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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조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108) (108/232)

108화

[회임을 경하드립니다.]

테오도르는 언제나 카타리나의 발치에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다.

티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는 자세보다 거리가 가까운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축하 고맙네. 후작.]

그 순간의 카타리나는 흡족하게 웃었고, 지금의 그녀는 눈을 굴리며 엄지손톱을 깨물었다.

탁. 탁.

불규칙한 소음을 뒤늦게 포착한 카타리나는 신경질적으로 손을 휙 뺐다.

기억 저편에 묻어둔 버릇이 또 고개를 들려 하고 있었다.

‘의도가 무엇이지? 무엇을 알기를 바라고, 아니, 알기를 바라는 게 맞나. 내게 흑마법을…….’

손톱이 손바닥에 초승달 자국을 깊이 냈다.

그 자리에서 테오도르를 당장 취조하지 않고 지켜보는 눈을 붙인 것은 분명 합당한 판단이 맞건만, 실책을 범한 것만 같은 느낌이 계속해 뇌리를 강타했다.

“괜찮아. 그것은 중간에 파훼 되었어. 내게 해를 끼칠 수 없다.”

입술을 짓씹고 눈을 길게 감았다. 질릴 정도로 반복해 읊고서야 눈꺼풀을 올렸다.

소녀는 황후로 되돌아왔다.

우아하게 일어난 카타리나는 향수를 손목 안쪽에 뿌렸다.

양 손목을 가볍게 마찰하며 거울을 바라본 얼굴에 짙은 미소가 드리웠다.

후작쯤 되는 인사를 탈 없이 제거하기 위해서 자금은 필수적으로 수반된다.

“아버지께서 오랜만에 즐거워지시겠어.”

* * *

대공저에 도착해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눕기까지 했는데도 여명은 아직이었다.

‘예상보다 일찍 끝났어.’

필리엄 백작이 진즉 ‘그분’을 의심하고 있던 덕택이다.

‘로나터스 후작이 백작의 손녀와 같은 증상이었고, 내가 후작을 깨웠다.’라고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페르난 백작 건은 어째 잘못 이해한 느낌이었지만…….’

뭐, 동지도 아니고 하나하나 일일이 설명해 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분업이 활성화되어 있다더니 진짜 그런가 봐.’

백작은 흑마법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흑마법을 발동하기 위해서는 대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기초적인 정보만 알고 있었다.

진짜 돈만 대고 있던 거다.

“그래서 그놈이 백작에게 흑마법 하나만 걸고 말았나.”

왼손등을 힐긋 내려다보았다.

[―더 정교하게!]

[―……모르겠으면, 차라리 ‘이것’만 해보겠다고 생각해 보아라.]

신수한테 특훈을 받았건만 신성력이 사샤 말고는 통하지 않아서, 그냥 구박만 당하고 만 줄 알았더니 효과가 있기는 했다.

[백작의 주군 이름이 뭡니까.]

‘……흠.’

하마터면 필리엄 백작 살인 혐의가 생길 뻔했다.

헤레스 베론에게 걸려 있던 흑마법을 상회하는 것이었다.

‘수하들이 서로 주관하는 일도 제대로 모르게 하고. 정체를 발설할까 봐 흑마법 미리 걸어놓고.’

심지어 필리엄 백작은 흑마법과 제대로 연관되어 있지도 않아서 황실에 밀고해도 빠져나갈 구석이 많을 텐데도 더 강하게 걸었다.

“잃을 게 많은 사람인 거야.”

설령 그가 흑마법사들을 부린다는 사실을 들켜도 도주하면 끝이다.

다만 그렇게 되면 당연히 현재 생활은 영위하지 못할 터.

‘겁이 많은 건지 신중한 건지.’

덕택에 백작과 스무고개를 하느라 충분한 수면 시간까지는 마련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가짜 놈은 흑마법을 사용하진 않은 것 같고.”

오늘 나는 백작을 속박한 흑마법 때문에 아직 마땅한 단어로 정립하지 못한 미래를 들었다.

그래도 가짜 놈을 취조는 해 볼 생각이다.

“얼굴을 가까이 대려고 했던 걸 보면 뭔가 있었을 것 같기는 한데.”

아무튼 이것도 착실히 다이어리에 작성해 두었다.

입으로 하는 약속보다는 서명을 믿으나, 백작과 따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담보가 손녀 목숨이기 때문이다.

‘살리고 싶으면 배신 안 하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엄청나게 악독한 인간이 된 기분이지만, 착하게 살려고 했던 적은 없으므로 딱히 슬프진 않았다.

애당초 내겐 필리엄 백작에 앞서, 에리히 로나터스라는 협력자가 있다.

위험할 수 있는 일에 대신 들이미는 것 말이다.

‘그러고 보니 에리히놈 또 쓸 때가 됐는데.’

일리든 포르테가 복귀한 지 꽤 됐다.

리엔타가 일리든 포르테의 뒤를 봐주는 이유를 딸자식이라며 정치적으로 확대하지 않고 찜찜하게나마 납득하는 건 다른 귀족들과 황제지, 황후가 아니다.

카타리나 황후는 일찍 묻느냐 늦게 묻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이질감을 결코 혼자 납득해 넘어가진 않을 터다.

그놈을 잡아 제거해도 바로 평화롭지는 못할 듯했다.

에휴에휴 서글픈 숨을 흘리며 마침 떠오르는 태양에게 소원을 빌었다.

‘오래 살게 해 주세요…….’

* * *

“샤를리즈 리엔타가 백작의 저택을 찾아갔다고 들었네만.”

“마침 그 이야기를 드리려고 하던 차였습니다.”

“해 보게.”

“공녀는 본인이 로나터스 후작을 치료하였으며, 제 손녀도 치료할 수 있으니 자금을 조달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백작의 손녀가 깊은 잠에 빠져 있다고는 알려지기는 했지.”

“후작 역시 오래 의식을 차리지 못했으니 넘겨짚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호오.”

팔걸이를 두드리는 손짓은 여유롭다 못해 자못 경쾌했다.

“자금이라……. 리엔타도 자금이라면 부족하지 않지 않던가? 또 무슨 사업을 벌일 작정인지도 모르겠어.”

이전에 벌인 사업이 폭삭 망했으니 아무리 딸을 아끼는 부친이라고 해도 사업가로서 떨떠름하기는 할 터다.

“그런 쪽이 아니라…….”

백작이 머뭇거렸다.

완고한 노인으로부터 몹시 드물게 보이는 모습에, 그는 어서 말해 보라며 눈썹을 치켜올렸다.

“……도박에 빠진 눈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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