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음?’
나는 사샤를 안은 채로 심각하게 생각했다.
‘왠지 볼살이 조금 빠진 것 같은데?’
아이는 볼을 만지고 싶다 하면 그러라며 편히 만질 수 있도록 목을 쭉 빼 주고도 남을 순한 성정이지만, 애달프게도 사샤는 황족이고 나는 귀족이었다.
곁에 있어도 그리운 기분으로 아이의 뺨을 호시탐탐 곁눈으로 하도 봐서 그런지 알 수 있었다.
“샤를 님…….”
사샤의 그 말에 공작은 충격받은 듯 목울대를 크게 움직였다.
그래도 대공을 맞는 목소리는 담담한 걸 보면 약효가 아직 빠릿빠릿 도는 것 같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갑작스럽게 동석한다고 해 미안합니다.”
그러나 대공의 경어를 듣는 순간 공작의 눈동자는 미세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요동치고 말았다.
“말을 낮추십시오, 전하.”
“은인의 부친인데 그럴 수는 없지요. 공녀에게도 저번부터 제대로 행동해야 했는데 미안합니다.”
‘……예?’
수도에 머무르는 동안 나는 있는 듯 없는 듯 사는 게 목표였다.
그래도 아이가 끔찍한 기억 갖게 된다는데 무시할 수 없어 끼어들었더니 바나첼 후작도 그런 이야기를 할 정도로 또 입에 오르내리게 되기는 했다.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여기서 대공이 내게 경어를 사용한다는 사실까지 밝혀진다면 한동안은 절대로 잠잠할 수 없을 것이었다.
‘고맙다며. 고맙다며!’
나는 고개를 살짝 내린 채로 대공을 노려봤다.
“많이 싫은 모양이지. 알겠어, 공녀.”
칼릭스가 낮게 웃었다.
설령 내가 저 남자의 배경을 모르더라도 이것만은 알았을 거다. 살갑게 굴어도 결코 얕볼 수는 없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대단한 사람.’
고개 푹 숙이고 있는 걸로만 보였을 텐데도 알아내다니.
이런저런 피상적인 이야기를 공작과 대공은 나누었고 나는 별생각 없이 복도를 걸었다. 그러던 중, 문득 시선이 느껴졌다.
내 손을 힐끔힐끔 곁눈으로 보던 사샤가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올렸다. 무심결에 한 행동이었는지 눈이 마주치자 자그마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깡총 뛰었다.
“손, 잡을까?”
공작은 내게 눈치가 없다는 혹평을 날렸지만 나는 제법 눈치가 좋은 편이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내 눈치의 수준을 의심하게 됐다.
연약한 새순처럼 웃은 아이가 내 손을 아주, 정말로 아주 살짝 잡았기 때문이다.
‘……사실 잡기 싫었나.’
조금 시무룩해져 도착한 응접실에는 이미 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응접실은 마치 한 폭의 명화 같았다. 정원을 감상하기 용이하도록 벽 하나가 통창이었는데, 열린 창문으로 흘러온 살랑거리는 바람이 볼에 와 닿았다.
공작은 내 손을 한번 꾹 쥐었다가 놓았다. 순간 나는 내가 적진에 협상하러 들어가는가 싶었다.
조금 머쓱한 기분이 되어 의자에 앉은 순간.
쏟아진 햇살 아래에서 나는 닿을 듯 닿지 않던 위화감의 정체를 이제야 깨달았다.
‘왜 눈이 부어 있지?’
혹시 힘든 시절 같이 보냈던 친구들이 보고 싶어서 그러나.
아이를 자주 챙겨 줬다던 소녀의 이름이 기억날 듯 나지 않았다.
‘아무튼 대공이 아이들을 보육원으로 모두 빼내 줬을 텐데.’
나는 슬쩍 칼릭스를 쳐다봤다.
그는 이미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예고 없이 눈이 마주치고, 시간의 흐름이 느려졌다. 바람마저 느려져서 그런가, 어쩐지 더 간지러워진 느낌이었다.
‘어, 이번에는 이러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하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먹기로 했다.
폭탄이 터지기라도 한 것처럼 시야가 흐릿했다.
서서히 걷히는 연기 너머로 엉망이 된 전시회의 풍경이 보였다.
며칠이나 꼼꼼하게 살피며 완벽한 각도로 배정했을 액자는 깨져 바닥을 나뒹굴었고, 조각상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혼란의 가운데에 그 사람이 있었다.
반짝거리는 긴 은발 아래 흰 얼굴은 그저 무표정했다. 지독한 상황 속에 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하지만 무사했다. 그래서 안도했다.
그게 이상했다.
칼릭스는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