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1화
로저필드 백작의 처벌이 정해졌다.
그는 제도와 멀리 떨어진 유배지인 탑에 보내졌다. 온갖 죄인을 가두는 탑에서 평생을 보내게 될 거였다.
귀족의 신분으로 탑에 들어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엄벌을 원하는 자가 많아 처벌이 가중되었기 때문에 유배형으로 결정되었다.
로저필드 백작이 탑으로 끌려간 뒤에도 제도의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과장을 좀 하자면 제도에 사는 사람 중 크리스털 크라운을 이용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크리스털 크라운은 귀족과 평민.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이용한 가게였으니까.
많은 사람이 고객이었던 만큼, 크리스털 크라운의 위생 상태에 관한 소문은 삽시간에 제도 전체에 퍼졌다.
피해자가 한둘이 아니었기에 불안감은 점점 증폭되었다.
바깥 음식은 믿을 수 없다며, 귀족들의 사교장은 살롱에서 저택으로 옮겨졌다.
초대를 받아서 모인 귀족들이 하나둘씩 입을 열었다.
“요즘 밖에서 음식 사 먹기가 무서워서 외출을 삼가고 있어요.”
“어휴, 애초에 로저필드 가문의 가게란 걸 알았다면 이용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에요.”
크리스털 크라운의 사장이 누구인지 공공연하게 밝혀진 적도 없었고, 가게 사장에게까지 관심을 가지는 경우도 잘 없으니 당연했다.
“맞아요. 그래도 사장이 누군지 알게 되었으니 피해 보상 청구를 보내긴 쉬웠어요. 다들 보내셨죠?”
“당연하죠. 그런 역겨운 걸 팔았다니. 제대로 위로받아야 마음이 편해질 거 같아요!”
비단 여기 모인 귀족뿐만 아니라 크리스털 크라운을 이용한 사람이라면 모두 로저필드 가문에 피해 보상을 청구했다.
황실 기사가 크리스털 크라운을 꼼꼼하게 조사하고 내놓은 결과였다.
증거가 명확하기에 로저필드 가문으로서는 배상해 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다른 곳들마저 크리스털 크라운과 비슷한 상태라면 앞으로 거리의 찻집과 살롱은 이용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렇게 모이는 것도 좋지만 슬슬 거리에도 나가고 싶어요.”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폐하께서 제도에 있는 가게 전부를 조사하도록 지시하셨다더군요.”
“다행이에요!”
“깐깐한 규정을 만들어서 조사하신답니다. 현재 모든 항목을 통과한 건 두 곳뿐이더군요. 설마 이 넓은 제도에서 두 가게만 있을까요? 조사하다 보면 분명히 깨끗한 가게가 더 나올 거에요.”
“맞아요. 아, 그중 하나가 골든 페어리라죠!”
“다른 곳은 뭐라더라. 몬스테라? 술집이던데 거기는 음식 맛이 취향이 아니었어요. 아무리 깨끗한 가게라고 해도 맛이 없으면 좀…….”
“그래서인지 골든 페어리만 예약이 잔뜩 밀렸다더군요.”
크리스털 크라운이 더럽다는 소문이 퍼지는 만큼 골든 페어리가 깨끗하다는 이야기도 덩달아 함께 전해졌다.
황실까지 인정한 믿을 수 있는 가게.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너도나도 골든 페어리를 찾았다.
* * *
리베르트가 발트레 저택에 찾아왔다.
현재 그는 발트레에서 운영하는 장학재단을 맡고 있었다.
최근엔 고아원의 실태를 확인한다며 발로 직접 뛰어다니고 있어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오랜만에 본 리베르트가 입을 열었다.
“단골손님을 뺏으시겠다더니, 진짜로 다 빼앗아 오셨군요.”
골든 페어리의 건물을 매입했을 당시, 알트페리아는 크리스털 크라운의 손님을 다 뺏겠다고 공언했다.
그녀는 마치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것처럼 당당하게 외쳤지만, 사실 리베르트는 반신반의했다.
크리스털 크라운은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 고목처럼 자리를 잡은 가게였다. 굳건해 보이는 그 가게와 경쟁해서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알트페리아의 말은 이뤄졌다.
“단골을 빼앗은 것까진 좋은데 다른 문제가 생겼어.”
알트페리아는 가게 현황을 보며 눈을 가늘게 좁혔다.
“어떤 문제이십니까?”
“손님이 많아도 너무 많아!”
다른 가게가 들었다면 뒷목을 잡고 쓰러질 이야기였지만, 정말 곤란할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포장하는 손님의 줄은 가게를 몇 바퀴 돌 정도로 길고, 예약은 몇 년치까지 꽉 차버렸다.
기약하지 못한다는 말에도 꼭 예약을 하겠다며 이름을 올리는 바람에 명단은 지금도 실시간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황실이 모든 음식점을 조사한 뒤로는 더욱 이랬다.
‘이렇게 심각할 줄은 몰랐다고!’
황실이 정한 규칙 다섯 가지 항목을 통과한 가게가 골든 페어리를 포함해 단둘뿐이라니!
다른 한 곳은 제도 사람들이 극도로 싫어하는 ‘소독약 맛이 나는 술’을 파는 몬스테라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골든 페어리로 손님이 우르르 몰렸다.
제도의 위생 상태는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손님이 많아져 돈을 쓸어 담아 좋은 것도 한계가 있지.
‘이대로라면 곤란한데.’
2호점은 제도에서 멀리 떨어진 동부의 마탑에 열었는데.
“당장 커피를 수혈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소!”
“동부 사람한테만 팔라고! 제도 사람들은 꺼져!”
본점 말고도 2호점까지 제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바람에 마탑 사람들이 불만을 표하고 있었다.
골든 페어리에 가자고, 동부까지 여행을 갈 일인가!
‘하, 인기가 너무 많아.’
이대로라면 커피를 이용하지 못해 눈이 뒤집힌 마법사들이 폭동을 일으킬지도 몰랐다.
이른 시일 내 3호점을 만들어야겠다 싶었다.
그것도 사람이 많은 제도 안에다가!
우선 그전에 ‘크리스털 크라운 사태’로 덩달아 봉변을 당한 가게들을 도와줘야 할 것 같았다.
사실 자신이 굳이 나서서 도와줄 필요는 없다.
그러게 누가 먹는 음식에 장난을 치래.
본래라면 스스로 학습하고 해결하라며 놔둘 테지만, 이 엉망진창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나서야 할 것 같았다.
마냥 봉사활동을 할 생각은 아니었다.
골든 페어리에 조리도구 아티팩트, 그리고 달걀초콜릿이 기대 이상으로 잘 팔리고 있었다.
특히 달걀초콜릿은 제대로 된 유통망을 가진 에드먼드 상단 덕분에 다양한 가게의 진열대에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후로 매출이 팍팍 뛰었다.
‘프랜차이즈로 만족할 게 아닌 거 같아.’
자신이 판매하고 싶은 물건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곧 추운 북부로 갈 테니까 꼭 만들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다.
골든 페어리는 이제 하나의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기업의 힘이 커질수록 황실과 신전이 아니꼬워할 것이다.
황실에는 이미 당근을 줬으니까 슬슬 신전 쪽에도 하나 넘겨줘야 할 듯했다.
생각을 끝마친 알트페리아가 입을 열었다.
“신전에 연락을 넣어. 만나서 할 이야기가 있다고.”
리베르트는 이제 알트페리아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을 모두 해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자신은 알트페리아를 주인으로 생각하며 그저 따를 뿐이었다.
“예, 곧바로 주선하도록 하겠습니다.”
* * *
달걀초콜릿은 판매대에 올라가는 족족 품절되었다. 아예 입고가 되길 기다리며 미리 선금을 지불하는 사람까지 늘어나고 있었다.
거기에 골든 페어리는 제도에 있는 손님들을 모두 다 빨아들이고 있었다.
알트페리아의 잔고는 착실하게 불어나고 있었고, 이를 놓칠세라 시스템창이 튀어나왔다.
[<시스템> 스킬 랭크업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
그런데 시스템창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색깔도 흐릿하고, 뭔가 힘이 없는 것처럼 비실비실 흔들리기까지 했다.
“뭐야, 너 왜 그래?”
시스템은 그저 알람창일 뿐이다. 아프거나 할 리는 없는데, 푸른 창이 파르르 떨리는 걸 보면 매우 힘겨운 것 같았다.
[<시스템> 하루에 한 끼만 먹어서 힘이 없습니다.] |
“왜 굶고 다녀!”
갑자기 각성하여 모든 체력이 떨어지는 디버프를 주지 않나, 그 후로는 돈을 내놓으라는 소리만 했다.
알트페리아에게 시스템창은 도우미가 아니라 날강도였다.
그래서 곱게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시스템이라서 그런가?
굶고 다닌다는 소리를 들으니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시스템> 텅장이라 밥 사 먹을 돈이 없다고 웁니다.] |
[<시스템> 월세도 밀렸다고 합니다.] |
[<시스템> 이대로라면 둥지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
어음, 나 때문인가?
지난번에 스킬 업그레이드를 할 때 할인을 팍팍 받았긴 했다.
별생각 없었는데, 시스템창은 자신이 보낸 돈으로 생활을 하는 모양이었다.
갑자기 측은해졌다.
'하긴, 시스템 덕분에 몸도 튼튼해졌잖아.'
스킬 '돈의 힘' 덕분에 요즘은 제 몸이 아닌 것 같았다.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멀쩡한 것은 물론이고, 영지에 나타나는 하급 마물 정도면 상대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붙었다.
세이룬도.
“소공작님 혈색이 너무 좋아지셨어요!”
“끝이 아냐. 봐, 나 이제 장검도 들 수 있어!”
“어머! 대검은요?”
“…….”
“……장검이 어디예요! 단검도 들지 못하던 소공작님이 무려 장검을 드시잖아요!
―라며 기뻐하는 걸 보면 남이 보기에도 튼튼해진 모양이었다.
시스템 덕분에 몸이 좋아졌으니까 이번에는 좀 도와줄까 싶었다.
“최근 돈을 잔뜩 벌었으니까, 스킬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게.”
[<시스템> 몇 프로 할인을…… 원하시나요……?] |
“정가.”
그 말에 기쁜지 시스템창이 토끼처럼 폴짝폴짝 뛰었다.
[<시스템> 정가! 정가!] |
아무래도 자신이 투자하는 돈으로 생활을 하는 게 맞긴 한 모양이었다.
왠지 생활비가 쪼들려 힘들어하던 전생의 자신이 떠올라 측은해지기도 했다. 한참을 데굴데굴 구르고 방방 뛰던 시스템창이 멈칫했다.
[<시스템> 사장님 몰래 부가효과를 드리겠습니다!] |
[<시스템> 비밀이라고 속삭입니다!] |
쟤도 너무 기쁜지 뭔갈 더 주려고 한다.
더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허공에 혼잣말을 하는 알트페리아를 바라보던 루크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스킬 업그레이드하려고 하는데 부가효과를 준대요.”
“부가효과를 말입니까?”
그녀의 곁으로 다가온 루크가 허공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알트페리아의 시스템창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직감으로 위치를 파악해 시스템창을 빤히 바라봤다.
루크의 시선이 닿은 시스템창은 슬금슬금 자리를 이동했다. 루크의 시야에서 멀어지는 시스템창을 바라보던 알트페리아가 말했다.
“부가효과가 뭔가요?”
또 모든 체력감소 같은 이상한 능력을 줄지도 모르니까, 경험이 많은 루크에게 먼저 묻기로 했다.
“스킬을 랭크업하면 간혹 부가효과를 추가로 얻기도 합니다. 하지만 워낙에 확률이 낮아 대부분은 기대하지 않습니다.”
“확률이 어느 정도길래요?”
“헌터들 말로는 복권에 당첨된 확률보다 낮았다고.”
윽, 그러면 없다는 거나 다름없네.
“시스템이 말하길 몰래 하나 챙겨준다는데요.”
그녀의 말에 루크는 다시 허공을 바라봤다.
루크의 시선이 달라졌다. 마치 적을 노려보는 듯한 맹수의 시선에 놀란 시스템창이 세로로 길게 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