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편이 예쁘고 재력이 넘침-85화 (85/91)

제85화

루크는 며칠 전 일을 회상했다.

마탑에 발트레의 자선 파티 초대장이 날아왔다. 알트페리아가 칼립스에게 보낸 것이었다.

크레치만의 감시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 없는 걸 알고 있지만 의리상으로 보낸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개자…….

아니, 칼립스는 다른 뜻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꼭 찾아와 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당장 소공작을 만나러 가겠다! 자네는 나 대신 마탑에 남아 크레치만을 감시하도록.”

“당신이 왜 가는 겁니까. 우리 둘 중 간다고 하면 남편인 제가 가야 합니다.”

“초대장은 나에게 왔다.”

“저는 발트레의 안사람이라 초대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 파티 참여는 제가 하는 것이 맞습니다.”

“자네는 크레치만을 상대하기로 하지 않았나.”

“아직 봉인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봉인은 사이몬 공작님께서 맡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요즘 보니 자네는 나보다 더 수식에 능한 것 같더군. 대신 맡겨도 충분할 것 같아.”

“드래곤의 봉인을 말입니까? 저는 마력이 없어서 봉인을 맡을 수 없습니다.”

“아니, 충분히 할 수 있어.”

“말이 되는 소릴 하시길!”

처음엔 그렇게 말싸움만 했다.

하지만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걸 깨달은 사이몬은 루크를 깔끔하게 무시하고 발트레로 떠날 채비를 했다.

결국 루크는 오라를 개방하고 그와 대적했다.

알트페리아가 알면 놀랄 것 같아 그녀에게 보고는 하지 않기로 했다.

‘……약간 다툰 것뿐이니까.’

비록 마탑의 마법사들이 루크가 수학 선생이 아니라 전장을 피바다로 만든 소드마스터라는 걸 깨달으며 살기에 노출되어 벌벌 떨었지만.

칼립스도 봉인구를 개방해서 마탑이 무너질 뻔했지만, 뭐 나름 말로 해결해서 잘 끝났다.

나름대로.

* * *

해가 지고 저녁이 되자 아이를 데려온 귀족들은 이만 돌아갔다.

그들의 손에는 골든 페어리의 신 메뉴인 알초콜릿이 몇 개씩 들려 있었다.

아예 상자째로 구매한 사람도 있었다.

‘후후, 잘 팔릴 줄 알았어.’

직접 알을 까서 장난감을 확인하는 재미에 아이들은 너도나도 사달라 난리였다.

‘성공이야.’

무사히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같았다.

기분이 좋아진 알트페리아는 파티의 저녁 진행 순서에 맞춰 나온 칵테일을 홀짝였다.

그런 그녀의 눈에 로저필드 백작 부인이 들어왔다.

재판 이후로 로저필드 가문과 어울려주는 이는 없었다.

그녀는 그 누구와도 한마디도 나누지 못한 채 화분에 핀 버섯처럼 초대받지 못한 손님 티를 팍팍 내며 덩그러니 서 있었다.

본인도 뻘쭘할 텐데.

대체 여긴 왜 왔는지.

그리고 왜 안 가고 있는지.

‘마치 뭘 꾸미고 있는 것 같단 말이야.’

신 메뉴 때문에 찾아온 거면, 아이들이 돌아갈 때 맞춰 퇴장하면 된다.

끝까지 버티는 꼴을 보면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에게 나쁜 일일 게 뻔했다.

‘나라면 오늘 밤 저지른다.’

사람들이 술에 취한 상태고, 마침 구름도 껴 어두워서 일을 치르기 딱 좋았다.

파티에 참석한 이유도 알리바이를 위해서라면 딱 들어맞는 거 같기도 하고.

* * *

바닥이 딱딱하고 차가웠다.

알트페리아는 최악의 승차감을 느끼며 깨어났다.

“아야야……!”

이마가 욱신거렸다. 어딘가 이마를 찧은 모양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신은 현재 허름한 낯선 마차에 타고 있었다.

손님용 마차는 이렇게까지 낡지 않았다.

아마도 파티 준비를 위해 식자재를 싣고 온 짐마차 중 하나인 모양이었다.

‘에효, 어떻게 예상을 벗어나지 않아.’

뭔가 수상한 짓거리를 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진짜로 자신을 납치할 줄이야.

‘죽고 싶어서 별짓을 다 하지.’

자신이었다면 암살 길드가 의뢰를 맡지 않는다고 피할 때부터 의아함을 느끼며 건드리지 않았을 건데.

마차 밖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이봐, 왜 갑자기 멈춘 거야?”

“마차 바퀴가 이상해. 한번 살펴봐야겠어.”

뭔가 문제가 생겼는지 달리던 마차가 멈췄다.

알트페리아는 마부 쪽을 흘끗 보았다.

자신을 노리는 자들에 관한 정보는 이미 리베르트가 모아줬다.

‘용병이라지.’

돈만 주면 뭐든 하는.

그것도 감히 붉은 로브의 이름을 함부로 빌려 쓴.

알트페리아는 작은 마차 창문 밖을 힐끗거렸다.

이미 해가 져 어두웠고, 저 멀리서 부엉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양손을 꼼지락거렸다.

평범한 영애라고 생각해서 묶지 않은 모양이었다.

‘내가 약한 게 맞긴 하지만.’

그렇다고 기본적인 조치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허약한 사람 취급하는 건 조금 울컥하는걸?

‘이제는 기사단장 수준은 된단 말이지!’

이래 봬도 대비는 전부 되어 있었다.

혹여 일이 잘못될 것에 대한 대책 말이다.

[골드 스트라이크: 원거리 스킬]

랭크: A

효과: ‘이름을 잃어버린 존재’가 사용하던 리볼버를 소환하여 강력한 한 방을 쏘아 보냅니다.

※ 탄환당 최소 1억 르블라가 소모됩니다.

※ 액수가 클수록 공격력이 향상됩니다.

시스템을 괴롭혀, 할인을 잔뜩 받아 랭크를 A까지 올려놨다. 비록 한 방 쏠 때마다 1억 르블라씩 쓰게 된다는 점은 슬프지만.

끼이익―

달리던 마차가 멈춰 서더니 마차 문이 열렸다.

곧이어 한눈에 봐도 용병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곰과 닮은 사내가 셋 있었고, 정체를 숨기려는 듯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이 추가로 보였다.

곰을 연상시키는 우람한 사내들 중 하나가 가까이 다가왔다.

“이봐. 이제 곧 출발할 테니 얌전히 있어. 빨리 죽고 싶지 않다면.”

경고하듯 내뱉는 목소리가 음산했다.

‘돈의 힘’ 스킬을 랭크업해 신체 능력은 좋아졌지만 경험이 많은 용병을 상대로 이기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기죽지 않았다.

“내 저택에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할 필요가 없는걸? 너야말로 조심하는 게 좋을 걸. 제국의 소공작을 이렇게 대했으니, 목이 잘려나가는 걸로 끝나지 않을 거야.”

“우리에게 귀족들이 정한 규칙 같은 걸 들먹여봤자 관심 없다.”

“맞아. 소공작이 아니라 공작이어도 무섭지 않으니 그딴 협박 같은 건 통하지 않아.”

용병들이 킬킬거렸다. 알트페리아는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돈만 주면 뭐든 하는 용병이니까?”

“그래.”

“아니지. 나라는 물론 가족까지 팔아치워서 겁이 없는 거잖아.”

리베르트가 조사해 온 것에 의하면, 그들은 멸망한 공국 출신들로서 내전이 벌어지자 가족을 돈에 팔아넘기고 제국으로 도망쳐 온 거였다.

인간미를 모두 버려서 두려움이 없다, 본인들은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진짜 무서운 건 따로 있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

저희끼리 웃던 용병들이 입을 다물었다.

알트페리아가 입을 열었다.

“붉은 로브 용병단이라. 그 이름이 뭔지 알긴 알고 쓰는 거야?”

“우리 이름까지 알고 있군.”

“네가 팔아버린 동생의 이름이 한스라는 것까지 다 알고 있지.”

용병의 눈매가 싸늘해졌다.

눈 앞의 계집은 자신의 속사정까지 훤히 꿰뚫고 있었다.

그 말은 이번 의뢰의 내용까지 알고 있을 수 있단 것이다.

“정보가 새어 나간 것 같습니다. 여기서 입막음하겠습니다.”

원래 여자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처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차 바퀴가 고장 난 바람에 발트레 저택의 숲에서 멈추게 되었다.

거기에 그녀는 자신이 표적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미 어떤 수를 썼을지도 모르니, 예정대로 다른 곳으로 옮길 시간이 없었다. 여기서 죽여야 할 듯했다.

곰 같은 사내가 살기가 가득 찬 눈으로 알트페리아를 내려다봤다.

“어차피 죽이는 건 똑같으니, 의뢰비는 제대로 받을 수 있어.”

알트페리아는 저를 향해 눈을 번뜩이는 용병을 올려다봤다.

‘얘들은 진짜 실력이 형편없는 용병이구나.’

돈의 힘 스킬을 업그레이드한 덕분인지 알트페리아는 귀가 밝아졌다.

아까부터 들리던 짐승들의 울음이 전부 사라졌는데 주변을 살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이런 기본도 되어 있지 않으면서 어떻게 암살 일을 한다고 나섰을까.

알트페리아가 픽 웃었다.

“붉은 로브라. 이름 참 유치하단 말이야.”

“흥, 그깟 말에 우리가 도발이라도 당할 것 같나? 귀족이라면 유언으로 조금 멋진 문구를 내뱉는 건 어떨지.”

“너희들에게 한 말 아닌데?”

“뭐?”

그들은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주변이 지나치게 고요하단 걸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아무리 해가 진 숲속이라고 하나 이렇게까지 고요할 리가 있나?

특히나 지금은 날이 따뜻하기에 밤에 우는 풀벌레들이 많아질 시기인데.

두리번거리던 용병의 눈에 천천히 걸어오는 시녀가 한 명 보였다.

시녀의 얼굴은 어두운 달밤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빨갰다.

뜬금없이 나타난 시녀가 외쳤다.

“아이참, 소공작님은 언제 적 얘길 꺼내시는 거예요!”

“…….”

“그…… 그땐 저도 어려서, 그 당시 검은 로브라는 연극이 유…… 유행해서 그랬다고요!”

왠지 대화의 흐름을 보니까 저 시녀가 붉은 로브인 것 같았다.

황당해 하며 용병이 물었다.

“설마 저 여자가 붉은 로브인 건가?”

“맞아.”

“쯧, 우리도 이름을 바꿔야겠군. 저런 시녀가 뭐라고 다들 무서워해?”

암살 길드원들이 붉은 로브라는 이름에 벌벌 떨었다.

그렇기에 그 이름을 썼는데 실체는 저런 시녀라니 흥이 떨어졌다.

그들의 모습에 알트페리아는 픽 웃었다.

풀벌레조차 강자를 알아보고 모조리 숨어 숨소리도 내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검 좀 쓴다는 놈들이 눈앞에 있는 에델의 살기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너희들 진짜 하수구나.”

알트페리아의 목소리에 에델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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