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곧 사냥제라서 서류 처리가 아주 늦어질 텐데?”
아무래도 로제타도 사냥제가 열리는 줄 몰랐나 보다.
나만 모르는 게 아니었구나.
조금 안도하고 있는데, 로제타가 눈썹을 씰룩였다.
“당연히 알고 있답니다.”
툭 던진 말에 개구리가 맞았다.
내상을 입은 배를 쓰다듬고 있던 중, 로제타는 덧붙였다.
“저는 그저, 공녀님도 알고 계시면 좋을 것 같은 소식을 접했을 뿐이에요.”
나는 빠릿빠릿하게 눈치챘다.
‘세상에!’
로제타가 드디어 내 소문에 대해 알려 주려고 왔구나.
노아가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귀족 영애로서 바라보는 시각을 알아 두는 게 더 좋다.
차분히 기다리고 있는데, 로제타가 머뭇거렸다.
“내 욕이 많아?”
“그것 때문은 아니에요. 언제는 없었던가요.”
“그렇긴 하지.”
케이크 한 조각을 이등분해 하나를 집어먹는 나를 로제타가 오묘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1년 사이에 정말 많이 바뀌셨네요.”
“소문은 그대로지만.”
“그렇죠, 그건 바뀌기가 힘들죠.”
깔끔하게 인정한 로제타는 금방 본론을 꺼냈다.
“그보다 공녀님. 공녀님의 심미안으로 귀부인들이 들썩거린답니다. 진품과 가품을 구별해 낼 수 있다니 대단하다는 말이 많아요.”
그럴 것 같아서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말았다.
“공녀님이 제작하시려던 브로치, 유출되었잖……. 모르셨어요?”
로제타가 눈매를 구겼다.
“여하튼 유출된 브로치가 경매에 나온다는 소식이 암암리에 퍼져 있어요. 다들 눈독을 들인다더군요.”
“왜? 어차피 가짜인데, 그거.”
“가짜든 진짜든 무슨 상관이겠나요. 리엔타 공녀가 직접 시안부터 시작해서 제작까지 관여한 유일한 한 점이 시중에 풀렸는데요.”
“흠.”
“회수하실 건가요?”
“아니, 가지라고들 해. 어차피 들킬까 봐 꼭꼭 숨겨 두느라 내 눈에 띌 일도 없을 텐데.”
“그, 그렇죠.”
혀를 깨물었는지 얼떨떨한 얼굴로 로제타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당연히 나는 회수할 생각이 없다.
그야 당연하다.
‘내가 풀었으니까.’
무슨 일에든 돈은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로제타가 말한 대로다.
비자금 마련에 이보다 적당한 게 없다.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다.’
곧 들어올 돈을 생각하며 나는 비죽 웃었다.
……그리고 어느 저녁.
“샤를, 선물이란다.”
어깨가 봉긋 솟은 공작이 웬 직사각형 상자를 내밀었다.
‘어째 불길하다.’
에이, 에이. 설마.
“…….”
“어때? 응? 마음에 드느냐?! 누가 감히 내 딸의 첫 번째 작품을 빼돌리려고 하는 걸 내가 찾아왔다.”
졸지에 아버지 주머니를 턴 불효자식이 되어 버린 건, 사냥제를 일주일 앞둔 날 좋은 오후였다.
* * *
화려한 내부.
카타리나가 까득 손톱을 짓씹었다.
“혹시 발현열인가?”
황족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 치들은 으레 아이가 앓고는 하는 열병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터다.
그녀 역시 이 시기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치부하고 말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으니까.
‘사냥제를 앞두고 열병이라니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모르지.’
대공이 참석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그 순간, 아무렇지 않게 넘겼던 두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의문이 싹을 틔운 즉시, 카타리나는 조사를 명했다.
그 결과 아주 오래전에 명맥이 끊겨 더는 제대로 기억조차 하는 사람이 드문 병명을 찾아냈다.
발현.
조금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신수와 황족이 연관되어 일어나는 현상.
“호수에 빠진 건 벌써 한참 전이고…….”
고심에 잠긴 얼굴로 눈을 좁힌 카타리나는 이내 얼굴을 구겼다.
사실 저건 중요하지 않다.
모두에게 잊힌 신수 따위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중요한 건 하나였다.
정녕 발현열이라면, 그 꼬마가 정말로 황족이라는 사실을 감출 수 없어진다는 것.
그것도 가장 정통성이 높으며, 든든한 뒷배까지 있는.
“……하.”
착수하고 있던 일을 당길 필요성이 있었다.
* * *
……그래, 이 돈이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계속 착잡하게 바라보기에는 너무도 영롱하고 많은 금액이었다.
‘이거 불려서 공작 좀 줘야겠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나는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공녀님!”
이리안이 나를 반겼다. 달려 있지도 않은 다람쥐 귀가 쫑긋쫑긋 움직이는 것만 같다.
“정말 오지 않으셔도 됐는데. 그래도 와 주셔서 정말로 기뻐요.”
[줘.]
[네?]
[젊은 작가들의 밤. 또 열리잖아. 거기에 이리안 그림이 전시된다며? 나도 줘, 초대장.]
‘으음.’
반협박으로 얻어 낸 건데도 이리안은 그냥 기쁜가 보다.
옆에서 종알종알 말해 주는 걸 들으며 슬쩍 돌아본 내부는 전시품이 거의 없었다.
그럴 만도 하다.
‘저번에 폭발이 터져 전시품이 다 털릴 뻔했는데 어떻게 믿고 귀한 작품들을 주겠냐.’
게다가 그런 일이 있었으니 참석객이 적으리라는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런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하는 과시도 많은 이가 볼 때나 성립될 수 있으니까.
때문에 전시된 그림의 대부분 소장자는 같은 사람이었다.
‘역시나 모조품이 아니라 진짜를 줬네.’
이 사람의 목적은 과시가 아님에도 굳이 이래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냥, 이런 거다.
이만큼 간절하니까.
그래서 마침내 찾아올지도 모르는 기쁜 소식에 조금이라도 불결한 부분이 없었으면 하는 것이다.
뭐든 주고 싶은 마음.
무엇이라도 줄 수 있는 마음.
소장주: 그레이엄 데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