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사람 찾는 일이 이런 푼돈으로 되는 줄 알아?]
[너무 단서가 적어서 어렵겠는데.]
직설적인지 우회적인지만 다를 뿐 추가금이 있어야 하는 건 동일했다.
수심 깊은 시선이 아래로 추락하고, 단정한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 굳이 더 입증을 기다릴 것 있나. 내가 도와줄 수 있어.]
리엔타 공녀를 실제로 본 적은 없으나, 들은 바는 많았다.
동생을 찾기 위해 온갖 곳을 돌아다니며 주워듣게 된 내용 덕택이었다.
미소 한 자락 내비치는 일마저도 거의 없다는, 대단한 가문의 영애님.
그런 사람이 여타 사람들도 아무렇지 않게 무시하곤 하는 고아를 선뜻 돕겠다는 것을, 단순한 호의라고 여길 수 있을 리 없다.
‘어디서 꼬리가 잡힌 게 분명해.’
로단테가 주먹을 꾹 쥐었다.
신관이 아닌 자가 신력을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다. 타고난 능력을 사용하는 것일 뿐인데도 그랬다.
신성력을 가진 이들을 강제로라도 신전 안에 두겠다는 의미가 만만했지만, 이는 황실의 암묵적인 동의 아래 제국법에 굳건한 조항으로 명시되었다.
능력이 있으나 소속이 없는 자들은 다른 생각을 품기 마련이니 황실로서도 차악이었던 셈이다.
돈이 필요한 시절, 로단테는 성수를 제조해 팔고는 했다.
눈에 띄는 금발이 그때처럼 성가셨던 적이 없었다.
‘돈을 더 마련해야 하는데.’
공녀가 협박하지 않고 잠자코 있는 것으로 짐작하건대 성수를 제조하는 사람이 그라는 것까지는 아직 알지 못하는 듯했다.
그렇다면 공녀가 그에게 더는 관심 두지 않을 때까지 몸을 사려야 한다.
그러나 초조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차라리 공녀님에게……. 아니야.’
로단테는 귀족이라는 족속들의 잔악함을 아주 잘 알았다.
동생을 겨우 찾더라도 얼굴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하도록 할 게 틀림없다.
그 삶은 거리에서 떠도는 현재보다도 불행하면 불행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신전에 귀속되지 않고자 신성력을 숨기는 이유도 그와 같았다.
샤를리즈가 불쑥 찾아온 건 그런 시간 속에서였다.
“공녀님을 뵙습니다.”
“안녕.”
공녀의 매끄러운 녹색 눈동자가 문득 그를 주시하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금세 시선을 돌렸기에 실제로도 그랬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잘 지낸 것 같군.”
“예, 다들 잘 대해 주십니다.”
“그럼 이만 가 보도록 하지.”
형식적일 만큼 짧은 만남은 당연한 것이다.
오히려 상단에 오는 길에 로단테를 찾았다는 것이 의아할 일이었다.
‘계속 지켜보고 있겠다는 뜻인가.’
로단테가 입술 안쪽 살을 사리물었다.
“공녀님께서 너를 정말 신경 쓰시나 봐. 좋겠네, 미래 상단주에게 총애받고.”
그런 비꼼은 익숙하게 넘겼다.
* * *
칼릭스는 하루 한 번이라면, 로단테는 그 주기가 더 긴 모양이다.
‘혹시나 해서 확인해 봤더니 이번엔 보였어.’
그러나 활로가 생겼다는 기쁨 같은 것은 딱히 없었다.
그보다는 미심쩍은 감정이 컸기 때문이다.
‘뭔가 수상한데.’
나한테 어느 날 생긴 알 수 없는 능력이 아니라, 마치 목적을 갖고 미래를 보여 주는 것만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로단테를 통해 본 미래의 조각이 영 찝찝했기 때문이다.
‘로단테를 구하라는 건가. 아니면 로단테의 신의를 얻을 방법을 말해 준 거야?’
후자라면 어째서일까.
실체가 있다면 내 무릎이 얼마나 신속하게 땅에 닿을 수 있는지, 아니면 내 손이 얼마나 짧은 간격으로 멱살을 짤짤 흔들 수 있는지 시연해 보이고 싶을 만큼 궁금했다.
나를 돕고 싶어 할 사람은 리엔타의 콩깍지 1, 2, 3 말고 없을 텐데.
* * *
사샤는 내가 선물로 준 도마뱀 인형을 항상 가지고 다녔다.
팔이 아플 것 같아 인형과 등을 맞대게 해서 엑스 자로 줄을 교차해 묶어 주자 아이는 그렇게 며칠을 맸다.
그러다 도마뱀 몸에 엑스 자 상흔이 남자 시무룩해진 검은 머리통을 보고, 칼릭스와 머리를 맞대 고심한 끝에 포대기로 변경했다.
손가락 세 개 정도 굵기의 짧고 뚱뚱한 인형 팔에는 종종 토끼풀 반지가 걸렸다.
그 모습에 리반이 입을 틀어막고 황급히 벽 뒤로 숨어 볼을 붉히며 숨을 고르는 못 볼 꼴을 왜 하필 어째서 내가 여러 차례 목격하는 바람에 나도 벽에 손바닥을 대고 숨을 고르는 날들도 있었다.
시간은 그렇게 착실하게 흘러 황후를 알현하는 당일이 되었다.
* * *
‘오기 싫었는데 안 오면 황후 편 아니라고 티 내는 꼴이니까…….’
황후는 내가 어설프게 행동했다가 세작임이 들통날까 봐 염려되는 모양이었다. 단 한 번 제대로 적기에 써먹을 작정인지 일단 두고 보기만 했다.
“오랜만에 만나는구나. 조카님도, 그리고 공녀도.”
카타리나 황후가 상냥하게 웃었다.
“잘 지냈니, 내 조카님?”
“네, 폐하.”
황후가 입매를 조금 더 끌어당겼다.
‘기분 상했나 보군.’
본래는 여기서 ‘황제 폐하와 황후 폐하의 은덕 덕분에’를 붙여야 마땅하기 때문일 터다.
‘양심, 제자리에 계신가요.’
황제 자리는 본래 사샤 거다.
선황제가 갑작스레 타계하지만 않았어도 사샤는 코스를 차근차근 밟아 차기 황제 자리에 올랐을 것이다.
“곧 조카님의 생일인데, 받고 싶은 선물은 없는지 궁금해 겸사겸사 불렀단다.”
그러며 카타리나 황후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멀뚱멀뚱 자리만 지키고 있던 내게 시선을 옮겼다.
“공녀에게 약혼 선물을 주고 싶기도 했고 말이네.”
“말씀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겸양은 하지 말게. 우리 사이에.”
서운하다는 듯 말한 황후가 찻잔을 들었다가 마시지 않고 내려놓았다.
“꼭 선물을 하고 싶어. 공녀는 최근 불미스러운 일도 겪지 않았나.”
그렇다.
페르난 백작이 내게 암살자를 보냈다는 이야기는 수도에 짜하게 퍼졌다.
리엔타 공작이 가만 안 두겠다며 길길이 날뛰었기 때문이다.
애달픈 사실은, 이걸로 내 악명이 한층 더 견고해졌다는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악독하게 괴롭혔길래 백작이 살수까지 고용했을까!
하고 말이다.
‘……암살당할 뻔한 건 난데, 동정은 왜 백작이 사고 있는지.’
그건 내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탓이 크겠지만, 저런 방향으로 흘러가는 현상 자체가 아득하다.
추문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 적 없어서 다행이다. 헛수고에 시간 낭비였을 테니까.
‘생존하는 데 이미지 쇄신이 필요 없어서 다행이 아닐 수 없어.’
그랬다면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웠을 게 분명했다.
“이번 생일에는 아무리 좋은 선물을 고안해 내도 두 번째에 그칠 수밖에 없겠구나. 첫 번째는 조카님의 모친이 되실 공녀일 테니 말이야.”
얌전히 있던 사샤의 볼에 분홍색 물이 번졌다.
“아하하, 그렇게 좋으니?”
“……네에.”
그런 사샤가 귀엽다는 듯이 황후가 웃었다.
나는 이 훈훈한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삐걱대고 있었다.
“볼에도 제법 살이 올랐어.”
황후가 손가락을 가져다 대자, 흠칫 놀란 사샤가 내 팔에 딱 붙었다.
“아, 미안하구나. 요즈음 아이들이 가깝게 느껴지는 바람에 이러고는 말아.”
‘어? 이거…….’
“벌써 마음은 준비를 마쳤는지도 모르겠어.”
황후가 그녀의 날씬한 복부를 소중하게 쓰다듬었다.
노골적인 제스처였다.
“경축드립니다, 폐하.”
여기서도 ‘제국의 앞날을 밝힐’로 시작하는 길고 긴 문장을 줄줄 읊어야 하지만, 나는 생략했다.
사회성 말아먹은 성격 탓이라고 생각했는지 카타리나 황후는 별반 기분 나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비록 친동생은 아니지만 잘 부탁한단다.”
“네.”
“그렇게 말해 주어 고맙구나. 황성에는 또래 아이들이 없어 아가가 외롭게 클까 봐 염려되지 뭐니. 벌써 팔불출이 되는 건 아닌지.”
“…….”
“하지만 어쩔 수 없는지도 모르지. 그토록 오래 기다려 온 소중한 아이이니. 이런 게 어미의 마음이라는 건가 봐.”
사샤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흡족하게 웃은 황후가 문득 한쪽 눈을 살짝 찡그렸다.
“조카님과 공녀에게만 미리 말하는 것이야. 한동안 비밀로 해 줄 수 있겠는가?”
“예, 당연히 그리하겠습니다.”
이 말을 하며 나는 한쪽 발을 슬쩍 들어 올렸다.
* * *
대공저 본관 앞에 도착한 마차가 멈췄다.
마차에서 먼저 내린 나는 아이를 안아서 내려 주었다.
“감사합니다, 샤를 님.”
작고 몰랑한 손이 따끈했다.
‘배고프다.’
“사샤, 디저트 함께 먹지 않을래?”
“아…….”
사샤가 큰 눈을 굴렸다.
‘피곤한가 보군.’
나와 같이 디저트 먹기 싫어서일지도 모른다는 이유는 있는 힘껏 외면하며 아이와 헤어졌다.
홀로 외롭게 딸기 케이크를 해치우고, 나는 칼릭스의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샤를리즈입니다.”
들어가자 칼릭스는 안경 형태의 마도구를 책상에 내려 두고 있었다.
‘아깝다.’
어떤 미남은 안경을 쓰면 덜 생겨지고, 안경이 얼굴을 가린 아쉬움에 당장 벗겨 주고 싶기도 한데, 칼릭스는 다른 매력으로 잘 어울렸다.
‘과연 한 세계의 남자 주인공이 될 법한 외모.’
능숙하게 손가락 끝을 당겨 장갑을 벗고, 일련의 과정 속에 있을 뿐이라는 듯 칼릭스의 손을 텁 잡았다.
“…….”
그런데 너무 기계적으로 했던 모양이다.
‘앉지도 않고 선 채로 하다니 내가 마음이 급하긴 급했나 봐.’
익숙해진 각도로 시선을 올리면 보이는 건 언제 봐도 놀라운 얼굴이 아니라 탄탄한 흉부였다.
‘흠흠.’
애써 시선을 떼며 나는 고개를 조금 더 젖혔다.
칼릭스는 맞닿은 손을 내려다보고 있어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어떡하지. 손 한번 꽉 잡아야 하나.’
부르는 건 내가 곧바로 말을 이어 가기 힘들어서 무리인데.
차라리 그때 딴생각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몰랐다.
방심하고 있던 순간, 물빛 시선이 아무런 전조도 없이 쏟아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