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뭐지.
“저, 정말이에요, 샤를 님?”
“그럼.”
“정말로 우리 숙부님 안 좋아요?”
“응.”
“왜요? 왜 안 좋아요?”
그 말은 어딘가 울적하게 들리기까지 했다.
“그러게. 나도 모르겠네.”
나는 금발을 더 좋아하고, 싸가지를 더 좋아하고 어쩌고 하기에는 조금 그랬다.
생각만으로도 죄책감이 이렇게 이는 데다 아이 앞에서 할 말은 아니다.
“그럼…….”
꿀꺽 목울대를 울리며 사샤가 자그마한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샤를 님은 숙부님 싫어요?”
“음, 아니.”
이건 뒤의 집사를 의식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공은 마음이 바다처럼 넓은 좋은 사람이다. 암, 그렇고말고.
……그래야 한다.
“좋은 분이시지.”
“맞아요.”
시종 입술을 꾹 깨물고 있던 사샤가 자그마하게 웃었다. 볼을 붉히는 게 아주 깜찍했다.
‘역시 대공이 잘해 주나 봐.’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저렇게 상기된 얼굴을 하다니.
“저, 샤를 님.”
사샤가 볼을 조금 더 붉혔다.
“제 침실이랑 장난감 방 구경시켜 드려도 될까요? 물론 귀찮으시면 안 보셔도 되지만요.”
“그래도 돼? 엄청 기대된다.”
내 말에 사샤가 어깨를 들썩들썩했다.
“그럼 지금 갈까요?”
손을 꼭 잡고 복도를 걸으며 나는 사실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질문을 했다.
“잘 지냈어?”
아이가 눈을 깜빡이다 사르르 웃었다.
“네. 매일매일 오늘을 기다리며 잘 지냈어요.”
순간 나는 부끄럽게도 사샤가 나를 기다린 줄 알았다.
하지만 방 소개 때문이었던 것 같다. 왜냐면 엄청나게 훌륭했거든!
나를 기다렸다기보다는 매일매일 으스댈 날을 기다렸다고 하는 게 타당했다.
활자로 묘사된 부분을 봐서 대강 알고 있었는데도 “와.” 하고 감탄했을 정도였다.
사샤가 “이렇게 타면서 정원을 구경해요.”라고 말하고는 자그마한 목마에 올라타는 걸 보고는 입을 틀어막고 말았다.
‘너무 귀엽잖아.’
“어어, 원래 잘 탔는데. 원래 잘 탔어요.”
으쌰으쌰 작은 몸을 흔들자 제자리에 박힌 목마가 안정적으로 움직였다. 당장이라도 화가를 초빙해야 마땅했다.
“귀여워.”
참지 못하고 기어코 터져 나간 말에, 사샤가 수줍게 웃었다.
채광이 좋은 방은 햇살이 환하게 들어왔다. 그 햇살 아래 있는 아이를 보던 중, 나는 문득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사샤, 나도 질문 하나 해도 될까?”
“그, 그럼요! 얼른 해 주세요!”
“저번에 나랑 안았다가 괜찮냐고 했잖아. 그 말, 무슨 뜻이었어?”
“아.”
사샤가 맑게 웃었다.
그래서 나는 잠시 내 추측이 틀렸던 걸까 기대했다.
하지만 그건 답을 아는 질문이 나와 뿌듯한 아이의 미소에 가까운 것이었다.
“저는 더러우니까요. 물론 깨끗하게 씻었지만 그래도 타고난 건 어쩔 수 없으니까요, 샤를 님.”
아이는 거리에서 동냥을 했다고 했다. 아마도 지나다니는 사람들로부터 저런 말을 들었을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흘린 말은 때로 무엇보다 날카로운 촉이 되어 누군가에게 잊히지 않는 흔적을 새긴다.
“더럽지 않아. 누가 더럽다고 해? 이렇게 귀여운 아가를.”
나는 다가가 사샤의 코끝을 가볍게 콕 눌렀다.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뜬 아이가 제 코를 만지작거렸다.
“본인들이 더러워서 남들도 다 더러워 보이는 게 틀림없어.”
“그런 걸까요……?”
강경한 어조로 말했지만 사샤는 깨끗했던 그들의 외양을 떠올렸는지 자신 없는 투로 호응했다.
“겉으로는 알 수 없는 일이야.”
내 말에 사샤가 고개를 살그머니 들어 올렸다. 가만히 눈을 마주하다 문득 아이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살며시 웃었다.
“맞아요. 겉으로는 모르니까요.”
수줍게 웃은 사샤가 목마에서 내려오더니 어깨를 또 움찔움찔했다.
“이제 정원에 가요, 샤를 님.”
* * *
예상대로 정원에는 대공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라?’
분명 칼릭스도 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설마 그 한 번으로 끝?
어안이 벙벙한 상태가 되어 사샤에게 이끌려 지척까지 당도하고, 무심코 대공을 바라본 순간이었다.
또 시간이 느려지는 감각이 찾아왔다.
멀리서 안 되고 가까이에서나 되는구나, 하고 이마를 쾅 치고 싶은 기분이 되어 있는데 문장이 또 눈앞을 지나갔다.
예배는 이미 시작되고도 남을 시간이었지만, 칼릭스는 느긋했다.
사샤는 리반과 벌써 예배당 안에 있을 테니 오히려 서두를 이유가 없어졌다.
샤를리즈가 참석하지 않는다고 하자 시무룩했던 아이는 지금쯤 스테인드글라스를 보고 놀란 눈을 하고 있지 않을까.
그때, 아이가 툭 튀어나왔다.
바이에르 공작이 그녀의 방식으로 몹시도 아끼는 공자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가득했다.
“대, 대공 전하. 큰일 났어요. 사샤 님이, 사샤 님이요…….”
끝내 엉엉 우는 아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칼릭스는 달려갔지만, 이미 늦었다.
그가 도착하자 몇몇 아이는 도망쳤고 몇몇은 주저앉아 훌쩍였지만, 벽안은 한 곳만 응시할 뿐이었다.
“……사샤.”
호수 표면은 벌써 검게 변해 침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황족의 직계 혈족인 아이는 수면 아래에서도 숨을 쉴 수 있다. 죽지 않는다.
하지만, 죽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안도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겁이 많은 아이가, 그토록 작은 아이가 완벽한 암흑 속에 홀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