.”

알트페리아가 쿡쿡 웃었다.

아티팩트 너머로 들리는 그녀의 웃음소리에 간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는 그녀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싶어 눈을 감았다.

―마탑점은 잘되겠네요! 아, 돈을 많이 벌었으니 장학재단을 만들까 싶어요.

“장학재단 말입니까?”

―라인하르트를 기억하시죠?

루크는 발트레에 머물던 마법사를 떠올렸다.

그는 알트페리아를 향한 연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 점이 못마땅해서 알트페리아 대신 수식을 가르쳤었지.

“예, 압니다.”

―그는 그런 거대한 마력을 가졌으면서 집이 가난해서 공부를 전혀 하지 못했대요. 그렇게 빛을 보지 못한 인재가 많을 거예요.

루크는 자신의 전생을 생각했다.

이른 나이에 가족을 잃은 루크는 헌터로 각성했지만 랭크가 낮았다.

헌터 생활로는 생활비를 벌기조차 힘들었다.

그러다 어떤 기업이 만든 장학재단의 후원을 받아 공부하며 생활할 수 있었다.

고마웠다. 아무런 인연이 아니면서도 자신을 돕기 위해 나서는 사람이 있어서.

“좋은 생각을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리아는 구원자로 느껴질 겁니다.”

자신이 그랬으니.

―후후, 사회에 기부하기 위해 뭐가 좋을까 생각해 봤는데, 장학재단이 딱 맞다 싶었어요. 사실 저도 전생에 가난해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지 못했거든요.

모든 사람이 같은 불행을 겪은 사람에게 손길을 내밀진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제가 고통을 겪어봤기에 남을 돕는다고 말하며 웃었다.

‘천사인가.’

귀를 간지럽히는 알트페리아의 웃음이 천상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처럼 느껴졌다.

그의 머릿속에 웃는 낯의 알트페리아가 그려졌다.

그녀가 어떤 표정으로. 몸짓으로 앉아 이야기하고 있을지 절로 떠올랐다.

루크는 눈을 떴다.

기대한 것과 달리 눈앞에 알트페리아는 없었다.

보고 싶었다.

그는 조금 용기를 냈다.

“보고 싶습니다.”

―마탑에서도 잊지 않고 연기를 계속하다니. 아주 바람직해요!

“연기가 아닙니다.”

그녀가 조용해졌다. 당황스럽게 만든 모양이었다.

곤란하게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밤이 늦었으니 이만 주무십시오.

그렇게 말하려던 참에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미리 말하는데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예.”

―사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루크가 없으니까 아쉬운 거 있죠. 옆자리가 비어서 외롭다는 건 아니고요! 그냥 조금 아쉬워요. 익숙해져서 그런가?

“…….”

―으음, 생각해 보니 아침에 루크의 얼굴을 보고 나면 기분이 좋아서 그런 것 같아요. 이게 다 루크가 미남이라서 그래요!

그녀의 말뜻은 결국 자신이 보고 싶다는 뜻이기도 했다.

루크는 미소를 머금었다.

“기쁩니다. 더욱 정진해야겠습니다.”

그녀가 자신을 더욱 어여쁘게 여기도록.

* * *

계획을 했으면 실행을 할 때였다.

알트페리아는 우선 장학재단을 만들겠다고 에드먼드 후작에게 밝혔다. 후작은 크게 기뻐했다.

“인재 육성은 꾸준히 해야 하는 일입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후작은 알트페리아의 속뜻까지 이해했다.

그녀는 그냥 돈만 기부할 생각은 아니었다.

이왕이면 좋은 인재를 발굴하여 발트레로 영입까지 하고 싶었다.

장학재단은 발트레의 미래에 투자하는 일이었다.

에드먼드 상단의 도움을 받으니까 재단 설립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이 척척 진전되고 있을 때, 리베르트가 찾아왔다.

“소공작님, 에드먼드 후작님께서 보내신 보육원 목록입니다.”

“아, 그래. 몸은 좀 어때?”

사제에게 치료받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난 지 며칠 되지 않았다.

“소공작님께서 신경을 써주신 덕분에 완전히 나았습니다. 자리를 비운 만큼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쉬엄쉬엄 해.”

“에델이 화가 잔뜩 나 있어서 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도 도와야죠.”

로저필드 백작 때문에 골든 페어리가 엉망이 될 뻔했고, 리베르트가 다쳤다.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어 로저필드 백작이 저지른 범법 행위의 증거를 모으고 있었다.

다른 가게의 레시피를 훔치고, 거짓 소문을 퍼뜨리고.

또 식재료에 장난도 치고 있다고 한다.

로저필드 백작가를 조사하는 일은 에델이 맡았는데 리베르트도 돕는 모양이었다.

알트페리아는 리베르트가 가져온 보육원 목록을 확인했다.

에드먼드 후작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보육원들을 하나하나 조사했다.

이제 재단을 맡길 사람이 필요했다.

에드먼드 후작이나 리암은 각각 에드나 항구와 골든 페어리의 프랜차이즈를 맡고 있었다.

그러니 다른 적임자를 찾아야 했다.

알트페리아는 곧은 자세로 서 있는 리베르트를 바라봤다.

그러다 에델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거기에 친절하고요. 또 아이를 좋아해서 취미가 보육원에 몰래 기부하는 거였어요.”

“리베르트는 아이를 좋아한다지? 보육원에 기부도 했다고.”

에델을 통해 전해 들었다는 걸 짐작한 리베르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아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저까지 기분이 좋아집니다.”

“리베르트는 첩자가 아니라 보육원 교사가 되었어야겠는걸.”

그가 조금 씁쓰레한 미소를 지었다.

“한때 그런 꿈을 꾼 적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제가 꿈꾸는 대로 이뤄지지 않더군요.”

흠, 이야기해 보니까 딱 알맞은데.

어차피 장학재단의 관리자는 따로 필요하고, 이왕이면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이 맡으면 일의 만족도가 올라갈 거 아닌가.

“어때? 발트레 장학재단을 한번 맡아볼래?”

그 말은 소속도 정보 길드에서 발트레로 완전히 옮기게 된다는 것이다.

에델과 사이도 좋아진 거 같으니 슬슬 발트레로 거처를 옮기라며 제안해도 될 것 같았다.

미소를 짓던 리베르트는 고민조차 하지 않고 답했다.

“맡겨주십시오.”

* * *

예정대로 발트레 장학재단은 리베르트가 맡았다.

첩보 능력을 잘 살려 아이들을 도울 최적의 방법을 다양하게 찾아낼 테니 적임자에게 맡긴 듯했다.

다음으로 후원 파티를 개최하기 위해 귀족들을 초대하기로 했다.

제도에 남아 있는 귀족 리스트를 확인하던 알트페리아는 그랑힐데 공작 가문에서 멈칫했다.

‘예의상 보내야겠지?’

명목상 같은 공작 가문 중 하나이기에 초대장을 빼먹는 것도 이상하다.

마찬가지로 칼립스가 크레치만의 봉인 때문에 불참할 건 알지만 사이몬에도 초대장을 보낼 거니까.

‘설마, 그랑힐데 공작 부인이 여길 오겠어.’

아직도 없는 증거를 찾느라고 머리털 쥐어 뽑고 있을 텐데 참석하진 않을 것 같았다.

대강 목록을 정한 알트페리아는 설렁줄을 흔들었고, 세이룬이 찾아왔다.

“부르셨어요, 소공작님?”

“발트레 소공작으로서 공식적인 행사를 여는 건 처음이야. 준비에 신경 써.”

“예, 완벽하게 준비하겠습니다.”

그렇게 답하는 세이룬이 든든해 보였다.

잠시 후 그녀가 나가고 나자 띠링, 띠링, 띠링!

푸른색 알람창이 떴다.

[<시스템> 니 레벨에 잠이 오냐!]

오, 이제 막말도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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