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어찌나 신났는지 정도를 모르고 폭주해대는 주둥이를 막은 사람이 있었다.
“폐하.”
당연히 카타리나 황후였다.
그녀는 조금 곤란하다는 듯 칼릭스를 한번 바라보고는 황제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 무도회가 제 회임을 알리기 위해 열린 것도 아닌 것을요.”
‘흠.’
황후도 빡쳤나 보다.
‘하긴 정작 칼릭스는 사샤로 반역 일으키려는 행위를 아직 보이지도 않고 있는데 화만 들쑤시고 있으니.’
카타리나 황후는 사샤를 제거하고자 나한테 초반부터 접근했을 만큼 신중한 성격이다.
내게 엘루이든 대공가에 대해 무언가를 알아 오라고 시킨 적도 없다. 내가 괜히 뭐를 더 해 보겠다고 나섰다가 일을 망칠까 봐 오죽 걱정되는지 말이다.
‘……그따위로 살아서 다행인 것도 있구나.’
나는 먼 산을 바라보았다.
그사이 그리니티 연회홀은 암묵적인 합의로 다시 이전 분위기로 돌아가 있었다.
무언가를 고심하듯 눈을 반쯤 내리뜬 옆모습이 보였다.
가뜩이나 불편할 기분, 나 때문에 더 망치게 하지 않기 위해 슬쩍 사라져 주려던 순간.
“샤를리즈.”
눈꺼풀이 올라가고, 그 아래 짙푸른 벽안이 드러났다. 칼릭스가 말했다.
“좋아해.”
‘갑자기요?’
황제 말 때문에 기분 나쁜 거 아니었습니까?
어리둥절함은 잠시였다.
주변이 급속도로 조용해졌다.
어쩌면 황제가 후사를 발표했을 때보다도 더 그런 것도 같다.
‘……후후후.’
그래. 나도 대공이랑 돈독한 사이가 될 줄 몰랐어.
나는 뿌듯하게 대답했다.
“예. 저도 그렇습니다.”
“정말이야.”
조금은 묘한 어조였다. 담담하게 말하는 것 같기도 했고, 되묻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눈썹을 꺾어 올렸다.
“저도 거짓말 안 합니다.”
그는 조금 웃었다.
긴 손가락이 마치 장난처럼 내 손끝을 톡 건드렸다. 어리둥절해 있다가, 나는 빠릿하게 정신을 차렸다.
‘이거 혹시?’
슉 손바닥을 밀어 넣었다.
살짝 힘을 주어 몇 초 꾹 잡았다가 악수를 위해 교차한 손을 풀려던 때였다.
빠져나가는 내 손을 아쉬운 듯 손끝으로만 잡은 행동에, 나는 마주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제야 알 것 같아.”
칼릭스가 입술로만 웃었다.
“……정말, 갈 길이 멀어.”
칼릭스 같은 사람에게 갈 길이 멀다면 시간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일 터였다.
‘아니면 사샤 황제 만들기 이야기인가?’
아기가 황제 하기는 힘드니까.
그렇다면 정말 갈 길이 멀다는 이야기는 진짜였다.
나도 동의의 뜻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눈웃음을 지었다.
“열심히 할게.”
“마음가짐, 아주 좋으시네요.”
적절한 아부도 잊지 않았다.
대공이 나한테 먼저 악수를 청하다니 관계가 한층 진전된 기분이다.
흐뭇해져 있는데, 칼릭스가 불쑥 말했다.
“사실은 샤를리즈 그대에게 묻고 싶은 말이 있었어. 그랬는데…….”
환하게 밝힌 샹들리에의 조명 아래.
산란하는 빛보다도 눈에 띄는 얼굴에 나른한 미소가 걸렸다. 오케스트라 악단의 선율 따위로 묻힐 수 없는 목소리는 어딘지 은밀했다.
그건 오래 찾아 헤매던 답을 마침내 발견한 사람의 얼굴과도 닮아 있었다.
“그래. 내가 더 잘해야 하는 게 맞아.”
* * *
그가 미간을 짜증스레 짓눌렀다.
“공녀 건은 철회해라. 일단은 황후의 뱃속에 정녕 후계가 있는 것이 맞는지부터 확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