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정보 길드에서 돈만 받고 제대로 수색하지 않은 것이다.
“아닐 수도 있으니 기대는 말고, 채비해라.”
황성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공작저에서 출발해 변두리의 보육원에 도착하니 시간은 어느덧 새벽이었다.
“여기서 잠시 기다리고 있어.”
기사가 건물로 들어갔다.
오도카니 서서 로단테는 눈을 깜빡였다.
‘이렇게 쉽게 찾았어.’
물론 기사의 말대로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날에는 비슷한 사람조차 찾지 못했다.
그 순간이었다.
로단테는 무언가를 예감한 사람처럼 어깨를 움찔 떨었다.
주저하다 들어 올린 시선 끝에 오래도록 찾아 헤맨 유일한 가족이 보였다.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도저히 몰라볼 수가 없었다.
“엔젤.”
헐떡이는 숨이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갈랐다.
마님은 사생아들을 쉬이 입적하진 않았으나, 이름은 모두 지어 주었다.
엔젤이라는 이름은 어서 빨리 죽어 버리라며 지은 것이라고 했다.
정말 그렇게 될까 봐 사실은 무서웠다.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그리운 기억들이 떠올랐다. 소년은 모든 그리움을 품에 한가득 안으며 달려갔다.
“미안해. 내가, 내가…….”
“보고 싶었다는 말만 해.”
훨씬 작은 몸이 그를 품에 안았다.
로단테는 떨리는 손을 동생의 등에 올렸다. 어느 순간부터 절박하게 끌어안고 있었다.
“우리, 잘못한 것 없으니까.”
맞아. 우리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어.
* * *
나는 머뭇거렸다.
“고마워. 고생 많았어.”
그냥 내 이마 한 번 더 만져 달라고 부른 거였는데, 로단테는 신성력을 사용해 내 몸을 메꿔 주었다.
“아닙니다. 도움이 되어 기쁩니다.”
로단테가 퉁퉁 부은 눈으로 대답했다.
‘어색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와 준 애 간식 하나 안 먹이고 돌려보내는 못된 놈이 될 수는 없었다.
“차 한잔하고 가.”
나는 삐걱대며 종을 울렸다.
미리 준비해 두고 있었는지 따뜻한 차와 달콤한 생크림 케이크가 금세 준비되었다.
‘생크림 케이크에 청포도라니 역시 주방장은 뭘 좀 안다니까.’
흐뭇하게 감상하곤 케이크를 이등분해 입에 가져갔다.
“감사합니다, 공녀님. 그 말을 하고 싶었어요.”
‘긴말을 시작할 때가 되었군.’
“누가 보면 내가 퍼 주기만 한 줄 알겠어. 나는 내 아래에 있는 사람이 불법 저질러서 나한테 피해 끼치는 거, 절대로 못 두고 봐. 그러니 앞으로 잘 처신해.”
“그 말씀은 제가 계속 공녀님의 아래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인가요?”
나는 눈매를 좁혔다.
“무슨 일 있었어?”
“2년 동안 많은 정보상을 만났는데 그중 동생과 비슷한 외관의 아이라도 찾은 곳은 없었어요.”
로단테가 눈을 깜빡였다.
“평민에 고아는 돈을 줘도 정보를 얻을 수 없던 거예요.”
정보는 어떤 의미로든 값비싸기 마련이다.
정보 자체가 그랬고, 정보를 수집하는 사람의 몫도 그랬다.
그러니 이건 흔한 비극이라고. 네가 잘못해서 속은 게 아니라고.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라고.
어설픈 위로를 건네는 대신 나는 잠자코 로단테의 말을 경청했다.
“그것도 모르고 바보같이 계속…….”
“네 잘못만 반성하도록 해.”
나는 소년의 앞에 놓인 포크로 포도를 찍어 내밀었다.
당혹스럽게 나를 쳐다본 로단테는 머뭇거리다가 입을 벌려 포도를 받아먹었다.
느리게나마 움직이는 볼을 확인한 나는 성격 못돼 보이게 의자에 몸을 깊이 묻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이러면 케이크를 못 먹는다.
자연스럽게 다시 상체를 일으켜 남은 절반을 해치우려는데, 로단테가 중얼거렸다.
“저는 제가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무시해도 상관없는 사람이었던 게 잘못 같아요.”
순간 쿨럭 기침할 뻔했다.
‘이래서 적폐 신관이 되었던 거로구나!’
동생을 무사히 찾은 지금도 이런데, 죽었을 때는 어땠을까.
흑막이 없는 세계관에서 갑자기 흑막의 징조를 보이는 소년이 나타났다.
‘곤란한데.’
로단테를 통해 처음으로 봤던 미래의 조각에서, 그는 분명 그놈을 업신여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흑막은 상대방을 우습게 여기면서도 본인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결탁하는 존재였다!
‘위, 위, 위, 위험하다.’
나는 없는 말주변을 겨우 짜냈다.
“나쁜 건 그쪽인데 네가 왜 스스로를 책망해야 하는지 모르겠군. 그거야말로 바보 같은 짓이야. 스스로를 너무 몰아세우는 것.”
“가진 게 없는 사람은 스스로를 몰아세워야 맞지 않을까요.”
‘환장하겠네.’
“네가 왜 가진 게 없어? 내가 있는데.”
나는 못마땅하다는 듯 눈썹을 밀어 올렸다.
“네 후견인이 되어 줄게. 너는 똑똑하니까 아카데미에 입학해도 잘 따라갈 수 있을 테지. 졸업하면 오라는 곳 많을걸. 그때가 되면 너는 더는 평민에 고아가 아니게 될 거야.”
그러니까 아카데미 꼭 가라고 속으로 처절하게 외쳤다.
‘괴롭히는 놈들 있으면 다 나한테 이르라고 해야지.’
로단테를 흑화하게 만드는 자식, 절대 가만두지 않으리.
“왜…….”
로단테가 짙은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왜 이렇게까지 해 주세요? 저는 아무것도 해 드린 게 없는데.”
“나한테는 처음에 네게 상단을 연결해 주었을 때나 지금이나 다를 것 없어. 나는 원래 마음 잘 안 바꿔.”
“……그렇지요.”
로단테가 샤를리즈의 십 년의 짝사랑을 떠올렸다는 데 남은 케이크를 걸 수 있다.
XX도 약에 쓴다더니 저것도 도움이 다 됐다.
“아카데미는 바로 입학할 생각 하지 마. 엉망인 성적으로 졸업하면 선택의 폭이 좁아질 테니까. 그동안은 공작저에서 동생과 지내.”
일단은 눈에 두고 볼 수 있는 곳에 안전히 둘 요량이었다.
눈을 조금 크게 뜬 로단테가 작게 중얼거렸다.
“공녀님은 다정하시네요.”
의사를 불러야겠다. 가는귀가 먹었나 보다.
* * *
로단테는 돌아갔다.
노아와 인사를 하며 확인해 봤는데, 귀는 멀쩡한 것 같았다.
‘잠깐 이상해졌던 건가 보다.’
그나저나 로단테의 일이 잘 풀려 다행이었다.
후후후.
음산한 웃음소리가 뚝 끊겼다.
나는 주섬주섬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여태까지 머리 안 깨진 게 천운이지.”
이 세계는 어린아이만 털모자를 썼다.
다른 건 몰라도 아이만 하는 걸 이 나이 먹고 이 평판으로 나 혼자 하기는 기분이 영 그렇다.
“라베트한테 털모자 쓰고 다녀 달라고 부탁해 볼까.”
라베트가 몇 번 쓰고 다니면 금세 유행하게 될 텐데.
카타리나 황후와 관계가 박살 나긴 했어도 애초에 대외적으로 그 관계가 드러난 적 없으니 새삼 문제 될 건 없었다.
‘로나터스가 정치가 아니라 검술로 유명한 가문이라서 다행이야.’
정치 명가였다면 로나터스 후작이 3년의 공백을 채우는 데 몇 달은 어림도 없을 테니 말이다.
목도리로 뒤통수까지 칭칭 두르고, 나는 집무실이 위치한 복도를 걸었다.
“리반, 얼마나 느리게 걷는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자주 복도에 출몰할 리가 없다.
“제 휴식 시간은 제가 챙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새침하게 대꾸한 리반이 주변을 살폈다.
“그보다 상처는 괜찮으십니까?”
“응, 잘 아물었어.”
“다행입니다.”
‘그럼 이만.’이라는 말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기세였다.
이 정도도 리반이 엄청나게 시간을 써 준 것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나는 그를 붙잡지 않을 수 없었다.
“미안한데, 대공 전하께서는 어디 계시지?”
“집무실에 계, 아니, 아니겠군요. 아마 정원에 계실 것 같습니다.”
리반은 상세한 위치도 덧붙였다.
“고마워.”
나는 리반이 먹먹한 심정으로 바삐 움직이지 않도록 쏜살같이 사라져 주었다.
‘어, 여기…….’
리반에게 말로만 들을 때는 몰랐는데, 도착하니 알게 됐다.
이곳은 내가 올바른 정신으로 처음 참석한 무도회의 테라스에서 본 바로 그 정원이었다.
‘역시 푹신하네.’
넘어져도 뒤통수 깨질 일은 없을 것 같아 다행이다.
그래도 혹시 돌이 있을까 봐 열심히 땅을 훑어보며 걷던 순간이었다.
“공녀도 산책하러 왔어?”
얕은 웃음기 서린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나는 목도리가 흘러내리지는 않았는지 확실하게 확인한 후, 일단 대답부터 했다.
“예.”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보다 공녀가 추위를 많이 타는 줄은 미처 몰랐어. 의상실의 마담에게 연락을 취할게.”
“아닙니다, 그냥……. 목도리가 마음에 들어서요.”
“음? 고마워.”
목도리에 껴서 얼굴을 가리는 머리카락을 빼내 주고 있기 때문인지 살짝 기울어진 얼굴에서 두 눈은 반쯤 내린 눈꺼풀에 가려져 있었다.
나는 이 모든 순간에도 겨울 하늘처럼 새파란 벽안만을 바라보았다.
무례할 만큼 뚜렷한 시선이었다.
눈꺼풀에 가려졌다 다시 드러난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실재하지 않는 시선이 실처럼 단단히 얽혔다.
그뿐이었다.
미래의 조각은 조금 전 이미 펼쳐졌기 때문이다.
지금 이 당혹스러운 기분이 방금 엿본 미래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기절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둘 모두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때마침 한층 서늘해진 바람이 드러난 살결을 스쳤다.
꼭 칼릭스를 통해 미래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던 그날 같았다.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달라진 건 많았으나,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었다.
일단은 정신부터 차려야 한단 거다!
“다른 선물들도 부디 공녀의 안목에 부합한다면 좋겠군.”
그날 방문한 상점의 직원들처럼 칼릭스가 말했다.
“아주 부합할 겁니다. 그래야 마땅합니다. 누가 선물해 주신 건데요. 감히, 제가!”
“왜 또 이렇게 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