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의 조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72) (72/232)

72화

나는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슬픈 내용을 기어코 중얼거리고 말았다.

“혹시 그거…… 리반이 찾은 겁니까?”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는 듯했던 칼릭스가 깍지 껴 교차된 손가락 위에 제 턱을 올렸다.

“내가 찾았어.”

반쯤 내리뜬 눈꺼풀을 보고 있자니 내가 못 할 짓을 저지른 못난 인간이 된 것만 같다.

“좋아해 줄 공녀 얼굴을 떠올리며 열심히 찾았는데, 리반만 부르다니 너무하군.”

“그게 요새 리반이 너무 지친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자꾸 사샤 님으로 테라피를 해서 제 차례가 돌아오지를 않습니다.”

말하고 보니 진짜 그랬다.

‘퀭한 안색으로 동정심을 자극해서 한 번 두 번 순번 양보한 게 벌써 다섯 번이잖아!’

“마치 악덕 상관이 된 기분이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말이야.”

“예?”

“리반보다 내가 일하는 시간이 더 길어.”

칼릭스가 심상하게 말했다.

“리반의 다크서클은 열 살이 되기 전부터 있었고.”

“얼굴이 상한 게 아니라 원래 그런 거였어.”

나는 고요히 분노했다.

주군은 얼굴값을 안 하는데, 그 수하는 얼굴값을 하다니…….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격언은 최소한 엘루이든에 성립되지 않았다.

“앞으로 복도에서 리반을 마주친다면 마구 말을 걸 거예요. 한 번도 놓치지 않을 겁니다.”

주먹을 쥐며 다짐했다.

‘휴식 시간을 다섯 번은 방해해 버리겠어…….’

이 감정을 공유하고 싶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칼릭스를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가늠하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던 칼릭스가 빙그레 웃었다.

“똑같이 돌려주는 건 어때, 샤를리즈? 사샤를 만나는 순번 다섯 번을 돌려받는 거야.”

“아주 훌륭한 조언이었습니다.”

고개를 끄덕끄덕한 나는 기록물을 살폈다. 보관 상태가 좋았는지 유실되거나 얼룩진 부분 없이 온전했다.

“여기. 읽으면서 듣도록 해.”

칼릭스가 그중 한 장을 건넸다.

나는 종이를 빠르게 읽어 내렸다.

“계약에 돌입할 수 있는 조건은 세 가지 중 하나만 충족하면 돼. 그중 두 가지는 직계 황족만 가능한 방법이야.”

의문스러울 사안은 아니었다.

비록 현신하지 않아 전설로 여겨지기는 해도, 건국에 조력하고 황족들을 수호하는 존재가 바로 신수다.

“계약할 수 있는 다른 조건이 있었다고 해도 기록하지 않았겠군요.”

“응. 그 한 가지도 기준치 이상의 신성력이더군.”

손가락 끝이 숫자가 기록된 부분을 정확히 짚었다.

“두 번째는 피로 직계 황족임을 증명하는 것.”

‘그래서 원작에서 그때 사샤가 신수와 계약할 수 있었던 거였어.’

어떻게 보면 가장 간단한 방법임에도 관심조차 없는 듯 칼릭스는 손가락을 조금 더 내렸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으므로 시선을 좀 더 내렸다.

“어디가 처음이고 어디가 마지막인가. 언제가 시작이고 언제가 끝인가. 신의 계시가 내리치는 날, 손에 넣을 수 있으리라.”

마치 신탁 같은 구절을 신관보다도 고결한 생김새의 남자가 읊었다.

“해석의 여지가 다양한 문장이지 않아? 흥미로워.”

섬세한 손이 종이를 스치며 미끄러졌다.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기 전, 나는 그 손을 잡아챘다.

여느 때보다도 유독 근접한 벽안에 당혹스러움이 일순 스쳤다. 그러나 그는 손을 빼는 대신, 더 깊게 밀착했다.

“뒤에 대공이 있는 게 아니었어. 공녀를 낱낱이 알아야겠다.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게 분명해.”

그가 와락 소리를 내질렀다.

“리엔타 공작비의 죽음에 대해 파헤쳐라. 도저히 알 수 없으면 공작에게 약이라도 먹여 실토하게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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