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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예쁘고 재력이 넘침-88화 (88/91)

제88화

많은 사람이 이 상황을 다 봐버렸다.

이제 와서 자신의 다리로 걸어 침실에 가는 건 불가능했다.

알트페리아는 얌전히 루크에게 안겨서 침실에 도착해 시녀를 불렀다.

“에드먼드 후작님을 도와 로저필드 백작 쪽을 정리해.”

“…….”

“그리고 나 대신 자선 파티 마무리도 진행하도록.”

지시를 듣던 시녀들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인 것과 동시에 알트페리아의 안색을 살폈다.

“예, 일은 저희에게 맡기세요. 그보다 소공작님, 몸은 괜찮으세요?”

“로저필드 백작이 그랬죠? 우리 연약한 소공작님을 다치게 하다니……!”

“소공작님께서 어떻게 되신다면 저는…… 로저필드 가문을 제거해 버릴 거예욧!”

음, 나 멀쩡한데.

하지만 시녀들이 난리라서 일단 진료는 받기로 했다.

“다친 곳 하나 없으십니다.”

의원의 입에서 멀쩡하다는 이야기가 나온 걸 들은 시녀들은 그제야 안심하며 흩어졌고, 뒷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트페리아는 침실에 루크와 단둘이 남게 되었다.

그녀는 루크를 흘끗 보았다.

아까부터 루크의 상태가 영 좋지 않아 보였다.

뭔가 사나운 기운을 억누르는 것 같았다.

결국 알트페리아는 입을 열었다.

“루크, 화났어요?”

“아니, 놀라서 그렇습니다.”

아닌 것 같은데.

그의 표정만 보면 당장이라도 주먹을 휘둘러 울분을 토해 낼 것 같아 보였다.

그녀의 시선을 슬그머니 피한 그가 제 입술을 매만지더니 다시 입을 뗐다.

“사실 화가 난 게 맞습니다.”

“방금 의원 말도 들었죠? 저는 멀쩡하고 계획대로 잘되었어요!”

“화가 나는 건 저 자신에게입니다. 당신이 해내리라 믿었는데도……. 불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저에게.”

그는 그렇게 말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한눈에 봐도 화가 잔뜩 나 보이는데 그 대상이 본인이라니.

믿지 못한 스스로가 용서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젠 다 끝났어요. 루크도 그만 자신을 용서해요!”

“완전히 끝난 건 아니죠.”

그의 대답에 알트페리아는 입을 살짝 벌렸다.

그녀의 기준으로 끝은 백작이 자신의 죄를 많은 사람 앞에서 자백했을 때였으니까.

“설마 지금까지 시간을 계속 재고 있던 건 아니죠?”

넘어진 척할 때도 몇 분 남지 않았었는데!

지금이라면 루크가 정해둔 시간을 넘겨버렸다. 이제 약속대로 루크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로저필드 백작을 처리할지도 모른다.

루크가 픽 웃었다.

“정해둔 시간 말입니까. 한 시간하고도 12분이 지나버렸습니다.”

악, 진짜 재고 있었어!

그의 표정은 작은 미소도 없이 매우 진지했다.

그러니까 진담이라는 것이다.

“잠깐만요! 아까 끝난 거 아니었어요?”

“…….”

루크의 눈매가 더욱 날카로워졌다.

아니, 왜 더 진지해지는 거죠.

예상외의 일이 발생한 바람에 알트페리아는 침을 꿀꺽 삼켰다.

“풋.”

무거운 침묵이 유지되던 중 그가 웃음을 터뜨리며, 딱딱하게 굳은 표정도 풀었다.

장난을 친 모양이었다.

“뭐예요. 진짜 놀랐잖아요!”

“무엇을 그리 걱정하시는 겁니까.”

“수습할 걱정요. 루크가 일을 저지르면 규모가 굉장히 커질 거 같거든요.”

르블레아 멸망의 날이라도 찾아올 것 같은 걷잡을 수 없는 느낌이라고.

“저는 리아가 놀랄 법한 일은 하지 않을 겁니다.”

“말만 그렇게 하시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다행이네요.”

지금 당장은 놀랄 일이 없다는 거니까.

“저에 대한 신뢰가 낮으신 듯합니다.”

“그만큼 매우 놀라서요. 조금 전 일 말고도 또 있어요. 오늘 갑자기 나타난 것도 그래요. 미리 언질도 없었잖아요.”

“선물이었거든요. 제가.”

괜히 잘 차려입은 줄 아십니까?

그가 눈웃음을 지었다. 자신을 안고 서둘러 오느라 근사했던 옷은 흐트러졌고, 덩달아 흙먼지도 여기저기 묻었다.

그럼에도 루크는 멋있었다.

“큰 선물을 받았네요.”

덕분에 로저필드 백작 쪽도 매끄럽게 해결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기껏 잡은 기회를 이렇게 놓칠 수는 없었다. 알트페리아가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휴식은 이만하면 되었고, 슬슬 마무리하러 가요.”

의욕이 넘쳐나는 그녀와 달리 루크는 염려스러운 듯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쓰러지셨잖습니까. 좀 더 누워 계시는 게 좋습니다.”

“그건 그냥, 연기였어요! 저는 멀쩡해요.”

“…….”

“스킬도 업그레이드해서 오히려 튼튼해졌다고요!”

입을 다문 루크의 표정은 마치 시녀들이 ‘우리 연약한 아가씨……’라고 할 때와 같았다.

‘약골 취급은 사양이라고!’

알트페리아는 루크의 손을 덥석 잡았다. 느닷없는 그녀의 행동에 놀란 루크는, 이내 정신을 차리곤 손을 감았다.

그런데 얽혀 있는 알트페리아의 손길이 이상했다. 단순히 손을 잡는 게 아니라 팔씨름을 하는 것처럼 힘을 주는 게 아닌가.

그는 알트페리아를 내려다봤다.

입은 앙다물고, 눈썹 사이를 좁히고 있었다. 진지한 표정으로 힘을 주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무척이나 귀여웠다.

그가 일부러 손에서 완전히 힘을 풀자 바깥쪽으로 팔이 꺾였다.

“졌습니다.”

루크는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지만, 알트페리아는 툴툴댔다.

“일부러 손에서 힘을 뺐잖아요. 아직 제힘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다시 해요.”

“알겠습니다.”

“제대로 해요. 봐주지 말고요.”

알트페리아의 성화에 루크는 손에 힘을 줬다.

“예.”

맞잡은 그녀의 손힘이 점점 더 강해졌다. 루크는 자못 놀랐다.

‘생각보다 완력이 있으신데.’

루크가 발트레 저택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그녀와 춤을 추면서 손을 맞잡았었다.

제 손안에 느껴지는 그녀는 조금만 힘을 주면 부서질 것같이 연약하기만 했다. 그래서 그녀를 대하는 게 유독 조심스러웠는데.

하지만 지금의 알트페리아는 제가 아주 살짝 힘을 줘도 될 것처럼 강인한 힘이 느껴졌다.

‘그렇다면 앞으로 좀 더 강하게 끌어안아도 되려나?’

물론 허락받고 하겠지만 이전보다 더욱 힘을 줘, 그녀에게 저 자신의 존재 자체를 느끼게 하고 싶었다.

오로지 자신만을 느끼도록.

“어때요? 랭크 하나 올렸을 뿐인데도 많이 강해졌죠?”

“…….”

“루크?”

그에게서 답이 없자 알트페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아뇨, 아닙니다. 아무것도.”

자신이 삿된 생각을 했다는 걸 깨달은 루크의 귀 끝이 살짝 붉어졌다.

* * *

백작 부인인 다프네는 끌려가는 남편을 보며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명백한 현행범이었다.

이상하게도 알트페리아를 제거해 달라는 의뢰를 수락하는 전문 길드가 없었다.

급한 대로 돈만 주면 뭐든 하는 용병을 고용했는데 사전 조사를 제대로 진행할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발트레 저택의 지리를 잘 알고 있는 로저필드 백작이 용병과 함께 움직이기로 했었다.

직접 움직이는 만큼 위험부담이 큰일이었다.

‘어휴, 자신 있다더니!’

절대 실패할 리 없다고 호언장담 해놓고선 현행범으로 붙잡혀 일만 더 복잡해져 버렸다.

다프네는 루크와 함께 상황을 지켜봤다. 덕분에 현장에서 공범으로 몰리는 것은 피할 수 있었다.

잡혀가는 것은 면했지만, 로저필드 백작의 폭로 때문에 그녀의 낯빛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모여 있던 귀족들은 소란스레 웅성거렸다.

“오래된 재료라니. 상한 걸 사용했단 말인가요? 어쩐지 크리스털 크라운에 다녀온 뒤로 배가 아픈 적이 있었어요.”

“쥐가 뛰어놀았단 생각을 하면 속이 울렁거려요. 제가 그런 음식을 먹었다니요…….”

“어쩜, 먹을 걸로 장난을 칠 수 있나요? 믿고 먹었는데 실망이 커요!”

다프네는 생각에 빠졌다.

실제로 크리스털 크라운은 곰팡이가 핀 과일과 쥐가 들락날락한 밀가루를 사용하고 있었다.

‘티가 났을 리는 없어!’

완성된 디저트들은 겉보기엔 멀쩡했으니까.

크리스털 크라운은 로저필드 가문의 주요 사업이었다.

제도에서 가장 인기 많은 디저트 가게는 귀족들의 돈을 쓸어 담고 있었다. 이대로 망하게 둘 수 없었다.

“백작 부인,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한번 설명해 보세요!”

모인 귀족들의 외침에 다프네는 주변을 흘끗 살펴봤다.

알트페리아는 루크와 함께 사라졌다. 그녀 대신 주변을 정리하고 있는 에드먼드 후작은 바빠 보였다.

아직 수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 해.’

가문을 망하게 할 순 없으니까.

다프네는 애써 침착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뭔가 착오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잘못된 정보는 바로잡아야 하겠지요.”

모여 있던 귀족들이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다프네를 바라봤다.

“레시피를 훔쳤다는 건 무슨 소리예요?”

“다른 가게의 유명한 셰프를 영입했다는 뜻입니다. 셰프의 머릿속에 레시피가 있으니 그런 소릴 한 듯합니다.”

많은 식당이 큰돈을 들여서 경쟁 식당에서 셰프를 빼 오곤 한다. 그 과정에서 가게의 정보가 넘어가는 일도 있었다.

“그렇다면 오래된 재료는요?”

“소공작이 말한 오래된 재료는…… 잼에 넣는 와인을 말하는 것 같군요. 잘 아시다시피 와인은 오래될수록 숙성되어 근사한 향을 냅니다. 오래된 와인을 사용하는 것이 크리스털 크라운의 특별한 맛의 비밀이었는데 이렇게 밝혀질 줄은 몰랐네요.”

실제로 와인을 넣긴 하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프네의 말에 몇몇 귀족이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크리스털 크라운의 마카롱은 풍미가 좋죠. 좋은 와인을 사용하나 봐요.”

“저는 그 특유의 향이 좋아서 자주 사 먹었어요.”

“사실 저도…… 파티에 오는 길에 마카롱을 한 상자 샀어요.”

군중들이 다프네가 뿌린 떡밥을 덥석 물었다. 빠져나갈 구멍을 발견한 다프네는 신이 나 거들었다.

“알다시피 오래된 와인일수록 비쌉니다. 큰 부담이긴 해도 와인 하나 제대로 구해놓으면, 다른 재료를 추가로 많이 사용하지 않아도 됩니다. 상대적으로 재료비도 아낄 수 있지요!”

짙은 향이 나는 와인을 사용했으니 그만큼 다른 재료의 양을 줄인다.

돈을 아낀다는 이야기는 이런 변명으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와인이라면 오래 숙성해도 괜찮죠. 오히려 향이 더 좋아지니까요.”

“하긴, 숙성된 과일 특유의 향이 나긴 했어요. 와인을 사용했던 거군요.”

“저는 살짝 톡 쏘는 향이 와인 같다고 생각했어요.”

오랫동안 크리스털 크라운을 이용했던 단골들의 의견에 다른 사람들도 동조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분노가 가라앉자 다프네는 마음이 편해졌다. 대강 정리가 된 것 같으니 자리를 얼른 떠서 크리스털 크라운에 있는 진짜 증거들을 치워버려야겠다고 생각하던 그 찰나였다.

“재밌는 이야기를 하고 계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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