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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예쁘고 재력이 넘침-86화 (86/91)

제86화

에델이 진심으로 나서면 용병들은 모조리 저세상으로 떠날지도 모른다.

계획을 위해서는 반만 죽여놔야 한다.

“적당히 해.”

“네, 소공작님.”

알트페리아를 향해 정중하게 허리를 굽힌 에델이 바로 섰을 땐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싸늘한 시선에 이제야 분위기를 파악한 용병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이런 소문을 들었어. 발트레 가문의 시녀가 소드마스터가 된 데이모스 경을 이겼다는.”

“그랑힐데의 데이모스 경을 말이야? 에이, 설마…….”

“저런 조그만 시녀가 데이모스 경을 이겼겠어? 다른 시녀겠지!”

데이모스는 용병들도 익히 알 정도로 뛰어난 검사였다. 그런 그가 눈앞에 있는 시녀에게 패배했다니 다들 믿지 못했다.

흠, 공작 부인과의 결투를 말하는 거구나.

알트페리아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 소문의 주인공이 맞아.”

별것 아니라며 에델을 흘겨보던 용병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그들을 정리하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으으윽!”

용병들은 하나둘씩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그리고 전세가 역전되자마자 도망치던 검은 로브를 쓴 남자도 잡아 왔다.

에델에게 뒷덜미를 붙잡힌 채 질질 끌려온 남자가 발버둥 쳤다.

“이이익! 이거 놔라!”

목소리를 들으니 누군지 알 거 같았다.

알트페리아는 한심한 그의 모습에 에효,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라면 정체를 들키지 않으려고 애썼겠어요. 로저필드 백작님.”

움찔거리던 남자가 이를 까드득 갈며 로브를 벗었다.

부인만 자선 파티장에 보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본인도 왔다 이거지.

“골든 페어리를 엉망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납치 시도까지 하다니. 대체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건가요?”

알트페리아가 에델에게 고갯짓했다.

뜻을 알아차린 에델이 붙잡은 로저필드 백작을 풀어줬다.

갑작스레 풀려난 백작은 휘청거리며 자세를 잡았다.

“정말 몰라서 묻나?”

“목숨을 위협받을 정도로 나쁜 일은 하지 않았는데요.”

“네가 우리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었잖아!”

“제가요?”

정말로 손을 썼으면 로저필드의 성을 달고 있는 사람들은 벌써 다 땅에 파묻혔을 텐데.

그들의 목이 잘 붙어 있다는 건 자신이 손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교계의 모든 귀족이 우리를 무시해! 이게 다 네년 탓이다!”

“왜 제 핑계를 대세요. 제 물건을 훔쳐놓고 발뺌한 백작 부인의 잘못이잖아요.”

그녀의 말대로 브로치 하나 때문에 재판으로 가게 만든 건 제 부인의 잘못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이성적으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상태는 이미 지났다.

“너랑 엮인 다음에 앨런이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고 있어! 내 아들이 망가진 건 전부 네년이 수를 썼기 때문이야!”

“내 참, 그러게 누가 바람을 피우래요?”

오히려 정신적 피해를 받은 건 이쪽인데.

가해자 주제에 정신을 못 차리고 피해자인 척하고 있다니 황당했다.

“사내가 여자 좀 만날 수 있지!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건가!”

개소리만 늘어놓는 사람이랑 대화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였다.

알트페리아는 입꼬리를 한쪽으로 삐죽 올렸다. 저를 비웃는 그녀의 모습에 로저필드 백작의 이마에 핏줄이 툭 불거졌다.

“다른 건 제쳐놓고서라도 루크를 만났으니까 앨런과의 파혼은 당연히 정해진 거예요.”

“뭐?”

“저는 예쁜 사람을 좋아하는데, 제 남편에 비해 앨런은 한참 부족하잖아요.”

백작이 주먹을 꽉 쥐며 부들부들 떨었다. 계획이 엉망이 되었다.

“이 건방진……!”

더는 참아야 할 필요가 없단 걸 깨달은 백작이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알트페리아는 뒷걸음질 두 번으로 가볍게 피했다.

전문적인 전투 훈련을 받지 않은 중년 남자의 움직임 따위.

‘오, 이 정도 움직임은 훤히 보이잖아.’

피하는 것 정도가 아니라 싸워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맞서 싸울 필요는 없었다.

그의 공격을 가볍게 피한 알트페리아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나며 넘어졌다.

털퍼덕―!

“꺅!”

물론 비명도 다 연기다.

밝아진 귀 덕분에 준비가 끝났다는 걸 깨달았으므로.

반면 백작은 얼떨떨해 했다. 주먹에 닿는 느낌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 주먹을 피하다가 넘어졌군.’

그렇게 생각하며 그가 외쳤다.

“너만 없으면 크리스털 크라운도 전처럼 다시 손님이 많아질 테지!”

치맛자락이 흙으로 엉망이 된 알트페리아가 외쳤다.

“남의 레시피나 훔치고……. 한 술 더 떠서 오래된 재료를 쓰니까 손님 대신 쥐들만 뛰어다니는 거죠!”

백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상관없다.

진실을 아는 알트페리아는 여기서 죽을 테니까.

“시끄러워! 사업가로서 재료비를 아끼는 건 당연해! 골든 페어리도 수를 쓰고 있지 않나!”

“저희는 일부러 좋은 재료만 골라 맛있는 거라고요! 묵은 재료를 쓰는 크리스털 크라운과 달리!”

백작이 비틀대는 용병들에게 외쳤다.

“에잇, 시끄럽다. 거기! 다들 일어나서 얼른 소공작을 죽여!”

그 때였다.

“여…… 여보!”

로저필드 백작은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멈칫했다.

소리가 난 장소에는 꽤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서 있었다.

뭐야, 저 인파는?

‘대체 언제부터 있었던 거야?’

설마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들은 거 아니겠지?

그는 조심스레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확인했다.

싸늘하다.

하나같이 상종하지도 못할 쓰레기를 보는 것처럼 차가운 시선이었다.

“아야야……. 아파……. 흑.”

바닥에 주저앉은 알트페리아가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알트페리아가 맑은 눈물을 똑똑 흘리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백작에게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다.

“보셨어요?”

“봤어요. 자기 아들뻘 되는 여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걸요…….”

놀란 로저필드 백작이 자신의 부인에게 물었다.

“어…… 언제부터였소?”

“사교계의 모든 귀족이 우리를 무시해! 부터요…….”

그 말은 다 들었다는 거잖아!

용병보고 알트페리아를 죽이라고 지시한 것.

크리스털 크라운이 재료 값을 아끼기 위해서 오래된 재료까지 사용한다고 자백해 버린 것.

백작은 몸에서 피가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귀족 증인이 한둘이 아니었다. 빠져나갈 구석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 로저필드 가문은 끝이었다.

억지로 눈물을 쥐어짜 내느라 고생 중인 알트페리아의 귀에 자리 잡은 아티팩트에서 루크의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3분 남았습니다.

아, 잠깐. 잠깐!

다 끝났는데 계속 시간 재고 있는 거냐고!

* * *

아직 알트페리아가 납치되기 전, 발트레의 저택에선 한창 자선 파티가 진행 중이었다.

아이를 데려온 손님들은 돌아갔다.

밤까지 발트레에 남은 손님들은 다들 술안주를 가져와 연인이나 부부끼리 오붓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덕분에 루크와 알트페리아도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루크는 얇게 썬 레몬을 장식으로 올린 칵테일을 홀짝이는 알트페리아를 내려다봤다.

그녀의 하얀 볼은 눈에 띌 정도로 살짝 붉어져 있었다.

안색을 천천히 살피던 그가 입을 열었다.

“얼굴이 붉어지셨습니다.”

“빨갛죠? 취해서 그래요. 칵테일을 마시면 금방 열이 오르더군요.”

“지난번에는 이렇게까지 취하지 않았는데.”

지난번?

아, 개선식 축제의 하이라이트. 불꽃놀이를 보면서 치맥을 했을 때 말이구나.

하긴, 소맥도 나름 칵테일이긴 하다.

알트페리아는 그를 바라보며 장난스레 웃었다.

“흐음, 예정에 없던 손님이 찾아와서 놀라서 그런가?”

그리고 잔을 내려놓은 그녀는 자신의 볼을 만지작거렸다.

그녀의 행동을 빤히 바라보던 루크가 중얼거렸다.

“저도 만져봐도 되겠습니까?”

입 밖으로 내뱉은 루크는 멈칫했다.

이런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걸 보니 아무래도 자신도 조금 취한 모양이었다.

“제 볼을요?”

그녀는 재밌다는 듯 까르르 웃었다.

“사이좋은 부부 같아 보이겠는걸요? 좋아요, 허락할게요.”

승낙받은 그는 조심스레 손가락을 움직여 그녀의 볼을 매만졌다.

‘따뜻하다…….’

부드럽고, 적당히 탄력이 있어 말랑말랑한 느낌도 든다. 그는 엄지로 볼을 꾹 눌렀다.

“뭐예요, 간지러워요.”

키득거리는 그녀는 귀 끝까지 빨개져 있었다.

“술기운입니까?”

아니면 내 손길에 열이 오르신 건가.

그는 중얼거리며 흘러내린 그녀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정돈했다.

이대로 계속 그녀의 머리카락을 매만지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 세이룬이 찾아왔다.

“소공작님.”

짧은 휴식은 여기까지라는 듯 세이룬의 표정은 진지했다.

루크는 아쉬워하며 손을 떼어냈다.

“무슨 일이야?”

고개를 꾸벅 숙인 세이룬이 알트페리아의 귓가에 속삭였다.

“로저필드 가문이 움직였습니다.”

“지시한 대로 대응해.”

“예, 소공작님.”

마치 꿈에서 깨어나듯, 몽롱한 미소를 짓고 있던 알트페리아의 눈동자가 또렷해졌다.

곁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루크가 슬며시 끼어들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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