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의 조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121) (121/232)

121화

‘……음.’

하단에 적힌 날짜는 적당히 여유로웠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로제타와 상업 지구를 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로제타랑 이리안 만나는 거 즐거우니까.’

어깨를 축 내리뜨린 채 초대장을 대충 내려놓았다.

그리고 하고 있던 생각을 이어갔다.

‘칼릭스한테 미래의 조각이 어느 때 보이는지랑 교황 관련해서 이야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칼릭스에게 조사할 짐만 떠맡기는 느낌이라 미안해서 되도록 내가 알아보고 싶긴 했다.

하지만 사람은 분수를 알아야 하는 법.

“모르겠어요…….”

이왕 태어난 거 정보상의 재능을 부여받았다면 아주 좋았을 텐데. 이십 년도 더 된 과거를 아쉬워하다가 나는 왼손등을 꾹 눌렀다.

―뭐냐.

“우리 사이에 너무 삭막한 서두 아닙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이번에도 뭐가 또 궁금해서 나를 부른 것이겠지. 너는 나를 그럴 때만 생각하지 않느냐?

“신수님.”

―왜.

“제게 친밀감을 느끼고 계셨군요?”

―……뭐?

“그러니까 서운하신 게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신수는 충격받은 듯 침묵했다.

바쁘니까 이럴 때만 부른 거라고 한다면 상황은 봉합되겠지만, 거짓말하기는 그렇다.

나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자주 만나요.”

―그런 게 아니다!

“오늘은 바로 헤어지지 말고 시간을 더 보내고 싶은데, 신수님은 어떠세요?”

―……무얼 하며?

“흐음. 오늘 일단 3층 복도를 다녀온 뒤에 상황이 잘 풀린다면 사샤를 찾아갈 것 같습니다.”

―물어보려던 게 뭐였느냐?

나는 미래의 조각이 해가 뜬 동안에만 보인다는 것을 설명했다. 슬쩍 교황과 관련된 이야기도 해보았다.

―해가 뜬 동안에만 보인다고?

나는 몇 번이나 반복된 현실을 통해 저 한 문장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챘다.

신수는 또 몰랐다.

“교황에 대해서는 아십니까?”

―현 교황이라면 당연히 안다.

“혹시 언제 마지막으로 보셨는지요?”

―십 년 정도 됐을 거다.

“예에…….”

―걔가 원체 건강한 탓이다! 비실비실해지면 교체해야 하는지 가서 봐야 하는데, 멀쩡하니 굳이 그럴 일이 없지 않느냐.

나는 눈을 깜빡였다.

“그 비실비실에 혹시 의식을 잃은 것도 포함됩니까?”

* * *

오전 아홉 시 오 분.

시계를 확인한 리반이 슬슬 일어날 준비를 했다.

그는 얼마 전 들은 말을 떠올렸다.

[이 영식은 어째서 갑자기 조사하시는 겁니까?]

[샤를리즈가 앞으로 종종 만날 사람인데, 혹시 수상한 목적으로 다가온 건 아닐까 걱정돼서 말이야.]

옆모습은 무표정했고, 목소리는 여상했고, 눈동자는 안경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만나신다고요?]

[호감을 갖게 되었다더군.]

[그럼 설마 그 이유 때문에……?]

[음.]

칼릭스가 엷게 웃었다.

[아닌 건 알지만, 질투한 것도 맞아.]

그러나 샤를리즈가 오늘따라 일찍 왔다!

“대공 전하께서는?”

“사샤 님과 행복한 한때를 보내고 계시겠지요…….”

부러움이 몸에 내려앉은 듯 어깨가 축 처졌다.

“좋겠다…….”

함께 어깨를 축 내리뜨린 샤를리즈가 말했다.

“사샤는 엄청 일찍 일어나잖아.”

“사샤 님이요?”

리반이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뭐, 아홉 시 경도 아직 어리신 사샤 님께 엄청 일찍이기는 하지요.”

“아홉 시라고.”

고개를 슬며시 기울인 샤를리즈가 리반을 문득 쳐다봤다.

“……그래, 아홉 시라고 치자.”

“뭡니까! 뭔데요!”

“알려고 하지 마. 다쳐.”

“사샤 님과 관련된 일이라면 다쳐도 상관없습니다.”

“그런 각오라니……. 알겠어. 말해 주도록 하지. 사샤는 일곱 시에 일어나.”

리반이 의아함에 미간을 찌푸렸다.

“일곱 시요?”

“사샤는 그때쯤 꼬물거리면서 눈을 떠. 내가 일어날까 봐 애써 가만히 있으려고 노력하는데 조용해서 그런지 색색거리는 숨이 굉장히 크게 들려.”

리반의 어깨가 한층 내려앉았다.

“저 놀리시는 거지요?”

“사실 조금 맞아.”

“공녀님!”

그때, 집무실 문이 열렸다.

드디어 칼릭스였다.

* * *

내 주머니에 얌전히 들어 있는 신수가 떨떠름히 중얼거렸다.

―너, 저 인간에게 부탁을 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예. 그랬습니다.’

―안 들어줄 것 같다.

‘괜찮습니다. 리반이 다음에 예정된 날이 저보다 이후이면 두 번 당겨주겠다고 하면 되거든요.’

리반은 서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리반이 얼굴값을 해 나를 농락했던 세월을 아직 잊지 않고 있다.

“무슨 이야기를 재밌게 했어?”

“사샤의 기상 시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샤는 일찍 일어나잖아요.”

“일찍 일어나는 편이지.”

“그렇대. 리반.”

“예. 잘 들었습니다.”

“샤를리즈.”

채근하는 걸 보니 오늘 바쁜가 보다. 나는 칼릭스에게 곧바로 시선을 옮겼다.

“그 흑마법사를 더 은밀한 장소로 옮겨라. 마법진이 파훼된다면 곤란해져.”

“예. 주군.”

그가 못마땅하게 얼굴을 구겼다.

필리엄 백작의 말은 언뜻 듣자면 꽤나 그럴듯했으나, 의심이 간다면 모두 의심스럽기도 했다.

‘이대로 처리하기에는 아쉽건만.’

팔걸이를 툭툭 두드리던 손이 멈췄다. 그가 말했다.

“백작의 손녀에게 접근해라. 그것을 또 복용하게 해. 그 전에 로나터스에 먼저 접근하는 게 좋겠군. 시간대가 맞아야 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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