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번잡한 동작은 내심에 품은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소식이 언제쯤 당도할는지.”
고작해야 기절시키고 튜베롯으로 만든 독약을 먹이는 게 끝.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실패를 상정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어째서 이리 불안하단 말인가.
“가주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급박했다.
페르난 백작이 인상을 와락 구겼다.
“시끄럽다! 무슨 일이야?”
“그, 그게.”
집사가 말을 더듬었다.
답답하게 구는 사용인 때문에 혀를 차던 백작은 문득 등허리가 서늘함을 느꼈다.
쾅!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이, 이게 무슨.’
페르난 백작이 경악스러운 얼굴로 입만 뻐끔뻐끔 여닫았다.
흐트러진 긴 은발 사이로 보이는 얼굴은 천사처럼 아름다웠다.
그래서 건장한 체격의 남자 하나를 질질 끌고 오고 있는 모습이 그토록 이질적이었는지도 몰랐다.
“유감이야, 백작.”
샤를리즈가 내던지듯 머리채를 놓자 남자가 쿨럭 기침했다.
“내가 백작이 죽음을 사주할 정도로 뭘 잘못했던가?”
“이 늦은 시각에 대뜸 찾아오더니, 하는 말이란 게 영 이상하군요!”
“왜 발뺌하는지 모르겠군. 대공가의 시녀에게 암살자를 보낸 것만으로도 십 년은 족히 썩을 텐데.”
흠칫한 건 잠깐이었다.
이 상황이 어쩌면 아주 나쁘지만은 않을지도 모른다.
독약이 효과를 보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세 시간.
‘공녀가 저택을 멀쩡히 빠져나가고도 남을 시간이지.’
“공녀가 어째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손님으로 찾아왔으니 차는 대접하도록 하지요.”
집사에게 눈짓하자, 그가 조용히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때를 노려 강제로 음독하게 하는 것도 괜찮겠어.’
집사가 알리지 않은 것으로 보건대 단신으로 찾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을 끄는 일은 쉽다.
“지겹네.”
느릿한 투로 중얼거린 샤를리즈가 목덜미를 주물렀다.
살짝 틀어진 각도의 고개에서 빈틈을 발견해 눈을 빛낸 순간.
악력이라고는 조금도 없을 것만 같은 손이 불시에 뻗어 나와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 * *
나는 먼 산을 바라보았다.
“결국, 저질러 버렸군.”
그래도 한 가지는 알게 됐다.
로나터스 후작이 페르난 백작의 행적을 파헤치는 것을 주워 먹을 필요가 없다.
‘저 자식, 아는 거 없어.’
그놈 정체 빼고 말이다.
“그건 물어볼 수도 없는데 말이지.”
이쪽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패만 보여 주는 셈이 되고 만다.
암살자가 소중한 인형에 구멍을 뚫자마자 목뒤를 쳐서 기절시키고, 노아가 지키는 동안 새로 구매한 인형까지 양 옆구리에 착 꼈다.
‘구멍 난 건 내가 가져야지.’
힘없이 올려다본 하늘에는 달이 휘영청 밝았다.
‘남의 집에 얹혀 있으면서 늦게 들어오다니 폐를 끼쳤군.’
그 집이란 게 원체 커서 누가 들어와도 잠에서 깰 리가 없긴 하지만 말이다.
고개를 푹 숙인 채 터벅터벅 걷고 있는데, 불현듯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조금만 더 늦었다면 리엔타에 연락을 취할 생각이었어.”
무슨 그런 한여름 괴담보다 무서운 말을.
화드득 놀라 들어 올린 시선 끝에 걸린 남자가 조금 미소 지었다.
“페르난 백작은 원하는 만큼 손을 봐 주었나?”
역시 알고 있었나 보다.
“예.”
“그런데 왜 기운이 없어 보이는 걸까.”
“얻은 게 없었거든요.”
그놈, 아는 게 하나도 없었지 뭡니까.
그러다 돌연 생각이 닿은 것이 있었다.
‘맞다, 내 옆구리.’
“사샤 님은 주무시고 계세요?”
“응, 곁에 리반이 지키고 있어.”
인형은 아무래도 내일 줘야 할 모양이다.
“사실 처음부터 궁금했는데, 그 인형은 사샤에게 선물할 것들인가?”
“예, 그렇습니다. 하나는 제 것이고, 하나는 사샤 님께 드릴 겁니다.”
인형의 턱을 손끝으로 밀어 들어 멍청해서 중독성 있는 표정을 칼릭스에게 보여 주었다.
“귀엽죠?”
“공녀는 잔인하군.”
나는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어? 이 말.’
보다 짙은 감정으로, 보다 느린 목소리로 들어 본 적 있는 것만 같았다.
알 수 없는 위화감이 손끝에서부터 기어올랐다.
그건 깊은 호수의 가장자리를 밟았을 때 느끼는 선득함과도 닮아 있었다.
“소외당하는 기분이란 이런 거였어.”
나는 재깍 정신을 차렸다.
섭섭하다는 듯 내린 눈꺼풀은 내 기분을 풀어 주기 위한 장난의 일환이겠지만…….
‘정말 아주 약간 조금은 서운해하는 것 같은데……?’
하긴.
사샤랑 사이가 그렇게 좋은데 커플 인형은 다른 사람―바로 나다―이랑 하면 질투 나긴 하겠군.
‘이럴 줄 알았으면 두 개 더 살걸.’
아무리 그래도 칼 닿은 거 줄 수는 없는 노릇.
“대공 전하께 드릴 선물도 당연히 있습니다.”
나는 하얀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 * *
“바로 이것입니다.”
“…….”
페르난 백작이 나한테 대뜸 차 대접을 하려고 한 게 이상해서 찻물을 빼돌렸다고도 덧붙였다.
뿌듯한 티는 안 내고 담담하게 했다. 이 정도는 내게 일도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집사에게 한 입 먹여 보니 정확히 세 시간 후 의식을 잃더군요. 들어 본 적 없는 종류의 독약입니다.”
내가 내민 투명한 약병을 손에서 굴리고 있던 칼릭스가 말했다.
“자세히 조사해 봐야 알겠지만 아마 로나터스 후작에게 음독한 것과 같을 거야.”
이미 알고 있었다니.
입 아프게 돌려 돌려 풀어 말하지 않을 수 있어 좋았다!
나는 마차에서 연습한, ‘무도한 계획에 충격받다 못해 분노한 표정’을 얼굴에 걸었다.
“그, 그런!”
그냥 닥치고 있는 게 낫겠군.
빠르게 수긍하고 입을 닫았다.
“치명적이지만 주기적으로 독약을 주입해야 해서 번거로워. 그 대신 효과를 원하는 때에 거둘 수 있으니 감수할 만하겠지.”
‘역시 개량한 독약인가.’
목적이 있을 때 사용하기 가장 좋은 독약을 우연의 산물이라고 믿기는 미심쩍다.
하물며 통칭 약제사라고 불리는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 속이라면야.
‘그런데 원작의 샤를리즈가 들은 말은 달랐어.’
“희석하셔도 원하는 효과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