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기분 나쁘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공녀에게 손을 주지도 않았을 거야.”
“그래도 이건 대공 전하께서 모르시는 사이에 볼 수 있으니까요.”
“매번이라면 곤란했겠지만, 하루에 한 번이잖아?”
나는 또 흠칫했다.
“어떻게 알았냐고 묻고 싶은 얼굴이네.”
칼릭스가 짧게 웃었다.
밀폐된 작은 공간을 울리는 나직한 웃음소리에 귀가 간지러웠다.
“눈이 마주칠 때, 공녀가 굉장히 무표정해질 때가 있곤 해. 처음에는 집중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돌연 깨닫게 되더군. 공녀는 분명 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공녀의 시야에 나는 없는 느낌이라고.”
그 말은 꼭 내가 그를 무시하는 게 싫다는 것처럼도 들렸다.
“그럼 이제 나를 봐 줄 기분이 되었어?”
그냥 눈을 마주하는 것뿐인데, 마치 모든 것을 보여 주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별것도 아닌 것을 칼릭스가 자꾸 조르듯 말하니 더 그랬다.
나는 눈을 한번 꾹 감았다가 번쩍 고개를 쳐들었다.
“오랜만이야.”
칼릭스의 입술 끝이 날렵하게 올라갔다.
장난스러운 말은 평생 해 본 적 없을 것 같은 얼굴로 하는 친밀한 언사에 언제부터 익숙해졌더라.
그 순간 미래가 시작됐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리엔타의 계집이 흑마법사인 것 같다니.”
“그, 그것이 공녀가 한발 앞서 대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하!”
언제 소리 내어 웃었냐는 듯 그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었다.
의자 팔걸이를 주먹으로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포섭당했나?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을 보면 말이다.”
“예? 아닙니다. 아닙니다. 주군! 저는 절대로 주군을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그 계집이 흑마법? 가당찮은 소리.”
그가 입술을 비틀었다.
“공녀는 절대로 흑마법사일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