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황후가 신전의 숲에서 피습당해 의식을 잃었다.
비보에 각 저택의 집사들은 무도회와 티파티가 무기한 연기되었다는 서신을 보내기 바빴다.
몇몇 귀족은 혹여 불똥이 튈까 두려워 저택에 칩거하며 문을 꼭꼭 닫아걸었고, 몇몇은 몸을 사리며 소규모 사교 활동을 보전했다.
어느 용기 있는 귀부인이 말했다.
“리닉스 공작 각하께서 이 일로 심경의 변화를 대단히 느끼신 모양이에요.”
모두가 암암리에 아는 사실. 그러나 입에 담기는 무거운 이야기를 거론한 생각 짧은 처신으로 귀부인은 다시는 그 티타임에 초대받지 못했다.
그랬다. 과연 리닉스 공작은 달라졌다.
그것이 딸이 당한 피습 때문인지 아니면 카지노가 문을 닫은 덕택에 엉겁결에 중독에서 헤어 나온 덕택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삐죽빼죽하던 수염도 말끔하게 면도하고, 퀭한 안색은 정돈됐다. 행색도 고위 귀족의 그것으로 변했다.
어느 호사가는 이렇게도 말했다.
“리닉스 공작 각하께서 이김에 카지노를 폐쇄시킬 수도 있겠어. 다시 중독되실까 봐 말일세.”
카지노의 소유주는 개인이지만, 리닉스 공작이란 그 정도 일은 능히 가능한 권력가였다.
한편, 그 리닉스 공작은 머리카락을 모두 뒤로 쓸어 넘겨 겉모습을 말끔하게 정돈한 상태였다.
당장 외출이 가능할 차림새는 그분이 불러 주기를 바라는 마음의 발로였다.
팔걸이를 초조하게 내리치던 그가 끝내 타들어 가는 속을 어쩌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내 감히 황후를 피습한 것들을 결코 용서치 않을 테요.]
그때, 파리한 낯빛으로 눈을 감은 딸을 보며 리닉스 공작은 태평하게 생각했다. 역시 총보다는 폭탄이 확실했을 터인데, 하고 말이다.
그러니까, 어디서부터 일이 꼬였던 걸까.
[카지노는 이제 폐쇄하는 게 좋겠습니다.]
[예? 하오나 벌어들이는 수입이 여전히 막대합니까. 혹 꼬리가 잡힐까 봐 염려되신다면 쉬폰 남작이 사장으로 있으니 여차하면 리엔타 공작에게 덮어씌워도 되지 않겠는지요.]
[아니요. 대공 측이 심상찮습니다. 어쩌면 이미 진짜 주인을 알아챘을지도 모르겠어요.]
그 말에 즉각 움직인 것은 비단 그분의 혜안이 대단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과거의 한순간이 문득 떠올랐다.
황성에도 세작을 심는 데 성공한 리닉스 공작이지만, 엘루이든 대공가는 실패했다. 보다 정확하게는 심는 것 자체는 성공했으나 교란된 정보만 얻는 데 성공했다.
다행스럽게도 당시도 집단은 점조직 형태였던지라 들통나기 일보 직전인 말단부만 잘라내고 끝날 수 있었다.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 판단은 이내 사그라들었다.
칼릭스가 조카를 찾는 데 난항을 겪은 시점에서였다. 살아있는 것도 몰랐고, 살아있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쉽게 찾아내지를 못하는 정보력이라니.
돌이켜보니 과연 그러했다.
한미한 황자로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연 빠른 눈치 덕택이었을 터. 세작을 눈치챈 것도 그저 저 연장선상이었으리라는 생각이 자연히 들었다.
‘그러나 그분이 대공을 언급하신 것은 이유가 있었겠지.’
그랬기에 리닉스 공작은 다른 이들이 예상하는 그대로의 방식으로 카지노에 압력을 행사해 순조롭게 무너뜨릴 작정이었다.
리닉스는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을 내보일 수도 있으니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분의 마지막 말을 유념하여 간직하지는 않았는데.
‘황제가 대공을 도대체 어떻게 자극했던 거지?’
심어둔 세작의 말로는 황제와 알현을 마치고 나오는 대공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고 한다.
황제야 걸핏하면 칼릭스의 모친을 거론하기 일쑤이니 별 감흥 없이 흘려 넘긴 정보였다.
그러나 칼릭스는 숨겨 둔 발톱을 드러냈다.
“카타리나 그것의 입을 막았어야 했거늘!”
리닉스 공작이 분에 차 크리스털 공예품을 내던졌다. 요란한 파열음을 내며 엉망진창으로 깨진 조각을 봐도 화는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다.
‘대공의 행보로 짐작건대 공녀에게 흑마법과 관련된 이야기를 했겠지.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해치울 요량이었을 테니까!’
방향이 제시돼도 처음에는 헤매는 게 정상이다. 아무리 정보력이 대단해도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엘루이든 대공은 마치 이미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적확히 움직여 인력과 시간을 조금도 낭비하지 않았다.
한참 집무실을 서성이던 발이 뚝 멈춰 서고, 리닉스 공작이 짓씹듯 말했다.
“……황제를 들쑤셔 봐야겠다.”
엘루이든 대공이 이쪽에만 집중할 수 없도록 말이다.
어차피 흑마법이 샤를리즈 리엔타를 노린다고 말했을 터였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것도 모자라 한때 지긋지긋했던 관계보다는 무릇 제 조카가 더 애틋하지 않겠는가.
‘이러기 위해서는 그분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할 수밖에 없겠으나…….’
리닉스 공작가 특유의 짙은 빛깔의 붉은 눈동자가 어둑한 사위에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 * *
로단테가 칼릭스 엘루이든을 제대로 대면한 것은 분명 그날이 처음이었다.
첫인상은 그가 사샤와 아주 많이 닮았지만, 동시에 전혀 닮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남자는 분명 위압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데도 말 한 번 붙이기도 어려운 분위기였다. 그래서, 공녀님은 역시 대단하다고 멍하니 감탄하기도 했다.
주변인과 친밀한 낯선 사람을 보며 짧게 생각하는, 딱 그 정도.
그러나 환한 빛 조각과도 닮은 광석을 두 눈에 담은 순간.
이유 모를 두통으로 시작한 고통이 삽시에 그를 집어삼켜 로단테는 헐떡이며 허리를 숙였다.
왜 그러냐며 고요히 호들갑 떠는 리엔타 공작에게 괜찮다고 웃은 후 다시 보게 된 대공은, 낯선 얼굴 그대로인데도 이전과 다른 것만 같았다.
그리고 돌아온 밤.
로단테는 긴 꿈을 꿨다.
[너와 나는 목적이 같고.]
이상한 일이다. 로단테는 칼릭스 엘루이든을 알고 있었다.
그는 태생부터 다르다는 것을 매사 증명하듯 여유롭고 빈틈없는 남자였고, 그랬기에 일그러진 얼굴 따위는 해 본 적도 없을 사람이라고.
그러나 눈 밑을 붉게 물들인 채 야차처럼 얼굴을 사납게 일그러뜨리고 있는 사람은, 분명 그 칼릭스 엘루이든이 맞았다.
[모든 것을 그 대가로 바칠 수 있지.]
꿈속의 자신은 이윽고 대답했다. 날카롭고 예민한 기색이 가득한 목소리가 천장이 높은 공간을 울렸다.
[저는 생각하지 않았을 줄 아십니까?]
[가능하다면.]
검은 머리카락 아래, 푸른 눈동자는 마치 휘몰아치는 불꽃을 닮아 있었다.
진창까지 처박힌 듯 짓눌린, 그러나 특유의 우아한 어조는 변함없는 목소리로 칼릭스가 물었다.
[가능하다면 할 텐가?]
그리고 꿈에서 깨어났다.
직전까지 마구 내달리기라도 한 것처럼 모자란 숨을 로단테는 갈급하게 들이마셨다.
한낮이었다.
혼란스럽게 상체를 일으키다 문득 옆을 돌아봤다.
엔젤이 불편한 자세로 엎드려 자고 있었다.
“엔젤……?”
그때, 방문이 열렸다.
얹혀사는 남매에게도 늘 친절한 리엔타의 사람들은 결코 막무가내로 문을 열지 않는다.
반사적으로 문가를 바라보자 시선이 마주쳤다.
“로단테! 이놈아!”
‘이눔아’에 가까운 발음으로 울먹거린 사내는 휴식 시간에 틈틈이 자세를 봐주는 기사들 중 하나였다.
그는 금세라도 울 듯 울멍울멍한 눈으로 엔젤을 부르짖었다.
“꼬맹아! 네 오빠 일어났다―!”
“기사님. 엔젤은 자고…….”
……있을 때는 크게 불러도 아무것도 못 들어요. 라고 말하기도 전.
엔젤이 번쩍 눈을 떴다.
“너, 너.”
금세라도 화를 낼 듯 아랫입술을 거칠게 짓씹은 엔젤이 와락 품을 파고들었다. 언제나처럼 동생을 품 안 가득 안으며, 로단테는 설명해달라는 눈으로 기사를 바라보았다.
그는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치며 크훙크훙 말했다.
“너 보름째 잠들었었다. 그래서 다들 얼마나 걱정이었는지 몰라. 가주님께서 주치의도 모자라 어디더라, 아무튼 약 되게 잘 만드는 약제사한테서도 약 지어 오셨는데도 차도가 없었지 뭐냐. 설마 혹시 그러진 않겠지만 그래도 만약 못 일어나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엔젤이 먹을 점심을 챙겨왔던 기사는 트레이를 얼른 테이블 위에 내려 두고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말하겠다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렇게 로단테는 지난 보름 동안의 일을 듣게 되었다.
“……선황자 전하와 관련된 신탁이 내려왔다고? 내용은 뭐였는지 알아, 엔젤?”
엔젤이 고개를 내저었다.
“저번에 리엔타 공작 각하께서 조용히 불러서 이야기만 해 주셨어. 사샤랑 친했으니까 혹시 모르니 외출하지 말고 별관에만 있으라고.”
“나, 엘루이든 대공저에 가 봐야겠어.”
엔젤은 스푼을 내려 두었다.
절대 안 된다는 일장 연설의 시작이라고 해도 로단테의 마음은 변함없었다.
그러나 정작 엔젤이 한 말은 이러했다.
“공녀님께 무슨 일이 있어서 그러는 거야?”
“그건 아니야.”
“오빠 너, 또 꿈꿨구나.”
엔젤이 동그란 눈을 매섭게 빛냈다.
“대신 나도 같이 가. 위험하다고 안 된다는 말은 하지 않기야.”
그리고 남매는 리엔타의 마부에게 부탁하는 과정에서 노아에게 들켰다.
노아는 알 수 없는 눈으로 어린 남매를 보다가 공작저를 가볍게 돌아봤다.
“호위 기사가 필요할 테지.”
평소보다 빠르게 박동하는 심장은 긴 잠에서 막 깨어난 탓일까, 아니면 그 저택을 향하고 있기 때문일까.
지금은 알 수 없었다.
로단테는 깊은 눈으로 엘루이든 대공저의 정경을 물끄러미 응시했다.