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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조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96) (96/232)

96화

샤를리즈 리엔타가 무려 보름 만에 깨어났다는 소식은 사교계를 휩쓸었다.

[정말 대단도 하지.]

[본인이 하려던 일에 발목 잡혀 다치다니 우습네요.]

[대공 전하께서 이번도 용서하실까요?]

[글쎄요…….]

[이번은 수도원에 갈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정말 대공 전하께서도 지긋지긋하시겠소.]

[그래도 리엔타 공께 받는 금액이 꽤나 클 테니 쏠쏠하실 것 같기도 하지 않은가?]

[나를 쫓아다녔으면 크게 혼쭐을 내주었을 터인데!]

[이 사람아. 공녀가 그대를 왜 쫓아다녀?]

[그래도 나는 공녀 같은 미인이라면 결혼도 할 수 있을 것 같네만. 리엔타의 재산도 모두 상속받을 것 아닌가?]

원래라면 이 정도로 비웃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안이 워낙 컸다.

귀족들은 샤를리즈의 몰락을 예상했고, 그 순간을 키득거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칼릭스가 리엔타 공작저에 방문한 것은 그런 순간이었다.

[미안하네만, 돌아가 주게.]

리엔타 공작이 지친 얼굴을 손으로 쓸었다.

[지금 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아. 그대에게 보이고 싶어 하지 않을 걸세.]

[공녀를 만나야만 하겠습니다.]

늘 여유로워 모든 일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는 것만 같던 남자는 강경했다.

그에게 숙여야 하는 처지였다. 공작은 어쩔 수 없이 샤를리즈의 의사를 물어 오라며 시녀를 보냈다.

그리고 돌아온 시녀는 착잡한 기색을 채 숨기지 못한 얼굴이었다.

공작이 눈을 길게 감았다.

[모시겠습니다.]

샤를리즈의 방문 앞에서, 시녀는 물러갔다.

의례상의 노크를 한 번 하고 칼릭스는 곧바로 문을 열었다.

회색 숄을 어깨에 걸친 뒷모습이 보였다.

[일어설 수는 있나 보군.]

[아버지께서 이번에 신전에 기부를 많이 하셨거든.]

무심한 어조로 말한 샤를리즈가 돌아섰다.

폭탄을 터뜨리라는 무모한 명령을 한 사람답지 않은 차분한 기색이었다.

[어째서 그랬지?]

[무엇이?]

이상한 일이었다. 물어봐야 하는 것은 단 한 가지뿐인데, 그 말보다 하고 싶은 게 있는 것 같았다.

[이상한 질문을 했군. 폭탄이었겠지.]

샤를리즈가 입술을 올려 웃었다.

[내가 하는 일에 다른 이유가 있던 적이 있던가? 이번에도 비슷했어.]

[황후가 공녀를 몰아붙였나?]

샤를리즈는 대답이 없었다.

[지금이라도 수습할 수 있어. 공녀의 예상 밖이었다는 성명을 내고, 그 자리에 있던 모두에게 사죄의 서신을 보내.]

[필요 없어.]

샤를리즈가 중얼거렸다.

[더는 필요 없어.]

[공녀.]

[이제 나가 봐. 네가 멀쩡한지 보고 싶어서 들어오라고 했어.]

[그랬다면 처음부터 그런 일, 하지 않았으면 됐을 일이야.]

[다른 사람은 상관없어.]

이상한 감각이 치밀었다. 칼릭스는 익숙하게 그것을 내리눌렀다.

[네가 다치려고 하잖아.]

[너는…….]

칼릭스가 우미한 눈매를 구겼다. 섬세한 이목구비가 일그러지고, 짓눌린 말소리가 새어 나왔다.

[독약을 줘.]

[그거 버린 지 오래야.]

샤를리즈가 피식 웃었다.

[내가 너를 이만큼 사랑하나 봐.]

* * *

원작에서 샤를리즈가 등장하는 거의 마지막 부분이었다.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일 년쯤 뒤다.

‘가을 풍요제의 마지막 날. 샤를리즈가 폭탄을 설치한 시기.’

황후는 더는 필요 없어진 샤를리즈를 정적 여럿을 제거하기 위한 도구로 저 때 마지막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샤를리즈는…… 이리안을 죽이고 싶었을 테고.’

결국 저 사건으로 죽은 사람은 샤를리즈였다. 깨어나고 이틀이 흐르기 전 튜베롯 독약을 마셨으니까.

‘이번에는 오래오래 살아야지.’

꿈이 유독 길었던 탓일까. 아니면 죽음이 멀지 않은 내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까.

울적해진 기분을 털어내려 재차 다짐하며, 꿈틀꿈틀 이불에서 빠져나와 한 마리 도롱이 신세에서 탈출했다.

[열을 식히고자 이마에 올리기는 했지만, 너무 오래 대고 있으면 감기가 악화될지도 몰라.]

칼릭스는 그런 말을 하며 수건을 내릴 때까지 있겠다고 했고, 다시 열을 식혀야 한다며 수건을 올려 주었다.

‘그래서 이만 가봐도 된다고 나는 이불 칭칭 감고 있겠다고 한 거였는데…….’

나는 곱게 접힌 채 옆에 놓인 수건을 만지작거렸다. 미지근했다. 칼릭스가 나간 지 얼마 안 되었나 보다.

레아가 가져다준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약도 해치웠다.

그사이, 레아가 서신을 가져다줬다.

‘바이에르 공작도 많이 놀랐나 보군.’

하루 만에 답신이라니.

에휴에휴 하며 확인한 편지를, 나는 그만 툭 떨구고 말았다.

미리 말한다는 걸 잊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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