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황제는 황후를 시해하려고 시도한 배후로 나를 생각할 테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생각하게 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혐의를 피하려던 대공은 개인적으로 조사했고, 그러다 우연히 흑마법사 집단의 꼬리를 밟게 된 거야.”
칼릭스의 방식과는 다르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의 방식, 요컨대 활로를 모두 끊어 달아날 수도 없도록 만든 뒤 천천히 옭매어 완전히 틀어쥐는 것은 필연적으로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그러나 칼릭스로서는 서둘러야만 하는 이유가 없다.
‘흠. 많이 화났나 보군.’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는데, 칼릭스가 턱을 괴며 웃었다.
“샤를리즈. 내가 굳이 그들의 자가당착으로 포획하고 싶은 이유는, 그들이 감히…… 공녀를 흑마법의 대가로 삼으려고 했기 때문이야.”
칼릭스가 곱씹듯 중얼거렸다.
“그건 너무 간악무도하잖아.”
“맞습니다.”
나도 동의했다.
“영혼은 다음 생이 허락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본인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환생조차도 할 수 없도록 하다니요!”
다음 생에 또 어느 소설 속 악녀로 태어나 개고생할까 봐 암만 걱정이긴 해도 흉악한 목적을 위해 바쳐지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
게다가 저렇게 바쳐진 후, 내가 정녕 아무 의식도 없는지 아니면 몸은 있고 의식만 가진 채 떠돌는지 모른다!
“이 나쁜……. 게다가 내 남은 칠십구 년을 마음대로 없애버리려고…….”
주먹으로 테이블을 꽁 내리치며 분개하는데, 칼릭스의 동공이 놀란 듯 부풀어 있었다.
머쓱하게 테이블을 살살 도닥이던 때였다.
“기억, ……아니야. 샤를리즈.”
어리둥절하게 고개를 들어 올리자 보인 것은 내리감은 눈꺼풀 위를 커다란 손으로 가린 칼릭스였다.
나는 조금 미심쩍은 심정으로 칼릭스를 살폈다. 은근슬쩍 넘어가고 있는 그 지칭을 읊어야 할 순간이 도래하게끔 하고자 장난치는 게 아닌가 싶었던 거다.
그러나 손가락 틈 사이로 떨리는 속눈썹을 발견하고 말았다.
‘어, 어, 어라?’
“무슨 일이에요?”
화들짝 일어나 칼릭스의 턱선을 양손으로 감쌌다. 드물게도 그 얼굴이 나보다 낮은 위치에 있어서일까. 어쩐지 칼릭스는 늘 여유로운 대공이 아니라, 어딘가를 헤매는 소년 같았다.
마침내 온전히 드러난 벽안은 위화감 없는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그랬기에 이질적이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갑자기 할 일이 생기니 생각이 많아져서.”
그러나 나는 캐묻지 않기로 했다.
상대의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고 관계가 빈약해지는 것은 아니다. 모두 안다고 다시 없을 두터운 관계가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말했을 뿐이다.
“그럼, 그 생각을 같이 나눠요. 제가 도움……이 많이 되진 않겠지만, 1인분……도 어려울 것 같지만.”
말을 할수록 동지로서의 값어치가 하락하는 느낌이었다. 얌전히 입 닫고 있는데.
“음.”
칼릭스가 불현듯 웃었다.
나는 왠지 또 미심쩍어졌다.
의심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자, 칼릭스가 실토했다.
“고마워. 샤를리즈가 전에 했던 말을 떠올리니 기운이 났어.”
“……뭔데요.”
“칼릭스. 우리…….”
“잠시만!”
나는 후다다닥 도망쳤다. 내 뒤로, 칼릭스의 웃음 서린 목소리가 따라붙었다.
“오랜만에 아카데미 첫 학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서 설렜어.”
편하게 말하라는 제안을, 반말 찍찍하고 다녔던 과거가 있는 나는 그렇게 알아들었고…….
어색하게 흠흠거리다가 이런 걸 말이라고 해 버렸고…….
[칼릭스. 우리 잘 지내보자.]
칼릭스라고 발음할 때마다 저 순간이 떠오르게 되고 만 것이다.
복도 벽을 짚으며 휘청휘청 침실에 도착한 나는 침대로 몸을 날렸다.
몇 번 주먹으로 쾅쾅 쳐대다 필사적으로 다른 일을 생각하던 중, 뜬금없이 고개를 쳐들고 외마디 이름을 내질렀다.
“아드리안!”
사람은 필사적일 때 비상해진다더니 나도 비슷해졌다.
양심상 묘안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뭐가 하나 떠오른 것이다.
* * *
“아드리안. 요즘 분위기가 심상찮으니까 조심해라?”
한때 있던 동료들끼리 암암리에 간수라고 불렀던 사내가 히죽였다.
“자칫하다 실수하면 바로 네 어미 목 날아갈 분위기다, 이 말이야.”
아드리안은 그를 사납게 노려보며 주먹 쥐었다.
뭘 그렇게 보냐며 심심풀이하는 대신 사내는 어깨를 으쓱이며 “알아두라고.”하고 킬킬거리곤 사라졌다.
내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건 그도 짐작하고 있었다.
‘위쪽에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의아한 시간은 짧았다. 저번에 샤를리즈에게 보낸 전서구의 발목에 이런 쪽지가 묶여 돌아온 덕택이다.
나를 못 잊어서 언제까지 구질구질하게 굴 작정이지? 이러다가 엘루이든으로 선물까지 보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