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의 조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80) (80/232)

80화

“켁!”

공작이 해괴한 소리를 내며 사레에 들렸다.

한참을 콜록거리던 공작은―.

“기침이, 콜록, 나와서, 콜록콜록, 가 봐야, 콜록, 겠구나, 콜록. 다음에 또 오렴. 기다리고 있으마, 콜록.”

하며 사라졌다.

“말하기 엄청 싫으셨나 보다.”

그리고 내 연기력은 아무래도 어머니를 닮은 것 같다.

‘흠…….’

오늘 로단테는 신성력을 사용해 내 상처를 치료해 줬다.

‘좀 아까운데…….’

그리하여 나는 침대를 눈앞에 두고 마차에 오르는 슬픈 결단을 내렸다.

처량하게 마차에서 덜컹이는 시간을 가진 후, 대공저에 도착했다.

집사는 놀란 눈으로 나를 마중 나왔다.

“공녀님? 혹 공작저에서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아니. 대공 전하를 뵙고 싶어서.”

피곤해서 말이 헛나왔다.

나는 집사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집사는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전하께서는 마침 조금 전 도착하셨습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대뜸 찾아가기는 늦은 시각이었다. 집사는 지나가는 사용인을 세워 칼릭스에게 내 방문을 전하라고 했다.

“환복하진 않으셔도 괜찮으십니까?”

“응. 그보다 사샤는 어때? 오늘 많이 놀랐을 거야.”

“심신을 안정시키는 약을 드시고, 지금쯤 주무시고 계실 겁니다.”

“혹시 리반이랑?”

“어떻게 아셨습니까?”

집사가 내 현란한 찍기 실력에 놀란 눈을 했다.

“오늘 사냥 대회에서 사샤가 리반에게 착 달라붙어 있더군.”

“그때부터였습니까?”

집사와 내 목소리가 처졌다.

힘이 빠져 조용히 걷는 중 도착지가 보였다.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편안한 밤 보내십시오.”

“집사도.”

집사가 복도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왜 이렇게 힘이 없어.”

아, 깜짝이야!

나는 놀라 그 자리에서 깡총 뛰었다. 왠지 이럴 때마다 내 안의 무언가가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칼릭스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미안해. 많이 놀랐어?”

“아니요, 제가 좀 용감합니다.”

마음의 상처를 입어 아무 말로 대꾸하며 나는 침울하게 응접실 안에 들어섰다.

푸른빛이 감도는 아이보리 색의 셔츠를 입은 칼릭스는 어쩐지 오늘따라 서늘한 느낌이었다.

“우리, 해야 할 이야기가 많았지.”

리반보다 일을 더 많이 한다더니 과연 워커홀릭이었다.

눈 보고 냅다 쓰러지고 싶다는 생각은 아래로 꾹 밀어 두고, 나는 맞은편에 앉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숲에서 발견해 조금 가져왔습니다.”

나는 주머니를 테이블에 올렸다.

“훼손 방지 마법이 걸려 있어 보관은 문제가 없을 겁니다.”

“그리고?”

“피오니 타티스는 흑마법사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름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 같았는데, 이건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나는 아쉬움에 콧잔등을 찡그렸다. 

그렇게 죽을 줄 알았으면 정신 더 멀쩡할 때 찔러 보기라도 할 것을…….

승기가 본인에게 있다고 확신했을 상황이라서 ‘곧 죽을 사람 대상으로 뭔 말을 못 해 주리’ 상태였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리고, 공녀?”

“그리고. 아, 그리고 피오니 타티스는 명예욕이 상당한 성정으로 추정됩니다. 사교계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으니, 흑마법 쪽이었을 텐데 그렇다면 죽음을 불사하고 행동하는 계열이 아닌데도 발설하는 대신 죽음을 유도하는 흑마법에 동의한 것은…….”

이다음은 정말로 내 추측이라서 말하기 조심스러웠다.

“동의한 것은 흑마법을 발동하는 데 필요한 대가를 그쪽이 제공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는데 혹시 공녀도 그런가?”

“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나아가서 개인 행동하는 흑마법사를 척살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대가를 준다고 해도 목숨을 걸 이유로는 부족하니까요.”

나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때, 칼릭스가 말했다.

“그리고.”

“예?”

“그리고, 샤를리즈?”

칼릭스가 손마디에 턱을 괴었다. 상체를 기울여 한순간 거리가 좁혀졌다.

응접실의 빛이 유독 엷었던 이유는, 이 표정을 가리기 위해서였을까.

“다치지 않기로 했잖아.”

어렴풋이 기억났다.

“위험한 상황이 있으면 도망치기로 했는데.”

“…….”

“증거가 사라졌군.”

분명 상처는 씻긴 듯 사라져 깨끗한데, 상처가 낫는 과정처럼 뺨이 간지러웠다.

묘한 분위기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미안해, 공녀. 질책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아닙니다.”

“공녀를 걱정했어. 이 말을 하고 싶었어.”

걱정해 줘서 고맙다는 말도, 걱정시켜서 미안하다는 말도 모두 이상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이런 생각이나 하기로 했다.

‘지금 기절하면 큰일 날 느낌…….’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해야겠다.

나는 이만 자리를 마무리하고자 입을 뗐다.

“늦은 시간에 갑작스레 죄송했습니다. 그럼 편히 쉬세요.”

“미래를 보려던 것 아니었어?”

‘그게 맞긴 한데 말입니다…….’

나는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사냥 대회에서 이미 보기도 했고, 내일 뵙겠습니다.”

“공녀. 나는 공녀에게 이전보다 더 협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차야.”

칼릭스가 빙긋 웃었다.

“그러니 해도 돼.”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계속 거절하는 것도 이상했다. 나는 엉거주춤 장갑을 벗었다.

바깥을 전전하느라 차가워진 걸까. 칼릭스의 손은 유독 따뜻했다.

순간 델 것처럼 뜨거워 손가락을 움츠렸다. 칼릭스의 손은 미동 없었지만, 갑자기 할퀴었으니 내심 당황했을 것이다.

‘소, 손톱을 얼마 전에 깎아서 다행이다.’

선의로 손을 내어 줬는데 상처나 낼 뻔하고. 나는 머쓱하게 손을 가만히 뒀다.

‘이 정도였던 것 같은데.’

다 됐다며 슬쩍 손을 빼려는데, 칼릭스가 엄지로 내 손가락을 붙잡았다.

‘어?’

“아직이잖아.”

나는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아직, 보지 않았잖아.”

“……알고 계셨어요?”

“응.”

“그럼, 손은 왜.”

“왜일 것 같아?”

칼릭스가 비스듬히 웃었다.

* * *

시간을 되돌려 이른 오후.

황제는 막사의 권좌에 앉아 칼릭스를 맞았다.

“타티스 후작 부인이 사망했다고 들었다. 당시 무슨 상황이었느냐?”

“이미 기사단장에게 전달했습니다만.”

칼릭스가 엷게 웃었다.

“폐하께서 원하시니 반복하지요. 후작 부인이 아이를 위협하고 있었고, 리엔타 공녀가 아이를 감싸더군요. 후작 부인이 검으로 두 명을 해치려고 하자 제가 그녀의 손등을 저격했습니다.”

“너무도 잔인했다! 연약한 부인이 충격으로 사망한 건 아니더냐?”

“그럼 머리를 적중시켜야 했을까요?”

무심한 질문에 황제가 멈칫했다. 그런 적 없는 것처럼 외려 얼굴을 구기며 황제는 단호하게 선언했다.

“아무튼 공녀와 그 아이는 조사는 받아야 한다. 칼릭스 너는 아직은 황가의 피가 흐르니 조사는 없겠다만, 내게 당시 상황을 소상히 보고해야 할 게다.”

“아니요. 저도 조사를 받겠습니다.”

“뭐?”

“아이를 구하려다 위험한 상황에 휘말렸던 공녀도 조사를 받는데, 제가 받지 않을 수는 없지요.”

“나를 질책하는 게냐? 후작 부인이 즉사했어. 상황은 의문투성이다!”

“그래서 공녀를 의심하십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지.”

황제는 말을 아꼈지만, 칼릭스는 알았다.

엘루이든과 리엔타가 결합하기 전, 리엔타의 면책권을 회수하고 싶어 안달 난 것이다.

목숨을 구명받을 적에 느꼈을 안도와 감사는 모두 잊은 지 오래인 황제를, 칼릭스는 그답다고 생각했다.

[형님의 죽음은 안타깝다. 그래서 오히려 더 정신을 차리고자 노력하는 것이야! 사샤는 너무도 어리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

[사샤가 죽었다고, 나도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가 돌아오면 보위를 넘길 것이야. 본래 그 아이의 것이니까.]

그때 한 말에 진심은 있었는지.

없었다고 해도 놀라울 일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라비아 선황비는 소식이 닿았느냐?”

“아직입니다.”

황제가 미간을 모았다.

“아직도? 사샤의 생존을 알렸다는 서신을 추적하면 되지 않아?”

“여러 경로를 거쳐 두었더군요.”

“쯧.”

황제가 혀를 찼다.

“사람이 중요한 게다. 인망을 쌓아야 해.”

선황비를 찾아도 찾았다고 황제에게 알릴 생각은 없지만, 아직도 못 찾은 것은 사실이었다.

검은밤의 수색 능력을 다시금 의심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사샤도 그랬었지…….’

칼릭스가 가볍게 고개를 기울였다.

“하실 이야기가 모두 끝나셨다면 이만 가 보겠습니다.”

막사를 나오고 저택에 도착하는 동안 칼릭스는 생각했다.

‘샤를리즈를 조사하지 못하도록 할걸 그랬나.’

‘그랬다간 샤를리즈를 의심하게 될 수도 있으니 표면상의 조사는 참석하는 게 낫겠지.’

온통 샤를리즈 생각뿐이었다.

생각의 흐름은 후작 부인이 생존해 있을 때로 거슬러 갔다.

서쪽 숲의 사냥터는 수도의 사방위에 각각 위치한 숲 중 가장 부지가 넓다.

그러니 찾지 못하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 아무리 찾아 헤매도 닿지 못하는 것은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폭음이 연달아 터져 사람의 목소리는 금세 묻혀 버렸다.

그래서 그 순간의 판단은, 직감이라는 가장 모호한 감각으로밖에 설명될 수 없는 것이었다.

[살생을 하지 마라. 안토니오에게서 너를 숨겨. 어느 정도 능력은 있지만, 피바람은 결코 반기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줘야 한다.]

아직 성인이 되려면 한참 남은 어린 동생에게 선황제는 당부했다.

[그렇게 살아남아.]

살아남는 것보다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칼릭스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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