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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의 조카가 나를 너무 좋아한다(136) (136/232)

136화

‘리엔타 공작 말로는 준비 기간이 이년 정도랬으니까 꿈에서 만나는 교황은 현재 교황이겠군.’

……다행이었다.

로단테는 영영 모를 테지만, 그래도 신의 날개라는 이명까지 있는 꽃밭을 호시탐탐 불태우려는 망나니짓을 로단테에게 하지 않아서 말이다…….

‘그나저나 로단테는 신성력이 굉장히 강한가 보다.’

이거 나 때문에 재능 썩히게 된 건 아닌지.

한 번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고 생각하곤, 가장 중요한 것도 잊지 않고 물었다.

“아버지. 제가 주기적으로 먹는 그 고약한 약, 출처가 어딥니까?”

“히핀 지구의 중앙 광장에서 황성 방향으로 뻗은 길목의 두 번째 치료소란다. 실력으로 정평이 나서 귀족들이 많이 찾는다. 가끔은 황족도 찾을 정도이니.”

“……굉장히 상세하게 아시네요?”

“당연하다. 샤를 네가 먹는 것 아니더냐.”

리엔타 공작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왜인지 어색한 기분이 되어 삐걱거리다가 다이닝룸을 스르르 빠져나가려던 순간.

청천벽력 같은 선고가 떨어졌다.

“그런데 그건 왜 묻는 게냐? 혹 어디가 아픈 게야? 안 되겠다!”

“예?”

“온 김에 검사를 받아 보거라.”

“예? 아니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저 엄청…….”

순간 당황해서 진짜로 주먹으로 내 머리통을 날리자, 크게 뜨인 공작의 눈이 금세라도 흠뻑 젖을 듯 촉촉해졌다.

“……받아 보겠습니다.”

손뼉을 짝짝 치는 공작을 착잡하게 바라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눈물의 검사를 받게 되었다.

다 끝내고 널브러져 있자 주치의가 진중하게 물었다.

“혹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없으십니까?”

“음.”

열정으로 불타오르는 주치의의 눈을 찔끔 피했다.

‘없다고 넘기고 싶다. 아주 그러고 싶다.’

하지만 나야말로 내 작고 귀여운 건강이 소중한 사람이었다.

‘이미 한껏 시달린 거, 조금 더 시달려보자.’

“사실, 심장이 뻐근해.”

“예? 예? 예? 예? 예?”

자리에서 파드득 튀어 오른 주치의가 안경을 고쳐 썼다.

“어떤 상황에서요? 설마 가만히 계실 때 그러시는 겁니까? 아이고, 아이…….”

“잠시만. 진정해.”

“크응.”

“상황은 그때마다 다르기는 한데, 특정한 사람을 볼 때 종종 그래.”

어깨를 들썩이던 주치의가 기묘한 얼굴을 했다.

“……특정한 사람이요?”

“그래. 막 쑤시고, 심장이 굴러다니는 것처럼 우릿해.”

“혹시 그 특정한 사람이 엘루이든 대공 전하이십니까?”

“그대, 정말 명의로군!”

감탄을 내지르자 주치의가 입을 벌리며 안경을 여러 차례 고쳤다. 쑥스러운가 보다.

“그건……,”

무어라 말할 것 같더니 퍼뜩 주변을 돌아보고 한껏 목소리를 낮췄다.

“공작 각하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집무실에서 열심히 일하고 계실 테지.”

“아가씨께서 원하신다면 검사를 하겠습니다만.”

“원하지 않아.”

“아가씨께서도 어느 정도 짐작하셨겠지만, 그건 병이 아닐 겁니다. 이상 소견도 아니고요.”

전혀 짐작 못 해서 이러고 있다.

뚫어져라 바라보자 그가 큼큼 헛기침했다.

“대공 전하를 마음에 담으셨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아, 그랬지.”

“그겁니다.”

나는 눈썹을 들어 올렸다. ‘무슨 소리입니까.’라는 뜻이다.

그러나 주치의는 “허허.”하며 마치 다 자란 손주 보듯 나를 쳐다봤다.

‘……어라. 전후 상황상 그거 같은데.’

사랑은 실바람 같다. 억새풀숲을 가르고 지나가는 것처럼, 마치 마음에 이는 잔물결처럼.

내 얼굴이 어지간히도 아리송했던지 주치의의 낯빛이 시시각각 변했다.

그가 염소처럼 목소리를 마구 떨며 물었다.

“아, 아닌 겁니까? 아이고, 아이고오오.”

“맞아. 맞아!”

나는 허겁지겁 변명했다.

“사랑이 맞나 봐.”

‘……어?’

무심코 한 말의 울림이 묘했다. 기묘한 기분이 되어 있던 나를 일깨운 것은 다행이라며 흑흑거리는 주치의의 목소리였다.

* * *

‘지쳤다.’

쉴 새 없이 걷고만 있다. 로단테는 별관에 없었기 때문이다.

“로단테 오라버니는 연병장에 있을 거예요.”

“어어.”

그곳에는 또 엔젤이 있어서, 혹시 엔젤의 방을 협소한 공간으로 내어준 게 아닌가 싶어 확인도 한번 해 보았다.

그렇게 도착한 연병장은 그리운 정취를 풍겼다.

‘그래. 그렇게 체력 쓰레기였던 시절이 있었어.’

나는 내 몸을 너그럽게 봐주기로 했다.

“오늘 밥은 내가 가장 먼, 아, 아가씨?”

“로르 경.”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에 나는 성큼 다가갔다. 로르 경은 제자리에서 깡총 뛰어오르더니 허리를 숙였다.

대공저에서 미래의 대공비 생각을 해서 그런지 아니면 괜히 사람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말을 하고는 집안 어른들이 이어준 결혼을 했다던 주치의 때문인지.

나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됐다.

“로르 경. 혹시 결혼했어?”

“아, 아, 아, 아닙니다!”

“그래? 만나는 사람은?”

“아, 아, 아, 앞으로도 없을 예정입니다!”

“그렇군. 너무 개인적인 질문이었지? 미안해.”

“아, 아, 아, 아닙니다!”

로르 경은 그러고 보니 식사를 덜 했다며 건물 안으로 부리나케 사라졌다.

‘저 심정, 아주 잘 알지.’

아무튼 나는 여전히 싱숭생숭했다.

“아가씨이십니까?”

그때,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동그랗게 눈을 뜬 채 노아가 건물에서 나왔다.

‘노아도 토끼화가 진행 중인가 봐.’

진정한 리엔타로 거듭나고 있는 셈이다.

“혹, 무슨 일이 있으신 겁니까?”

“별일은 아니고.”

걱정이 어려 있던 노아의 시선이 부드러워졌다. 나는 또 어색한 기분이 되어 삐걱거렸다.

“로단테가 여기 있다고 해서.”

“아, 로단테요.”

노아가 안내해 주겠다며 성큼 걸어 나갔다. 그 뒤를 졸졸 따라가고 있자니 노아가 이것저것 설명했다.

“기사들의 휴식 시간에 종종 찾아와 홀로 검술을 연습하고는 합니다.”

“로단테가 검을 다룰 줄 알아?”

“예. 아무래도 기본 소양이니까요. 기초는 잡혀 있었습니다.”

‘흠.’

무심코 내려다본 내 손바닥은 굳은살 하나 없었다. 일리든과 대련할 때 승리하기는 했지만, 순전히 얍삽한 수작 덕택이다.

“검술, 나도 배울까.”

곰곰이 생각하던 노아가 조심스레 말했다.

“공작님께서 많이 걱정하지 않으실까요?”

“그러시겠지.”

게다가 체력이 가장 문제였다.

‘역시 총으로 쏴대는 편이 나으려나.’

칼릭스한테 부탁해서 음소거 기능이 있는 마도구를 구해봐야겠다.

그리고 나는 노아한테 혼쭐났다.

“마도구는 마정석이 소진되어 차마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만, 카지노를 자주 출입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아, 그거.”

“압니다. 쾌락과 흥미를 위해 출입하신 게 아니겠지요. 그래도 그곳은 아주 나쁜 장소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응. 잘못했어.’, ‘응. 안 할게.’, ‘응…….’ 하던 중, 나는 눈을 반짝 빛냈다.

“저기 로단테가 있어!”

“남은 이야기는 다음에 하는 것으로 하지요.”

노아를 하염없이 기다리게 할 수는 없으니 시간을 내서 또 리엔타 공작저에 와야겠다.

터덜터덜 힘없이 다가가자, 낯선 인기척에 고개를 휙 돌린 로단테가 얼른 검을 내려놓았다.

주홍색 눈은 이번에는 아무 미래도 끌어내지 않았다. 그럴 것 같았다.

“잠시 대화할 수 있을까?”

* * *

비슷한 시각. 바나첼 후작저.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집사가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가주님. 조금 더 휴식을 취하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의원도 제대로 부르지 못해 상처 회복도 느리지 않으십니까.”

“아니. 충분히 쉬었다.”

집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도 더는 만류하지 못하고 집무실을 나섰다. 가주위에 오른 뒤 테오도르가 이만큼 요양한 적은 없었으므로.

홀로 남은 집무실에서 테오도르는 아릿한 복부를 손바닥으로 덮으며 눈을 길게 감았다.

돌이켜보자면 의아한 구석이 많았다. 그중 가장은 단연 이것이었다.

‘공녀는 어떻게 이 집단을 알게 되었지?’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리엔타 공녀께서 방문했습니다. 일단 응접실로 모셨는데, 어찌할까요?”

“바로 만나 뵙겠다고 전하게.”

지나치게 공교로운 타이밍의 방문이지만, 의심스럽지는 않았다. 그럴 만한 때였다.

응접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의자에 앉아 있던 샤를리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녀는 이만 자리를 피하라고 해 주십시오. 뒤에 누가 있으면 불편합니다.”

“그리하시면 입이 가벼운 자들이 어떤 말을 나를지 모르는데요.”

테오도르는 조금 난감한 듯 웃었다.

“언제는 안 그랬던 적이 있습니까?”

무심한 어투에 테오도르는 어쩔 수 없다는 것처럼 시녀를 물렸다.

“업무가 바빠 서류를 가지고 오는 수밖에 없겠더군요. 다음에는 미리 방문을 말씀해 주시면 이런 일이 없겠습니다.”

“유념하지요.”

녹안이 아래로 미끄러졌다.

세작이 잠입해 있을지도 모릅니다. 주 대화는 필담으로 나누는 게 좋겠습니다. 종이는 공녀님께서 회수해가시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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