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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조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133) (133/232)

133화

심장이 돌이 된 것처럼 덜컹거리며 마구 굴러다녔다. 부딪친 부분이 욱신거리며 아릿했다.

낯선 감각에 굳어 있는데, 자연스럽게 다가온 손이 내가 내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샤를리즈. 왜 내게 황성에 가지 말라고 했어.”

살피는 시선은 섬세했고, 손의 완력은 적당했지만 이런 매너로는 현재 그의 기분을 절대 판별할 수 없다.

예상 범주를 벗어나는 질문에 나는 조금 늦게 대답했다.

“앞으로 사샤가 자랄수록 견제는 심해질 테고, 그래서 벌써부터 황제 폐하와 반목하지 않으시는 쪽이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원작에서 황제는 이 시기 칼릭스를 경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결국 칼릭스는 사샤의 열네 살 봄, 척결 명령의 대상이 되었다.

시기가 당겨지지 않기를 바랐다.

“오늘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언제 알았지?”

“오늘 아침이요.”

“그래.”

힐끔 곁눈으로 확인한 칼릭스의 얼굴은 부드럽게 풀려 있었다.

“그런데 약속을 어기고 황성을 갔어. 미안해.”

“아닙니다. 저도 약속을 어기고 반지 뺐습니다. 그리고 마침 전하께서 오셔서 바나첼 후작이 더 빨리 처치 받을 수 있었고요.”

알고 보니 부상이 깊었던 후작이 그때 죽으면 곤란했을 터다.

테오도르에게 주기로 한 대가는 복수의 대상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건 아드리안보다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칼릭스가 테오도르 바나첼의 장례식에 참석하며 속으로 중얼거렸으니까.’

슬쩍 칼릭스를 보았다가 시선이 마주쳤다. 나는 곧바로 눈알을 돌렸다.

“오늘 황제 폐하께서 물러나셔서 다행이에요.”

“그런가.”

심상한 목소리였다.

“앞으로도 폐하께서는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아 공녀를 위기로 몰아넣어 면책권을 회수하려고 악을 쓸 텐데.”

늘 적당히 말을 아꼈던 칼릭스는 긴장감 없는 태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엄청난 말을 쏟아 냈다.

‘혹시, 그 이상한 가루를 어쩌다 흡입하셨나요?’

떨리던 동공은 마뜩잖다는 듯 찡그린 칼릭스의 눈매를 정확히 포착한 후, 마저 떨었다.

“그러려는 걸 계속 봐야 하잖아.”

“……그냥 반납할까요?”

나도 그게 문제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이전과 달리 얌전하게 살 작정이라 면책권이 필요할 만한 대형 사고는 안 칠 건데.’

오히려 저 면책권 때문에 대형 사고에 휘말리려고만 한다!

좀생이 황제 놈은 두 번째 인생이 얼마나 소중한지 잊었나 보다. 나처럼 제대로 죽었다가 깨어났다면 결코 잊을 수 없을 텐데 말이다.

“그때는 리엔타와 엘루이든이 결합할 수 없도록 사력을 다할 테니 면책권의 존재 여하 말고 달라지는 건 없을 거야.”

“하나 더 다릅니다. 한 달 정도 시도하다가 안 할 테니까요.”

“왜?”

“결합이 확실히 무산됐다는 게 보이면 굳이 리엔타를 적으로 돌리려고 하지 않을 테니까요?”

“왜?”

“그야…….”

나는 대답하려다가 멈췄다. 대화가 겉돌고 있었다.

느릿하게 움직이던 발도 마침내 멎었다.

문득, 비슷한 순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가장 먼저 묻고 싶었던 건 공녀의 몸 상태였지만, 하지 않았어.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할 테니까.”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아주 근처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 * *

그들은 이미 ‘친밀’한데도 서로 할 수 없고 하지 않는 말이 많았다.

“하나는 숨이 붙어 있어.”

샤를리즈가 연회홀에 나타났을 때. 걱정했고, 안도한 눈빛을 발견했다.

그건 서로가 같았다.

그 순간, 칼릭스는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던 무언가를 마침내 움켜쥐었다.

그들의 관계는 공회전하고 있다고.

어떠한 계기로 ‘발전’할 수 있는 관계가 있는 반면, 더는 그럴 수 없는 관계도 있는 것이다.

직전의 꿈은 그 의심에 확신을 더했다.

모든 걸 바꿔 놓았다.

[이리안과 파혼을 하면 될까. 내가 뭘 하면, 더는 이러지 않겠어.]

[너,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네.]

사샤를 두고 신전과 약조를 했다며 찾아온 샤를리즈는 사샤를 암살하려고 시도할 테니 그런 그녀를 저지하고, 용서하라고 말했다.

그렇게 신전을 이 사건에서 논외로 만들어 리엔타를 보호해달라고.

그 대가로 본인의 목숨을 걸었다.

[그래. 선황자가 눈에 밟히는 건, 한 달도 안 되는 시간으로 같잖은 정이 생겼기 때문이 아니라 너를 닮았기 때문일 수 있겠지. 나는 아직도 널 사랑하는지도 몰라. 하지만 그게 뭐가 중요하지?]

피식거리던 샤를리즈는 무기질적인 얼굴로 중얼거렸다.

[어차피 끝난 관계인데.]

이 꿈의 정체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저 시간 속의 샤를리즈가 샤를리즈가 맞다는 사실만이 분명했다.

다칠까 봐 걱정하고, 손이 닿으면 반응하고, 시선이 마주치면 동요한다.

하지만 샤를리즈에게 더는 그것이 사랑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산산이 조각나 버려 다시는 원형으로 돌아가지 못할 유리 조각처럼 의미 없는 반짝거림인지도.

“내가 공녀에게 말한 모든 것들, 친구로서의 의미가 아니야.”

어째서 다 갖지 못할까 봐 두려워했던 걸까. 실은 조금도 갖지 못했는데.

곁에 있으면서 영영 불안해하고 싶었다.

* * *

착잡하게 약을 먹기 전, 왼손등으로 입매를 무의식적으로 슥 닦은 순간.

“―!”

소중한 앞니를 이리도 허무하게 영영 떠나보낼 뻔했다.

―뭐냐! 돌이냐!

예고 없이 튀어나온 신수와 박치기를 거하게 했기 때문이다.

고개가 뒤로 훅 넘어갔다.

‘어지러워……. 이 정도도 어지럽다니.’

어째 이 몸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느낌인데.

[황성 무도회는 어떤지 다녀오시고 이야기해 주시면 안 돼요? 너무너무 궁금한데! 얼마나 휘황찬란하고 어여쁠지 상상이라도 하고 싶어요. 네? 네? 네?]

아리아의 무차별 폭격에 정신이 혼미해져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난다.

아리아를 만나면서 필리엄 백작에게 포션을 도대체 어디서 샀는지 간절하게 물어봐야겠다.

‘억만금이 든다면 고민해봐야겠지만…….’

차가운 현실에 슬프게 어깨를 떨고 있는데, 신수가 갑자기 고개를 마구 저었다.

―아주 고약한 냄새가 난다! 아주 음침한 기운이 폴폴 풍기는구나!

내 생에 대한 의지를 그렇게 표현하다니.

‘틀린 말은 아니네.’

이 와중에도 놓치지 않은 약그릇을 단단히 고쳐잡고, 나는 통통하고 짤막한 팔로 어떻게든 코를 막아 보려고 애쓰는 신수에게 너그럽게 말했다.

“이빨이 안 나가서 다행입니다. 그랬다간 신수님 몸에 이끼가 폈을지도 모르겠어요.”

―이가 문제가 아니다!

남의 몸이라고 쉽게 말하다니. 약그릇에 코를 박다가 다시 떼다가 다시 박는 신수를 뚱하게 쳐다보다 일어났다.

“그럼 저는 사샤에게 가 보겠습니다.”

―이거, 무엇이냐?

“약입니다.”

―이 고약한 것이?

“약은 원래 고약합니다.”

몸에 좋을수록 입에 쓴 법이랬다. 이건 냄새도 지독해서 차마 사샤에게 이런 냄새를 맡게 할 수 없어 여기서 마시려고 했지만 말이다.

―너, 기운이 없어 보인다. 이 해괴한 것을 마셔서 그런 게 아니야?

“아직 안 먹었습니다.”

나는 비척비척 일어났다.

순간 튀어나온 신수 때문에 집중이 흐트러진 모양이다. 야멸차게 외면하고 있던 목소리가 끝내 또 한 번 귓가를 울렸다.

“……신수님. 친구가 아니면 뭘까요.”

―남이지 뭐겠냐.

“그쵸? 그런데…….”

벽을 세우는 느낌이 아니었어요. 벽을 허물고 속엣것을 보여 주는 쪽이라면 모를까.

줄곧 칼릭스를 생각하며 새삼스레 깨닫게 됐다.

‘나, 칼릭스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았었구나.’

내 사랑이 짧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도, 그 이후에 마음 접어서 친구로 잘 지낼 수 있다며 알리고 싶었던 것도.

모두 내 짧은 실수로 칼릭스와 멀어지고 싶지 않아서였다고.

다시 시무룩해져 약을 먹으려는데, 신수가 의아하다는 듯 꿍얼거렸다.

―저거,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꼭 독 같아.

“……예? 가장 중요한 말을 이렇게 늦게 하면 어떡합니까!”

하마터면 신수가 또 종알거리는구나 하고 한 귀로 듣고 흘릴 뻔했다!

나는 심각하게 질문했다.

“짚이는 부분이 있으십니까?”

―없다.

당당하게 대답한 신수는 다시 저거 이상하다며 꿍얼거렸다.

‘흠. 어렸을 때부터 꾸준하게 먹은 거였는데.’

탁한 갈색의 액체 위로 내 얼굴이 아른거렸다. 수상하게 생각하니 그 밖의 의문점들이 줄을 잡아당기듯 줄줄이 따라 나왔다.

‘그래서 어느 약인지도 안 물어봤어. 일주일에 한 번꼴로 먹으니 농축되어서 더 맛없나보다 생각하기도 했고…….’

힐끔 신수를 쳐다본 나는 신수에게 이리 오라며 손짓했다.

쪼르르 달려오던 신수가 다시 멀어졌다.

―감히 나를 부리다니! 네가 와라!

새침하기는. 아까보다는 덜 소중하게 약그릇을 들고 도착해 손을 내밀었다.

“제 신성력 좀 봐주십시오.”

―봤다.

그리고 약을 한 번에 털어 넣었다.

‘십 년 먹으나 십 년 하고 하루 더 먹으나 거기서 거기겠지.’

―이, 이, 이상하다고 하지 않았느냐!

“이제 다시 봐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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