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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예쁘고 재력이 넘침-83화 (83/91)

제83화

보유 재산이 얼마 있는지 알고 있으니까 스킬 업그레이드를 하라며 난리였다.

시스템은 며칠째 울부짖고 있지만, 알트페리아는 깔끔하게 무시했다.

‘스킬 랭크업에 10억 르블라나 내라고?’

어림없지.

“F랭크라도 잠만 잘 오는걸?”

오히려 전보다 몸이 가벼워져서 숙면하고 있었다.

[<시스템> 스킬을 랭크업하면 몸이 더욱 좋아집니다!]

[<시스템> 10억 르블라를 소모해도 당신의 보유 재산은 3억이나 남습니다!]

[<시스템> F랭크에서 이만 탈출합시다!]

너는 짖어라.

나는 할 일 할 테니.

그런 마음가짐으로 그녀는 눈앞의 푸른 창을 깔끔하게 무시하며 생활했다.

‘슬슬 적응된 것 같단 말이지.’

처음엔 시야가 가로막혀 성가신 느낌이 들었는데 금방 적응했다.

알트페리아가 저를 무시하자 허공에 동동 뜬 시스템창은 파르르 떨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눈에 띄기 위해서 어디 숨어 있다가 불쑥 튀어나오기도 하고, 하늘에서 강림하기도 했다.

노력이 가상하지만 알트페리아는 스킬 랭크 업그레이드에 10억 르블라를 소모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시스템> 성좌님이 미쳤어요! 믿을 수 없는 할인율!]

[<시스템> ‘돈의 힘(패시브 스킬, F랭크)’ 업그레이드 50% 할인!]

※ 5억 르블라를 소모하여 랭크를 올릴 수 있습니다.

오, 반값? 그렇지만…….

“5억 르블라가 누구네 집 애 이름인 줄 알아?”

이때까지 고생해서 벌었단 말이야.

시스템창이 알트페리아의 머리 쪽으로 이동해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돌아버리겠다는 뜻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거 같았다.

이제 시스템창은 자기가 무생물인 척하는 것을 숨기지도 않았다.

한참을 뱅뱅 돌던 시스템창이 비틀거리며 눈앞으로 내려왔다.

[<시스템>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지금도 생활하는 데 불편한 건 없지만, 랭크업을 하면 몸이 훨씬 더 건강해질 것이다.

건강을 생각하면 투자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강해지는 거 좋기도 하고.

‘원작에서는 어땠더라.’

그랑힐데 공작 부인의 사정은 잘 모르지만, 르블레아 여신의 환생이라는 막내 황녀도 여러 번 신의 증거인 성흔을 업그레이드했다.

그녀의 경우는 신전에서 기도해 신력을 모으면 된다.

양손을 모으고 무릎만 꿇으면 성흔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으니까 시도 때도 없이 랭크를 올렸다.

‘아, 생각하니까 화나는데?’

누구는 스킬을 업그레이드하려면 고생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10만 르블라.”

[<시스템> 1…… 1억 르블라!]

10만은 너무했나?

그래도 반값에서 훨씬 더 많이 깎았다.

90%나 깎아주다니?

그 말인즉슨 좀 더 깎을 수 있다는 뜻이다!

“5천만 르블라.”

[<시스템> 8천만 르블라까지 깎아줄 수 있습니다!]

[<시스템> 이 이상은 원가도 나오지 않는다고 울먹입니다!]

알트페리아는 제가 흥정해 놓고 자못 놀랐다.

사실 사정을 봐주지 않고 10억 르블라로 밀고 나가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면 부담할 만했다.

“좋아, 스킬을 업그레이드하겠어.”

그 말과 동시에 선택창이 떴다. 알트페리아는 8천만 르블라라고 적힌 부분을 꼼꼼하게 확인하고, 업그레이드 버튼을 눌렀다.

파아앗―!

갑자기 손등이 빛을 내뿜었다.

그러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알트페리아는 의아해 하며 자신의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뭐야, 아무 일도 없잖아?’

고개를 갸웃거린 알트페리아는 스킬창을 열어 돈의 힘을 확인했다.

[돈의 힘: 패시브 스킬]

랭크: E

효과: 보유한 재산이 많을수록 강해집니다.

※ 보유한 재산은 계좌의 잔액과 현금을 더하여 계산합니다.

※ 보유한 재산이 10억 르블라 이하일 때 모든 능력치가 하락합니다.

※ 10억 르블라를 소모하여 랭크를 올릴 수 있습니다.

※ 보유한 재산의 잔액이 0르블라일 때 사망합니다.

‘확실히 랭크는 올랐네.’

E랭크는 기사단장의 수준과 같아진다고 한다. 그렇단 말은 이제 어느 정도 전투를 치를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는 뜻이다.

물론, 체력만 그렇고 전투 능력은 별도로 쌓아야겠지만.

그리고.

[<시스템> 현재 보유 재산: 1,240,000,000 르블라]

[<시스템> 모든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시스템> ‘돈의 힘(패시브 스킬, E랭크)’이 E랭크가 되어 ‘골드 스트라이크’가 해금됩니다!]

[<시스템> ‘골드 스트라이크(원거리 스킬, F랭크)’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랭크 부족으로 사용할 수 없었던 스킬이 해금된 모양이었다.

알트페리아는 씩 웃었다.

“마음에 들어.”

몸을 지킬 수단이 하나 더 늘었다.

[<시스템> 서포터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스콘이 떨어집니다!]

볼일 다 봤으니 이제 시스템창에 집중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의기양양해 하는 시스템창을 무시하며 알트페리아는 정리한 목록을 토대로 초대장을 작성하여 보냈다.

그리고 초대장을 받은 이들이 하나둘씩 참여 의사를 밝히며 후원 파티 참석 리스트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 * *

“초대장들 받으셨어요?”

“발트레 소공작의 후원 파티 말씀이십니까?”

“맞아요. 골든 페어리의 오너가 발트레 소공작이었다니. 깜짝 놀랐어요.”

“고아원을 후원한다죠? 아이들도 데려와도 된다고 들었어요.”

“거기에 골든 페어리의 신 메뉴를 소개한다죠! 과연 어떤 메뉴를 선보일까 너무 궁금해요!”

사교계는 알트페리아의 후원 파티 이야기로 시끌시끌했다.

아직 사교계에 데뷔하지 않았음에도 알트페리아는 사교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인물이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을 남편으로 뒀으며, 그녀 자신도 곧 북부의 영주인 발트레 공작이 될 예정이었다.

거기에 꽤 큰 상단 중 하나인 에드먼드 가문을 다시 가신으로 끌어들였고, 현재 제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가게인 골든 페어리의 오너였다.

무섭게 성장하는 사업가.

그런 그녀가 여는 파티는 개선식 축제 이후로 개인이 주최하는 것 중에서는 가장 큰 행사였다.

참석하지 않은 사람이 유행에 뒤처지는 거라는 이야기가 돌 정도였다.

한편에서는 다른 귀족 무리가 목소리를 낮추며 수군거렸다.

“그랑힐데 공작 부인도 초대장을 받으셨다던데요.”

“어머, 그 비밀에 관한 이야기는 해결하셨으려나.”

귀족들이 키득거렸다.

어떤 비밀인지 모르겠지만, 알트페리아의 입을 통해 발설되는 걸 막기 위해서 결투까지 벌였다는 이야기는 많은 자들이 알고 있었다.

“결투에 패배했으면서 뻔뻔하게 얼굴을 드러낼까요?”

“소문을 들으니 로저필드 부인이 대신 참여한다던데요.”

“대신요? 어머나……. 저라면 부끄러워서 나오지 못했을 거예요.”

그렇게 사교계는 알트페리아가 주최하는 후원 파티 이야기로 들썩였다.

* * *

시간이 흘러 후원 파티가 개최되는 날.

알트페리아는 시녀들의 도움으로 치장하고 있었다.

많은 귀족이 방문하는 자리에 소공작으로 나가는 건 처음이었다.

원래 준비한 드레스는 보라색이었지만 마지막에 생각을 바꿔 푸른색으로 선택했다.

‘오늘은 중요한 날이니까.’

이왕이면 좋아하는 색상을 입고 싶어서였다.

그녀는 자신의 은발과 잘 어울리는 짙은 푸른색 드레스를 골라 입었다.

마지막으로 거울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확인했다.

‘루크가 없어서 조금 아쉽네.’

그는 지금 입은 드레스와 잘 어울리는 푸른빛의 정장을 새로 맞췄다.

‘우리 사이를 제대로 어필할 수 있는 기회인데!’

커플룩을 입고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아주 잘 어울렸을 것이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정장을 입은 루크의 모습도 보고 싶고.

‘뭐, 어쩔 수 없지.’

크레치만의 봉인이 불안정하단다.

언제 봉인이 풀릴지도 모르니 루크는 계속 마탑에서 대기해야 했다.

똑똑, 누군가 대기실 문을 두드림과 동시에.

“릴리.”

말끔한 정장 차림의 리암이 방 안에 들어왔다.

“리암? 여긴 어쩐 일이야.”

“후원 파티 초대장을 보내줬잖아. 아버지보다 먼저 출발해서 미리 도착했지.”

그가 한 손을 정중하게 내밀었다.

“남편이 자리를 비웠다며? 내가 릴리의 에스코트를 맡아도 될까?”

“나는 선 넘는 건 싫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남녀 간의 감정으로 에스코트하는 것이 아니야. 오늘 신 메뉴를 소개할 거잖아. 동업자로서 함께하자는 거야.”

리암의 말대로 앞으로 골든 페어리에서 판매할 신 메뉴를 후원 파티에서 소개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눈에 리암은 동업자가 아니라 정부쯤으로 보일 것이다.

알트페리아는 안경을 벗으며 생글생글 웃는 그를 빤히 바라봤다.

리암의 등 뒤에서 두툼한 꼬리가 살랑거리는 것 같았다.

‘말은 참 그럴싸하게 한단 말이야.’

명분은 확실하게 준비했지만, 안경을 벗고 앞머리를 깔끔하게 올리고.

옷도 평소보다 훨씬 신경을 썼는지 세심한 자수가 꼼꼼하게 들어가 화려한 것이 다른 꿍꿍이가 훤히 보였다.

알트페리아는 눈웃음을 지었다.

아무런 감정이 없는 상대에게도 새로이 마음이 피어날 정도로 찬란한 눈웃음에 리암은 멈칫했다.

“고맙지만, 난 에스코트가 필요 없어.”

“…….”

“내가 발트레 소공작인데 누가 나를 이끌겠어.”

“하, 이렇게 차일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맞는 말이니까 얌전히 파티장에나 가서 기다릴게. 후계자님.”

리암은 순순히 물러났다.

알트페리아는 발트레를 상징하는 하얀 매 장신구를 가슴에 직접 착용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시녀를 데리고 천천히 걸어 파티장으로 향했다.

“와하하―!”

이번 파티는 장학재단을 오픈해서 개최한 것이다.

아이들을 후원하는 재단인 만큼 아이를 데려와도 좋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파티장에 다가가니 아이들이 까르르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알트페리아 폰 발트레 소공작님이 입장하십니다.”

호명관의 외침에 맞춰 알트페리아는 파티장 안으로 들어갔다.

알트페리아는 결혼을 했다.

그런데 남편은 어디 두었는지 홀로 입장하는 그녀를 보며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혹시 부부싸움을 한 건가?’

몇몇은 좋지 않은 시선까지 내보였다.

발트레 소공작의 이름으로 개최한 첫 파티였다.

조금 긴장되긴 하지만 앞으로 발트레의 이름으로 수많은 공식 행사에 다닐 것이 아닌가.

‘이 정도쯤이야.’

그녀는 무수히 많은 시선에 미소로 회답하며 회장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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