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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조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34) (34/232)

34화

혹시 배척하는 분위기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에반스의 말에 따르면 전혀 아닌 눈치다.

[다들 엄청 반깁니다!]

실제로 노아도 다들 좋다고 말했다.

어떻게 알았냐면, 아침마다 체력 단련할 때 노아랑 같이 하면서 은근히 친해진 덕택이었다.

늦은 밤.

찾아온 노아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최근에 들어온 첩보가 있습니다.”

노아가 잠시 주저했다.

부지런하다고 감탄하고 있던 나는 이어질 말을 굳이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되었다.

“선황자가 의식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튿날.

사샤의 병환이 알음알음 알려지기 시작했다.

* * *

제도 사교계는 ‘그’ 가십을 애써 입에 담지 않았다.

감히 쉽게 입에 올릴 수 있을 만한 건이 아닌 탓이었다.

의견을 공유하지 않았음에도 모두가 하는 생각에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선황자의 병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얼마나 큰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까?’

이미 선례도 있다. 바로 리엔타 공녀였다.

공녀의 소원이라고 할 것이라면 하나일 것이다. 대공과 교류하고 싶다.

과연 공녀는 대공과 여러 차례 긴밀한 만남을 가져오고 있었다.

이제는 염문설도 피어올랐을 정도로 말이다.

대공가에서 자체적으로 치료되지 않는다면 수색 당시처럼 대문을 열 터.

귀족들은 대부분 그때를 숨죽여 기다리고 있다―.

“노아야.”

샤를리즈에게 간추려 보고할 정보를 머릿속으로 정리하던 중, 옆에 있던 에반스가 푹 한숨 쉬었다.

“아가씨께서는 어떠셨냐? 요즘 외출도 안 하시다 보니 통 뵐 수가 있어야지. 아니지, 보나 마나 많이 상심하셨겠어.”

그에 노아는 반사적으로 선황자의 신변 이상에 대해 들었을 당시 샤를리즈의 모습을 회상했다.

좋게 말하면 새침하고, 사실대로 말하면 뚱한 느낌의 무표정은 동요 없었다.

‘상심, 안 하셨을 것 같은데.’

그러나 그는 현명하게 입을 닫았다.

배척받지 않는 막내로 계속 지내고 싶었으니까.

* * *

에반스 경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그 몰래 외출한 참이었다.

어차피 위험한 장소로 가는 것도 아니니까 괜찮을 거다.

굳이 에반스 경을 따돌린 이유는 별것 없었다.

며칠 저녁 운동을 빼먹은 바람에 그만큼 걷기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반대할 것 같아서였다.

왜냐하면, 신수가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일단은 너랑 지내겠다.]

그래서 나는 다시 대공저로 보냈다. 그리고 막 오늘 돌아온 참이었다.

나는 신수에게 어서 말하라며 마구 눈짓했다.

―……아이의 방에 성물이 있더구나. 간악한 사술을 막는 것이었다.

사술.

―살이 많이 내리기는 했어. 저 성물로도 역부족이었다면, 나는 도움 되지 않을 거다.

그래서 잔뜩 침울했나 보다.

나는 풀 죽은 돌멩이를 장갑 낀 손으로 쓰다듬어 주었다.

성물에게 힘이 쪽 빨려 와서 생명체 형태를 유지하는 것도 힘든 결과물이었다.

‘이건 안 되겠어요.’

―내가 안 될 거라지 않았느냐.

성력을 높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믿음이다.

그래서 여신상 뒤에 슬쩍 돌멩이를 두고 오려고 함께 신전을 방문한 차였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무참히 실패 중이다.

돌멩이가 있을 만한 분위기가 도저히 아니었던 탓이다…….

그렇다고 가까이 접근해서 안 보이게 두려니 시선이 너무 많았다.

‘미리 알았으면 헛걸음 안 했을 텐데.’

신전에 오는 일이 너무 적어서 미처 몰랐다.

그렇게 풀 죽은 돌멩이와 함께 털레털레 돌아가는 길, 나는 예상 못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공녀?”

푸른색 눈동자 안, 동공이 살짝 부풀었다.

‘진짜 내가 길바닥 출신이라고 이런 겁니까?’

아니, 고맙긴 한데…….

……그럼 앞으로도 쏘다녀야 하려나.

아침뿐 아니라 저녁에도 체력 단련을 할 것을 생각하니 눈물이 찔끔 났다.

“이렇게도 뵙게 되는군요. 좋…… 오후입니다, 대공 전하.”

“좋은 오후야.”

픽 웃은 칼릭스가 문득 고개를 기울였다.

“그런데 호위 없이 혼자 온 건가?”

“예.”

―바보, 그걸 실토하면 어떡하나! 나쁜 마음을 품으면 어떡하려고!

돌멩이가 기겁했지만, 나쁜 마음 품고 있던 쪽은 늘 내 쪽이어서 그런지 위기감이 전혀 안 들었다.

칼릭스가 눈을 살짝 좁혔다.

“공녀, 혹시 언질하지 않고 나온 건가?”

“아닙니다.”

나는 재깍 부인했다.

다녀오겠다고 적은 종이를 침대 위에 두고 왔다.

책상에 두는 게 더 눈에 띌지 침대일지 돌멩이와 머리 맞대고 상의한 결과였다.

“그래…….”

어딘지 묘하게 웃은 칼릭스가 문득 웃었다.

“곧 있을 사냥제 때문에 신전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아. 공녀가 괜찮다면, 마차까지 데려다줘도 될까?”

아뿔싸.

‘어쩐지 사람이 많더라니.’

날을 잘못 잡았다.

……그나저나 성축일도 모자라 사냥제도 모르는 이 머리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내심 충격받아 있는데, 어쩐지 같이 투덜거려야 할 놈이 조용했다.

‘낭패감으로 굳은 건가.’

사감은 뒤로하고, 나는 빠릿빠릿하게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마차 안 타고 와서요.”

“……마차를 안 타고 왔다고?”

“예. 걸어왔습니다.”

“공작저에서 신전까지 거리가 꽤 멀었던 것 같은데.”

“한 시간 정도 걸리더군요.”

꾸준한 체력 단련이 빛을 발했다.

뿌듯해져 있는데, 불현듯 너무도 고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어.’

그저 가만히 바라보기만 할 뿐인 시선이었으나, 어쩐지 변명해야 될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사람들이 많고 밝은 길로만 다녔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야.”

대화를 하며 걸음을 떼서, 나도 엉거주춤 따라갔다.

“즐거운 것은 있었어?”

“예. 꼬치를 먹었는데 맛있었습니다.”

“떨어뜨리지 않고 먹기 힘든데 옷이 깨끗해. 대단한걸, 공녀.”

“그 정도 가지고 뭘요.”

나는 부끄러운 기분이 되어 흉곽을 쫙 폈다.

“달리 더 즐거운 건 없었나?”

“그리고 또…….”

칼릭스는 좋은 경청자였다.

주절주절 여러 이야기를 하게 됐다.

명확한 단어로 풀자 그 순간 어렴풋이 느꼈던 감정들이 실체가 되어 마음에 차곡차곡 쌓였다.

“곡예가 신기했습니다. 공 열 개를 허공에 띄우면서도 하나도 놓치지 않더군요.”

“처음 보았을 때, 나도 시선을 떼지 못했던 기억이 나.”

“대공 전하도요?”

“응.”

웃으며 칼릭스가 앉았다. 그래서 나도 따라 앉았……다?

‘어라.’

정신 차리니 어느새 마차 안이었다. 뭐라 말할 새도 없이 곧바로 마차가 부드럽게 출발했다.

사실 편도는 몰라도 왕복은 엄두가 안 났던 차라서, 감사한 마음을 담아 나는 슬쩍 고개를 내렸다 올렸다.

‘돌 때문에 사샤가 놀랄 일은 없겠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였다.

“공녀, 미안해.”

‘!’

이 무슨 무서운 말을!

번쩍 고개를 쳐든 순간 눈이 마주치고, 또 그 감각이 찾아왔다.

비현실적으로 하얀 달이 담긴 벽안은 겉으로만 보자면 그저 무감했다.

“성물은 획득했나?”

“데칸드 백작의 손자를 어제 찾아 교환한 참입니다.”

백작도 안타깝게 됐다.

아이가 있던 보육원은 백작가에서 출발하면 마차로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였다.

혹여 황가에서 손자의 생존을 눈치채고 아이를 찾아낼까 봐 극도로 조심한 탓에 늦어지고 만 거다.

단순히 시종장으로 복귀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만은 아니었을 터다.

아직 너무도 어린 아이에게 ‘황실이 너를 살렸다’라는 무거운 빚을 목줄로 달아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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