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멋들어지게 기른 주인의 콧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폐활량이 좋은가 보다.
“어, 어떤 검을 찾으십니까?”
“음.”
“혹…….”
서두를 뗀 주인이 고작 한 음절에 덧붙이듯 빠르게 말했다.
“무릇 어느 분이 사용하시는지에 따라 추천해 드리는 검이 달라집니다. 체구나 완력이 모두 제각각 다르시니 말이지요. 그래서 말입니다만, 혹시 공녀님께서 사용하실 용도로 찾으시는 것입니까?”
“그건 아니야.”
마치 살얼음이 깨지듯 내부 분위기가 풀어졌다.
“이 정도쯤이면 좋겠는데. 괜찮은 물건이 있을까? 가벼운 검으로 부탁하지.”
나는 손으로 대강 크기와 검날의 너비를 설명했다.
주인이 즉각 대답해 주었다.
“그 정도는 보편적인 규격인지라 매우 많습니다. 다만, 공녀님의 안목에 부합하는 검은 기성품 위주로 다루는 제 가게보다는 옆의 대장간이 나으실 텐데요.”
“그곳도 가봐야겠군. 추천 고마워.”
‘노아 검 사줘야겠다.’
리엔타에서 가문의 기사들에게 제공하는 검은 훌륭한 품질을 자랑하지만, 다른 문제였다.
‘뭐라도 바리바리 계속 안겨줘야겠어.’
글쎄, 노아는 내가 주겠다는 돈을 거절했다.
‘정말 악덕 상관으로 차근차근 걸어가고 있구나, 나…….’
숙연해져 있는데, 상점 주인이 손사래를 치며 크게 외쳤다.
“아닙니다! 당연히 이런 말씀을 드려야 하는 것을요. 더 필요하신 건 없으십니까?”
“아.”
나온 김에 이것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싹싹하고 친절한 주인에게 고마움을 담아 말했다.
“총도 취급하나? 크기는 작았으면 좋겠는데.”
“이것도 다른 분이 사용하실 물품입니까?”
“아니. 내가 쓸 거야.”
요새 내 목숨이 영 위태롭다.
바지를 입고 다니면 숨기기 힘들 테지만, 드레스이니 다리에 고정하면 될 듯했다.
재깍재깍 답을 돌려주던 주인이 조용해졌다. 사실, 상점 내부 전체가 그랬다.
‘아, 이거……?’
나는 또 머쓱하게 눈을 굴렸다.
아무래도 내가 수틀리면 무기로 겁박하고 다닐까 봐 이러는 것 같았다.
‘샤를리즈’의 성격도 성격인데, 하물며 하나뿐인 자식을 아끼는 부친에겐 반역마저 사면받을 수 있는 면책권까지 있으니…….
‘그런데 반응이 어째 예상보다도 더 강렬한 느낌인데……?’
[영식이 생각할 때 가장 뜨거운 화제는 뭐야?]
[그것은 바로……. 공녀님이십니다.]
‘……아하.’
내 소문이 좋았던 적은 거의 없으니 딱히 궁금하지도 않았는데, 이전의 것보다도 더 대단한가 보다.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에리히한테 나중에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끝으로 나는 입을 열었다.
“안내해 주겠어?”
“예? 예!”
우렁차게 대꾸한 주인이 팔과 다리를 같이 움직이며 삐걱삐걱 걸어갔다.
나는 면구스럽게 그 뒤를 따랐다.
* * *
불을 밝히지 않은 복도를 걸어가는 젊은 집사의 표정은 사뭇 어두웠다.
‘혹 리엔타 공녀가 손해 배상을 요구한다면 어찌해야 할지…….’
이런 와중에도 이런 걱정을 해야 하는 처지였다. 그가 비참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소백작님의 봉급을 대부분 가져가시면서 타운 하우스 관리까지 맡기시다니!’
일리든은 청빈하다. 뇌물을 거절하고, 늘 깨끗하게 세탁한 기사단복만 입기 때문이다.
실상, 후자는 그저 사용인들을 충분히 늘리고 봉급을 줄 여력마저 없어서일 뿐이었다.
“소백작님. 리엔타 공녀가 찾아오셨습니다.”
처참한 마음은 애써 숨기고 고하자, 문이 열렸다. 일리든은 예견했다는 듯 되묻지 않고 바로 움직였다.
“그런데, 그……. 연병장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알겠다.”
과연 연병장에 도착하자 뒷모습이 보였다.
일리든 혼자만 수련하는 터라 초라하고 협소한 장소와 샤를리즈는 지독히도 어울리지 않았다.
인기척을 내자, 그녀가 곧바로 돌아섰다.
햇살을 받아 연두색에 가깝게 빛나는 눈동자가 싸늘했다.
“경이 내 피후견인을 강압적으로 조사하라고 명령을 내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일리든은 묵묵히 사과했다.
그의 주군은 황제이고, 지금도 그랬다.
그러나 비단 저 때문에 생각을 이렇게 정리한 것은 아니었다.
비록 황성에 난무하는 정치질에 연루된 적은 없으나,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진 않았다.
하지만 매 순간 절박하게 최선을 다한 장소에 있기 때문일까. 내뱉는 숨이 조금, 아주 잠시 떨리고 말았다.
* * *
내 심정을 말하자면 간단하다.
‘돌겠네.’
저 우직한 기사는 정말로 모든 죄를 끌어안고 자결할 생각인 거다.
‘그러면 내가 했다고 오해받는다고……!’
“일리든 포르테가 사망했다고.”
“예. 사망은 일주일 전으로 추정되며, 발견이 늦어졌다고 하더군요.”
리엔타 공작이 주먹을 꾹 쥐었다.
소식을 전한 집사는 침통하게 고개 숙였다.
“샤를리즈는?”
“황실 1기사단의 단원들이 아가씨를…… 심문해야겠다며 황제궁 앞에 무릎을 꿇고 빌고 있다고 합니다.”
“미친 것들.”
공작이 이를 갈았다.
“내 딸은 일리든 포르테를 만나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이런 일을 당해야 한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