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오! 새로운 얼굴이로군.”
시가 끝을 질겅이던 보라색 가면이 포옹하듯 양팔을 번쩍 올렸다.
“때마침 잘 왔어. 방금 판이 끝났거든. 다람쥐 양은 저기 앉게.”
테이블의 한 자리씩 차지하는 이들 중에는 가벼운 눈짓만으로도 합을 맞출 수 있는 노련한 한 패도 있었다.
얼굴을 가리기 위한 가면은 그저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
은색 머리카락과 언뜻 보이는 녹색 눈동자.
‘간만에 큰돈을 벌어가겠어.’
사내 둘이 씩 웃는 동시에 판이 시작됐다.
* * *
그냥 가면 씌우고 말 것이지 부르기 편하라고 동물 귀가 달려 있었다.
착잡하게 골랐는데, 색깔 있는 가면은 이미 다들 잽싸게 가져가 없었던 건가 보다.
총천연색의 가면 사내들을 부럽게 쳐다보던 중, 나는 눈썹을 꿈틀했다.
‘드디어 지게 되었군.’
내 돈 털어가려고 작당한 거 뻔히 보이기는 했지만 뭐, 괜찮았다.
애초에 나는 이전 생에서 믿었던 사람 대신 개죽음 당한 것도 모자라 뒤통수도 맞은 얼간이 전적이 있다.
‘돈아, 미안해.’
새 주인은 비록 못돼처먹은 놈이지만 금세 또 다른 주인을 찾을 수 있을 거란다…….
그렇게 순조롭게 호구가 되어가고 있던 순간이었다.
“거기 둘, 이 아가씨가 처음 왔다고 신고식을 해주는 겐가? 그럼 나도 끼워주지 그래?”
“어디서 술이라도 마시고 왔나?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직원을 호출하는 종이 어디 있더…….”
“이 사람아! 아, 그래. 알겠네.”
“진작 그럴 것이지.”
‘…….’
나는 카드를 든 채 침울해졌다.
그다음 판에도 보라색 가면은 행패를 부렸다.
‘이 테이블은 텄군.’
대충 판을 마무리하고 슬쩍 일어났다.
‘시가 안 피우는 사람이 없네, 없어.’
대충 둘러보듯 느릿느릿 걷다가 조각상 하나에 시선을 빼앗긴 것처럼 적당히 멈춰 섰다.
그리고 미래의 조각을 반추했다.
“잘 됐어. 뜻하진 않았지만, 공녀가 제 발로 굴러왔으니.”
그가 눈을 가늘게 뜨며 흡족하게 웃었다.
“리엔타에 세작을 심을 기회가 찾아왔는지도 모르겠군. 후작은 황후를 더 주시하고 있게.”
테오도르 바나첼은 잠잠했다.
그가 눈썹을 밀어 올리자, 테오도르가 입을 뗐다.
“황후가 제게 눈을 붙였습니다.”
“확실한가?”
“예. 확실합니다.”
황후의 뱃속에는 역시나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 황후의 측근이니만큼 오래 쓸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하지도 않았건만 예상보다 일렀다.
‘꼬리가 밟히기 전에 버리는 게 옳지.’
그는 비정한 내심을 노련하게 숨겼다.
“그렇다면 수상해 보이지 않도록 최대한 납작 엎드리는 게 급선무겠군. 벌써 황후의 눈 밖에 나면 내가 후작을 아낀 보람이 없잖은가.”
외출 채비는 따로 필요 없었다.
퍽 오랜만에 시가를 피우며 시간을 보낼 계획이었다.
픽 웃은 그가 카지노에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