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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조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107) (107/232)

107화

상점 지구에서, 칼릭스는 샤를리즈가 그를 두고 멀어졌다는 사실을 당연히 그 순간 깨달았다.

[주군. 공녀님 근처에 대기할까요?]

검은밤의 기사가 몸을 숨기고 샤를리즈를 호위하고 있음에도 제이는 그렇게 말했다.

그때 조금 웃었던 것 같기도 했다.

‘왜 너만 모를까.’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이성을 잃게 만드는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돌려 표현했으나, 그 자리의 모두가 알았다.

[미, 미친놈들이…….]

음지에서 암암리에 통용되는 그것이었다. 가장 흔한 쓰임새라면 대결을 위시한 내기의 주체에게 복용시키는 것이겠다.

[그럼 상점 지구에서 주군을 자극해 일을 키워 흠을 잡고자 함이었겠군요.]

[그랬을 테지요. 그런 일이 있으셨습니까?]

그때 칼릭스는 대답했다.

아주 많았다고.

방아쇠가 당겨지는 소음보다 실재할 리 없는 심장의 덜컹거림이 더 요란했던 때.

그건 겪어 본 적 없는 새로운 감각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때부터 예정되었는지도 몰랐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시절 가질 수 있던 유일한 한 가지를 잃어가게 되는 것이.

자꾸만 갈급해지고, 초조해졌다.

그래서 기다림은 괴로운 일이었다.

그런데 기다림이 즐거웠다.

[그 분말, 조심해서 사용해야 해. 샤를리즈. 위험할 수가 있어서 말이야.]

그 순간의 그는 샤를리즈가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고 싶었고, 주치의와 제이는 용도를 깊게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성을 잃게 만드는 작용을 하는 것이었어.]

꽉 쥐고 있던 것을 놓듯 손을 펼치는 그를 보며 샤를리즈는 뜻 모를 눈을 했다.

[적당히 친한 관계를 이제라도 많이 만들어 볼까 봐요. 뒤늦게 알아채고 바보 같아요. 경험이 없어서 그런 거니까, 많아지면 능숙해지겠죠?]

내게만 해.

입 안을 맴도는 말은 혀 아래 능숙하게 숨겼다.

샤를리즈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종종, 아니 자주 불안해졌다.

생존이 가장 최우선인 것처럼 굴면서도 죽음이 찾아온다면 ‘어쩔 수 없지.’하고 순순히 눈을 감아줄 것만 같아서.

이미 놓쳐 본 적 있는 것처럼 하염없이 초조해졌다.

그럴 때면 모두 상관없었다.

이대로의 관계도 괜찮았다.

그가 샤를리즈에게 다른 사람들과 같은 무게에 불과하다고 해도. 무거워져 단단히 발을 붙이고 살아간다면.

그것 하나만으로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샤를리즈는 언제나 불가해의 영역이었다.

그래서, 그녀를 생각할 때 이율배반적으로 되어버리는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대의 짐을 나도 나눌 수 있게 허락해 줘.]

제안처럼 꾸며도 결국은 불건전한 마음이 새어 나가고 말았듯이.

시야에 없어도 시선 끝에서 놓치고 싶지 않은 집요함과도 닮은 이 감각처럼.

모두 더는 생경하지 않은 것이었다.

칼릭스는 돌아섰다.

샤를리즈가 돌아오기 전, 그의 몫을 해야 할 차례였다.

* * *

어둑한 시각.

간접 조명이 켜진 집무실은 포근하다기보다는 쓸쓸한 느낌이 강했다.

필리엄 백작이 마른세수를 했다.

얼굴을 쓸어내리는 주름진 손이 떨리고 있었다.

발단은 어제 늦은 오후 도착한 서신이었다.

벌써 십수 번째 확인했음에도 감정을 도저히 걷잡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누가…….”

백작이 주먹을 꾹 쥐었다.

그분에게 이 서신을 내밀면 어떻게 될까.

배신의 기류에 동조하지 않고 찾아왔다며 흡족해할 수도 있었다. 그리되면 아리아의 생존은 한동안 무탈하다.

배신에 동조시키려던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그를 제거하려고 들 수도 있다. 그럼 아리아는, 햇살 같은 아이는 다시는 따스한 햇살을 경험하지 못하고 저대로 죽고 말 것이다.

노백작은 개성이 조금도 묻어나지 않는 딱딱한 필체를 다시금 확인했다.

로나터스 후작. 머리카락 끝이 푸르게 변색. 주기적으로 독을 공급해 후작을 관리한 페르난 백작. 샤를리즈 리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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