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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조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82) (82/232)

82화

노아는 이미 조사를 받았다.

[몹시도 형식적인 조사였습니다. 당시 주변인들을 모두 조사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듯이 말입니다.]

아무리 황제라도 리엔타의 독녀를 겨냥하기는 부담스러웠다는 방증이다.

[주군의 조사도 형식적일 것 같습니다만, 로단테가 조금 걱정이로군요.]

칼릭스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면책권을 회수하기 위해 흠결을 찾아내고자 하는 것일 테지.]

‘가짜 증언을 만들 속셈인가?’

만약 그렇다면 기사인 노아 대신 로단테가 수월한 선택지이긴 할 터다.

아마 공작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가 로단테의 조사도 함께 미뤄 달라고 했을 때, 공작이 선뜻 수락했기 때문이었다.

마차를 주변에 세웠던 덕택에 목적지까지는 금세 도착했다.

나는 로단테에게 당부했다.

“로단테. 에반스 경과 함께 조사를 받아. 경이 적절하지 못한 상황은 잘 대응해 줄 거야.”

“공녀님은요?”

“나는 로르 경.”

노아와 에반스 경을 제외하니 로르 경이 떠올랐다.

내가 기사단원들과 어색하게 연병장을 달리던 시절, 처음 내게 말을 걸어 줘 어색함을 탈피할 수 있게 도움을 주었던 친절한 기사는 지금도 친절한 미소를 띠고 있다.

“한 시간 후에 만나자.”

나는 이번에도 대장이 걸렸다.

‘내가 경비대장 아니라 그냥 기사면 자존심 상해할까 봐 그러나?’

그래도 근처라서 가까우니 경비대장 아니어도 괜찮다는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로단테는 부지런히 걸어야 하는 거리로 배정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또 큰일에 엮이는 슬픈 비극은 없어야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오셨습니까, 공녀님.”

경비대장이 손수건으로 연신 땀을 훔쳤다.

그는 ‘많이 놀랐겠다’, ‘아프다고 들었는데 몸은 괜찮냐’ 같은 한담 없이 본론부터 시작했다.

‘썩 꺼지라는 마음이 여기까지 전해지는 걸 보니 조사 시간이 짧을 것 같다.’

“당시 상황을 소상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바이에르 공자를 찾다가 우연히 가문의 기사를 만나고 숲에서 산책을 했어.”

“……당시 폭음이 빗발쳤다고 들었는데요.”

“그래서 모여서 울기 바빴겠지. 나는 한적한 곳이 좋아.”

“예…….”

경비대장이 별 미친 사람 다 본다는 듯 나를 잠시 쳐다봤다.

“당시 후작 부인과의 대치 상황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내 피후견인에게 일방적으로 막말을 퍼붓더군. 두고 볼 수 없어서 끼어들었더니 나를 죽이려고 하던데.”

그래, 나를 죽이려고 했다.

로단테를 긁는 말을 자꾸 했던 것은 이성을 잃도록 하기 위함이었을 거다.

정신적으로 빈틈이 있을 때 그 자리를 파고들어 간 흑마법은 보다 강력한 효과를 낸다고 했다.

‘로단테한테 심어 두고 놈이 원할 때 나를 제거하려고 했던 걸 수도 있겠군.’

……그러니까 나는 대체 왜…….

원작에서도 사샤는 숱한 목숨의 위협을 겪었지만, 이리안은 겪은 적이 없었단 말이다.

비록 이리안은 바이에르 공자를 살리지도 않았고, 로나터스 후작의 의식을 차리게 하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

숙연해진 나는 얌전히 입을 닫고 경비대장의 다음 질문을 기다렸다.

“그, 그러셨군요. 충격이 크셨겠습니다.”

그때였다.

노크 소리가 들리고 기사 한 명이 들어왔다. 그가 나를 보고 인사하더니 경비대장에게 무어라 전달했다.

“나한테 인사를 하고자 하신다고?”

“예. 장소를 빌려줘 감사하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에. 세상에, 세상에! 벌써 대화를 끝내셨을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직접 와 주시기까지 하신다니.”

들뜬 얼굴로 기사의 어깨를 찰싹찰싹 치던 경비대장이 불현듯 흠칫 굳었다.

“크, 크흠. 조사는 끝났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못 보일 꼴을 보였다고 생각했는지 얼굴을 붉혔다.

‘이 정도 주접은 내성 생긴 지 오래인데.’

강력한 주접 덩어리 네 명이 있어서 말이다.

‘수도 경비대의 단장인데 저렇게 좋아하는 걸 보면 황실 기사단장이라도 왔나.’

진짜 그랬다!

“리엔타 공녀를 뵙습니다. 황실 제1기사단의 일리든 포르테입니다.”

복도를 걸을 때 저 멀리 보이는 모습만 보고도 나는 느꼈었다.

낯선 얼굴이지만 이름을 들으면 알고 있는 사람일 것 같다고 말이다.

금발에 자색 눈을 가진 젊은 남자는 원작에 나오지 않았을 리가 없는 외모를 가졌기 때문이다.

“반갑습니다. 포르테 경.”

‘일리든 포르테.’

과연 원작에 등장한 인물이었다.

‘등장 시기도 똑같네.’

사샤는 사냥 대회에서 큰 부상을 입지만 신수 덕택에 금세 회복되었다.

그리고 회복되자마자 당시 상황을 조사받게 되었다.

‘어린아이인데다가 칼릭스가 굽히지 않아서 장소는 대공저였었나?’

가물가물하다. 장소가 어디였는지는 몇 번을 탐독하든 내게 늘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일 터다.

일리든은 그 자리에서 이리안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

‘뜬금없지만…….’

이리안의 매력은 그만큼 엄청났던 것이다!

‘하긴 나도 이리안 좋아해.’

각설하고, 여기는 경비대장의 응접실이 위치한 복도이니 경비대장 보러 가는 길일 것이다.

‘그럼 대화를 나눈 상대는 누구…….’

나는 흠칫했다. 혹시?

“엘루이든 대공 전하와의 대화는 모두 끝나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제국을 위하는 황족은 모든 죄에서 자유롭다.

제국법에 첫 번째로 기술된 몹시도 공교로운 문장이었다.

제국을 위하지 않는 황족이니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처형당한 황족도 있었고, 같은 황족을 살해하고도 처벌받지 않은 황족도 있었다.

‘그리고 그 황족은 황제의 직계까지이니 칼릭스는 황족이지.’

그런데 칼릭스가 대체 왜 대화로 둔갑한 조사를 받는단 말인가.

그때였다. 기사단장의 뒤를 보며 나는 눈매를 좁혔다.

로르 경이 중얼거렸다.

“에반스?”

“공녀님!”

에반스 경이 급하게 달려 당도했다.

“조사실에 로단테만 입실이 가능하다며 동석을 거부당했습니다.”

“뭐? 공녀님께서는 기사 대동이 가능했는데?”

로르 경이 의아하게 말했다.

“사전에 고지받지 못한 사항인가?”

성기사단장으로 더 적합했으리라는 평을 받는 기사단장의 질문이었다.

“그렇습니다.”

무슨 그런 당연한 말을 새삼스레 하냐는 표정으로 에반스 경이 답했다.

나는 일단 발부터 뗐다.

“로단테가 있는 장소로 안내해 줘.”

“예, 아가씨.”

빠르게 이동하고 있던 중, 에반스 경이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탄성을 내었다.

“그러고 보니 아가씨께 가는 길에 엘루이든 대공 전하를 우연히 뵈었습니다.”

“전하께 로단테 일을 말씀드리고 도움을 요청했어?”

“아니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칼릭스 만났다는 걸 왜 굳이 말한 거지?’

어리둥절해 있는데, 에반스 경이 아차 하는 기색으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몸에 익은 바람에 그만…….”

……슬픈 사연이었다.

“다음에는 그리할까요?”

에반스 경의 질문에 나는 대답했다.

“아니. 하지 마.”

“예. 알겠습니다. 저기 모퉁이를 돌면 바로입니다.”

그리고 모퉁이를 돌고 우리는 멈춰 섰다.

칼릭스는 문고리가 망가진 문에 등을 대고 앉아 있었다.

발소리에 무심히 시선을 돌린 눈이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말했다.

“공녀.”

사뭇 다정한 어조였다.

“주제넘었다면 미안해. 공녀가 걱정하고 있을 것 같아서.”

로단테는 칼릭스의 어깨 반 뼘 아래에 고개를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피곤했나 봐. 잠이 들었네.”

에반스 경이 다가가 로단테를 안아 들었다.

“주제넘지 않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해 줘 다행이야.”

칼릭스가 몸을 일으키자 조사실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것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뒤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기사단장의 것이었다.

“글쎄. 어렵진 않지만 그대의 부하들을 취조하는 것이 더 유익할 듯하군.”

안쪽에서 남자 둘이 우물쭈물 나왔다.

일리든의 입매가 딱딱하게 굳었다.

* * *

칼릭스에게 전해 들은 상황은 이랬다.

“황실 기사단원 둘이 로단테를 취조하고 있었다고요.”

“그래. 강압적인 방식을 사용하진 않았지만, 꽤 압박했던 모양이야.”

폭력을 수반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기사도를 잊지 않은 기사이기 때문이 아니다.

대동하려던 기사를 쫓아 보냈다. 저택에 도착하자마자 아이의 몸을 점검할 테니 더한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함에 불과할 거다.

“로단테가 울었습니까?” 

“그건 아니지만, 기사들의 말이 어렴풋이 들렸거든.”

“겁박이었나요?”

“음.”

칼릭스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제안을 거절했거나 협박에 위축되지 않았던 것 같아. 사생아는 이래서, 로 시작되는 폄하를 했던 것을 보면.”

그놈들, 그 말 황후 앞에서 언제 한번 중얼거려야 할 텐데.

“그런데, 공녀.”

화제를 전환하는 서두에 나는 흠칫했다.

“왜 나를 보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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